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구텐베르크 박물관은 금속활자를 구텐베르크가 직접 발명한것으로 설명하고
반대로 스위스의 인쇄 박물관에서는 "고려를 방문해 인쇄술 기록을 가져온
교황청 사절단 친구를 만난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 하는데
당시 인쇄된 글자를 분석해보면 독일 박물관측의 주장이나 재현 방법과는 다르게
고려 금속활자 특유의 흔적이 발견되기 때문에 스위스 인쇄 박물관 측의 주장이
신빙성 있는것으로 판단되지만, 당시 고려와 유럽의 교류를 증명하는 자료가 없어
추측하는 정도라고 결론내린 예전 다큐도 있었죠.
근데 교황이 직접 고려에 편지를 쓰고, 교황 사절단이 고려를 방문해
고려와 유럽의 교류를 증명하는 1333년 자료가 나타났다고 하니 소오름..
스위스 인쇄 박물관측의 유럽의 금속활자 고려 도래설이
설득력을 얻게 되는 중요한 증거 자료일수도 있겠네요.
고려는 신문물을 받고 신기술을 개발하는데 적극적이었죠.
코리아란 국제명만 봐도 국제적 교류가 얼마나 활발했는지 알 수 있고,
고려인 개개인도 화약, 목화, 목화배틀 등을 가져오기 위해 불법적 수단도 불사했을 만큼, 신기술에 적극적이었고, 고려정부 역시 그 기술을 적극 도입, 권장했지요.
역사적으로 보면, 고려 중후기때 정치나 사회적 인식이 조선 중후기 일본하고 비슷합니다. 왕이 허수아비로 전락한 막부체제, 그래서 실력중시, 실용중시 사상이 널리 퍼졌죠. 힘만 있으면 소금장수 어부도 장군이 되고 실권자가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새로운 문물이나 기술에 거부감이 없으며,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배우고 이용하고자 하는 적극성이 있었죠... 단점이 있다면 귀족들의 힘이 막강한데 억제할 수단이 없다보니 백성에 대한 횡포가 심하고, 종교(불교)가 타락했지요... 백성 개개인은 조선 때보다 고단했을 겁니다.
조선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정신적인 발전만 강조하고 신기술을 도외시 했냐면, 임진왜란에 쓰던 주력 무기들 대부분이 140년 전 세종대왕 때 만든 무기들이었죠... ㄷㄷ 합니다. 1세기하고도 40년 동안 신무기 개발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이... (거북선 조차도 이방원 때 만든 무기입니다. 이순신과 나대용이 재현시킨 것이지, 진정한 의미로 신무기는 아니죠. 진천뢰라면 분명 신무기지만, 이건 조정이 아니라 최고 실권자 중 한 명이던 유성룡이 일본의 심상치 않은 기세를 느끼고서 개인재량으로 밀어붙여서 만들 수 있었던 것이죠) 임진왜란 끝나고 뒤늦게 명나라 전술과 대포를 받아들이고, 조총도 도입하지만, 역시 그때 뿐, 또 다시 신문물 수입이나 개발을 도외시 합니다. 200년 동안... 그 결과 조선말에도 화승총을 쓰고 있었죠...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나라는 발전이 더디죠.
잉 근데 200년이나 전쟁이 없던 국가가 세종댜왕때 무기를 썻다고 무작정 비판하기는 좀...그럼 그수준 화포나 선박도 없던 일본은... 글고 실력,실용중시는 장애인이나 하다못해 노비도 운이 좋았지만 벼슬한 조선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요. 과거재도도 더 잘 정비되었고. 중후기에는 서민교육도 많이 퍼진게 조선이고. 경제의 발전으로 중산층애서 서당을 보냘 형편이 되었다죠.
ㄴㄴ 무기로 예시를 들었지만 정확히는 전략, 방어체제, 민간기술, 문학, 예술 등도 다 포함됩니다.
일본은 자체 개발은 더디었지만, 조총, 선박 등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공성전술부터 사격전술까지 다채로운 발전을 했습니다. 전쟁 중이니 전쟁기술이 발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만, 그 바탕에 마음가짐 차이가 있지요. 전국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서구와 교역을 지속하고 조선과 명나라에 사절단을 요청하며 기술과 문화를 배우는데 적극적이었죠.(정치 안정 목적도 있었지만...)
