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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D] 한국은 어떻게 중국에 동화되지 않을 수 있었지?
등록일 : 11-04-23 04:21  (조회 : 39,481) 글자확대/축소 확대 축소 | 프린트


해외 정치 포럼에서 한국처럼 작은 국가가 어떻게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지켜오면서 정체성을 지켜올 수 있었는지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역사가 그나마 아시아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는지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번역했습니다. 읽기 전에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깊이 하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senor boogie woogie

안녕!
난 왜 중국인들이 과거에 한국을 흡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어. 그곳은 반도이고 과거에는 대단히 고립되어 있었잖아. 말하자면 다른 동맹국도 없이 말야. 중국인들은 인구도 항상 큰 규모였는데 어째서 한족은 그냥 걸어가서 땅을 경작하고 한국인들과 섞여들면서 수세기 후에는 한국인들을 중국인으로 동화시키지 못했을까? 국경과 무역등 다른 국경을 건너갈 틈이 많잖아. 다섯배나 인구규모가 큰 국가가 들어가길 원한다면 말야. 내 생각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이유는 한국이 많은 수의 사람들이 살 수 있기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 한국 땅은 (남북 모두) 그다지 농사에 적합하지 않고 따라서 새로운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거지. 한국에서 살만큼 모험적이었던 중국인들은 대부분 그 장소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고향으로 가버렸다고 생각해. (신장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지. 정부는 사람들을 그곳으로 이주시키고자 했지만 대부분은 잠시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버렸어.)

한국인들은 자신들만의 왕국과 지배자들을 가지고 있었고 오랫동안 중국인들과 싸웠을 거야. 한국인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인들에게 공물을 바쳤었어? (중국 황제 : 막걸리 100리터, 김치 1,000킬로그램, 내 침대를 따뜻하게 데워줄 18살 짜리 처너 한명 찹!찹!)
일본은 고유한 사회와 문화가 생겼지. 왜냐면 그들은 대양에 의해 떨어져 있었고 외부인들을 혐오했으니까. 중국인들은 그곳에 걸어갈 수 없었고 배로 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을 거야. 어떤 외국 침략자들도 단 한번의 침략으로 일본에 들어가서 그들을 패배시킬 수 없었지. 하지만 한국인들은 침략당할 수 있었고 언제든 점령당하기 쉬었기에 오늘날까지도 포위당할지 모른다는 의식이 남아있어.

Thunderhawk
현재 북한의 대부분이 중국역사의 상당 기간동안 중국 땅이 아니었어?

MaxOrder
내가 알기로 한국은 중국 황제에게 공물을 바쳤고 종주국으로 받아들였어. 그곳에 정착해야할 이유가 뭐가 있겠니?

Thompson_NCL
대충 보면 MaxOrder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중국인들은 한국 어딘가에 대규모의 침략을 했다가 완전히 깨졌던게 기억난다. 따라서 그들이 흡수당하지 않은데는 몇가지 이유들이 있을 테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을 다른 민족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지.

Captain Sam
지리적인 이유가 관련이 있겠지. 중국과 한국 사이엔 국경을 이루는 거대한 강과 높은 산들이 있어. 그것이 한국인들이 방어할 때 대단히 큰 이점으로 작용했을 거라고 확신해.

Order
확실히 자연적 장애물로 가득찬 유럽의 지형이 비교적 작은 나라들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줬던 것은 종종 목격됐지. 왜냐하면 정복사업은 그런 환경에서 훨씬 더 어려운 일이 되버리니까. 하지만 이것이 애초의 질문에 적합한 설명이 되는 것 같지 않아. 한국은 사실상 중국 황실로부터 독립된 국가였고 따라서 그들의 군사력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던 게 분명해. 질문은 왜 한국이 결코 중국의 한족들과 함께 정착하면서 "중국화"하지 않았냐 하는 점이야. (비교 : 티벳, 외몽고) 내 생각에 한국이 중국의 흥미를 끌지 않았던 게 그 해답인 거 같아. 어쨌건 한국인들은 중국 왕실에 공물을 제공하고 있었잖아. 그곳에 정착한다고 결과가 뭐가 달라졌겠어? 사람들이 왕실에 조공을 하는데. 얻을 게 없잖아. (전근대 국가들이 거대한 이주민들을 이동시킬만큼 조직적이지 못했다는 점은 제외하고라도)

Igor Antunov
한국은 중국의 신하 국가였어. 그곳의 지도자들은 중국 황제들에게 공물을 바쳤지. 사실상 중국 주변의 대부분의 작은 국가들이 그렇게 했어.

Spotacus
티벳과 몽고는 신하 국가들이 아니었어. 게다가 한국의 북쪽 경계는 만주와 닿아있지. 난 중국의 군대가 유럽처럼 무력을 보낼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Igor Antunov
몽고를 이은 중국의 원왕조는 유럽까지 군대를 보낼 수 있었어.

Thunderhawk
난 얼마나 많은 비중국 국가들/문명이 몰락해서 (한)중국에 흡수되었는지 궁금하다. 한국의 위치, 자기 정체성 등등이 아직도 한국이 중국의 일부가 아닌 한국인일 수 있는 이유였을까?

Maxfledse
공물을 바쳤던 일본처럼 한국도 마찬가지로 비슷했고 신하국의 지위를 받아들였어.
몽고와 티벳은 과거에 자신들의 인종적 정체성을 유지했을 거라고 확신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잃어가고 있었지.

JohnRawls
한국은 북쪽의 야만인들과 중국 왕조들 사이에서 멋진 지정학적 위치를 차지했어. 중국은 지금처럼 항상 컸던게 아니야. 하지만 한국은 보통 지금과 같은 크기였었지.
첫째, 한국은 약하지 않았어.
둘째, 야만인들이 중국의 길을 가로막고 있었어.
셋째, 한국은 정복하기에 그다지 흥미롭지 못했어. 필요하면 중국에 공물을 보내면 그만이었지.
넷째, 중국은 과거에 공격적인 국가가 아니었어. 그들은 만리장성을 지었다고. 다시말해 그들은 공격적이기보다 수비적이었다는 뜻이지. 그들은 야만인들을 강간하거나 약탈하지 않았어.
다섯째, 야만인들과 중국 사이에 위치한 것이 도움이 됐지.

jwljacl
한국인들은 과거에 많은 경우 중국과 평화를 유지했어. 그들도 중국과 싸우기도 했지. 땅의 지리적 구조가 한국인들이 중국을 맞아 방어하는데 도움을 줬을 거야. 그리고 한국이 아주 작은 나라라는 사실때문에 중국이 한국을 침략할만한 많은 이유가 없었을 테지고.

Gletkin
@Thunderhawk
정반대였어. 오늘날 "만주"라고 불리우는 곳의 상당부분이 사실 이전에 고구려왕국의 일부였어. 따라서 오늘날 북한 국경 옆에 있는 만주땅은 한국인들 수중에 있었지. (난 그지역들이 북한인들이 북한을 탈출하는데 이상적인 정거장이 된다고 생각해.)

@Thompson_NCL
그랬었지. 두번. (한번은 수나라, 또 한번은 당나라때)
이 두번의 위대한 승리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결국 중국 왕조에 조공을 바치는 국가가 됐어.

fledse
오늘날 만주 지역의 민족적 특성은 일제 점령기에 한국에서 이주해간 사람들 때문이야. 만주는 한국의 독립운동이 조직됐던 전진기지였어. 점령기에 서울에 있던 일본 당국에게 그러한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은 테러리스트였지. 하지만 그들은 지금의 한국인들에게는 애국자야.
예를 들어, 북한의 아버지 김일성은 만주와 블라디보스톡에서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괴롭힌 유명한 파르티잔이었어. 김일성은 그저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에 대부분 애국자로 여겨지진 않지만서도. 다른 유명한 인물은 안중근일거야. 그는 현대 일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가인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했어.
어떤이들은 독립을 위해 만주에 정착했고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정착했지. 일본 제국은 모든 사회체계, 법, 관습을 통째로 바꿨고 그에 맞선 한국인들은 땅과 사업체 등등을 잃었어. 그래서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만주로 갔던 거야.

Gletkin

고구려 왕국



오늘날의 만주




오늘날의 만주의 대부분은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기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고구려라는 한국 왕조의 일부였어.
누가 그곳에 먼저 있었는지에 관한 질문에는 확신할 수 없어.  고구려와 만주인들 사이에 (중국 왕조가 아니었다면) 수많은 국경분쟁들이 있었을테고 아마 고구려인들이 정복해서 차지했던 그 땅을 그 이후로 만주인들이 회복했겠지. 하지만 사실 잘 모르겠어.

Verv
사람들이 또 잊어버리고 있는 것. 한국은 70~80%가 산이야. 어떤 지역을 차지하려고 하면 원래 살던 지역민들이 도처에서 전진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지. 또한 한국은 여러가지 면에서 완충지였다는 것을 고려해야해. 일본에게는 중국/만주에 대한 공격을 시작할 좋은 장소였을테고 중국인이나 만주인들에게는 그들이 차지하려고 마음먹으면 약간의 손해를 감수해야하는 장소였을 테지. 한국은 그 상태로 존재함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거였지.
한국-중국-만주는 게다가 비슷한 종교적 이상을 지니고 있었어.
또 하나: 중국에는 속담이 하나 있는데, "황제는 강하다. 하지만 강은 길고 산은 높다."

중국은 자신들의 영토를 한국까지 늘리려고 시작하기에는 애초에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는 주장이 아마 사실일 수도 있겠지. 예를 들어, 몽고.
만약 인종구성 경계선을 찾아보면 현재 길음/길림 지역(영어로 어떻게 쓰던간에)의 상당한 지역에 수많은 한국민족이 살고 있을 알게 될 거야. 인종적으로 한국인이 없었던 곳은 만주지역이었어. 따라서 만주를 거쳐 한국을 치러 가지 않은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한국이 만주와 연합해 옆구리에 가시가 될 테니까. 특히나 그들이 일본인들을 구석에 묶어두는 자신들의 임무를 다하고 있는데다 비슷한 종교를 지니고 있을 때는 말야.





