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사지샵 주인 아주머니가 반색을 한다.
M호텔 근처에 있는 마사지샵이라 M호텔에 묵을 때면
지나치며 늘 보게 되는 곳이고 가끔 마사지를 받으러 오기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왔음에도 날 기억해준다.
마사지 옷으로 갈아입고 기다리니 잠시 후 앳된 소녀가 들어왔다.
일부러 젊은 여성들 위주로 고용하는 대형 고급 마사지샵에 비해
일반적인 마사지샵에는 젊은 마사지사들이 드물다.
보통은 시골에서 상경한 30~40대 이상 싱글맘들이 대부분.
역시나 솜씨가 아직은 서툴다.
그래도 열심히 하려는 노력과 정성이 느껴졌다.
마사지가 끝난 후 얼굴을 보니 힘든 기색이 역력하다.
계산하러 카운터로 가기 전에 소녀에게 후하게 팁을 줬다.
카운터에서 계산할 때 주인에게 팁까지 계산할 수도 있지만
팁이 소녀에게 온전하게 전해지지 않을 수도 있고,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는 다른 마사지사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
호텔밖으로 식사하러 갈 때도
커피숍에 갈 때도
편의점에 갈 때도
시내 외출을 갈 때도
이 마사지샵을 지나치게 된다.
매일같이 한낮의 뜨거운 땡볕 아래 앉아
마사지샵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소녀.
아마도 아직 솜씨가 서툰 소녀를 찾는
손님이 별로 없는 모양이다.
손을 흔들어 인사하니 소녀도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어준다.
호텔로 돌아가던 길
마음을 바꿔 마사지샵 앞에 앉아 있던 소녀에게 가 물었다.
"너 밥 먹었니?"
"아뇨"
"나랑 밥 먹으러 갈래?"
"근데...주인 아줌마..."
"걱정마. 그건 내가 얘기할께"
샵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장, 내 저 소녀를 오늘 하루 밖에 데려가고 싶은데
이 정도면 되겠소?"
소녀가 일주일 일해 벌어다 줄 매출보다 큰 액수이니
주인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딜이 성사되고 나가려는 내 등에 대고 주인장이 말했다.
"저 애 라오스애에요"
근처 쇼핑몰 푸드코트에 데려가서 먹고 싶은걸 고르라 하니
카오팟(볶음밥)을 고른다.
"집에는 가끔 가니?"
"아뇨. 일년에 한 번 정도 가요. 가기 힘들어요"
"왜?"
"시골이라 근처까지 차 타고 간 다음에
또 짐 들고 정글 속을 걸어서 하루를 가야되요"
"그럼 부모님께 연락은 자주 하고?"
"핸드폰 고장나서 못하고 있어요"라며
호주머니 속에 있던 자기 핸드폰을 보여주는데
요즘도 이런 핸드폰이 있나? 장난감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낡고 조악한 핸드폰이었다.
식사가 끝난 후 핸드폰 가게에 데려가서
새 핸드폰을 하나 사주었다.
그리고 물었다.
"뭐 또 갖고 싶은거 있니?"
몸을 비비 꼬며 수줍은 미소만 짓는다.
"괜찮아. 내가 사줄 수 있는거면 사줄테니 말해봐"
그러자 대답 대신 내 옷소매를 살포시 끌고 어딘가로 향한다.
여자들 속옷매장이었다.
그래...한참 멋부릴 나이인데 그래도 겉멋보다는 속멋이구나.
쇼핑몰을 나와 빵집에 가서 같이 쥬스와 케익을 먹었다.
이런 곳엔 처음, 케익도 처음 먹어본다며 수줍게 웃는 소녀.
"내일 아저씨는 여길 떠나 다른데로 가. 이걸로 너 다음에
고향갈 때 차비하고 부모님 선물도 좀 사다드리렴"
소녀는 아무 말도 없이 테이블 위로 시선을 떨구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졌다.
마사지샵까지 소녀를 바래다 주고 호텔로 걸음을 돌렸다.
등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고맙습니다"
돌아보니 나를 향해 두 손을 모아 합장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일년 쯤 후
다시 M호텔에 묵게 되어 그 마사지샵에 갔을 때
그 소녀는 거기 없었다.
순간 주인장에게 그 소녀가 어디 갔는지 당장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묻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멀고 먼 낯선 타국땅에서 힘들게 일해 모은 돈으로
지금쯤 라오스 시골에서 부모님과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거라는
내 상상을 깨고 싶지 않았기에...
오후의 희망곡...오늘은
소싯적 어느 낯선 나라에서
한참 더운 3월말 이맘때 쯤 있었던 짧은 추억 한토막과 함께
A Whiter Shade of Pale 띄워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