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작전 성공으로 일본군은 공격적인 해상 작전을 포기했지만, 거대한 함대는 부산포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순신이 그들을 부산포에 묶어놓자, 중국 명나라의 증원군이 마침내 도착해서 한국이 영토를 되찾도록 도와준다. 이순신은 조정에 해병의 증원을 요구하고 부산을 일본군으로부터 탈환하고자 했지만 그의 요구는 무시 당했다. 대신 그는 한산도에서 기초를 튼튼히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난민들에게 섬에서 일하고 장비를 손질하고 군사 기술을 연구하는 대신 보호를 약속했다. 그러나 히데요시가 두번째 침공을 명할 때까지 수년간 끌고간 일본과의 휴전 협상이 이뤄졌다. 정보원은 일본 함대의 움직임에 대한 기밀이 새어나온 것을 입수했지만 이순신은 이를 역정보이자 함정으로 인식하고 가고싶어하지 않았다. 그러나 궁정에 출두한 그의 친구 류성룡의 정적들은 이를 반역죄로 뒤집어씌워 재판에 회부할 기회로 삼았다. 그들은 그를 다시 강등시켜서 그의 함대를 원균에게 맡겼다. 이순신이 거절한 미끼를 원균이 덥썩 물었고, 일본군의 기습 공격으로 12 척을 제외한 모든 함선이 파괴되었다. 이순신은 급히 재임용됐지만 해군을 해산시키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를 그는 거절하고, 반격을 조심스럽게 계획했다. 명량 해협에서 싸울 것이었다. 그의 해군이 할 수 없는 무언가를 그 해협의 조류가 해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의 계획이 적중했다 : 이순신 함대가 공격해오는 순간 조류가 역전되어 일본 함대는 서로 부딪치고 파손되어 패닉에 빠진다. 13척 대 133척의 싸움에서 그는 다시 한번 함선 손실 없이 일본군을 격퇴한다. 그가 승리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숨어있던 함선들과 명나라 수군들은 마침내 그의 함대에 합류할 것을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