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유민의 후예가 힘있는 지방 세력으로 성장했고 영향력을 끼쳤다는 말이지 그걸 제국이니 뭐니 하면서 말하기에는 과장이 심합니다.
그리고
참고로 당나라는 중기에 가면 이미 거의 춘추전국시대와 다름없이 조정의 힘이 약화 유명무실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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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너무 하잖아요? 왜곡을 해도 정도껏 해야죠..저게 뭡니까?
도대체 누구한테 역사를 배웠고 아니 누가 저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합니까?
특히나 고구려와의 대전이 국력 자체를 빠르게 고갈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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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수문제가 아니예요..
역사를 왜곡을 해도 정도껏합시다.
님이야 말로 겉할기 그만 하세요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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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그렇겠죠
산수 할줄 알고 글읽을 줄 알면
당신이 지금 얼마나 허황된 잡소리를 하는 줄 알수 있습니다.
적당히 하세요 적당히..
왜곡을 해도 정도껏 해야지
애교로 봐줄수 있는 수준으로 해야지 이건 뭐...
숫자읽을 줄 알면 연도만 따져봐도 당신이 하는 말이 엉터리라는 걸 알수 있어요.
좀 정도껏 하라구요.
이게 무슨 한류영상입니까?
잘 만들어놓은 영상을 거짓말로 왜곡시킨 엉터리를 정당화시키는 것에 활용하다니..
한심해서 그럽니다.
좀 과장된 면도 있지만 이정기 사후에 전성기는 아니라도 웬만큼 세력를 유지했고 나중에 멸망했을 때
당나라는 제나라의 영토를 세개로 나눌 정도로 여기에 트라우마가 강했습니다.
일단 제나라가 강했던 이유는 강남에서 장안을 가는 물자수송로를 장악하기 좋은 위치였고
산둥반도가 발해, 신라와 무역을 독점해서 풍요로웠던 이유도 있습니다.
일단 제가 알기로는 산동지방 자체가 꽤 강한 지역이였다고 압니다.
게다가 주변의 절도사들도 모두 이정기처럼 독자적인 세력화를 했고 자식에게 자리를
승계시켰는데 이런 이해관계로 절도사들끼리 자식에게 승계할 때는 힘을 합해서
조정에 위협을 했습니다. 지금의 제계와 비슷하죠.
당시 위구르?에게 당나라가 탈탈 털렸고 주변상황이 좋지 않았는데 시대가 좀 어긋나는 것 같지만
이때가 당나라가 전성기라고 하기엔 좀 그런 점이
토번의 가르친링에게 말 그대로 군대가 완전히 털려서, 수양제가 고구려에게 털린 것 그 이상으로
결국 방어할 군사도 별로 없었고 설인귀를 비롯해 장수들이 그냥 포로로 잡혔다가
가르친링에게 훈계를 받고 풀려나는 일도 있을 정도였죠.
토번이 내분만 아니였다면 당나라는 망했을지도 모르죠.
돌궐도 부활하고 거란도 날뛰고 발해도 건국하고 신라와도 소원해지는 아주 난장판인 시대가 바로 이때.
"이정기" 원래이름은 "이희옥".... "정기"라는 이름을 당나라에서 하사받아 "이정기"가됨. 고구려 유민출신으로 안녹산의난과 위그르출신 절도사들의 반란을 진압하는데 공을세웠슴에도 당나라 조정에서는 그를홀대하여 스스로 절도사를 자처하여 산둥지역 6개주를 통치하게됨. 나중에는 그세력이 너무커져버려서 당나라 중앙군도 어찌하지못하는 세력으로까지 성장함. 당나라 조정은 어쩔수없이 그를 그지역 절도사로 임명하게됨.
그후 이정기는 다른지역까지 복속시키면서 통지지역이 10주까지 늘어남. 이때부터는 당나라의 지방정권이
아닌 독자적인 왕국으로 자리잡기 시작함.------> 이정기는 당나라의 다른반란지방정권과는 다르게 독자적인
국가형태까지 갖추고 있었으며 당나라를 멸망직전으로까지 몰고갔었을 정도로 이정기가 살아있을때는 굉장히 강성했었음. 이정기 사후에는 안타깝게도 그세력이 점차쇠퇴하여 멸망하게됨. 이정기는 고구려를 부흥하기 위하여 당나라와 맞서싸웠던것은 아님. 그냥독자적인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려고 당나라한데. 벗어나기 위해서 싸웠던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