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어울리지 않는 곳에 있다고 생각한 소녀는 결국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됐다.
엠버가 속한 걸 그룹 f(x)는 함수를 뜻하는 그 이름만큼이나 독특한 그룹이다. 등장할 때마다 독특하다 못해 난해한 가사와 실험적인 음악, 확연히 다른 개성을 보이는 멤버들로 이슈를 만들어왔다. 누가 과연 “땀 흘리는 외국인은 길을 알려주자”, “너무 더우면 까만 긴 옷 입자” 같은 가사를 노래하며 춤추는 걸 그룹을 기대했을까? 그중에서도 엠버는 f(x)의 가장 독특한 멤버였다. 아니 f(x)뿐만 아니라 모든 걸 그룹을 통틀어 엠버 같은 캐릭터는 없었다. 설리, 크리스탈 같은 꽃 미녀 사이에서 전혀 새로운 스타일로 자신만의 이미지를 관철시킨 엠버. 곱상한 외모에 1990년대 하이틴 스타를 떠올리게 하는 무대 위의 생기 있는 움직임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게다가 무대 아래서 보여주는 그녀의 중성적인 매력은 신비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낯을 가리는 것 같기도, 과묵한 것 같기도 한 곱상한 얼굴의 순정만화 속 주인공처럼 말이다. 예쁘지만 강하고, 진지하지만 밝은 소녀가 엠버의 모습이었다.
누구에게나 의외의 모습이 있다. 익숙한 모습에 의외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면 매력은 배가되기도 한다. 익숙한 모습에 새로운 모습이 거북하게 느껴질 땐 매력이 감소하기도 한다.
엠버는?
그녀가 <진짜 사나이>에 등장해 소대장에게 “잊으시오!”라고 말한 건 일종의 사건이었다. 그녀의 한마디는 TV를 보는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곤 이내 박장대소하게 했다. 사실 웃음이 터진 건 상황이 재미있었던 이유도 있지만 무장해제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K팝 스타로만 보이던 엠버가 실은 여린 소녀라는 걸 알게 된 이유다. 얼마나 잘하나 보자던 마음이 허탈한 웃음으로 바뀐 후 그녀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다.
“정말 창피했어요. 제가 원래 잘 안 울어요. 성격상 그냥 참고 그러다 풀리는 성격인데…. 남에게 피해 주는 걸 싫어해요. 그날은 처음 보는 언니도 많았는데 제가 피해를 준 것 같았어요. 그래서 혼자 ‘왜 이러지? 왜 이렇게 바보 같지?’ 하면서 스스로에게 욕도 많이 했어요.”
과묵하고 담담해서 대담한 줄로만 알았던 엠버는 사실 속으로 삭이며 혼자서 고민하는 성격이었다. 그녀가 <진짜 사나이>에서 눈물을 터트리기 전까지 낯선 나라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국말을 알아듣기 힘들다고 말하기 전까지 그녀의 고충을 헤아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내게는 익숙한 일이기에 어려움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군대에서 쓰는 말이 어려웠어요. 다른 언니들도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전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몸이 힘든 것만 잘 이겨내면 될 줄 알았는데…. 그리고 운동은 조금 자신 있었거든요. 그런데 알아듣지 못하는 게 더 힘들더라고요.”
과연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울 거라 생각했을까? 이런 결과를 예상이나 했을까?
“매니저 오빠들이랑 내기했었어요. <진짜 사나이>에서 제가 울지, 안 울지에 대해서요. 과연 운다면 몇 번 울 거냐, 뭐 이런 얘기도 했었죠. 전 원래 잘 안 우니까 자신 있었어요. 그런데 뭐 제가 졌죠.”
