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시작될 무렵 낙상으로인한 손목뼈 골절을 당하신 노모의 수발겸 송사 문제로인해
상경하여 한달쯤 머물고있을때였습니다.
추석연휴 전날 날아든 공포의 소식이 전화기 너머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전해졌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여동생.
"오빠 잘들어요 우리 어린이집 교사중 아들이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에요."
어제 열이나서 동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선별진료소로 가라고 해서 검사받고 대기중이란 이야기에
우선 어머니께는 잘 알시게끔 이야기하고 혹시라도 코로나에 감염된것이라면 올 추석은 차례모시기
힘들거라고 전하고 만약에 사태에 대비해 집에는 혹시 감염이 맞다면 차례상은 잘모셔서 제 아들보고
상주로 지내라고 얘기를 하고는 결과를 기다리는데...
오전에 왔던 연락이 저녁무렵이 다 되어서 답이 왔네요.
" 오빠 그냥 감기고 편도가 부어서 열이 많은거래요, 걱정하지마시라고 어머니께 전해주세요."
순산 등줄기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아 조상님께 차례상을 올릴수있겠구나....'
순간 만약에 중학생인 녀석( 어린이집 선생의 아들)이 양성반응이 나왔다면?
가르치던 어린이집 교사들이며 아이들이며 또 수많은 이들의 추석이 아니 목숨을 담보한 건강이 ....
어머니께 다행이 감기로 판정 났다하고 여쭈니
"정말 다행이구나 큰일 날뻔했다" 하시며 안도의 긴한숨을 내쉬셨습니다.
그길로 부억으로 향하신 어머님께선 만류하는 저를 밀치고 산적을 하시겠다고 들어가셨고
잠시 조는 동안 부억에서 갑자기 쿵소리와 더불어 그릇이 떨어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부억으로 달려가보니 어머니께서 엉거주춤한 상태로 압력밥솥을 부여잡고는
부억바닥은 온통 끓는 국물로 흥건해져있더군요.
전 다급히 압력밥솥에서 손을 떼시게하고는 너머지신 어머님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고는
어디 다치신곳은 없으신가 살펴보니 다행이도 크게 데이신곳도 없어 보여 우선 동생방으로
자리를 옮기시게 한후 찬물수건으로 닦아드리며 살펴보니 겉으로는 이상이 없어보였으나
분명히 놀라셨을것 같아 그길로 약국으로 뛰어가니 약국도 막 불을 끄고 닫기직전이어서
청심환과 근육이완제를 사서 돌아와 보니 어느새 옷을 갈아 입으시고는 다시 불앞에 계시길래
너무 화가나고 속상해서 아니지금 뭐하시냐고 냅다 소릴지르니 이거 손자 먹일 장조림인데
거의 다되어가니 유난떨지 말라시며 되려 혼을 내시는데 어이없고 또 안심이 되어서 웃음밖에
안나오더군요.
아니 그까짓 자식이 뭐가 중하다고 이 난리를 벌이시냐고 퉁명스럽게 이야기하니
우리 종손 자취하는데 먹일꺼라시며 당신손으로 작접한 쇠고기랑 돼지 장조람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느냐시며 꾸중을 듣고는 피식 웃는 절보시며 넌 먹지마라고 농을 하시네요.
그래 마무리는 제가 하겠노라 하고는 안방에 들어가 계시라 하고 어지러진 부억바닥을 정리하고는
안방으로 건너가 어머니께 청심환과 근육이완제를 드시게 하니 놀라셨는지 얼굴이 화끈거리신다기에
냉장고에서 동생이 쓰는 알로에 마스크팩을 어머니 얼굴에 붙여드리니 이내 잠이드시더군요.
한시간쯤 지나자 여동생이 퇴근을하고 와서 엄마가 지금 얼굴에 뭘쓰고 있냐길래 전후사정을 얘기하고 살펴보더니 마스크는 누가해드렸냐길래 내가했다고하니 박장 대소를 하며 거꾸로 프라스틱을 떼고 붙여야지하더군요.
그리곤 어머니께 어린이집 선생이 아니랄까봐 조곤조곤 어머니께 제발 그러지 마시라고 이야기를 하고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제발 이젠 그러지마시라 여쭙더군요.
기어이 멸치볶음이며 오징어볶음이며 당신께서 못하시니 여동생을 시켜서 마른반찬을 골고루 만들어서
명절쇠러 저희집으로 함께 내려왔지요. (제가 종손이라서 저희집에서 차례및 제사를 모십니다.)
이 모든일이 하루에 벌어진 공포스런 헤프닝이였습니다.
아, 그리고는 맛나게 먹는 제아들 녀석을 보시며 웃는 어머님의 미소에서
예전 저를 보시던 할머니가 떠오르더군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