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텐베르크보다 200년 앞선 세계 최초의 코리아 금속활자
한민족 금속활자 Great Invention of Movable Metal Type Printing
중세시절 유럽은 인쇄문화가 전무하던 시기였습니다. 양피지에 손수 필사를 통해 한권의 책이
나오는데 보통 3여 년이 걸리다보니 성경이라는 문자와 정보는 성직자와 극소수 귀족의 전유물이였고
그렇게 교황의 종교적 권위는 절대적이고 신성한 가운데 다양한 사고가 결여되었죠.
이런 가운데 쿠텐베르크의 금속활자에 의한 대량의 성경이 나오면서 종교 개혁과 과학 혁명으로
유럽은 중세 암흑기를 지나 일대 근현대로의 문명적 혁명을 이루게 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럼 과연 목판 인쇄술도 인쇄문화도 없던 유럽에서 그것도 금속 세공업자였던 쿠텐베르크가
어떻게 단시간 내에 금속활자라는 당시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인쇄 문화의 혁명적 발명품이 나왔을
까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78년 앞선 대한민국의 <직지심체요결> 줄여서 <직지>가
세상에 드러나면서 실제 금속 활자의 발명은 우리 대한민국임이 세계최초임이
유물적으로 확인되는 순간이였습니다.
그러나 고려시대 우리의 금속활자는 기록을 보면 구텐베르크 보다 실제는 200년 이상이 앞서 확인됩니
다.(나아가 우리의 인쇄 역사는 이보다 훨씬 앞선 8세기에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면서 다시금 세상을 놀라게 했음)
1232년 이전 : 고려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 쿠텐 보다 223년 앞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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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발문에 책을 찍게 된 사연을 밝히고 있는데,
몽골의 병화(兵禍)로 국도를 강화도로 옮긴 1232년(고종 19) 이전에 주자본(鑄字本)으로 찍었던 것을
1239년 강화도에서 책을 뒤집어 이것으로 목판(木板)을 새긴 다음 다시 찍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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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4년경 : 고려 “고금상정예문(古今詳定禮文)” (→ 쿠텐 보다 221년 앞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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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전하지 않으나, 1234년경 강화도에서 “고금상정예문(古今詳定禮文)” 28부를 찍었다고 한다.
이규보(李奎報)가 저술한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채록된 “신서상정예문(新序詳定禮文)”의 발문에
“고금상정예문 50권을 주자(鑄字)로 인출(印出)하여 제사(諸司)에 분장(分掌)하게 하였다” 라고 적혀 있는 데서 알려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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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297∼1298년경 : “청량답순종심요법문(淸凉答順宗心要法門)” (→ 쿠텐 보다 157년 앞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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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도서관에 남아 있는데, 그 한 면이 금속활자로 찍혀 있다.
이 책은 원나라의 별불화(別不花)가 자금을 대어 찍었기 때문에 이 금속활자의 인쇄술이 원나라로 흘러들어간 것이 확실하다.
그것은 원나라의 왕정(王幀)이 쓴 “농서(農書)”에,
“1313년경 놋쇠로 활자를 만들었으나, 실용화하지 못해 다시 목활자를 썼다”라는 기록이 이를 증빙한다.
이로 미루어 원나라 때는 서양사람들이 드나들고, 아라비아 사람들이 이를 본받아 카드를 활자로 찍었고,
그 후에 종이의 제조법과 더불어 서양으로 금속활자 인쇄술이 전해졌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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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47년경 : 삼장문선(三場文選) (→ 쿠텐 보다 108년 앞섬) - 한문수 선생님 자료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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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정복왕조 원(元)나라가 주관한 국제 과거시험 준비 수험서였던 ‘삼장문선(三場文選)’에 사용된 활자가 고려시대의 활자라는 것.
1377년(고려 우왕 3년)에 간행된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았던 ‘직지심경(直指心經)’보다 최대 30여 년 앞서 제작된 문서이다.
일찍이 미국의 저명한 인쇄문화 연구가 카터는
고려 말과 조선 초 무렵 ‘한국은 인쇄술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금속활자의 사용을 고도로 발전’시켜
원에 ‘역수출’까지 했다고 지적하면서, 활자 인쇄가 고려로 부터 유럽에 전해졌을 개연성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단종 즉위 년이었던 1452년 8월 23일 명륜당에서는 성균관 수재들과 중국 사신들이 경전에 대해 강론하며,
우리 활자로 간행된 ‘삼장문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조선일보 보도내용]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받은 고려의 직지심경(=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1377년간)보다
30여년 앞선 고려의 금속활자본 '삼장문선'이 발견됐다.
1993년 1월 6일 상암문고가 "고려시대 서적원 간행의 '삼장문선'(원제 신간류편역거삼장대책)이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라며 이 책을 공개했다.
출간연대는 1341년에서 1370년 사이로 '직지심경' 보다 짧게는 7년, 길게는 36년 앞서는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번에 확인된 고려 금속활자본의 활자들은 대-중-소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자 본문에 소자 두줄로 주석을 달아 인쇄할 수 있는 완벽한 체제를 보여 주고 있다.
또한 활자와 체제외에도 내용이 구본은 고려본, 신본은 조선본임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삼장문선'은 원나라에서 주관한 국제적인 과거시험(향시와 중서성 회시)의 대책문제를 뽑아 고시관의 비평을 곁들인 명답문집으로,
이 책에는 1314년에서 1335년까지의 출제가 들어있고 초간본은 1341년에 나왔다.
