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난시절의 영상을 올리다 보니 잊혀진 지난 시절의 그림도 보이고 지나간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게 됩니다.
제 증조부께서 조부님을 환갑이 다되어서 보시고 작은 할아버님을 환갑에 대고모할머니를 63에 보셔서
저의 촌수가 높아 같은 항열에 생존해계신분이 몇분 안계십니다.
거기다가 종가집이라 어려서부터 일가친척들께 이쁨을 받고 자랐으며
외아들이다 보니 할머님의 사랑이 남달랐습니다.
지난날을 회고하며 글을 쓰니 혹여라도 틀린 부분이있을지 모르지만 재밌게 읽어주세요.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내수공업을 하시던 부모님을 도와 살림을 해주시던 막내고모를 따라 방학이면 찾아뵙던 할머니댁.
지금은 서울에서 차로 한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거리지만 그때는 교통수단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동대문 운동장에서 시외버스를 타면 안산을 거쳐서 수원을 지나 용인으로가서는 거기서 또 한번 하루에 몇대 다니지 않는 버스를 타고 면사무소에서 내리면 한나절 이상걸려 도착한다.
면사무소에서 우리 동네까지 약 2~3km쯤 걸어서 동구밖 마을 어귀에 다다를 때면 연당이 보이고 그 연당위의 밭에서 밭을 일구시던 할머니께서 보이자 고모의 손을 놓고 냅다 뛰기 시작한다.
할머니~!!! 라고 부르며 뛰어가다보면 할머니께서 목소리를 들으시고 마주 뛰어오시는데 우리할머니가 맞다 싶은게 어려서 앓은 소아마비탓에 할머니는 약간의 절뜩이며 걸으셨다.
그럼 더 신이나서 할머니께 달려 와락 안기면 할머니는 나를 안고는 "아이고 우리 강아지가 왔네" 하시며
함박웃음을 지으신다.
여름이라 해가 남은 저녁에 할머니께서 차려주신 밥상을 받고 상위를 보니
절대 지금은 먹을수 없는 반찬들이 눈에들어온다.
소금항아리에 박아놓은 장날에 팔아오신 고등어구이가 딱~!
고추장독에 박아 놓았던 마늘쫑이, 조선간장에 담궈놓은 두부짱아치
갖 텃밭에서 따다 무쳐내온 겉절이, 산나물무침등등...
마지막 화룡정점이 화롯불에서 한나절 끓고 쫄은 서걱서걱한 총각무가 씹히는 된장찌게...
저녁식사를 물리고 수박이며 참외며 과일을 내어주시고는 연신 얼굴을 바라보시며 더먹으라고
채근하신다.
당시우리동네엔 아랫말 윗말 이렇게 마을회관을 두고 나뉘었는데
우리집 사랑채에서 내려다 보면 아랫말 ,윗말이 내려다 보인다.
그럼 그때부터 나의 질문 공세가 시작되고
'저집은 누구네 집이야?' "응~ 개똥이네~"
'요집은 누구네 집이야?' '응~ 쇠똥이네~"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잠이든다.
할머니 말씀대로 해가 똥구녘을 찌를때쯤 어찌나 우렁찬 소리로 시끄러운 매미의 절규에 눈을뜨면
할머니는 밭으로 고모는 친구집으로...
큰집에 나홀로 덩그러니 있다보면 눈에들어오는 정겨운 가재도구들...
방 한켠엔 넓은 함지박에 나무가지 위의 큰시루에선 콩나물이 자라고
머리윗 선반엔 할아버지며 할머니며 아버지 형제들의 사진들이 빼곡히있고 가운데
좋은 자리엔 이놈의 발가벗고 찍은 돌사진이 자랑스러운 고추를 내놓고있다.
처마밑 주렁주렁 새끼줄에 매달린 퍼런공팡이가 낀 메주며
작은방엔 코끝을 간지럽히는 텁텁한 막걸리가 익어가는데 ...
밭일을 마치고오신 할머니께서 차려주신 아침을 맛나게 먹고는 아랫말 작은집으로 문안을 드리러간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작은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당숙 당숙모 중학생이던 당고모 그리고 갖태어난
6촌남동생등을 차례차례 뵙고는 작은 할머니표 수수부꾸미를 내 오시면 맛나게 먹고 인사를 마치고는
할아버지뻘되는 10촌 형님들께 인사를 하고 당시 80이 넘으신 9촌 숙모님을 뵙고 인사를 드리면 증손자보다 어린 조카가 왔다고 흰머리 숙모께선 사탕을 내어주신다.
그렇게 인사를 하다보면 점심도 해결하고 한나절이가고 저녁때쯤에 집으로...
근 오십년이 다되어 지난 날을 되세기니 참 아쉬운 마음이 드는게
지금은 못먹는게 아니 앞으로도 못먹을 할머니표 음식들이다.
위에도 써놨듯이 이름모를 갖가지 산나물들이며 소금항아리 속의 자반고등어며
조선간장 속의 두부짱아치며 고추장항아리 속의 마늘쫑등이 특히 그립다.
더불어 늘 내편이셨던 할머니가 너무도 그립다.
아직도 내 지갑속에서 웃고계신 할머니가 정말그립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기억속에 할머니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싶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