번역기자:gam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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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23 04:28
   
뭐라빠노
우왕 11-04-23 04:29
   
우왕
악마는구라 11-04-23 04:31
   
아, 이런 떡밥은 중국+화교들이 물고늘어져서. 쳐다도 보기 싫은.
그건 11-04-23 04:32
   
중국에 흡수,병합된 타민족들과는 다르니까
GooHyeSeon♥ 11-04-23 04:53
   
중국도 무시할수없던 한반도의 문화때문일까???
비록 중국에서 넘어왔다고하지만 그래도 우린 우리의문화를 확실히 가지고있었잖아
평범남 11-04-23 04:57
   
세계 정복하던 몽골이랑 40년간 맞짱뜬게 우리나라다. 우리가 그리 우습게 보이냐? 일본? 그것들은 그냥 우리의 문화의 찌꺼기를 받아쳐먹는 족속이었고 중국은 10으로 쳐들어와도 그냥 왕이 눈하나 병.신되서 돌아갔다. 우리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냐?
     
ㅇㅅㅇ 11-04-23 08:52
   
비록 자랑스러워할 역사는 아니지만

고려사에 보면 이런 기록이 있습죠.
===============================
고려와의 전쟁 30여년이 넘게 진행중

고려의 태자가 몽고의 실권자 2위 쿠빌라이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때 쿠빌라이는 자신들이 굴복시키지 못한

왕국의 태자가 왔다는 사실에 흥분을 금치 못하고

친히 막사 앞까지 나와 맞아주었고

고려의 저력에 걸맞는 후한 예우를 해주었다(전쟁중이었음 아직)

그리고 주위 사신들 모아놓고

"여기 고려 왕자가 나에게 인사하러 왔다" 고

조낸 크게 말하면서 자부심을 느꼈다고
          
ㄴㄹㅊㅁㄴ 11-04-23 11:13
   
그리구
위 ㅇㅅㅇ 님의댓글에 ..말하자면 고려는 몽고에굴복햇는데요?위에 댓글같이 굴복을일찌감치하는게나앗습니다.
맞습니다. 처음 몽고가 고려를 존중해주엇습니다. 몽고가 완전한지배를 하지않고 독립성을 준이유도 그이유입니다.
존중해준이유.. 몽고는 당시 고려를 옛고구려의 지속된 왕조로 알고 잇엇습니다.
고서에도나와잇듯이.. 한반도에오기전 "옛수나라의100만대군을 무찌른 고구려의 땅인가" 하면 기대에부풀려잇엇습니다. 그리고 경계심도 높앗습니다.하지만 그것은 초반의얘기일뿐입니다. 그후 학살의 역사 시작도ㅣ지요  강화도에서 나오지않기에 한반도에백성을 무참히 학살하고 남자들은 모두 포로로 끌고갓지여 모든 대부분의문화재도 그당시소실됩니다. 우리한반도가 고대문화재가 극심히 적은 이유입니다.
               
je 11-04-23 11:51
   
당시, 쿠빌라이는 칸의 왕좌를 아우와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쿠빌라이가 초반엔 엄청 불리했죠, 동방왕가들과 어머니 소르칵타니 대비까지 아우편이였습니다.
쿠빌라이는 수세에 몰려있었죠, 그때 고려왕이 쿠빌라이 편을 들어준 겁니다.
한마디로 진짜 고려는 줄을 잘 탔어요,, 그게 고려가 살아남아 부마국이 된 이유기도 하구요.. 또한, 고려는 쓰임이 많았습니다. 한족은 아니면서 한자문화권이였기 땜에, 궁에서 실무자로 쓸수 있었거든요.. 쿠빌라이는 몽골인이라 한자도 몰랐고, 군사도 거의 투르크, 몽골 인 잡인들이였기에, 고려가 필요했지요..
                    
그레이우드 11-04-23 12:35
   
쿠빌라이도 한자는 알았습니다. 다만 궁중의 공식 문서에서 한자 사용을 선대 칸들의 유언에 의해 꺼려했죠. 실제로 궁생활도 잘 안 하고, 천막생활을 더 오래 했습니다.

성안에 머물지 말라는 징기스칸의 유언 때문이었죠. 그래도 일단 문자의 문제가 생기니 파스바를 시켜 문자를 만들게 한 것입니다.

실제로 한자는 원나라에서 많이 쓰였습니다. 당시 지폐 또한 한자로 쓰여져있었죠. 다만 몽골이 무서워한 것은 한족(즉, 금나라 사람인 북인이 아닌 남송 사람들인 남인)들의 다수로서의 위협이었습니다.

그래서 한자 사용은 잘 안 하려고 한 것이지요. 그들의 중앙 정계 진출이 활발해질까 염려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색목인과 함께 고려인을 제 2 계급으로 두고활용했지요.
                         
je 11-04-23 12:56
   
기본한자정도는 후천적으로 필요에 의해 배워야 했겠지만, 주로 하던건 몽골어와 투르크어죠. 문자도 파스타문자위주의 생활이고,, 한자와 원래부터 다수가 쓰는 문자였구고,
인구면에서 한족이 훨씬 더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던 원이죠. 지폐또한 한자와 파스타가 같이 써졌구요, 청도 비슷하게- 만주몬, 몽골문, 티벳문, 한자문, 위구르문까지..
뭐, 다민족체제니까요. 그럴수 밖에 없죠.
그리고, 고려인의 등급은 3등급입니다. 하지만, 쿠빌라이도, 고려가 더 빨리 귀의했다면 색목인과 더불어 2등급을 주었을텐데.. 하던 부분은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2등급이지만.
법적으론 북인들과 더불어 3등급입니다..
               
흑꼼 11-04-23 20:16
   
결과적으로는 몽고에 굴복했찌만

고려태자가 쿠빌라이를 찾아갔을때만 해도

몽고가 고려를 접수한 건 아니었죠.

그래서 더 환영한 거고.

고려가 몽고에 굴복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은

한국인들 중에 아무도 없습니다.
          
샤크 11-04-23 12:17
   
이때는 쿠빌라이가 막남 한지대총독의 신분 이였지만 형인 4대 헌종 몽케 칸이(이놈이 고려를 쳐들어와 묵사발을 만들어 약탈해 간놈임) 남송을 정벌 할려고 사천으로 갔다가 풍토병에 사망 하여 몽골 본국 카라코롬 에서는 막내 동생인 아리크부가가 차칸 계승 위하여 쿠릴타이를 개최 할려고 준비 하던 때이고 쿠빌라이와 가장 사이가 좋았던 셋째 동생 홀라구는 이란과 이락크를 공략 중이였므로 도움이 않되었느데 정작 자신의 가장 중요한 부하인 우량하타이의 군대는 베트남 에서 이제 북상 중이여서 쿠빌라이는 우군이 없어 매우 곤궁한 처지 였을때 고려 고종의 아들인 태자 왕전이 헌종 몽케를 만나려 사천에 가다가 몽케가 뒈졌다는 말을 육반산 에서 듣고 발길을 돌리던중 북으로 회군 중이던 쿠빌라이를 양양 에서 만나게 된것이다. 이때 쿠빌라이는 뜻밖의 만남에 크게 기뻐 하며 "고려는 만리나 떨어져 일찍이 당태종이 친정을 했어도 능히 정복 하지 못한 나라 인데 이제 그나라 태자가 스스로 나에게 왔으니 이는 천명 이다" 라고 기뻐 한것이다. 쿠빌라이와 고려태자 왕전의 해후는 몽골과의 관계 개선의 개기가 되었다. 쿠빌라이의 형인 몽케칸 때인 1254~5년의 고려 침략 때의 참상은 우리나라 역사 에서 그전 에도 없었고 그이후 에도 없는 대참상 이였던 것이다. 신원사 에는<이해에 대군이 지나는 곳에는 남녀 포로 20만 여명이 끌려 갔고 죽은자는 이루다 해아릴수 없었으며 온군현을 모두 불에타 잿더미로 변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이러한 관계가 고려태자 왕전이 쿠빌라이를 만남고 쿠빌라이는 그것을 천명으로 받아들여 우호를 약속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 해도 치가 떨린다.
     
sfcas 11-04-23 10:56
   
이분 별로 아는게없는것같은데
몽골이랑 40년을 전쟁을하긴햇죠
그러나 전쟁을한게아니라 학살을 당한거죠
그당시 권력을 잡고잇던사람은 무인들인데요
그들은 몽고인이 권력을 잡으면 자신들이 죽을것을 알기에
왕과 전 함선과 소수의백성만데리고 강화도에들어간것갑니다.
저는 역사나 고고학을 전공하는사람인데..
교과서에서나 그렇게 40년동안싸웟다고하죠...(물론 교과서는 무조건 좋게써야죠)
문제가되는게잇습니다. 아직 그당시 권력집단이 한반도를 버리고 강화도에갓다는것입니다. 단지 자신들의 권력을 잃기싫엇기때문입니다.
잘모르시는것같은데. 이시점을 학자들은  우리 한민족의 큰변환점이라고말합니다.
이유는 그당시 군사도없던 한반도 군사는모두 강화도에잇엇죠.
그땅에 몽고군은 몃십년을 그냥 돌아다닙니다. 무슨일이일어날까요
물론 이 내용은 교과서에서 적지않습니다. 인구의 10분의9가 학살되고 포로가되엇다고 하는 학자도잇고 그러한 내용이 고서에도잇습니다.남자들은 볼수가없엇다.여자대부분은 몽고의 애를 갖고잇엇다. 사실입니다 물론 교과서에서는 배우지않습니다.
여러분도알다시피 일본왜구의 활동은 원간섭기이후로 극심히십해집니다.
이유는 고려는 해양강국이엇습니다. 그러나 몽고가 고려는 함선을 가지면 다시 섬으로 갈까봐두려워 모든 항구와 배를 없애고 장인을 죽이고 끌고갑니다 그당시 많은 장인은 일본으로 갑니다.  힘이극심히약해진 고려는 인구도극심히줄고 군사로활용할 남자도없으며
배도없고 이미 경제는 파탄해 국민대부분이 집어없엇던고려는 결국무너지고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그대로 추락햇습니다. 정말로 역사를 공부하고싶은사람은 교과서는 보시지않는게좋습니다. 교과서는 공부가아니라 정책입니다. 한반도의 백성이무참히 학살되고잇음에도 자기 권력을 유지하고자 햇던 당시권력집단의 행동이 옳은 것 일까요?
          
