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찌는 더위에 딸래미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전 오늘 용인의 선산에 모셔진 조부모남과 부친의 묘소에 갔다왔습니다.
18대조 조상님부터 모시어진 선산으로 모셔진 묘소는 세월과 산짐승으로 부터 훼손 되거나 파손되어진 묘소를 얼마전에 4일간의 복구와 떼를 보수하여 새 단장함에 간단한 제수와 술을 장만하여 일가친척(고모부님내외분과 당숙내외분)을 모시고 성묘를 하였습니다.
제가 종손으로 마땅히 해야할 일임에도 제 형편과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3년전 불의의 일로 뇌경색으로인해 투병중인관계로) 자주 관리하고 돌보아야 되었음에도 미진하여 보다못한 3분의 고모부님들께서 십시일반으로 뜻을 모아 대공사를 하였고 하시는 김에 제 부친의 묘소도 예쁘게 새단장을 해주시어서 저희 집에서 제수를 준비하여 대가족이 모여서 인사를 드리게 된것이지요.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정성을 다해서 준비를하여 즐겁고 맛난 점심식사를 마치고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 집으로 돌아와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도 못하고 사는거 같아서 어머님과 자형 그리고 누나와 동생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내 스스로에 화가 났고 또 어쩌다 이리되었나 깊은 반성의 시간을 갖고 이글을 쓰고있는 지금 또다시 생각이 나는군요.
이리 의기소침해진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님의 애절하고 안쓰러운 눈빛에 다시금 죄스럽고 걱정을 끼쳐드림에 또 스스로를 자책하는 모습에 한숨만 나옵니다.
인생 반백년을 훌쩍 넘긴지가 언제인지 생각이 안날 정도로 참 숨가쁘고 바쁘게 살아온 생이 전부 덧없는 삶이라 부정하니 허무하네요.
젊어서는 무엇이든 해낼거같고 의욕과 자신감이 충만하였으나 지금에 와서 뒤돌아 보자면
20~40대를 공무원으로 열심히 주말도 없이 일하느라 애 셋을 낳는 동안 집사람 옆에 한번도 같이 있어주지 못했고 졸업식에도 거의 참석을 못하였고
앞만 바라보며 소처럼 일만하고 살다보니 친구들의 경사엔 참석할 업두도 못내고 그로인해 서운함의 원망석인 투정을 듣기도 했으나 초상은 빠짐없이 참석했고 쉬는 날엔 아이들 데리고 전국의 방방곡곡을 여행을 다니며 추억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 주려고 참 무던히도 열심히 살았는데....
명퇴후 믿었던 친구와의 돈문제로 얽힌 수년간의 소송으로 갑자기 찾아든 병마로 몸도 마음도 황폐해진 제가 유일하게 마음놓고 즐겁게 웃으며 같이 시류를 논하고 음악을 듣고 국가에대한 자긍심을 심어준 곳이 이곳 가생이라는게 더없이 고맙고 감사할따름입니다.
그중에 여기 친게가 가장 정감이가고 편하기에 자주 듣고싶은 음악을 올리곤 하는데 어쩌다 보면 한페에지에 제 발제글이 4~5개가 될때도있어 혹여 너무 많은게 아닌가하고 저어되기도 합니다.
만약에 거슬릴거 같으면 댓글로 의견을 달아주시면 참고로 하겠습니다.
두서없이 횡설수설 글이 좀 중구난방이나 끝까지 읽어주신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