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고민 끝에 이 영상을 올립니다.
혹자,아니 많은 이들은 특정 종교의 홍보 영상이라고 하겠지요...또한 가생이닷컴에서 삭제 될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확실한 것은 ,미국에서도 많이 회자되었고 유명했었던 그 당시 우리나라의 살아있는 역사의 한 페이지입니다.
저는 특정 종교의 신자도 아니며,그저 한시대를 살아가는 평밤한 범부에 불과합니다.
이 영상을 보신 후,수많은 비판과 고언,특정 종교에 대한 공격이 난무할 거라고도 생각해 봅니다.
이후에 저는 가생이 닷컴에서의 활동도 많은 제약을 받고,아니,활동도 못할 수도 있겠고,또한 제가 올린 영상물은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도 있겠지요.
하지만 올려봅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김일성 만세라고 외치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하는 어떤 해괴한 정치인도 있는 이 때에,
한낱 이 정도의 영상물 쯤이야 이해하고 따뜻이 끌어 안아 보다듬어 주리라 믿습니다.
이 영상물 중에 본의 아니게 특정 종교의 선교 행위가 다소 많이 나온 것에 대해 사죄드리며,양해 바랍니다.
보다 성숙된 여러분의 시민의식과 포용을 바랍니다.
*1978년 이른 봄. 40대 후반의 한 한국인이 미국 의회의 소환을 받아 증언대에 앉았다. ‘박동선 사건’으로 한국과 한국인을 도덕적으로 궁지에 몰아넣고 괴롭히던 극좌파 미 하원 국제관계소위원회 도널드 프레이저 위원장이 이번에는 특정 종교를 한국 중앙정보부의 앞잡이로 몰아붙이기 위한 자리였다. 여기에서 또 ‘한 건’ 올리는 날에는 상원의원이 되는 것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그러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상대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하의 달변’으로 프레이저 위원장의 허점을 맹렬히 공격하며 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박동선 사건 : 1977년 9월 1일, 미연방 대배심원은 박동선을 뇌물 제공과 선거자금 불법 제공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그로부터 5일 후에는 김한조도 위증과 매수음모라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박정희 정부의 기본 입장은 ①미국에 대해 박동선은 정부와 아무런 공식적인 관계가 없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확고히 하는 것, ②정부의 위신을 보호하는 것, ③한국민의 한 사람인 박동선을 보호하는 것 등이었다. 한미 양국은 외교 경로를 통해 문제 해결을 도모하여, 1978년 12월 31일 양국은 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박동선의 자유의사에 따라 미국 의회 조사위원회에서 증언하도록 합의한 것이 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되었다. 이에 따라 박동선은 1978년 2월부터 9월 사이 세 차례에 걸쳐 미 의회에서 증언을 하게 되었다.
박동선 사건은 미 의회 하원에서는 1978년 12월 29일, 상원에서는 1978년 10월 16일 각각 완전 종결되었으며, 프레이저 조사위원회도 1978년 10월 31일 그 활동을 끝냈다. 그리고 미연방지방법원은 1979년 8월 16일 법무성의 요청에 따라 박동선에 대한 기소를 공식 철회함으로서 박동선 사건은 종결되었다.
포드정권 시기에 터진 이 사건은 도덕외교를 주창한 카터정권기까지 이어져 양국정부의 관계형성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주적은 일본이 아니라 북한입니다
광화문에서 주적인 북한정권을 찬양한다면 당연히 국가에 위반하는 행동이죠
광화문에서 일본왜왕을 찬양한다고 국가이적행위자라니 주적이 일본이 되버리나요?
그사람이 원숭이왕을 좋아하든 찬양하든 신고해서
일본우익단체들과 협력해 대한민국을 위협하거나 선동하여 붕괴시킬 목적이라면
국보법으로 처벌하거나 정신감정하고 정신병원에 보내면 됩니다
단순히 몽키킹을 찬양한다고 그사람이 국보법을 위반하고 이적행위를 했다고 볼수없습니다
국보법을 까려면 제대로 이해하고 깝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