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란이 그랬다
책만 펴도, 자려고 누워도 오빠 얼굴만 떠오른다고
참 순수했던 아이...
크리스마스 즈음 이었을 거다
종로 서울극장에 영화를 보러 갔는데, 눈이 너무 내려
집에 가는 155번 버스가 끊겨버렸다
그애와 나는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종로에서 옥수동까지...지금으로 치면 거리가 얼마일까
발이 눈에 푹푹 빠졌지만
우리는 손을 잡고 걸었고, 추운 줄도 몰랐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인생의 한 장면이다
이 부분에서 사실 아들의 공연을 보며 엣여인을 생각하던 알파치노를 떠올렸었다 ㅋㅋ
응급실에서 뭔 개주접
어쨌든 그때의 나와 아들의 나이가 같다
내 마음이 순수했듯이 아들의 마음도 순수하지 않을까?
생각이 이에 미치자 모든 것이 편해졌다
그래. 사랑을 말릴 것은 없어
레지던트(?) 암튼 의사가 왔고,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의사: 헐...흔하지 않네요. 보통 음경골절로 오는 분들은 불륜커플들이거든요
중3은 처음입니다. (아들을 보며) 이 자식 능력있네. 야, 부럽다 ㅋㅋㅋ
나: 어때요?
의사: 수술을 해야할 응급상황은 아니에요. 괜찮으니 내일 외래로 오셔서
교수님 보시고 필요하면 초음파나 찍어보세요
나: 알겠습니다
응급실에 스타가 탄생했다
중3따리가 세수하다가 응급실에 왔다는 소문은 금세 퍼졌고
여러명의 의사 형아들이 와서 아들에게 쌍따봉을 날려주고 갔다
나: 이제 안심되지? 가자
아들: 아빠
나: 또 왜
아들: 나 조루인가봐
나:(ㅋㅋㅋㅋㅋㅋㅋ)억지로 참음
아들: 너무 빨리 끝나
나: 경험부족으로 긴장해서 그래. 많이 하면 조절도 되고
실력도 늘어. 하긴 아빠 친구들도 거기를 칫솔로 문지르고
이태리타올로 갈던 애들도 있었어. 단련 시킨다고
아들: 그럼 좋아져?
나: 아니 피나고 졸라 아프지 ㅋㅋㅋ 걍 미친세끼들이야
글치만 걱정 마라. 세상은 넓고 할 기회는 많다
아빠도 새 여자 만나면 금방...아니다 험험
문제가 있었다
월요일에 병결로 처리하고 외래를 가려고 했는데
수행평가 기간이라고 담임선생님께서 무조건 학교에 나오라는 것이다
진료영수증도 제출해야되고...
담임선생님께는 다리를 삐끗해서 정형외과에 간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우리는 영수증에 비뇨의학과라 인쇄된 부분을 잘라냈다
이렇게까지 해야돼? ㅋㅋㅋ
그리고 외래에서 이상없다는 결과를 들은 후
학교로 향했다
나: 그애가 좋냐?
아들: 응. 이번 생일 같이 하기로 했어
나: 선물은
아들: 커플 팔찌하려고
나: 아빠가 해주랴?
아들: 아냐, 내가 모은 돈으로 할게
나: 얌마. 아빠가 좋은 거 해줄게. 울 아들 여친인데
아들: 사실 걔네 형편이 좀 그래. 내가 좋은거 해주면, 걔도 좋은 거 해줘야 할텐데
그러면 아마 부담이 될거야
나: 그래. 니들 나이에 구리팔찌면 어떠냐
아마 지들은 지들의 사랑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할 것이었다
또 그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 믿을 것이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되면 바뀌고, 고등학교 졸업하면 또 바뀌고, 대학 가면 바뀌고
군대가기전, 갔다온 후, 졸업하고, 취직하고 바뀌고
사랑은 그렇게 바뀌는 거라고
영원한 사랑은 없는 거라는
인생의 팁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학교에 도착했다
나: 다친 연기 잘해
아들: 응
아들은 왼발을 절며 정문을 들어갔다
나: 야 세끼야. 선생님한테 오른발 다쳤다고 했어
그러니 오른발 절어!
아들은 발을 바꿔 오른발을 절며 걸어갔다
나는 백팩을 메고 학교 언덕을 오르는 아들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fine-
연재는 힘들어 ㅠㅠ
<에필로그>
난 애란이를 떠났다
고등학교에 갔더니 세련되고 더 예쁜 애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오 아름다운 세상이여 ㅋㅋ
미안...잘살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