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독재의 폭압에 항거하며 떨쳐 일어섰던 이 땅의 수많았던 열사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참된 정의와 자유가, 피와 눈물을 흘리며 희생당할 때
비장한 용기를 불어넣으며 투쟁의 심장을 뜨겁게 고동치게 했던 노래.
빛고을 광주를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출정곡이자 진혼곡이자 송가가 된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어느덧, 아시아의 민주주의를 깨우고 용기와 힘을 전해주는 위대한 연대의 곡이 되었습니다.
홍콩에서 불린 '임을 위한 행진곡' [목포MBC 뉴스투데이] 목포MBC/ 2019. 6. 18.
[임을 위한 행진곡]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계엄군에 의해 희생된 고 윤상원 씨와 1979년 광주의 노동 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 사망한 (스물둘 꽃다웠던 청춘의) 노동운동가 고 박기순 씨의 영혼결혼식(1981년)에 헌정된 노래. 소설가 황석영이 시민사회운동가 백기완의 옥중지 [묏비나리]의 일부를 차용해 가사를 썼고, 당시 전남대 재학생이던 김종률 씨가 작곡했다. 처음에는 '님을 위한 행진곡'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는 표준어 규정에 따라 통상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고 부른다.
*5.18기념재단: www.518.org
*(사)들불열사기념사업회: www.deulbul.co.kr
[2016. 11. 26.] 광주시민이 빗속에서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
산/들/바람/ 2016. 11. 29.
[2016. 12. 10]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 '임을 위한 행진곡'
MediaVOP/ 2016. 12. 10.
[남도는 깊다 ; '임을 위한 행진곡'] -세계 각지의 민중들을 하나로 만들었던 노래들. 투쟁의 현장을 떠나 어느새 민중의 삶에 하나가 된 노래들이 있다.
-그리고 한반도를 넘어 중국, 일본, 태국, 대만, 캄보디아에서도 불리는 대한민국 광주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1981년 만들어져 1982년 2월 망월동 구묘역 윤상원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바쳐진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윤상원(1950-1980, 1980년 5월항쟁 당시 '투사회보' 발행인이자 시민군 대변인)은 무기 반납을 두고 격론을 벌였을 때
"우리는 지금 패배할지라도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입니다"라며 당당하게 죽음을 길을 선택했던 사람이었다.
사후에 1978년 '들불야학' 강학으로 만난 박기순과 영혼의 동반자가 된 그는 죽음으로써 광주의 의로운 항쟁을 지키고 싶었다.
-그를 위해 불려진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처럼 목숨을 바쳐 의를 행한 이들과 살아남은 이들의 마음까지도 보듬어주는
노래인 것이다.
광주MBC/ 2014. 7. 22.
시진핑 똥고 빨고 중국몽 꾸면서 홍콩 시위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 언급도 기피하는 녀석들.
웃기지도 않는다. 한국 국민들도 임을 위한 행진곡인지 가사도 모르고 존재 자체도 제대로 인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인데, 홍콩시민들이 자의적으로 자발적으로 저 노래를 부른다고?? 좆파 선동가 색기들이 뭐하고 있나 했더니 저기 가서 어떤넘이랑 쿵짝쿵짝하던데. 또 뭔 모종의 거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네. 이 색기들 하는짓이 원체 워낙 역겹고 드러워서.
웃기지도 않는 넘들 민주화 운동 좀 도와달랬더니 거들떠도 안보던 색기가 지금와서 민주화 인권변호사 어쩌구 하는 거 보면 역겹기 그지 없구만.오죽하면 장기표 선생이 인간의 실체에 대해 고발하겠나. 과거에 손충무 역시도 다이쥬센세도 목숨도 구해주고 미국에 자기 옆에 데려다가 살려주었지만 손충무가 훗날 다이쥬의 정체를 알아서 고발하자. 손충무를 죽일 인간을 만들더니... 이번에는 장기표가 또 죽일 인간이겠구만.
애국가도 없는 제창의무인데, 지 맘대로 이상한 노래에 제창의무 부여하고 정말 역사적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처죽일 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