그렇게 치… 11-04-23 11:26
   
이승만정권 조선 선조 그리고 많은 전쟁중에서 지도층이 도망갔었는데
왜 무인정권만 그럽니까??
참나
               
ㅇㅀ 11-04-23 13:03
   
...음,,
승리가망성이전혀 없음에도
한반도를 버린것입니다
강화도에궁전을짓고
그러고 몇십년을 살앗습니다
강화도에 식량에한계가잇어 가오하도로 오고싶은 백성을 받아주지도않죠
승리의가망이없고 단지 권력유지를위한것이엇습니다.
당시 고려왕은 항복할것을원햇습니다
음.당시한반도는 학살의 장소엿습니다 정부와 군사도없이 몽고군이 돌아다니는
한반도를생각해보세요.. 저는 고서에나와잇는대로 유능한 사학자의 책을 읽고 쓴글일뿐입니다 물론!!!최씨무인정권의 굴하지않는 정신을 좋게보는 사학자들도 상당히많습니다. 하지만 그 희생이 너무나크고 민족의운명을 바꾸엇다는거죠.
          
골보 11-04-23 11:36
   
sfcas//역사학 전공했다는 사람이 문장이 왜이리 초딩스럽지?? 아주 소설을 쓰세요.. 초딩 러브소설쓰냐?
          
je 11-04-23 11:47
   
-.-;; 정말 역사, 고고학을 전공한 사람 맞수??
우리가 40년동안 전쟁했다는걸 조금 더 보충해 드리죠, 애초에 몽골3대 황제인
뭉케에게 고려는 항복의사를 밝힙니다. 허나, 원병이 철수하자 마자, 고려는 쌩까죠;;
그게 40년 전쟁의 도화선이 됩니다. 고려조정과 무인들은 강화도로 고고씽합니다.
잔여무리가 바로 삼별초죠. 고려의 전투는 거의 게릴라들이였습니다. 그 시기 많은 수가 희생당했습니다, 그건 인정해야죠. 허나, 여자 대부분이 몽고애를 가진다? ㅋㅋ
(이보세요, 한국인에겐 대부분의 몽골 유전자c부분은 거의 드물답니다 ㅋㅋ ) 거기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아기가 제대로 영양보충을 하고 자랄까요?-.-;;

아울러, 몽골군이 40년동안 맨날 전투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한번 왔다가 수년뒤에 다시 왔다가 그런식이지, 처음~마지막 연도까지 합해 40년이지, 정말 임진왜란이 7년 전쟁이라고 7년동안 전쟁만 한건 아니죠;;; 일본왜구 활동은 때마침 일본도 때마침 가마쿠라 막부막장시대였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제어가 안되니 막 나간거죠...
몽고가 고려 배를 없앴다 ㅋㅋ 에구구,, 고려 조선기술을 가장 활용해 일본섬을 치고 싶어했던 원인데,, 장난하셈? -- 교과서 까기 전에 님은 책이나 더 읽어야겠네요.
이상 서지학 공부한 내가 말씀 드린 겁니다.
               
지나가던검… 11-04-23 11:53
   
               
je 11-04-23 12:25
   
정정/ 몽골 4대칸 뭉케..(3대는 구육 칸)
               
ㅁㅁㅁ 11-04-23 12:51
   
...그니까 내 말은 삼별초나 무인정권을 좋게보냐는겁니다
정말 모르시네 .....확실이 원간섭기에 고려의 함선은 대부분 파괴댄것을모르네..
정말 재가 볼때 위에 님께서말하는것 자체가 웃깁니다..
원 전 고려의 함선 은 최고 1000여척은 넘엇습니다.
 물론 왜구는 얼신거리지도 못햇습니다.
제가말한게거짓말이라구요?
하하하 웃기군요 님이야말로 어디서 민족주의자들이 올린 인터넷글이나 보고온게아닌가 싶네요.
물혼처음에 한반도에서사웟습니다. 몃번이고 조아리고 다시 뒤통수를텻죠
그리고생각해낸것이 강화도로 간거져
고서만봐도 수십만의남성이 노예로 끌려갓다햇습니다.
가옥은 10분의 1로 줄엇다하엿습니다.
결국 강화도도 무너지자 무인정권이 도망다닌게 삼별초구요
정말 백성이 다죽어가는데 왕은 백성이걱정되어 항복을하자는데
최씨 무인들은 권력을잃을까 두려워 싸운것이 나라를 위한것입니가?
그래서무엇을얻엇는지 .. 우당시고려만큼 인명피해가 난 나라 는없엇을겁니다
본토인한반도를 무방비..상태로 이에 강화도에서 나오지않으면 백성을 학살하겟다고 협박 실제로 협박 강간 남성을 보이는데로 데려갓습니다.
몽고가 고려배를 업애지않앗는건 무슨 소리..?
어의가업네요 제가듣기에는 너무 그냥 어의가업서서 하는소리입니다
고려배와인력을가지고 일본을 토벌하려고한것하고는무슨연관?
물론 한반도에남아서 싸운 여러 승려들이잇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원으로 몽골계(북방계)40%와 남방계60%로 이루어졋습니다
물론 지배계층은 예로부터 북방계엿습니다. 일단님이 말하신 몽고와 상관업다는말자체가 허구입니다 언어계통도 같은데말입니다. 그리고강화도 이전시 몽고군은 계속 한반도에머물럿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한반도에온 몽고군은 주력부대도 아니엿구요 몽고와 고려는 총거의70년을 싸웁니다. 그리고 고려는 무너지고 조선이 탄생하는겁니다. 이미 한반도에 섬들을 모두 관리할 힘이업던 조선은 섬을 포기합니다
그때부터 한민족은 패쇄되고 쇄퇴해가죠 
저는 사실만을 말햇는데 어이가업네요 ㅋㅋㅋ
                    
je 11-04-23 13:06
   
뭐래는 겁니까? 맞춤법이며 띄어쓰기가 엉망이네요. -.-;;
조선분이십니까? ㅋㅋ
무인정권 자체가 후대의 평가가 안 좋은데 다 이유가 있는거죠.
그 정돈 누구나 다 압니다. 게다가, 전쟁 중이니 함선이니 집과 가옥이 불타는 거야 기본이구요. 최씨 무인정권이 권력을 잡고 놓치 않고 싶은 것은
북한 김정일의 마음과 비슷하겠죠. 내 아들, 손자 후손대대로 해먹어야하는데
ㅋㅋ 이런 마음?!
고려만큼 인명피해가 난 곳이야 호레즘도 있고, 러시아도 초토화대고,
고려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네요, 몽골제국 자체가 그러하니까요.
우리 기원은 북방계 70-남방 30입니다 ㅋㅋ 남방이 60% 이상 나오는건 중국이겠죠..-.-
그리고 고려가 무너지는 건 1392년의 일이구요. -- 조선의 성립과 한민족이 쇠퇴한다 ㅋㅋ 조선이 쇠퇴하는건 1800년도 순조이후의 일입니다만..
사실을 말했다니.. 쩝,, 기똥차십니다 ㅋㅋㅋ
                         
굿잡스 11-04-23 13:33
   
<무인 정권>

고려 무인 100년사는 확실히 고려의 군사력을 약화시킨

결정적 요인을 제공한 것이 맞음.

정치 자체가 고려 황제는 허수아비에 무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죽이고 사라지는 형태에 겨우 무신 안정기라고 해고 결국

황조 직계의 고려 황제가 거란과 보여준 형태와 무신의 형태는

솔직히 상당한 차이를 보임.


무신기 100여년으로 인해 고려는 2군 6위의 중앙군 5만 병력에

광군 30여만 군사 체계가 그냥 허접으로 변했고

무엇보다 북방의 전사적 초군사 강대국인 거란과의

전쟁에서도 3차대전을 승리하며

3차에는 고구려때부터 이어온 중기병으로 육박전에서도

쓸어 버렸던 고려였지만 이런 중기병은 국가가 제대로 지원을 해줘야

함에  이 시기에 가면 이런게 다 엉망이 되어 버림.


본래 고려는 각 지역 수성을 통해 공성전을 하면

중앙에서 대군을 데러와서 쓸어 버리는 형태인데.


결국 몽골과의 전쟁은 이런 각개 성의 수성전만으로 치르게 되는

웃긴 상황이 연출된 것임.


그래도 몽골 전투병 기록을 보면 자신들도 전쟁을 누볐지만

이렇게 치열하고 고려만큼 공성전을 잘하는 이가 없다라고 기록.


하여튼 고려가 각개 기지로 초반에 승리의 전적도 내지만.


중요한게  고려황제와 무신이 따로 노는 국밥이다 보니

도리어 고려 황제는 몽골을 끌어 들여 무신을 궤멸 시키려 하고

무신은 아예 강화도로 들어가서 당시 연등회 팔관회고 흥청망청.


이런 상황이니 몽골은 기어 나오도록 하기 위해 전국토를 휘젖어면서

방화를 하고 무인지경으로

서라벌까지 가서 그 유명한 동아시아 최대 목탑인 황룡사 9층목탑도

이떄 불타 버린 것임.


만약 고려가 이전같은 정상적 정치 구조로

고려 황제 아래에 일사분란하게 이루어 졌다면

몽골도 고려앞에서 함부로 깨깽 거리지는 못했겠지.
                         
굿잡스 11-04-23 13:36
   
<정복왕조사 구분해서 가르쳐야>

그리고 저 걸보니

언제 몽골이 짱국이 되어 버린 것임?

