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군사 아이유장(亞二柳將)이 이끄는 수군이 적선을 발견한 건 미시(未時) 경이었다.
적 수군의 배는 한국(韓國) 수군의 배 이상 많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공격을 취해 올 기미가 보이지 아니 하였다.
아이유장(亞二柳將)은 수군통제사 장보고(張保皐)와 수군만호 수달(水獺)에게
아군 함대의 열두척 함선을 모두 서로 묶으라고 하명(下命)하였다.
보고와 수달이 화들짝 놀라며 말하였다.
"우군사, 적의 배가 더 많아 우리 배를 서로 묶으면
필시 저들은 우리를 포위공격하려 들것이고, 포위되면 우리 형세가 어렵게 됩니다.
어찌 하려 그러십니까?"
아이유장이 태연하게 말하였다.
"이제 곧 미시(未時)일쎄. 곧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적이 있는 곳에서 우리쪽으로 바람이 불기 시작할걸쎄.
적선의 수가 더 많음에도 적들이 지금 바로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바람의 방향이 바뀌길 기다려 화공(火攻)을 쓰기 위함일걸쎄.
내가 우리 배를 서로 묶으라 명한 것은 저들이 반드시 화공을 쓰게끔 유도하기 위한
계책, 즉 허허실실(虛虛實實) 계략일쎄"
아이유장이 말을 이어갔다.
"화공을 쓰려면 거리가 중요한 법. 화공을 쓰기 전에 적들은 우리를 안심시켜
화공을 쓸 수 있는 근거리까지 접근하기 위해 우리에게 거짓항복을 하는
사항계(詐降計)를 쓸 것일쎄."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항복기(降伏旗)를 단 장개국(掌匃國) 배 한 척이 아이유장이 타고 있는 대장선에 다가왔다.
무리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아이유장 앞에 와 말하였다.
"저는 장개국 수군도독(水軍都督) '주유'라 합니다.
우리는 탐욕스러운 독재자 습(習)에 반대하기에 귀국에 항복하고자 왔습니다.
항복을 받아주시면 잠시 후 우리 배를 모두 이끌고 이 곳으로 오겠습니다.
항복의 의미로 장개국에서 가져온 진귀한 선물을 바치오니 부디 받아주소서"
말을 마치자마자 주유는 흰 그릇에 담긴 거무스름한 음식과 칼 한자루를 내밀었다.
아이유장이 물었다. "이것들은 무엇인고?"
주유가 답했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장개국 진미(眞味)인
검찰춘장으로 비빈 윤짜장과 뭐든 닥치는대로 베는 장개국 명검(名劍) 떡검이옵니다."
아이유장이 소리쳤다. "어디서 그지같은 것들만 골라왔네. 꺼져 ㅅㅂㄹ"
주유가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의 방향이 바뀌자
아이유장의 예측대로 항복기를 단 여러 척의 배들을 앞세운 장개국 수군이
한국군 함대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장개국이 앞세운 배들과 한국군 배의 거리가 이리(二里) 가량으로 좁혀졌을 때
적들은 불화살을 쏘아 앞세운 배들에 불을 질렀다.
앞세운 배 안에는 마른 억새와 장작이 가득했고 거기에 기름을 부어놓은 상태였다.
이렇게 크게 불이 붙은 여러 척의 배들이 바람을 타고 서로 묶어 놓은 한국 수군의
배에 부딪히게 하여 한국군 배를 모두 불태우려는 화공(火攻) 작전이었다.
이대로면 한국 수군의 배가 모두 불타버릴 절체절명의 위험한 상황이었다.
보고와 수달이 급히 소리쳤다.
"우군사, 어서 다음 명(命)을 내려주소서. 상황이 위급하옵니다"
"동요치말고 잠시 더 기다리라."
불이 붙어 활활타고 있는 배들이 한국군 함대에 일리(一里)까지 접근했을 때였다.
아이유장이 크게 소리쳤다.
"지금이다. 전술비연(戰述秘鳶)을 띄워 서로 묶어놓은 우리 배들의 연결을 푼 후
학 날개 모양으로 진영을 펼쳐 적선을 에워싼 후 일제히 화포를 발사하라 알려라"
전술비연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께서 사용한
가로 석자(三尺), 세로 석자 삼촌(三尺三寸) 가량 크기의 신호연으로
작전명령에 따라 겉에 무늬를 달리해 함대에 여러 작전을 하달하던
지금으로 치면 해군의 전자통신체계이다.
한국 수군이 장개국 배들을 학이 날개를 펼친 모양으로 둘러싼 후
사거리 팔백보(八百步)에서 일천오백보(一千五百步)에 달하는
현자총통, 지자총통, 천자총통 등 한국 수군이 보유한 첨단 화포들을 일제히 발포하자
수많은 장개국 수군의 배들이 모두 대파되어 물 속으로 가라 앉고 말았다.
한국 군사들은 모두 크게 기뻐하며 아이유장의 지략에 감탄하였다.
"우군사, 대승이옵니다. 어찌 이런 신묘한 계략을 생각해내셨나이까?"
"아...그건 말일쎄. 다 그 양반 덕분일쎄. 그러니까 그게....
때는 바야흐로 내가 이순신 장군님 군화 당번병 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
아이유장이 이끄는 수군마저 적을 대파한 소식이 육지에 있던 상륙군에게
알려지자 한국 원정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곧 육지와 바다에서의 대승을 기념하기 위해 축하연이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축하연을 앞두고 소장파(少壯派) 장수들 사이에서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기 시작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