제대하고 충무로 기획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주로 하는 일은 카탈로그를 만드는 일이다.
디자인 시안을 잡고 장소 헌팅하고 모델 스케줄 관리하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인쇄해서 납품까지...
엄청 바쁘게 돌아간다.
어느 날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 길중이 한테 연락이 왔다.
“제대 기념으로 미팅 하지 않을래? ”
“물론 해야지 니가 애써서 말한 건데 거절하면 인간도 아니지”
“좋아”
“근데 예쁘냐?”
“하하하하 예뻐...놀랄거다”
“그래 그럼 놀래 보도록하지 뭐”
그리고 나간 소개팅 자리
며칠인가 집에도 못 들어가고 밤을 샌 참이라
멋진 모습으로는 나가진 못했다.
멋진 모습은 커녕 후즐근한 차림으로 신촌 카페에 들어 선 나는 진짜 놀랬다.
그녀가 진짜 예뻣다.
동화책 속에 공주님 같았다.
“안녕하세요“
“네”
쌀쌀 맞은 그녀다
돈가스 먹고 커피마시고 영화보고...
“다음 주에 시간 되면 만날래요?”
“네...”
그러고 헤어졌다.
길중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야이 너 뭐하는 넘이야”
“왜 왜 내가 싫대?”
“그래 임마”
“날라리 같다잖아 어떻게 그러고 갔냐”
“아 밤새고 좀 바빠서”
“야이 씨 옷이라도 사 입고 가지 어디 노숙자 나온 줄 알았대...임마·”
“좀 그랬지...”
“좀은...아이 됐고... 애프터는 끝인 것 같다”
“...하아...”
<7년 후...>
나는 그동안 취직도 두 어번 하고 사표도 두어번 집어던지고
일년여 동안 배낭 여행도 다녀 왔다.
여행 다녀와서 세 번째로 들어간 회사가 용산에 있는 회사다.
코끼리 빌딩 국제빌딩에 회사가 있다.
해외출장이 많은 일을 해서 많이 바빴다.
한가한 어느 날
그 동안 촬영 했던 걸 인화하고 싶어 회사 지하에 있는 사진 현상소에 갔다.
그런데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7년 전에 소개팅한 그녀가 우리 회사 지하 상가의 사진 현상소에 있다.
너무나 반가 와서 안을 뻔 했다.
반갑게 인사하는데...
아 그녀도 물론 나를 알아봤다.
그 때 보다는 조금 멋진 모습이겠지...
그녀는 여전히 예뻣고 나이가 드니 더 아름다웠다,
그녀의 말이 남푠이 현상소를 해서...
‘남푠...????’
“결혼했군요·”
“네에 5년전에 했어요·”
“아...쉽...”
“네?”
“아니요...헤헤헤· 길중이는 잘 있죠”
“길중이 오빠요? 네 잘 계실거에요 저도 못 본지 꽤 됐어요”
“네네...”
그렇게 그녀와 다시 만났다.
이후로 사진 인화할 거는 모조리 쓸어다가 의뢰하기 바빴다.
없으면 찍었다.
열심히...열과 성을 다해 찍었다.
내가 그 때 주로 쓰는 필름은 슬라이드 필름이었고 ISO 100을 ISO 400으로 증감해 인화해야 해서... 많이귀찮고 안해주는 곳도 많았는데...
기꺼이 해 주셨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러다 보면 현상액 교체 주기가 빨라진다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무지 미안한 일이었죠
그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한 두번이었지만 밥도 같이 먹었고 차도 마셨다.
임자 있는 여자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어느 날 가니까 남자 사장이 내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얼매나 놀랬던지...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그녀를 만나는 일은 놀랄 일만 남는가보다...
아 나의 사랑?은 그렇게 또 떠나가는구나...헛된 망상이었으려나·
그리고서도 현상 할 일이 있어 그녀를 한 두 번 보긴 했지만...
애써 애면하는 날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