우리나라 교육도

북방 정복 이민사와 짱개왕조는 확실히

우리내에서 구분해서 가르치고

해외에서도 그런 역사관을 제대로 알려 야 할 것을 보임.
                         
애기째돌 11-04-23 20:40
   
조선 왕조때부터 중국에 왕세자책봉 받는 형식으로 군신관계로 굳어졋으니 우리나라 역사상 조선조빼고 왕이나 왕자가 책봉받는시절은 없엇죠.
                    
서라벌 11-04-24 00:22
   
ㅁㅁㅁ// ㅋㅋㅋ 너님 말씀하시는거 보니깐 조선족아님 화교네요. 대학에서 역사하셨다는 분이 문맥도 엉망이고 맞춤법 다 틀리고. ㅋㅋ 이게 고등교육 받은사람임?
          
애기째돌 11-04-23 20:36
   
잘모르시나본데 삼별초가 어떤조직인지 모르시네요. 삼별초는 대몽항쟁 조직이 아니라
몽고가 휩쓸고간자리에 백성들의 조세를 갈취하기위해 결성된거죠. 실제로 대몽항쟁은 민중 의병들만 죽기살기로 싸운겁니다
선샤인 11-04-23 05:00
   
얼마나 우리 선조님들께 감사하며 살아야 할까.
자칫 조금의 실수로도
중국인이 될 수도 있었고 일본인이 될 수도 있었고
진짜 그랬다면 ..... 생각만해도 끔찍 -_ -;

잘보고갑니다^- ^ㅎ
     
gliter 11-04-23 11:26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ㅋㅋ조상님들 고맙습니다ㅋㅋㅋ
!! 11-04-23 05:01
   
뭐... 당시라면 중국과 서로 사이가 좋았으니... 우리나라는 중국의 문화 특히 학문에 관해서

 거의 동일선을 달리는 말하자면 중국에게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나라 였을테니깐요...

 그리고 저놈들은 조공이 뭐 무조건 바치는걸로만 생각하네 -_-;; 조공 보내면 황제도 화답하는게

 당시였는데... 화답도 황제라고 받는 만큼은 되돌려 줘야 했고, 원나라때는 좀 상황이 다르긴 했지만

 그건 원나라지 중국 역사가 아니잖아?
     
샤크 11-04-23 12:42
   
그걸 학자들은 조공무역 이라고 하는데 외부 에서 봤을때는 약해서 받치기만 한것으로 보여 질수도 있지요. 예컨데 고려 에서 남송에 하나를 바치면 남송 에서는 열을 보내 줍니다. 이걸 '왕화' 라고 하는데 천자의 은혜 라는 의미 이지요. 이러한 조공무역을 활성화 한 나라가 고구려 인데 장수왕 본기의 기록을 보면 무려 43번의 조공을 북위나 남제로 보냅니다. 그러면 그쪽 에서는 그열배 정도의 양을 다시 고구려로 하사 하는 형식르로 보내는 것이지요. 당시의 고구려의 국력 으로 북위 정도는 감당할 만 했는데도 자주 조공을 보내 이득을 취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북연이 북위의 공략의 대상이 되자 북연의 풍황제는 고구려에 도움을 청하고 고구려에 망명을 하게 되는데 북위 에서는 북연의 황제를 북위로 소환 하라고 고구려에 요구 하지만 고구려 장수왕은  "이곳에서 왕화를 입겠다" 고 한마디로 거절하고 보내 주지 않았지요. 그래나 인색한 명나라 때는 조공의 횟수도 제한 하고 나라도 제한 하여 받았습니다. 특히 조공 제한 으로 일본은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이것이 불만이 되어 왜구질이 심화 되었고 이것이 명나라가 망한 이유로 북노남왜 라고 하는 것입니다. 임진왜란때 만력제가 도와주고 싶어서 도운 것이 아니라 명조의 근심인 왜 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파병을 하지 않을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원나라는 빼앗아 가기만 했고 돌려 주는 것은 하나도 없는 약탈문화의 상징 입니다.
          
난닝구전사 11-04-24 04:27
   
맞아요~!
123123 11-04-23 05:01
   
일제감정기때

신라시대(?)~일제시대 까지 일본놈들이 역사왜곡해놨다는데

우리가 배우는것도중에도 아직도 왜곡되잇을수도있음.

쪽빨이 개갞끼 ㅡㅡ
     
3212 11-04-23 05:02
   
단군왕검이 쪽빠리들이 왜곡해서 단군신화로 둔갑한게 대표적인 예..
032 11-04-23 05:22
   
주변국들이야 워낙 왜곡이 심한애들이고 그런댓글이 보이긴 하지만
서양애들이 우리의 깊은 속사정이나 애국적시점으로 봐주길 원하는건 무리
우리가 타국 역사에 관심이 없듯 쟤들도 그냥 지금 한국이란 나라가 번듯이 있으니 그러려니 하는 수준일뿐.
당장 서양애들이 제대로 관심갖아주길 바라는부분은 독도에 관계된 식민지에대한 옳바른 관점임.
그런데 서양애들도 워낙 지네 식민흑역사에 덮어두고 지나가려는점이 있어서 불안함..
주몽 11-04-23 05:34
   
언젠간 옛땅을 수복 할것이다
     
유령 11-04-23 15:26
   
우리의 옛 땅에 남아있는 모든 중궈들을 척결해야 합니다!!!!
육성급음미 11-04-23 05:35
   
대부분 유투브인들 짱꺠,조선족,쪽바리들 현란한 거짓말때문에 다 현혹당했을꺼요..

요즘 한국
을 Puppet country of US라고 부르죠.. 쩝..
Misu 11-04-23 05:41
   
사실 고조선이 한반도역사의 첫출발점이 아닌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임.
일제강점기때 일본이 다 없애버리거나 왜곡하고 숨겼음.
현재 한반도에서 고조선 이전의 역사가 기록된 자료 수천개가 일본에 보관되있는데
국가적차원으로 보여주질않음..ㅋㅋㅋ
나도 배달국,,환국 요런건 무슨 메소포타미아 문명때 수메르왕국의 우르크까지 뻗어있고 인구가 1억에다가 치우천황드립까지 치니까 오바라고 생각하는데,, 고조선이 한국역사의 첫국가가 아닌건 확실함....
     
제삼의눈 11-04-23 06:09
   
근래에 들어 정비했던 중국애들의 중화사상을 보면 시조부분이 있죠.
3시조인데 거기에 치우가 들어갑니다.
정확히는 배달국 14대 치우, 자오지환웅입니다.
환웅이야기에서 곰, 호랑이 이런건 일본이 우리의 민족정기말살을 위한 과거사 작업정도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뿌리깊은 우리의 역사를 후려치는거죠.

중국은 황제 시조의 단일 시조정책으로 가다가 다민족/다문화 국가인 중국의 단합을 위해
다시조 정책으로 바꾼것 입니다. 동북공정도 이러한 맥락이고 중화사상의 핵심이죠.
이것들은 무슨 시조가 왔다갔다하는지 ~.~;;
지네 시조랑 피터지게 싸운 동족 시조를 이제 자기네 시조라하고...


수메르이야기 하시는거보니 치우학회쪽 의견 같군요.
오바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의 고대사가 결코 중국문명에 뒤지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그나저나 인물을 신격화해서 종교로 만드는 종교쟁이들은 에효...ㅈㅈ.
하얀솜 11-04-23 05:54
   
잘보고갑니다..
흠냐 11-04-23 05:59
   
오천년 역사의 중국과 한국이 이백년 역사의 미국에게 빌빌 기면서 눈치보는 것을 고려해 보면, 역사가 깊고, 오래됨은 자랑하는 것은 그냥 자기 만족인 것 같다.  우리가 오천년 역사를 자랑하면, 비슷한 수준인 중국과 일본은 기리기리 날뛰며 입에 거품을 물지만, 미국은 "그래서 뭐"하고 반문하면, 우린 "그냥 그렇다고"라고 꼬리 내리는 수 밖에... 우리가 넘사벽 강대국이 되면, 주변 국가들이 알아서 기고 빨아준다.
뻑가리스웨… 11-04-23 06:05
   
조상님들 한테도 ㄳ 해야 겟지만

중요한건 지금은 어떠냐 하는것,,,

그리고 한가지 우리나라가 일본 중국 사이에서 번갈아 가면서 전쟁을 안하고 힘을 축적 햇다면

세계대전을 일으킨게 일본이나 독일이 아닌 우리엿을지도....  힘을 모을여가가 없었으니 ;;
쁘늉 11-04-23 06:08
   
이유는 단지 우리들의 민족성이 강했기 때문.
름랴 11-04-23 06:11
   
지금에 라도 다시 역사교육이 필수과목으로 바뀌어서 다행이다...
123 11-04-23 07:00
   
일단 어족이 다르고 민족이다르다보니 융화되긴 쉽지 않았을거야,
총통 11-04-23 07:27
   
NGC에서 쓸데없는 잔잔한 전쟁말구...  살수대첩하나만 첨단 3D고증으로 맹그련 대대대박 칠것임..

물론 짱께가 정부까지 너서서 방해하겠지만...    아마  2차대전이전  인류역사상 가장 엄청난 전쟁
이구,,  현대까지도 국가vs국가 전쟁으론 인류역사상 최대규모니깐..
글구,,한반도, 만주, 몽골은 사실상 같은 유전의 형제국으로  한족들과뚜렷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한족들의 문물, 문화는 받아들였지만 인종이 섞이는걸 거부함

한족들은 왜넘들 담으로 작구, 허약해서  군사로도, 백성으로도 쓸데가 없었으니깐..
그래서 한족을 정복한  북방계들은  100배나 많은 한족들을 다스리면서 한족과 혼인
은 금지시켰던것임..  물론 비공식적으로 첩,노리개로 삼다보니..  그나마 중국중북부
지역은 북방,한족믹스들이 많아지구, 그나마 키나,체격이 좀 발전된것임..
왕건이 11-04-23 07:33
   
현재 중국의 주인인 한족은
시도때도 없이 이민족 통치를 받았다...
그에비하면 우리는 양반이다....
     