내용에 고려본인 구본은 경의를 표시하는 대두법을 사용, 원황제나 황실이 나오면 문장을 별행하고 있으나
조선본은 이를 무시, 출판국가가 다름을 확연하게 증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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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77년 :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 쿠텐 보다 78년 앞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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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
이 책은 1377년(우왕 3) 충청도 청주(淸州) 밖의 흥덕사(興德寺)에서 주자(鑄字)한 금속활자로 찍은 것임을 발문에서 밝히고 있다.
당시 고려에는 서적점(書籍店:書籍院)이라는 중앙관서가 있어 주자(鑄字) ·인서(印書) 등을 관장하였는데,
중앙관서가 아닌 한 지방의 사찰에서 이런 금속활자를 만들어 인쇄하였다는 사실은
당시 서적점에서는 이미 금속활자에 의한 인쇄술이 상당히 발달하여, 지방의 사찰에까지 그 기술이 파급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직지는 백운화상이 75세였던 고려 공민왕 21(1372)년에 노안을 무릅쓰고,
선도(禪徒)들에게 선도(禪道)와 선관(禪觀)의 안목을 자각(自覺)케 하고자 함은 물론,
선풍(禪風)을 전등(傳燈)하여 법맥(法脈)을 계승케 하고자 저술한 것으로서,
그 제자 석찬과 달담이 비구니 묘덕의 시주를 받아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 7월에 금속활자로 인쇄하였다.
직지는 2001년 9월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증도가자' 먹 분석..."'직지'보다 시기 앞서"
http://www.ytn.co.kr/_ln/0106_201106180319492778
http://www.youtube.com/watch?v=bvw_e6v5nuA
그런데 얼마전 직지보다 훨씬 앞선 금속활자 인쇄본이 아니라 금속활자 자체가 발견되면서
학계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직지' 이전에 나온 '동국이상국집'과 '상정고금예문' 역시 서체 분석 결
과 '증도가자'를 쓴 것으로 추정되는 상태에서 7개의 활자면 먹에서 11세기 탄소연대 측정이 나오면서
이것이 직지 이전의 세계최고의 활자라는데 좀 더 무게가 실어지는 양상이 되고 있습니다.
美 엘고어 전 부통령은 서울 디지털 포럼의 기조연설에서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 혁명은 커뮤니케이션 부문에서 인쇄술에 이어 세계에 주는 두 번째 선물이다"
"서양에서는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당시 교황 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한 이후 얻어온 기술이다"
"(이러한 사실은) 스위스의 인쇄박물관에서 알게 된 것이다"
말을 하면 대한민국의 금속활자가 유럽으로 건너가지 않았는가라는 추정의 도화선을 제공했고 나아가
<활자 로드 (Type Printing Road)>라는 용어가 국내에서 처음 등장하게 됩니다.
첫 동영상의 내용을 보건데 유럽의 당시 인쇄문화가 전무하던 상황에서
이런 금속활자가 나온 배경에는
단순히 문명의 유사성보다는 200여년을 앞선 고려의 금속활자가 이후 원나라를 통해 그리고
유럽의 교황 사절단으로 온 <니콜라우스 쿠자노스 추기경>을 통해 그와 친분이 있던 쿠텐베르크가
정보를 접하게 됨으로 이후 독일에서 유럽식 금속활자가 나올 수 있던 배경이 되지 않았나
나름의 추정을 하지만 앞으로 좀 더 학계고 객관적인 자료와 연구를 통해 더욱 면밀히
밝혀져야 햘 내용으로 보입니다.
하여튼 <우리 대한민국은 이미 8세기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술을 바탕으로 쿠덴베르크보다
200년을 앞선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 했다는 점은 변함없는 역사적 사실임을 , 세계
활자 문화의 종주국임을 알기 바랍니다.>
쿠텐베르크 보다 우리의 금속활자 기술이 200년이나 앞섰다고하나 우리는 그것을 이용하지 못했고
독일은 이용했다는것.
그것에 가장 중요한것은 인쇄하기 쉽도록 만든 글자(민주적글자)
그러나 우린 한글이란 우수한 글자가 있었음에도 널리 보급되지 못했고 400년이란 세월동안
인정받지 못하고 천하게 여기고 부녀자들이나 쓰는등 간신히 명맥만 유지했다는것.
한문이란 글자(엘리트 문자)가 일부 특권층에만 쓰였고 인쇄술은 한문을 인쇄하는 용도이다.
한글이 더 일찍 보급되고 한글로 인쇄술이 이용되었다면
우리는 독일보다 더 발전 했을것이다.
왜냐면 독일은 쿠텐베르크 인쇄술의 혁명으로 종교가 개혁되고 시민혁명이 이루어졌고 산업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너무나 안타깝다. 우리나라가 먼저 그렇게 될수 있었는데.....그랬다면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에 먼저 갈수있었는데 말이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글이네요.
굿잡스님의 한자의 동이족 기원설도 맞는 말이죠.
요하/홍산문화에서 발견되는 갑골문자가 한자의 기원이라고 책에서 봤습니다.
좋은 영상과 글 잘 보고 갑니다.
그리고 발해의혼님의 의견에 저도 공감해요!!
유일신 사상의 이기적이고 편협한 사상은 정말 짜증난다능..
그나저나 우리 하늘님 정말 요즘 우리나라 조율 한번 해주셔야하는데 말예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