일본은 임진왜란에서 패한 후, 조선의 도자기, 유교, 시문학 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입니다.(조선통신사 또한 수차례 요청하죠. 정치적 이유도 있었지만), 조선 뿐만 아니라 명, 이어 청나라 기술도 받아들이고 서구와 교역도 늘립니다(천주교는 박해했지만) 막부 말기에는 미 함대가 와서 대포 두 방 쏘고 항복을 요구하자, 즉각 항복하고 미국 기술과 시스템을 받아들이지요... 비웃기는 하지만, 여튼 외래 문물을 받아들이는게 빨랐습니다.
반면, 조선은 어땠지요?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 전술체계를 받아들이긴 하지만 말 그대로 잠깐 이었습니다. 그때 배운걸 또 200년간 그대로 두지요. 더불어 일본이 어떻게 군사적으로 강해졌는지, 일본의 전술, 일본에게 조총과 선박기술을 가르쳐 준 교역 대상이 누구인지 등은 알아볼 생각도 없었지요. 병자호란 후에도, 소중화라 외치면서, 명을 먹고 조선을 굴복시킨 청나라 기술과 군사학을 배우기는 커녕 무조건 배격만 하지요. 더 나아가 조선말기까지 서구 문물을 거부하며, 서학을 배우는 것을 천하고 유별난 일로 여겼습니다. 조선의 정신 아래 서구의 기술을 외치는 실학파, 개화파도 전부 이단이었죠...
사실... 일본이나 고려시대가 특별하다기 보다는, 조선시대가 세계사적으로 봐도 유별날 정도로 보수적인 국가관을 가지고 있었죠. 보통은 신기해서라도, 혹은 정권장악에 이용해먹기 위해서라도 외래기술을 받아들일텐데... 그 놈의 소중화사상...
한반도는 외교적으로 정말 피곤한 곳이지요. 한반도가 누구 편에 서느냐에 따라, 그 세계질서가 바뀌니까요. 남북이 모두 공산주의로 돌아섰다면 세계는 이미 공산주의가 지배했을것입니다. 남한이 공산화 되었다면 분명 일본, 필리핀이 차례로 공산화 되었을테고.. 러시아가 50년대만 해도 미국과 팽팽했을 만큼 강대국이었죠. 세계가 공산주의로 갔더라면, 지금 세계패권은 러시아가 지배했겠지요.
ㅎㅎㅎ 고려가 조선을 넘어 1000년 넘게 지속되었다면, ... 개방이 훨씬 빨리 이루어져서 ... 근대화가 앞당겨 졌을 것이다... 라는 가정.... 글쎄... 고려를 생각 이상으로 좋게 보시는 모양이시군요...
고려를 깎아내리기 전에, 일단 조선을 평가해 보면 좋겠어요. 다른 것 다 떠나서, 한글이라는 문자의 보급과 어디에도 유래가 없는 정신문화의 극단적 체험을 500년 동안 해 온것 만 치더라도, 조선은 대한민국이 더이상 중국과 한자에 종속될 수 없는 한 획을 그어 놓은 것이라 할 수 있어요... 고려가 지속되었다면, ... 문자체계는 아마도 중국어를 쓰고 있었을 테고, 우리 선조들인 거란인 요나라나, 만주족 금나라 청나라 처럼 중화를 선망하면서 흡수되었을 지도 모르지요... ... 역사란 참 아이러니 하니까요...
이상할건 없음. 고려때 벽란도 같은 항구는 세계문물 교류 활발하던 곳이었고 심지어 통일신라시대때도 아랍이랑 신라가 교역하기도 했는데 멀.. 고려야 하물며. . 이게 다 징기즈칸 몽골새끼들 원나라랑 이후 이성계 조선 들어와서 퇴보한거지. 특히 중기부터 사림파들이 득세하면서 헬 조오선~
고려 저때만 해도 일본은 별거 없었는데 세종 이후 일본이 서방 문물 교류활발히 하면서 조선이랑 격차가 벌어짐. 경제력도 국력도.. 그 결과가 왜란이었고 식민합방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