호야 11-04-23 10:06
   
그렇죠.
모르는 사람이나 별생각없이 떠올리다보면
중국하면 그 땅덩어리에 있는 모든 나라가 중국이라 생각하지만
절대 아니죠 여러 민족들이 싸우고 나라를 만들고 다른 민족은 노예가 되거나
아래로 짓밟피기도 하고 한족은 그런식이다가 마지막에 햇살을  본거죠.
거기에 비하면 우린 정말 양반입니다.
예전도 땅은 작은 나라였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렇게 대한민국은 이어오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아무리 멀리있는 동양의 나라라지만 교양식으로 안 배우나요.?
제대로 아는게 없네 아는게
          
호야 11-04-23 10:12
   
그 많은 머릿수가 쳐들어오는데 막은 나라입니다.
근처국가가 호시탐탐 노리는데도
현재는 중국의 땅에서 크게 잘나갔던 민족은 흡수되 보이지 않는데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이란 나라로 지금 이어나가고
이 조그만한 나라라는 국가가 선전하고 있습니다.
동구형 11-04-23 07:35
   
외국인들이 정말 무지하네요.

조공과 책봉이라고 하는 것은 중국을 종주국으로 받느는 것이 아니라 중국 중심의 질서에 순응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조공을 바치면 조공을 받은 중국의 황제는 대국으로서 그 몇배를 하례하는 게 관례였습니다.

무조건 갖다 주기만 했다고 생각하면 아주 큰 오산입니다.

실제로 조선시대에 명에 조공을 더 올리고 싶다고 조선에서 요청했던 일까지 있었으니까요.

명예서 거부했다죠...`ㅡ`
     
동구형 11-04-23 07:36
   
그리고 일본은 이런 동아시아의 조공외교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배척됐을 뿐이지.

일본의 힘이 강해서 그런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당시에는 일본인을 사람취급을 안 했으니까...=_=;
          
징고재학생 11-04-23 23:00
   
일본도 중국에 조공 했습니다. 일본도 동아시아의 일원이었습니다. 뭐가 일본이 사람취급을 안해서 조공도 안했다고 합니까? 천황은 중국연호 대신 독자연호 쓰고, 조공도 바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밑의 직급인  쇼군이 중국에 조공을 바쳤지요. 조선은 자국연호가 없고 중국연호를 썼고(조선왕조실록 자체가 중국연호) 왕이 직접 조공을 바친 게 일본이 한국을 중국속국이라면서 까는 이유지요.
ㅇㅇ 11-04-23 07:42
   
현재 한국사는 일본 쪽바리들이 대부분 날조하고 난도질한게 여러군데서 들어나고 있는 실정이지...

2000년 동안 발견안된 진흥왕 순수비나 창녕비 같은 역사적인 비석을 고작 몇주만에 3개나 찾아내서

한국사를 정의하고 게다가 비석 내용까지 날조해서 우리 민족이 중국 하수인쯤 되는식의 정의를 내리고

남에 나라 정체성까지 어떻게든 더럽힐려고 아주 발광한것들이 바로 일본놈들이다.

이나라가 다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선것도 고작 60년뿐이다.

일빠 쓰레기들아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조상님들이 지하에서 피를 토하고 계신단다.

한국사 수능 제외할꺼면 지정은 머하러 하냐 어차피 공부 제대로 안할꺼 뉴스에서도 대놓고 말하드만...

나라의 수뇌부라는 것들이 친일파로 가득해서 이나라가 진짜 어디로 흘러가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재벌이라는 것들은 대부분 친일파 짓거리한 자본으로 더러운 짓해서 올라선 집안이고 국가 원수라는게

일본에서 태어나서 츠키야마 아키히로 라는 일본 이름까지 버젓이 가지고 있다니...

제발 젊은 사람들 정치에 관심 좀 가지고 최소한 투표 좀 제대로 해라.

찍을 사람이 없는거 누가봐도 맞다. 그나마 덜 쓰레기 같은놈 뽑은게 나라 살리는 길이다.

더럽게 출세해서 나라를 좌지 우지 못할꺼면 젊은 사람들 정치에 눈 뜨고 꼭 투표해라.

그게 진짜 애국이고 나라 사랑이다.

그리고 당보고 표던지지 말고 사람을 보고 뽑아라.
     
애기째돌 11-04-23 21:14
   
광개토태왕릉비 진흥왕순수비 비문들중 날조된부분은 한군데도 없습니다. 다만 광개토태왕릉비는 일본이 글자몇개를 지웟다는 심증만 잇을뿐이죠.
광개토태왕릉비에 대해선 해석에 따라서 논란의 여지가 많은데

~비문의 해석의 왜곡된부분을 잠시 살펴보면~

 -정설(우리측 해석)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넜음. (주어생략-고구려비문이니 당연히 고구려가 주어)백제 00 가야를 쳐부수고 신민으로 삼았다.
[*00부분은 왜국으로 추정되나 일제가 지운걸로보임.]

-임나본부설(일본의 역사왜곡)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 백제 00 가야를 쳐부수고 신민으로 삼았다.
[*00부분을 신라로 보고잇음.->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
/// 11-04-23 07:57
   
중국의 거의 모든 왕조는 한족이 아닌 북방민족이고
특히나 만주에서 일어난 북방민족은 중국땅 점령하기 전에 항상 한반도를 먼저 정리하고자 쳐들어왔지.
한반도가 그만큼 그들에게는 눈엣가시같은 존재니까..

한반도가 중국입장에서 보면 좁고 척박한 땅일지 모르겠으나
한반도는 땅 기름지고 물 맑은 땅이다..
땅 더럽고 물 더러운 중국땅보단 이곳 한반도가 훨씬 살기 좋다..
어머님부킹 11-04-23 08:25
   
그래도 더럽고 인구만 많고 인재도 없는 중국이란 만주땅이랑

우리 국민의 3배지만 나이값 못 하고 할짓 없는 일본이란 토끼 똥보다

5000만 국민이고 사람 사는 세상인 한국이란 한반도가 좋다.
asdasd 11-04-23 08:30
   
안시성주 하나 못 이기고 지들이 주장하는 지방정권 '고구려'를 이기기 위해 고구려가 내부부터 쇠퇴 하자 신라 힘까지 빌려서 친 쭝꿔 새끼들이 뭐가 잘랐다고 지껄이지?
     
ㅇㅇ 11-04-23 08:59
   
안시성주 양만춘은 정사에는 등장하지 않는 인물인데요...실존 인물인지 아닌지도 확인하기 어려워요 '_'
          
ㅇㅅㅇ 11-04-23 09:19
   
안시성주 이름이 정사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안시성에 탁월한 지휘관이 있었다는 사실은 사학자들이 부정하는 사실이 아닙니다

고수,고당전쟁에 관해 다룬

역사스페셜에서는

서양학자들까지도 인정을 하더군요.

그 중 한분은 고구려라고 정확히 발음하시면서

고구려가 대단한 국가였다고 하시더군요.

참고로 그 분은 영국분임
          
애기째돌 11-04-23 20:33
   
삼국사기같은 쓰레기책이 정사라는게 우리민족이 망조햇다는거지...
          
애기째돌 11-04-23 21:24
   
삼국사기...근초고왕 재위기간중 요서경략20년도 기록못한
역사책을 무슨 정사라고 ㅋㅋ 백제사중 유일하게 근초고왕이 한창 대외적으로
정복활동할시기 20년동안 누락시킨 역사서... 웃긴게 뭐냐면 근초고왕 재위1년나온다음 근초고왕의 대한 기록이 누락됫다가 재위다음줄이 "25년 근초고왕이 환도했다"라고 기록되잇음 이얘기가 무엇일까?? 근초고왕이 한성백제에 어디 숨어 산것도 아니고 25년만에 환도라니???? 기록을못채운 기부분 재위당시 근초고왕이 한반도에 없엇단 얘기... 즉, 산둥반도,요서경략, 화북 일본정벌에 힘써서 한반도에 없어서 신라가 통일한것이 백제도 별볼일없엇다라고 날조한 신라사관 김부식이 봣을때 그부분이 고서에나왓어도 일부러 누락시켯거나,인정못햇을것임... 그런 쓰레기 역사서는 역사서도아님...
ㅁㄴㅇㅁㅇ… 11-04-23 08:36
   
만주 땅에 있는 찌꺼기들은 독립부터 하라고 하셈
미친너엄 11-04-23 08:49
   
짱꼴라놈들이 얼마나 쳐들어왔었는대 살수대첩 대패 ㅈㅈ

여진족의 침략 //  서희의 담판 / 강감찬의 활약 등

수도없이 많다

우리는 중국과 크고 작은 전투가 얼마나 있는지 잘 모를뿐 우리는 엄청나게 싸웠었어 다만 교과서에 안실리는것일쁀

그렇게 선조님들이 피와 눈물까지 흘리면서까지 이 한반도를 지켜주셨으니 당연히 짱꼴라 새키들이 어딜 넘볼수 있겠음?
파브레가스 11-04-23 08:49
   
잘봤음 그런데 중국은 솔직히 땅은 넓은데 사용할줄을 몰름 ㅋ
     
1111 11-04-23 10:18
   
사막화 추가염
     
유령 11-04-23 15:25
   
우리의 땅이었던 곳을 지들 맘대로 지내 땅으로 편입시키고
사용할줄 모르는 어리석은 인종 =한족
ㅇㅅㅇ 11-04-23 08:57
   
누누히 맗하지만

한국 고대사 부분은 상당부분 수정되어야 한다..

ㅄ같은 사대주의 조선시대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망가질대로 망가진게 한국 고대사다..

특히 국사교과서를 보면 진짜 개안습이다.

적어도 광개토대왕의 고구려 전성기를 소개할땐

영토표시를 정확하게 해야지

북서쪽으로는 거란의 본거지인 시라무렌강을 접수하고

대흥안령산맥을 넘어 대평원을 질주했다는 거 정도는 소개해야지

글고 안악 3호분에 유주,병주,기주를 비롯한 8개 현을 차지하고

고구려가 직접 그 지역을 관리한 벽화그림 보면

느끼는거 없나 ㅅㅂ ㅄ식민사학자들색히들
ㅇㅇ 11-04-23 09:03
   
한편 볍신같은 조선 태조 이성계는 고려 뒤통수치고 나서 명나라에게 국호를 조선이라고 할지 아니면 화녕이라고 할지 부탁했다고 하죠.
     
