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koryeo chungja)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금세기 영국의 미술사가 W.B. Honey는 ‘일찍이 인류가 만들어 낸 도자기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고려 당대에 도자기 최전성기시대인 송나라의 태평노인은 그의 저서 '천하제일조(天下第一條)'에서 건주의 차, 촉의 비단, 하국의 검과 함께 천하제일 명품으로 고려청자를 꼽았던 것에 주목했다. 특히 태평노인은 고려청자를 '고려비색(翡色)'이라고 표현 하기도 했다.>
왜 이들은 고려 청자를 고금을 통해 천하제일로 말하길 주저하지 않았을까?
인류 문명의 획기적인 영향의 잣대로 삼는 것도 다름 아닌 토기의 사용 부터입니다.
이것을 신석기 혁명이라고 부를 만큼 인류의 두뇌와 손의 진보는
결국 토기라는 인류 문명의 주목할 만한 첫발을 내딛게 했는데
서토의 하한족은 채색 토기를 우리는 만주와 한반도에 걸쳐 세계사에서도 독보적인 우리만의
빗살무늬 토기를 사용하며 이미 신석기 시대 독자적인 생활 문명권을 구축하게 됩니다.
서토의 채색토기는 본인의 독자적인 것보다는
서아시아 이집트 시리아 이란등의 채색토기의
전파로 탄생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높이나 쭝궈 학자는 이를
극부인하기 바쁨.
하여튼 이런 우리만의 독자적 빗살무늬 토기 사용은 이후 경질 토기형태로 표면이
더욱 단단해지고 다시 도자기의 시대로
이어지게 됩니다.
도자기는 유약의 발명을 통해 이전처럼 흙이 수분을 허용하지 않게
되었고 무엇보다 광택을 내면서
귀한 대접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기타 서구권의 금속 식제등과
비교해서도 중금속 오염이나 세균번식 억제의 위생력에서
도자기를 따라 오지 못했습니다. 또한 오늘날 우주비행선의
중요한 재료가 세라믹.
<청자의 탄생은 서토에서 나왔지만 청자의 완성은 다름 아닌 우리의 고려청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청자를 기존 일본학자는 11세기 가서야 나왔다고 보았지만
현재는 신라 말기 9세기에
이미 등장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높습니다.
일찍히 백제는 해상대국으로 근초고대왕 시기 요서와 산둥을
경략하고 동성대왕 시기는
서토의 동해안 지역을 거의 장악하는 사서 기록이 등장하는 거나
백제 멸망 이후에도 대륙쪽 활동의 기록은 지속적으로 나오면서
우리의 해상 활동은 활발했습니다.이후 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이정기의 제나라가 산둥에서 60여년간을 독립적 왕국으로
발해 등 주변국과 교류하며 해상활동을 했고
신라는 장보고를 위시하여 동북아 해상 무역을 9세기에 장악하게 됩니다.
이런 해상왕 장보고의 동북아 해상물류 영향속에 신라 시대 이미 청자의 기술을 습득하면서 고려 시대에 와서 청자의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고려 청자를 천하 제일로 치는 이유에는 크게 3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푸른 하늘을 닮은 투명하고 신비한 비색입니다.
둘째는 아름다우면서도 예술적인 조형미
셋째는 내부의 다양한 문양과 독특한 상감기법입니다.
<여기서 왜 고려 비색이 대단히 중요하냐면
당시 고려와 송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하이테크 제품인
고화도 도자기를 만들수 있는 나라였고(이 기술은 700 여년을 오직 이 두나라만
만들수 있었던 하이테크 제품임)
당시 송나라에서도 많은 양의 다양한 도자기가 나왔지만 송나라 군주는 고려자기를 실내에 두면
즐겨하고 동경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송나라는 당시 고려처럼 투명한 유약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임. >
무슨 말인가?
송나라는 당시 유약을 알고 청자도 만들수 있었지만 송나라의 유약과
불조절을 섬세하게 살수 있는 가마 기술의 부족으로 불투명했기에
비록 광택은 났지만
도자기에 새겨진 문양이나 그림은 유약을 바르면 덧칠된 것처럼 제대로 알아 볼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서토의 기술력이 겨우 고려 청자의 비색을 따라간 것이 다름 아닌 명나라시기 였고 나아가 명나라 국가 도공은 고려 청자의 여러 조형미까지도 같은 모양을 만들며 배우는 시기를
통해 이후 세계에서 유명한 청화백자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임.
이때야 가서 비로서 서토에서도 도자기에 새겨진 여러 문양과 색감이
유약을 발라도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앞선 동북아에서 가장 오랜 시원 문명이 발해(요하) 문명부터
고조선(앞선 선진 청동문화) , 삼국시대 때와
남북국 시대에도 그러하지만
고려는 이런 뛰어난 하이테크 도자기 뿐 아니라
현대 기술로도 재현하기 힘든 뛰어나면서도
초정밀 회화부터 금속 공예, 거대 건축물, 예악, 고도의 천문학,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등의 고도의 기술력과 제품 및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로마 이상의 4경의 대도시와 크고 작은
중소 도시문명을 바탕으로 고려의 개성은 송나라뿐 아니라
왜국 동남아 저 멀리 중동의 여러 나라의 상인까지 들어와서
활동하는 국제적인 대도시로 번성했음.
이런 고려의 활발하고 개방적인 풍토는
이후 15세기 세종의 대조선 시기를 이끌면서 이어져 갔고
조선내에서도 외국인이 벼슬에 오르는 등 개방적이며
여러 발달한 과학이나 도시문명과 법제등
노비도 산모 휴가를 받을 만큼
당대 세계 최고의 선진대국으로서의 위상을 이어가는
밑거름이 될 수 있었습니다.
고려 청자가 아무리 멋지고 예술적이며 뭐하냐? 한국은 대가 끈겼다던데... 예전에 고등학교때 선생 한분이 한국은 고려청자니,나전칠기니 백날 떠들어 봐야 당시에 도공들이 자기만 그 비법을 알고 전수를 하는거를 꺼려하고 죽거나,아니면 뒤늦게 전수하려다가 임진왜란때 난다긴다는 도공들은 다 끌려갔대요! 그래서 한국은 대가 끈겼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