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포(釜山浦)를 떠나 항해를 시작한 지 두 달.
비립빈(非立賓)을 거쳐 신가파(新嘉坡) 앞 바다에 당도하였다.
지금부터는 신가파에서 항로를 북서(北西)로 돌려
좁은 말라가(滿剌加) 해협으로 진입한 후
범아국(梵亞國) 수도(首都)인 양곤 항(港)을 향해 북상(北上)해야 한다.
말라가 해협은 예로부터 바다 해적인 수적(水賊)이 들끓어
지나가는 배들이 많은 피해를 본 곳이었다.
우군사(右軍司) 아이유장(亞二柳將)은 부장(副將) 혈가(孑歌)에게 명(命)하여
군사들이 경계를 더욱 엄히 서도록 하였다.
먼 변방인 누욕(樓浴)을 지키다 온 혈가(孑歌)는
누욕(樓浴)에 두고 온 벽안(碧眼)의 서역(西域) 미녀 애리자배수(愛利子蓓秀)가
혹여나 밤에 다른 자와 라면(裸麵)을 끓여 먹고 있지 않을까 하는 근심에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초조히 갑판 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해시(亥時)쯤 되었을까?
칠흑(漆黑)같은 바다 위에 홀연히 작은 불빛 하나가 보였다.
혈가(孑歌)는 즉시 우군사(右軍司) 아이유장(亞二柳將)에게 고(告)하였다.
황급히 갑판 위로 달려나와 잠시 불빛을 살핀 아이유장(亞二柳將)은
뭔가를 직감한 듯 수군통제사(水軍統制使) 장보고(張保皐)에게 명(命)하였다.
"즉시 전투태세를 갖추고 배를 가까이 대라"
한국(韓國)의 군선(軍船)이 불빛에 가까이 다가가
어슴푸레 상대편 배의 윤곽이 보이는 순간
갑자기 이쪽을 향해 화살이 비오듯 쏟아졌다.
그럼에도 우군사(右軍司) 아이유장(亞二柳將)은 의외로 침착하게
부장(副將) 혈가(孑歌)와 진파(進破)에게 총포(銃砲) 발사를 명(命)하였다.
한국(韓國)의 군선(軍船)에서 병사들이 쏜 총포가 번개 치듯
불빛을 향해 발사되었다.
잠시 후, 상대편 배에서 황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또마떼! 조또마떼 구다사이!!!"
왜국어(倭國語)였다.
평소 왜국(倭國)에서 수입된 춘화(春畫)를 통해 왜국어에 익숙했던
우군사(右軍司) 아이유장(亞二柳將)은 직감하였다.
"왜구(倭寇)의 배가 틀림없다. 당장 저 배를 수색하라"
이에 부장(副將) 혈가(孑歌)는 반색을 하며 제일 먼저
휘하 병사들을 데리고 왜구의 배로 뛰어들었다.
잠시 후, 혈가(孑歌)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여인(女人) 여럿이 잡혀 있습니다요!"
아이유장(亞二柳將)의 안면에 회심의 미소가 스쳤다.
그러하다.
불빛이 보인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부터
동물적 본능으로 여인의 향기를 맡은 아이유장(亞二柳將)은
이런 순간이 오리라 이미 직감하였기에
즉시 배를 가까이 대라고 명(命)하였던 것이다.
역시 관록(貫祿)의 아이유장(亞二柳將)이었다.
잡은 왜구들을 심문(審問)한 결과,
이 배는 이곳 저곳에서 납치한 여인들을 팔아 넘기기 위해
장개국(掌匃國)으로 향하던 배였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좌군사(左軍司) 치저랑(治抵郞)이 넌지시 아이유장(亞二柳將)에게 말하였다.
"우군사(右軍司) 노고가 많으셨소. 이제 좀 쉬시구려. 여인들 심문은 내가 하리다."
이에 아이유장(亞二柳將)이 손사래를 치며 답하였다.
"아이구...좌군사(左軍司)께서 쉬세요. 나는 시작한 건 끝을 봐야하는 성격이라..."
"아니 좀 쉬시라니까....거 참...여자는 내가 잘 알아요"
"난 괜찮다니까요. 왜 이러실까? 여자 심리(心理)는 내 주특기요"
다투는 두 사람을 보고 서기(書記) 보미(寶美)가 한 마디 하였다.
"또 또 아는 척~~잘한다~~~ 으이구"
왜국(倭國)에서 잡혀 온 여인들은 아이유장(亞二柳將)이,
그 외 지역에서 잡혀 온 여인들은 치저랑(治抵郞)이 심문하는 걸로
두 사람은 합의를 보았다.
왜국(倭國)에서 잡혀 온 여인들 중에 소녀 셋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유장(亞二柳將)은 춘화로 익힌 왜국어(倭國語)를 종이에 적어
그들의 이름을 물어 보았다.
종이에 적힌 왜국어를 본 소녀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니?"
역시나 춘화를 통해 주로 감탄사 위주로 배운 짧은 왜국어가 통할리 없었다.
이에 아이유장(亞二柳將)은 셋의 이름을 각각
미나(美那), 사나(思那), 모모(慕慕)로 부르기로 하고 그들을 거두어 주었다.
한편,
구석에서 피부가 다소 검고 눈이 큰 예쁜 소녀를 발견한
치저랑(治抵郞)이 물었다. "넌 어디서 왔고 이름이 무엇인고?"
말이 통할리가 없었다.
치저랑(治抵郞)을 본 소녀는 말없이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며
고개를 살짝 숙여 예(禮)를 갖출 뿐이었다.
"오...불심(佛心)이 깊은 아이로구나. 내 오늘부터 너를 리사(利思)라고 부르마"
훗날 아이유장(亞二柳將)은 그가 거둔 세명의 소녀를 한국(韓國)으로 데려가
수 년간 가무(歌舞)를 익히게 한 후 '왜구와 싸워 거두었다'는 의미로
투왜이수(鬪倭以收)라는 이름을 지어 한국(韓國)과 왜국(倭國)을 돌며 큰 돈을 벌었다.
치저랑(治抵郞)도 이에 질세라 리사(利思)에게 가무(歌舞)를 가르친 후
'불심(佛心)을 담은 노래로 널리 세상을 구원하라'는 뜻을 가진 불악평구(佛樂坪救)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저 멀리 이만오천리(二萬五千里)나 떨어진 아매리가(亞每里加)까지
그 명성(名聲)을 떨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