애기째돌 11-04-23 21:25
   
게다가 이성계는 여진족출신... 이성계가 시중되고나서 여진인사들을 대거 유입햇죠...
ㅇㅅㅇ 11-04-23 09:03
   
글고 중국에 흡수되지 않은 이유는

우리 고대사엔 강력한 고대국가들이 있었기 때문이지.

고구려는 말할것 없다 하더라도

백제 같은 경우도 너무 ㅄ처럼 묘사되어 있단 말야.
1111 11-04-23 09:04
   
우리민족을 조그만 민족으로 보다니... 역시 서양애들이 무지하긴하구나

오히려 한족이라는 족속의 중국이 아직도 남아있다는게 더 이상하지
홍초 11-04-23 09:11
   
아고  잘 보고 갑니다.
옷삶아 빛… 11-04-23 09:13
   
사실...국제법상...한반도는 몽고침입이후에는 중국이었다..
몽고의 고려지배이후에는 명나라/청나라의 에게 책봉받고 매년마다 여자(공녀/환향녀)들을 상납했는데..청일전쟁때까지 유지했다..

공교롭게도 일본의 승리덕분에 청나라에서 독립을 한것이고,,이것을 기리기 위해서 독립문(이완용이 현관문을 썼다)이 세워진 것이다..<<이것은 학교에서는 반대로 배우고, 절대로 가르치지 않는다..하지만,,왠만한 역사학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공개적으로 이야기하면...거의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니깐..

다만,,국가정체성때문에 오랜 시간을 반일교육을 강화할수밖에 없는 구조이지...
     
je 11-04-23 11:58
   
놀고 있네 ㅋㅋㅋ
국제법상 조선은 조선일뿐이야 ㅋㅋ 우린 청조 속지였던 몽골, 위구르, 티벳과 달라.
우린 외번지역이고, 대부분의 베트남, 태국, 미얀마, 조선, 유구 등등 ,, 유구가 일본땅이 되었을뿐, 그외엔 모두 독립국이지.. 우리가 중국땅이라고?

글고, 우리도 청일전쟁 하면서 독립문 세운 이력까지 배움, 조약 1조가 청에서 독립한다는 것도 알고, 하지만, 이건 식민지로써가 아니라, 더이상 중국과의 조공체계 내에서 탈피한다는 의미인거지.. - 이거 국사책에서 나오는 내용인데, 님은 어느 출판사 책을 보길래 학교에서 안 배운다고 하는거지? 님 일본인?? ㅋㅋ
     
양앵민이 11-04-24 00:56
   
고대에 국제법을 따짐?
ㅇㅅㅇ 11-04-23 09:17
   
Order
확실히 자연적 장애물로 가득찬 유럽의 지형이 비교적 작은 나라들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줬던 것은 종종 목격됐지. 왜냐하면 정복사업은 그런 환경에서 훨씬 더 어려운 일이 되버리니까. 하지만 이것이 애초의 질문에 적합한 설명이 되는 것 같지 않아. 한국은 사실상 중국 황실로부터 독립된 국가였고 따라서 그들의 군사력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던 게 분명해. 질문은 왜 한국이 결코 중국의 한족들과 함께 정착하면서 "중국화"하지 않았냐 하는 점이야. (비교 : 티벳, 외몽고) 내 생각에 한국이 중국의 흥미를 끌지 않았던 게 그 해답인 거 같아. 어쨌건 한국인들은 중국 왕실에 공물을 제공하고 있었잖아. 그곳에 정착한다고 결과가 뭐가 달라졌겠어? 사람들이 왕실에 조공을 하는데. 얻을 게 없잖아. (전근대 국가들이 거대한 이주민들을 이동시킬만큼 조직적이지 못했다는 점은 제외하고라도)

===========================================================

글고 너 인석아

일단 불분명하고 모호한 부분이 있으면

역사적 자료를 일단 찾아보고 나서 얘기해야지

니 추측을 갖다 써붙이면 되냐

고대한국이 중국에게 매력적인 땅인지 뭔지는 관심없고..

분명한건 고대한국 때문에 중국은 ㅈ털릴수도 있었다는

위기의식이 있었고 특히나 고구려 시대에는

당시 동아시아 거대한 중개무역시장인 요양을 고구려가

장악하며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지.

수나라,당나라가 바로 우려한게 이거야

명분이야 뭐 천자의 나라 어쩌니 하지만

속내는 당시 동서방의 국제무역의 중심지인 요양지역을

고구려가 먹으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그를 통해

강대해지면 중국은 ㅈ털리니까 공격한거야.

글고 제1차 고수전쟁에 관해서

신채호 선생 서적 <조선상고사>에서는

수문제의 아들 한왕 양량이
 
행군대총관(총사령관)으로 30만의 병력을

동원해 고구려를 침공하려 하였으나

고구려는 강이식 대장군이 이끄는 6만의 정예병력으로

섬멸시키다 시피 했지.

오죽하면 수양제가 2차 고수전쟁 준비할때

병참보급기지 역할을 담당했던 산동반도 지역 주민들이

대거 이탈하고 지 손가락을 자르면서 기뻐하며

백성들이 손가락을 자르니

살았다는 기쁨에 눈물을 흘리며 요동으로 가면 죽는다는 노래를 지어

부르며 서로 감격하다

라고 수서에 써있것냐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도 이 내용의 출처는

서곽잡록과 대동운해에 실린 내용이라 밝히고 있음.
ㅇㅇ 11-04-23 09:21
   
대륙에 존재하던 국가들이 전부 북방계열민족들이 세운 민족이고
한족이 유일하게 세운 나라는 송나라인데 송나라는 고려에 오히려 조공을 바치며
금에 대해 자신의 영토를 지키려고 했지

한족은 노예로 살아왔는데 어떻게 강대했던 한국지역에 국가들을 점령할 생각조차 할수없었지
근대로 들어오면서 일본때문에 한국이 이렇게 쪼그라든거지

안그랬으면 지금도 만주는 한국땅이었을거다.
조니 11-04-23 09:38
   
우린~자긍심 으로 살아온민족
남이 비웃는건 참아준다 시비걸면 너주고 나죽자...
죽고싶으면 덤벼라 누가ㄷ됬든 한놈은 보내고 나도간다 ..무대뽀정신
엉? 11-04-23 09:39
   
저놈들은, 동양사에 대해서 되게 무지하네.
조공은 그냥 갖다 바치는게 아니라, 사실상의 국가간 무역이였지...
오히려 황제가 제후국들에게 조공보다 더 많은 양의 물자를 내놓았지.
조선은 그거 먹고 헤헤헿ㅎ 거리면서 다음번엔 더 많은양의 조공을 주는거다. 그럼 그 만큼 더 많은게 돌아오지.
이게 바로 조공무역인데... 솔직히 조선은 국내 사정에 따라 "올해엔 인삼을 얼마나 바치고(팔고), 뭘 얼마나 부탁할까나(살까나)??" 하고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지만...
황제는 체면상 조공을 거절 할 수 없고 신하국이 "황제폐하 이거하고 이거하고 저것이 정말 당신의 신하한테 이러이러 하므로 필요합니다. 부디 동촉하여 주시옵소서!" 하면 왠만하면 다 주게 되 있다.
그래도 안주면, "나 삐졌뜸." 하면서 조공 주는둥 마는둥 해서 황제 자존심에 상처를 내면 성격 파탄자 아닌이상 답례를 후하게 주게 되어있다.
이걸 전문용어로 "뜯긴다" 고 하는거지...
결국 신하국은 실리를 챙기고, 중국황제는 명분을 챙기는 외교적 거래일 뿐이다.
돈빌려드림 11-04-23 09:39
   
예전에 고구려 발해 땅을 합치면 어지간한 나라가 우리나라다..
다 돌려주기 바래..지금은 이렇게 작은땅이지만 만만하게 볼나라가 아니다 우린..
ㅇㅇㅇ 11-04-23 09:41
   
결론은 한국은 만만한 나라가 아니였고
중국또한 일본처럼 양아치같은 나라는 아니였으모
서로 공생한거지.
쪽발이들은 공평하게 게임을 한게아니라. 친한척하다가
뒷통수로 비겁하게 남의 쳐들어온 드러운족속들이고
     
호야 11-04-23 10:14
   
공감되네요
ㅇㅇ 11-04-23 09:44
   
저기 글쓰고 댓글단게 대부분 짱개 들 피가 섞인 외지 인 놈들이구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단 남의 나라 역사에 외국인들은 별로 간심이 없음 ㅋㅋㅋ


짱개들 이간질 쩌네. 토론하는 척하면서 한국 깍아내리고 신하국 드립치면서 자위하는건가 ㅋㅋㅋ

짱개들이나 쪽바리 들이나 이거뭐. 역사날조는 병적이구만 ㅋㅋㅋ

짱개들 이 국가 형성해서 지금의 중국의 체계를 갖추기 까지 무수히 쪼개지고 합치고 를 반복했는데 ㅋㅋㅋ

중국의 하나의 왕조는 우리나라 조선시대 때의 역사보다도 짧다..

물론 한국의 역사중에 조선 시대가 가장 짱개들 한테 약했던 시기는 역사적으로 사실이고.

여튼 조선시대 부터 근대 넘어오기까지 한국 국력이 가장 약해진 시기는 맞다.

ㅄ 같이 고구려 시대때는 짱개 새키들 10만대군하고도 맞장 뜨던 시절이 있었는데

조선시대 오면서 완전 짱개들 농간에 놀아나게 바뀌었음..

뭐 선비국가로 국가 정체성이 변화되면서 겪는 거였긴 했지만. 난 솔직히
조선시대가 젤 짜증남. 못난 왕도 많고.


