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를 창시한 최홍제 장군이 박통과 사이가 좋을 때 태권도 사범들을 전 세계에 파견하는데
이때 파견된 사범들은 정말 열혈 투사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국가의 큰 지원이 없었음에도 외국에 나갈 수 있고(이민) 국가를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맨손으로 전 세계로 나갔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던 세계였고, 무술이라고 해봤자 '가라테'와 이소룡의 '쿵푸'만 알던 외국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코리안 가라테'란 타이틀로 도장을 열기도 했는데 처음에는 누구도 도장을 찾지 않았습니다. 이에 당시의 관장들은 가라데 도장이나 도박성 격투장을 찾아다니며 '도장깨기'를 하거나 시범을 보이거나 격투 대회에 우승하거나 하면서 맨몸으로 태권도를 알렸습니다.
그렇게 무술이면 가라데밖에 모르던 세계인들에게 가라데 대신 태권도를 심습니다. 그결과 80년대에는 태권도 국제 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고 세계에 널리 보급되게 됩니다.
태권도가 세계로 확산되자 이를 기회로 한국 정부는 IOC 위원이었던 김운용 위원을 WTF 총제로 선임하며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급소를 노리고 힘과 스피드를 바탕으로 하던 효율적인 살인 무술에서 스포츠로 바뀌게 됩니다. 안전을 위해 호구와 헤드 기어를 착용하게 되었고, 점수제를 통해 스포츠 종목으로 변환되게 됩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유도를 이어 무술로는 두 번째로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스포츠화의 진행은 앞서 세계로 나갔던 사범들이 추구하던 것과는 다른 양상으로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변화로 여겨졌으나 최근에는 오히려 태권도 열기를 식히는 이유가 된다는 평도 듣고 있습니다.
게다가 태권도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최홍희 총제가 정치적 이유로 망명하고 다시 북한에 들어가 ITF를 창설하고 총제에 올라 스포츠화를 추구한 WTF와는 다른 태권도로 방향을 이어 가면서 앞으로의 태권도 방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혹자는 '왜 태권도를 바탕으로 한 세계적 격투기 선수는 없는가?'라는 의문을 갖는 이들이 있는데 바닥 기술이 인정되는 종합 격투기에서 특정 무술 하나를 기반으로는 성공할 수 없어 다양한 무술이 뒤섞인 형태의 시합이 이루어집니다.
워낙에 태권도는 예전부터 무술로서 한 자리를 차지했었고, 무에이 타이가 권투와 태권도의 장점을 다 갖춘 입식 타격 무술로 인정 받아 두 개의 무술이 전반적으로 격투기의 기본 무술로 쓰이고 파운딩 기술이 중요시되면서 브라질 유술인 '주짓수'가 새롭게 각광을 받으며 최근에는 종합격투기 하면 '주짓수'라는 인식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태권도가 무시되는 것은 절대 아닌 것으로 실제 격투기 시합에서 대부분의 발차기는 태권도에 기반하고 있고 일부 무에이 타이 발차기 기술과 연타 기술이, 바닥 기술에는 주짓수에서 온 기술이 상황에 따라 다채롭게 쓰이는 것입니다.
결국, 종합 격투기에서 두각을 보이는 선수는 남들보다 더 노력한 선수인 것이며 다양한 기술로 준비된 선수라는 것입니다.
실제 새로운 태권도 지도자들은 품세에 있던 기술들을 실전화 하기 위해 연구중이고, 단순 겨루기 위주의 태권도 종목도 품세 등이 추가 되어 태권도의 새로운 천 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