엠버는 대화하는 내내 ‘하하’ 소리를 내며 웃었다. 사실 사진 촬영 때부터 내내 춤추고 장난치며 촬영을 즐겼다. 일을 한다기보단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노는 것처럼 보였다. f(x)에서 과묵하던 모습을 생각하고 조용할 것이라 생각한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저는 밝은 성격이긴 한데 내성적인 면이 많아요. 친구들끼리 있을 땐 편한데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건 무서워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걸 좋아하고요. 그래서 처음엔 모르는 사람들과 있을 땐 조금 힘들었어요. 예전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먼저 다가가고 얘기하고 하는 게 제게는 스트레스를 줬던 거 같아요.”
1992년생 엠버는 7년 전 한국에 왔다. 지금보다 더 어리고 여린 소녀였을 그녀가 혼자서 삼켰던 눈물이 얼마나 더 많았을까 싶었다.
“제게는 큰 도전이었어요. 처음에는 스트레스도 많았어요. f(x)의 팀 콘셉트가 뭔지도 잘 이해되지 않았고요. 제가 과연 SM과 잘 맞는 스타일인지 확신도 없었죠. ‘쟤는 SM 스타일이 아닌데’ 하는 얘기를 듣기도 했어요. 그래서 과연 내가 이곳에 어울리는지 고민했던 적도 있어요. 또 제 스타일이 다른 멤버들과 달라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했죠. 멤버들이 많이 챙겨줬는데 저는 혼자만의 고민에 빠져 있었던 거 같아요. 루나와 같은 방을 썼는데, 루나가 들어올 때마다 제가 혼자 베란다에서 음악 듣고 앉아 있었대요.”
엠버는 혼자서 힘든 것을 삭이며 조금씩 성장해왔다. 지난 7년은 혼자서 고민하고 이겨내는 과정이었다. 그사이 힘들 때마다 그녀에게 힘을 준 건 친구들이었다.
“처음 데뷔하고 제법 인기가 있었지만 제가 원하는 게 충족된 것 같진 않았어요. 한국 생활이 낯설고 힘들었죠. 적응이 잘 안 됐어요. 그때까지 제 마음이 안 열렸던 거 같아요. 힘들다고 집에 전화하긴 싫고 혼자서 스트레스를 받았죠. 그러다 보니 제가 누군지, 내가 정말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걸 정리하는 게 힘들었어요. 그때 친구들이랑 매니저 오빠들이 옆에서 많이 도와줬어요. 한국말은 크레용팝 엘린이 많이 가르쳐줬고요. 그런데 엘린도 대구 사람이라 표준말은 잘 못해요. 하하.”
타국에서 힘들었을 시간을 묵묵히 이겨낸 엠버는 <진짜 사나이>가 자신에게 많은 변화를 줬다고 했다.
“그동안 제가 너무 편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뭘 하는지, 내 목표가 뭔지 모르고 일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진짜 사나이>의 경험이 딱 알려줬어요. 규율과 제약이 있으니 그동안 제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지 알게 됐죠. 그래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엠버는 요즘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찾은 느낌이었다.
“제가 얼마 전에 친구들에게도 말한 적이 있어요. 원하는 일이 뭔지 알았고, 지금 하고 있다고요. 하고 싶은 음악의 노래를 직접 만들어 앨범도 냈고요. 많은 분들이 제게 관심을 가져주시고 그만큼 불러주는 곳도 늘었어요. 처음에는 다른 걸 그룹과는 다른 제 스타일을 어색하게 생각하던 분들이 제 모습 그대로 좋아해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제게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는 것. 처음과 다르죠. 저는 좀 오래 알아야 친구가 되는 성격이에요. 이제는 그런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겼어요. 부모님과 떨어져 있지만 대화도 많이 하고요. 그래서 요즘 행복해요.”
<진짜 사나이>에서 빵 하고 터트린 눈물은 그녀의 많은 것을 바꿨다. 아니,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바꾸었다고 보는 게 맞다. 있는 그대로의 엠버를 볼 수 있게 했다.
엠버가 전곡을 만든 첫 솔로 앨범의 타이틀 곡 제목은 ‘Beautiful’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름답다는 내용이다. 자신을 찾은 그녀의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