한국의 삼국 시대 역사가 가장 찬란했던게 아닌가 싶다.



그나저나 짱개 들 역사에서  맨날 들먹이는게 한국의 조선시대 때 이야기만 드립치네 ㅋㅋㅋ

아는게 그것밖에 없으니까 그런가본데 짱개들  저렇게 날조하면서 역사 를 외국인에게 아무렇지 않게 퍼트리고 다니는거 보면 졸라 짱개 틱한건 사실.
ㅎㅎ 11-04-23 09:46
   
짱개들 역사에서 만리 장성은 지금 중국의 자랑거리가 되었지만.

사실 만리장성의 실채는

짱개 국의 왕 이 라는 놈이 몽고 족과 이민족의 침입을 두려워 하여 쌓은 성벽의 이름이 만리장성이었다.

짱개들 참. 한왕조의 역사가 한국보다도 짧은 놈들이 웃기네 ㅋㅋ

짱개들 역사에서 500년이상 간 역사가 없다. 전부 피로 칠갑했긴 했지만 그만큼 짱개들

단합이 안된다는증거..

그래서 지금 짱개가 가장신경 쓰는게 화합 드립이다. ㅋㅋ

근데 짱개들 상황을 보면 빈부격차가 세계 1위 권이니. 조만간 재밌는일이 벌어질듯 ㅋㅋ
고양이마왕 11-04-23 09:47
   
외국인들은 이해를 잘 못하고 있군요 과거 주변국들의 대중국 조공정책은 지금으로 따지면 UN가입한 것과 같이 하나의 질서 체계인데...
1 11-04-23 09:47
   
무식한놈들 너무 많다. 몽고를 이은 중국의 원왕조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짜샤밥퍼 11-04-23 09:58
   
아침부터 역사 이야기할려니 머리 아프고 짤게말해줄께


"올땐 쉽게 와도 갈땐 쉽게 못간다."

 이건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고 바로 이것이 민족적기질이지........
     
짜샤밥퍼 11-04-23 10:22
   
위에 설명에 덧 붙이자면 근대에 일어난 한국전쟁을 일으킨 소련,중공,북괴 최정예로 준비하고

텅텅비어 있는 우리땅에 쳐들어왔으나 우리와 연합군에게 얼마나 쳐발리고 갔나보면 알지..

중공 오랑케만 전상자가 100만이던가? ㅋㅋ

                      "화나면 무서운게 우리거든"
ㅎㅎ 11-04-23 10:00
   
몽골이 전세계를 뒤집어엎을때도 부마국은 고려 밖에 없었거늘
중국의유럽… 11-04-23 10:12
   
솔직히 저 외국인들의 반응이 우리들의 반응과 별반 다를게 없다고 생각한다.
역사란 만약이 없으며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이고 과거의 사실을 바꿀순 없다.
점점 축소되는 역사라고 부끄러워하기전에 왜 그렇게밖에 못했었는지 좀더 깊이 알아봐야하지않나?
초딩도 중딩도 고딩도 아니라면 왜 그렇게 되었을까...왜 그렇게밖에 못했을까...어떤 원인이 있어서
그런 결과가 되었는가 등등...현재 한국은 이미 포화상태이다. 여기서 외국 자본이 더 들어오고 환경이
더욱 글로벌해지면 더더욱 포화상태가 되겠지...내수시장이 좁아터지고 중국이나 일본이 정치적 혹은
사회적인 다른 요인으로 인해 진출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자연스레 팽창을 원하게 될것이다. 그러면
통일을 절실히 느끼게 되겠지...그러면 어떤식으로든 통일을 해야할테고...그 열망은 내부인인 한국인
만 가져서는 요원하다면 외국인들도 그렇게  열망을 가지도록 유도하면 될것이다. 간절히 원하면 그
렇게 될것이기에....한국인은 중국의 민주화를 절실히 원하고 또 그들이 평등하게 자유스럽게 잘 살길
바라고 우리 또한 같이 잘살길 바란다면...중국이 유럽화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해야한다.
fe 11-04-23 10:17
   
중국은  한민족  후예에게 두번  정복당하고 500년간  식민지배당했다.

신라  김함보의 금나라가 중국을 정복하고 중국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때 북경으로 금나라의 수도를 옮기고 북중국을 완전히 식민통치했다.

그 금나라의 후예가 다시 금나라를 다시 만주에 세웠다.  그래고 중국을 다시 정복하고 300년간  식민통치했다.  이것이 중국이  1912년  독립할때까지  식민지해한  청나라다

그뿐 아니라 몽골 원나라,  거란  요나라,  선비 북위  등등  중국이 한민족  후예와 북방민족에 정복되고 식민지배받은것이 천년이 넘는다. 

브라질,  아르헨티나같은 남아메리카가 유럽의 식민지가 되면서 외모가  유럽인처럼 백인화 되어버렸다.  마찬가지로 북경을 포함한 중국북쪽과 해안지방은  천년이 넘는 식민지배로 외모가 현재 한국인들과 비슷하게 변했다.

원래의 중국인은  남아시아  미얀마(버마)에서 이주한 사람들로 언어도  버마어와 같은  게열이다.  미얀마와 같은  검은피부의 남아시아계였던  중국인들이 천년이 넘는 식민통치에 의해  현재 한국인들과 유사하게 바뀌어 버렸다.

중국이 한민족이나 알타이계의 천년이넘는 식민통치에도 동화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다.
     
양앵민이 11-04-24 00:59
   
이봐 그건아니야.. 아무리 신라핏줄이라해도. 몇백년이 지나면 다 희석되고 잊혀지는거지..

반기문이 사무총장됬을때 쭝꾹 성씨집성촌에서 축제한것과 뭐가다름?.

억지는 부리지말자.
내가니에미… 11-04-23 10:18
   
짱깨의 그 긴 역사 속에서 실제 한족에게 지배된 나라는 몇 안돼지.. 다 이민족들의 점령에 의한것이고...
세계사람들도 중국의 역사가 다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좀 알았으면 좋겠네..  대표적으로 원 나라와 마지막 청나라는.. 몽고와 만주족이지.. 한족이 아니거든..  한국의 역사상  크게 점령 당한것도 이때와  당나라때 뿐이고... 오히려 단일적인 역사는 한국쪽이 깊지..
22 11-04-23 10:36
   
문화는 높은곳에서 낮은곳으로 흐른다 물이 거꾸로 흐를수 없는것 처럼
무력으로 나라가 지배당해도 문화력에서 차이가 나는데 흡수가 안되지....
어디 씻지도 않는 문화고 좋은거라고 가르치면 우리선조들이 그래그래 할것 같았냐
22323 11-04-23 10:39
   
역사의 반은 조공바치면서 연명했고
반은 항쟁하면서 싸우기도 했고
어느나라나 다 마찬가지지 싸우다가도 빌붙다가도
머 특별한거 있나 다똑같지
프랑스도 영국안테 빌붙다가도 싸우기도 했고
미국도 영국안테 빌붙다가 싸우다가 했고
멀 새삼 한국은 중국 어쩌고 저쩌고 필요하나 ㅋㅋ
지나가다 11-04-23 10:42
   
근현대에 와서는 박정희의 짱깨박멸도 있었고..
단일민족으… 11-04-23 10:44
   
요즘 흉폭한 중꿔인들과 전세계 도처의 쓰레기 인종들이 다 들어오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을거냐 ?

다문화 개독쟁이들이 결국 나라를 다 말아먹을거야...
     
유령 11-04-23 15:24
   
한족과 니그로들은 한국 땅을 밣아서는 안됩니다!!!!!
zzzz 11-04-23 10:48
   
조공바쳤다고 신하래 ㅋㅋ 짱개식논리네 ㅋㅋㅋㅋㅋㅋ멍청이들 실리외교도모르다니ㅋㅋㅋㅋㅋ 띨띨이들ㅋㅋㅋㅋㅋㅋ
ggggg 11-04-23 10:49
   
외국넘들은 전부 일제시대 왜구들이 뿌린 날조 가짜 역사서와 중국놈들이 뿌린 날조 역사서로 교수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니 저런 개소리가 나오지....
justchange 11-04-23 10:57
   
우리선조들은 아주전략적으로 승부햇고 중국은 오직 물량만믿고 쳐들어갓지
한마디로 무식한놈들이 지식이모인 집단을 어떻게 점령할까?
도아 11-04-23 11:07
   
thompson_NCL
개념외국인이네 한국인인가?
토오노아키… 11-04-23 11:13
   
솔직히 이야기 하면 우리 나라는 그리 좋은 역사를 가지고 있진 않습니다.
물론 10만 대군을 막아낸 과거도 있지만 대부분 야만족이라고 무시하다가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나라를 망칠뻔한 일들도 많죠
대부분의 정책이 중국에서 들어오다보니 망해가는 명나라를 버리고 청나라에 붙을려다가
광해군을 몰아내고 친명으로 돌아서는 이 선택 때문에
조선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일 '삼전도의 굴욕'을 격게 됩니다.
우리나라를 요약하자면 중국의 문물을 받고 발전 시킴으로서 중국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지만
중국의 패권이 바뀔때 마다 새롭게 떠오르는 강자를 인식 못한다는 점은
우리나라의 큰교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we 11-04-23 11:14
   
한민족의 후예가 중국을 정복하고 식민지배했다.  중국을 정복한 금나라와 청나라는  신라의  후예다.  중국은  한민족과 같은 알타이계 북방민족이 천년넘게 식민지배당했다.  중국이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다.
화란초 11-04-23 11:15
   
잘 보고 갑니다~
룰루랄라 11-04-23 11:20
   
잘보고 갑니다. 대단한 역사학자들 전세계를 막론하고 많군요 ㅎㅎ
가을 11-04-23 11:24
   
난해하네..............
신하의 지위 받아들인건 맞고..
그래도 늘 자주적으로 살아온 민족임 .........
ㅉㅉ 11-04-23 11:24
   
senor boogie woogie

안녕!
난 왜 중국인들이 과거에 한국을 흡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어. 그곳은 반도이고 과거에는 대단히 고립되어 있었잖아. 말하자면 다른 동맹국도 없이 말야. 중국인들은 인구도 항상 큰 규모였는데 어째서 한족은 그냥 걸어가서 땅을 경작하고 한국인들과 섞여들면서 수세기 후에는 한국인들을 중국인으로 동화시키지 못했을까? 국경과 무역등 다른 국경을 건너갈 틈이 많잖아. 다섯배나 인구규모가 큰 국가가 들어가길 원한다면 말야. 내 생각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이유는 한국이 많은 수의 사람들이 살 수 있기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 한국 땅은 (남북 모두) 그다지 농사에 적합하지 않고 따라서 새로운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거지. 한국에서 살만큼 모험적이었던 중국인들은 대부분 그 장소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고향으로 가버렸다고 생각해. (신장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지. 정부는 사람들을 그곳으로 이주시키고자 했지만 대부분은 잠시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버렸어.)

