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의 인기가 전 세계로 퍼져가고 있는 요즘, 팝의 본고장 미국이 한국계 아마추어 가수로 인해 들썩이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인 미국 폭스TV '아메리칸 아이돌 11'에서 탑9에 이름을 올린 한희준(23)이 그 주인공이다.
아시아인으로 최고 성적을 거둔 것은 물론 능청스러운 유머와 번뜩이는 재치, 따뜻한 품성으로 아시아인에 대한 미국 사회의 편견을 깨고 국민적인 스타로 주목받고 있다.
탈락한 지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 10여 개의 미국 유명 토크쇼에 줄줄이 섭외됐고, 300회가 넘는 미국 매체와 인터뷰하는 강행군을 소화하고 있다.
지난주 메트로신문과 국제전화로 만난 그는 "인종의 한계를 넘어 미국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한국인의 긍지를 심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 톱8의 문턱에서 탈락했지만, 지금 인기를 봐서는 오히려 축하를 해야 할 것 같다.
실력보다는 훨씬 더 많이 왔다고 생각한다. 탑10 멤버들은 6~9월 미국 투어에 나서므로 홍보를 위해 방송에도 출연시킨다. 그런데 나는 조금 더 많이 하고 있는 거라고 하더라. 찾아주고 연락해 주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
- 19일 한국에서도 방송된 1회를 보면 처음부터 심사위원들로부터 극찬을 받던데 어느 정도 예상했나.
지난해 11월 피츠버그 예선인데, 전혀 그런 기대는 없었다. 예상 외의 칭찬이었다. 그 순간이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던 것 같다.
-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있나.
2009년부터 약 2년 가까이 한국에 건너가 가수 준비를 했다. 당시 전문 트레이너로부터 레슨을 받고 혼자 많이 연습한 것이 전부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음악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 매회 화제를 모았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나는 순간은.
톱 24에 뽑혔을 때다. 처음으로 심사위원과 가까이 앉아서 이야기하는 순간이 가장 짜릿했다. 에어로스미스의 스티븐 타일러가 "항상 모든 무대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이 좋았다. 실력이 좋은 가수는 아니지만 스타다"라고 해준 말을 잊을 수 없다.
- 또 다른 심사위원인 제니퍼 로페즈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아 더 화제가 됐다.
주위에서 많이 부러워 했다. 나를 좋아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아마도 아시아인에 대한 기대가 작았던 것 같고, 내가 그 기대를 충족시킨 것 같다. 포옹할 때는 세계적인 스타가 아닌 옆집 누나 같은 느낌이었다.
-아시아인으로서 한계를 느낀 적은 없나.
나름대로 아시아인이 아닌 보통의 참가자로 보이려고 많이 노력했다. 아시아인이라는 게 가장 큰 약점이자 가장 큰 장점이었다.
- 스스로 판단하는 장점은.
성격이다. 노래나 외모로는 승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접하는 사물과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편이 아니다. 늘 즐기는 평소의 성격을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아시아인은 공부만 잘하고 심심하고 재미없고 매력적이지 않다는 인식을 바꾼 것 같다.
- 흔히들 쓰는 미국 이름 대신 한국 이름을 고수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가족 모두 한국 사람이다. 이곳에서도 한인들과 가장 많이 교류하고, 한국 음식을 가장 많이 먹는다. 활동하는 영역은 미국이지만 나는 한국인이라는 마음을 늘 지니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굳이 표현하지 않더라도 희준이라는 이름이 자랑스럽다.
- 요즘 미국 여성들 사이에 희준이라는 이름을 연습한다고 하더라. 인기를 실감하나.
하하하. 진짜냐. 그렇다면 여성들을 만날 때 더 자신감이 생기겠다. 많이들 알아보고 사진 찍는다. 그렇다고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저를 좋아하는 이유는 옆집 동생·오빠 같아서이지 않을까.
- 장애우 봉사단체인 '뉴욕 밀알 선교단'을 알리겠다는 최초 목표는 충분히 이룬 것 같다.
방송 출연 이후 많이 유명해졌고, 도와주는 분도 많이 생겼다. 요즘은 시간이 없어서 못 갔는데 계속해서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위해 많이 노력할 것이다.
-소속사가 있나.
톱24에 들면 생긴다.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 조지 클루니 등 할리우드 톱 스타들이 소속된) CAA라는 에이전시와 계약했다.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
톱10 멤버들과 50개 도시에서 공연한다. 가장 작은 공연장이 8000석 규모라고 들었다. 무척 흥분된다. 곧 투어 연습을 시작한다.
-개인 활동 계획은.
영화·시트콤·게임쇼 등에서 섭외가 오고 있다고 들었다. 가수가 아닌 종합 엔터테이너가 목표다. 특히 개인적인 성격을 많이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시트콤에 끌린다. 일단 재미있는 엔터테이너가 되고 싶다. 토크쇼 진행자가 되는 게 최종 꿈이다.
-한국에서 활동할 계획은 없나.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도 갈 수 있겠지만 일단 미국에서 시작했으니, 미국에서 활동할 것이다.
-미국에서 K-팝의 인기를 체감하나.
물론이다. 훌륭한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은 게 대단하다. 우리같이 작은 나라에서 그런 장르를 개척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크게 대중화 되진 않았지만 여기 한 번만 들으면 다들 좋아한다. 내가 한국 사람으로서 여기까지 온 데는 K-팝의 혜택도 분명히 있었다.
◆ 한희준은 누구?
한희준은 1989년 4월 21일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인 2001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갔다. 뉴욕 퀸즈 플러싱에서 줄곧 생활해온 그는 고교 졸업 후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2008년 한국으로 건너왔지만, 데뷔에 실패하고 2년6개월 만에 미국으로 돌아간 뒤 우울증까지 앓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뉴욕에 있는 장애인 선교단체인 '뉴욕 밀알 선교단'의 자원봉사자로 일하며 인생의 가치를 새롭게 깨닫게 됐다. 선교단을 알려 장애인들에게 좀 더 많은 도움을 주겠다는 목적으로 '아메리칸 아이돌 11'에 출연했고, 그 이상의 목적을 이뤘다. /유순호기자 suno@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