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부분모달의 명에 따라 무장한 일단의 병사들이 진파와 혈가를 비롯해
그들을 따르던 젊은 장수들과 휘하 병사들을 밧줄에 묶어 이끌고
이들의 본국 송환을 위한 길을 나섰다.
"부분모달, 네 이 놈!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다니 내 네 놈이 한 짓을
결코 잊지 않겠다!"
밧줄에 목이 묶인 채 끌려가던 혈가가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내가 야구파타(野九破打)를 다시 손에 쥐는 날이 바로 네 제삿날이 될 것이야!"
진파 또한 부분모달에 욕을 퍼부었다.
이렇게 모반에 연루된 무리들은 두 손과 목이 밧줄로 묶인 채 진영 밖으로 끌려나갔다.
그 날 밤 경계를 서는 초병들의 수는 여느 때보다 훨씬 적었다.
진파와 혈가 휘하의 병사들이 본국으로 송환되어 병사들의 수가 많이 줄었기 때문이었다.
축시(丑時)가 되자 북쪽 숲속에서 나뭇잎들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수 많은 장개국 병사와 군마들이 나타나 불시에 한국군 진영을 들이쳤다.
장졸들 모두가 놀라 도망치기에 급급하였다.
어찌나 놀랬던지 아이유장은 아끼는 빤스도 미처 챙겨입지 못한 채 말 등에 올라탔다.
이 와중에도 부분모달은 침착하게 장졸들을 인솔하여 길을 잡았다.
모든 장졸들이 부분모달을 따라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일전 한국군에 패해 숲으로 도망쳤던 장개군은 지난 밤 한국군 진영에 숨어 있던
첩자가 날려보낸 전서구(傳書鳩)를 통해 모반의 자초지종과 모반에 연루된 자들이
본국으로 송환되어 한국군의 수가 많이 줄어든 것을 알게 되었고
이 틈을 노려 반격을 가해 온 것이었다.
부분모달을 따라 정신없이 도망치던 한국군은 좁은 길이 길게 이어지는 협곡으로
접어 들었고 이 기회에 전세를 뒤집고 한국군의 씨를 말리겠다는 집념에 장개군은
계속해서 한국군을 맹렬히 뒤쫓았다.
두 식경(食頃)쯤 협곡을 따라 정신없이 도망치던 한국군 앞에 높은 산이 나타났다.
길이 끊겨 버린 것이다. 더 이상 도주할 길이 없었다.
"아뿔사! 하필 이 때 막다른 길에 몰리다니..."
그 와중에도 용케 뒤에 리사를 태우고 말을 달려 도망쳐 온 좌군사 치저랑이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우군사 아이유장도 미나, 사나, 모모를 부둥켜 안은 채 바닥에 앉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한국군이 더 이상 도망갈 길이 없어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장개군은
더욱 맹렬히 달려 들었고 양측 군사들의 거리가 일백보(一百步) 정도로 좁혀졌다.
장개군에 의해 몰살당할 것이 자명해 보이던 절체절명의 바로 그 순간!
부분모달이 갑자기 불을 붙인 화살 시위를 하늘을 향해 힘껏 당겼다.
그러자 협곡 양 옆 비탈진 산등성 위에 혈가가 이끄는 병사들이,
장개군 등 뒤 협곡 입구에서는 진파가 이끄는 병사들이 나타났다.
장개군은 좁은 협곡 양 옆은 물론 앞뒤로도 한국군 병사들에 포위되어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생쥐 꼴이 된 셈이었다.
"저승에 가서 파오차이나 실컷 쳐먹어라"라는 말과 함께 부분모달이
다시 한 번 불시위를 당겨 신호를 보내자 이를 신호로 한국군이 사방에서
꼼짝없이 포위된 장개군에게 총포는 물론 불화살을 마구 날렸다.
장개군은 저항 한 번 못해보고 모두 통구이가 되었고 그렇게 숲 속으로 도망쳤던
장개군 잔당은 모두 소탕되었다.
"작전 대성공이로구먼 하하하하" 치저랑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자네들 연기가 아주 제대로던데? 배우해도 되겠어" 아이유장의 말에
"군사(軍司) 두 분 연기에 비하면 저희는 뭐....하하하"
혈가와 진파가 멋쩍은 듯 웃으며 말하였다.
"그나저나 책사의 계략이 기가 막혔소이다. 진중에 장개군의 첩자가 있다는 건
어찌 알았소이까?" 혈가가 부분모달에게 물었다.
"간자(間者)를 심어 남의 첩보를 빼내는 건 장개들의 본래 습성입니다.
이번 계략은 이걸 역(易)으로 이용한 것이지요. 우리 진영에서 내분이 일어나면
간자가 전서구를 날려 알릴 것은 안 봐도 넷플릭스지요.
뒤 쫓는 장개군을 유인하기 위해 사전에 살펴둔 이 곳으로 유인했는데
전세를 뒤집겠다는 욕심에 예상대로 잘도 따라와 주더이다. 하하하.
그나저나 약속한 시간에 맞춰 제 때 와 준 진파, 혈가 두 분 장수의 노고가 컸소이다."
이렇게 장개군을 전멸시킨 한국군은 범아국(梵亞國)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며
범아국 수도인 양곤에 입성하였다.
모반을 일으킨 장수 흘라잉(疙癩媵)을 잡아 처단한 후
감금되어 있던 범아국(梵亞國) 여왕 수지(蒐旨)와 그녀의 신하들을 구출하였다.
여왕은 성대한 만찬을 열어 한국군의 수고를 치하하였다.
만찬이 시작되고 즐겁게 먹고 마시며 분위기가 한창 고조되었을 무렵
범아국 수상(首相)이 여왕의 중대발표가 있다며 모두를 조용히 시켰다.
드디어 여왕이 입을 열었다.
"한국군 덕에 나는 왕위를 되찾고 범아국도 다시 안정을 되찾았소.
그러나 내 나이 벌써 일흔하고도 다섯이오.
이제 왕위에서 물러나 남은 생을 조용히 살고 싶소."
만찬장이 술렁였다.
설상가상, 그 뒤에 이어지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청천벽력같은 여왕의 말에
만찬장에 있던 범아국의 대소신료(大小臣僚)는 물론이요
한국군 장수들 모두 놀라 뒤로 자빠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