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기사입니다
수인이와 한국 부모의 인연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큰 아들 유학을 위해 러시아 한인교회를
찾은 장모(55)씨는 교회 목사로부터 "딱한 아이가 있는데 입양할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교
회 차량을 운전하는 러시아인 교인(59·여)이 여섯 자녀 중 막내딸을 공부시키고 싶은데 여력이 없다며
한국 입양을 부탁한 것. 남편(81)은 늙었고 자신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한 달 400달러(36만원)에 불과
했다. 장씨는 아이를 본 순간 "내 딸이구나"라는 생각뿐이었다.
4년 뒤 새 가족과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해 가던 수인이에게 시련이 닥쳤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난 것. 하지만 가난은 어느새 가족애로 똘똘 뭉친 이들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단순한 생활의
불편함에 불과했다. 아버지는 택시 운전으로, 어머니는 김밥 장사로 생계를 꾸리면서 수인이 가족은 더
깊은 사랑과 더 많은 배려를 나눴다. 동시통역사가 꿈인 수인이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먼저 통과해야 할
내년 대학 입시를 위해 오늘도 영어책과 씨름 중이다.
*장수인 / Nastya - returns to Russia (1 of 2) - 2007년 영상입니다.
*장수인 / Nastya - returns to Russia (2 of 2) - 2007년 영상입니다.
*아래는 2013년 현재의 장수인(Nastya) 입니다. (KBS 2TV '강연 100℃')
<장수인 (24세, 女, 러시아 출신 한국인 대학생)>
*가족의 의미
12살 까지 러시아 이름 바스카예바 나스차로 살았던 장수인씨.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던 그녀가 한국으로 입양된 이유는 그녀가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랬던 어머니의 선택 때문이었다.12살
때 입양된 수인씨는 사업을 하는 한국부모님의 사랑 속에서 한국 언어와 문화를 배우며 한국 생활에 적응
해 나갔다.
3년 후 금융위기로 아버지가 운영하던 사업체가 부도가 났고 아버지는 택시운전, 어머니는 분식집을 운영
하며 힘겹게 생계를 이어나갔다. 먼 타국에서 입양해왔지만 더 이상 그녀에게 많은 것을 해줄 수 없기 때문
에 계속 미안해하는 한국부모님. 하지만 이미 가족이기 때문에 그녀에게 가난은 문제되지 않았다. 오히려
단칸방에서 어머니와 둘이 지내며 분식집 장사를 도운 그녀. 힘들어도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동시 통역사의
꿈을 키워나갔다. 자신은 남들보다 두 배의 축복과 사랑을 받아 늘 든든하다고 말하는 그녀.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찾은 장수인씨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