한국인들은 자신들만의 왕국과 지배자들을 가지고 있었고 오랫동안 중국인들과 싸웠을 거야. 한국인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인들에게 공물을 바쳤었어? (중국 황제 : 막걸리 100리터, 김치 1,000킬로그램, 내 침대를 따뜻하게 데워줄 18살 짜리 처너 한명 찹!찹!)
일본은 고유한 사회와 문화가 생겼지. 왜냐면 그들은 대양에 의해 떨어져 있었고 외부인들을 혐오했으니까. 중국인들은 그곳에 걸어갈 수 없었고 배로 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을 거야. 어떤 외국 침략자들도 단 한번의 침략으로 일본에 들어가서 그들을 패배시킬 수 없었지. 하지만 한국인들은 침략당할 수 있었고 언제든 점령당하기 쉬었기에 오늘날까지도 포위당할지 모른다는 의식이 남아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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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아냐 너 잘못알고 있는데?
일본인들은 바다에 의해 떨어져 있고 외부인들을 혐오해서 고유한 문화가 생긴게 아냐.
일본인들은 중국과 교역을 하고 싶어했지만 중국이 그걸 거부했지.
중국이 유일하게 별다른 조건없이 거래해준게 우리나라고 일본인들은 그런 우리나라에서
중국의 물품을 교역해가거나 필리핀등 에서 밀거래를 했지.
그렇게 우리나라와 교역함과 동시에 많은 중국 문화들이 우리나라를 거치며 우리나라 문화과 함께 일본에 흘러들었어.
일본은 결코 고유한 문화가 아니야.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아시아국가들은
거의 대부분 중국 문화에 영향을 받았어. 이건 부정할 수 없지. 또한 일본도 중국에 조공을 바쳤어. 물론 나중에 중국에서 더럽다고 거절했지만 말이야.
다른 동맹국이 없었다고 했는데, 우리 동맹국..이라고 해야할까, 우호국은 바로 중국이었어. 중국 수많은 왕조중 몇 가지 왕조와 우호관계를 맺고있었지. 그리고 흔히 우리나라가 중국과 주종관계라고 생각하는데.. 틀린말은 아니야. 하지만 그 주종관계는 가장 최근 왕조인 조선왕조때에 형성된거지 그 이전에 우리나라는 중국과 동등한 위치를 가진 당당한 하나의 나라였어.
부보상 11-04-23 11:31
   
외국인이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토론한거 보니 신선하네요...

뭐 잘못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쩔수 없죠

우리도 유럽이나 다른나라 역사를 자세히 아는것은 아니닌깐...
Maverick 11-04-23 11:47
   
답은 간단하지.
한국인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사람들은 중국인들을 동경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아.
조니 11-04-23 11:52
   
상어가 복어 을 왜못먹지????
득보단 실이크지!!
kangkamchan 11-04-23 11:55
   
역사를 거시적으로 보세요.  동북아의 역사는 한족과 북방민족의 싸움이었습니다.
북방민족은 당연히 몽골,만주(여진,기타등등),그리고 우리 한민족이었죠.
한족은 전투와 전쟁에 그다지 소질이 없어 자기들보다 적은수의 북방민족에게 늘 당하기 일쑤였구요.

고려가 얼마나 몽골에게 치욕적으로 당했으면 이성계는 이 북방카르텔을 파기하고 명을 주인으로 섬깁니다. 그런데 사실 몽골은 첨부터 고려를 그렇게 굴었던게 아니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징키스칸의 어머니가 고려여인이었다는 설도 있구요.  사실 한반도는 이땨부터 북방연합도, 중국연합도 아닌 어정쩡한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 뒤늦게 발전한 그동안 인간취급도 안하던 일본에게도 치욕을 당하고...

전쟁보다 중요한건 외교라고 생각합니다. 명분이던 실리이던, 확실한 노선과 가치관을 갖고 외교에 임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궁신 11-04-23 12:03
   
중국이 하도 대가리수로 우리나라 침략하러 오니깐 조상부터 활하나는 귀신처럼 쏘셨을 거다
짱개 대가리수가 하도 많으니 기본 원샷 원킬을 했어야 했으니 그결과 현재 우리나라 양궁 따라올 자가 없지요..ㅋ
     
유령 11-04-23 15:22
   
한족새끼들 우리와 인구 수 똑같았으면  고조선 때
이미 지구에서 사라진 존재임 ㅋㅋ
무식해서 11-04-23 12:09
   
중국은 전통문화와 사상을 잃었고 약육강식 위주의 서양 공산주의 관념 때문에 저렇게 보죠. 중세까지 동아시아의 관념에서 큰나라와 작은 나라의 관계는 서로간에 가족의 위치를 정해 예의를 차리고 어지간하면 안 건드리는 거였습니다. 형제 정도의 관계죠. 중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상들이 춘추전국시대를 잔혹하게 겪으며 크나큰 철학과 타협으로 만들었던 이 미묘하고 합리적인 국가간의 평형상태가 근세 서양 제국주의의 식민지 관념과 굉장히 달랐다는 건 이해를 못하나 보네요. 만약 과거사에서 지금 저들이 말하는 속국 개념으로 우리를 천대했다면 중국도 우리도 전멸할 때까지 싸워서 사라졌을 겁니다. 자기 역사 속의 모든 전통과 개념을 잃은 중국인들을 어쩌면 좋을까요. 도덕경 정도만 읽어도 지 조상들이 생각한 나라간의 관계를 알텐데.
ㅋㅋㅋ 11-04-23 12:15
   
만리장성은 고구려를 의식해 방어선구축을 위해 지었다는 설이 있는데;;;
je 11-04-23 12:19
   
외국인이 다른 나라 문명권에 관심을 보이니깐 신기하군, 거기다 우리나라 이야기니 재미있습니다.
이런 주제는 언제든지 자주 퍼오셔서 토론하고 싶네요.
저기서, 외국인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도 있고, 보충하고 싶은 부분도 있습니다.

그건 외국이라 정보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직 우리나라가 우리의 정보를 주는데 다소 소홀하고, 먹고 살기에만 급급해, 외국인들은 일본이나 중국자료로써 우리를 보는 시각이 아직 많이 남아있죠.
우리학자들과 외교부, 문화부에서 더욱 분발해야 한다는 겁니다..

정리하지요, 제 생각에 우리가 중국에 동화되지 않은 이유는
중원과 다소 떨어져 어느 정도 정체성을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알다시피  중원-만주-반도, 이렇게 중원으로 가기전 완충지 역활을 합니다. (몽골과 북한이 그러하듯.) 우리는 바다건너 반도로 나있는 땅이고, 산과 물이 깊어, 어느 정도 안전기지 역활도 하면서. 농사도 되는 지역이라 유목민들이 들어와 정착해 농경을 지은 곳이죠, 북방애들은 대륙지역이고, 척박해 중원으로 들어가 한탕해먹자는데 반해, 우리는 어느정도 안정을 유지하면서 인구도 불고, 사람이 느니 정치와 문화시스템도 기를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중원땅은 알다시피, 한족보단 북방애들이 들어가 세운 정복왕조(원, 청, 5호16국,등등)와 적어도 혼혈왕조(선비족-당)등이 주된 것들이였고, 고대라면 더더욱 별로 크게 이질적인 문화는 아니였을 듯 싶군요. 러시아가 동진해 조선과 국경을 마주하자, 노란머리, 높은 코등에 놀랐다는 기록이 있지만. 뭐, 이쪽은 늘 보던 얼굴이 비슷해서 그런지, 그런 것도 없었을테고.. ;;ㅋㅋ

중국의 조공체제의 우산아래 실질적인 이득을 뽑아먹을 수 있었고, 중원의 왕조교체기의 혼란의 영향만 잘 피할수 있다면, 또 신왕조와 사바사바 해서 무역에 지장만 없다면, 내정간섭 안한다는 조건아래 군림하는 것 정도는 눈감아줄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족왕조가 들어섰을 경우엔, 북방민족을 견제하는 역활도 수행했지요(명-후금-조선)(송-요/금-고려)
한마디로, 한족왕조에겐 동방의 방패역활을 해주었기 때문에, 재들이 몸이 더 열올라 하는 경우가 그것입니다. 신하왕조로써 자위할 순 있지만. 지네들도 우리가 없으면 순망치환인 거죠 ㅋㅋㅋ
ㅇㄹㅀ 11-04-23 12:30
   
사대를 했건 조공을 받쳤건,, 우리 조상들이 굳건히 우리 민족을 지켜온건 부정할수 없는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게 크고 작던 3000번의 외세침입에 맞서 가끔은 치욕의 역사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민족을 지켜낸 우리민족의 저력을 잊으면 안되겠지요..
     
je 11-04-23 12:40
   
외침 없는 곳이 어딨겠습니까? ㅋㅋ 삼천번이라.. 글쎄요. 그게 적으면 적은거고.
많다면 많은건데, 5천년 역사로 접고 삼천번이라면,, ㅋㅋ
그럼 중국은 어찌되나-.-;; 애네는 삼만번인가..?!

제 루마니아 친구가 요즘 주몽이며 선덕여왕땜에 한국사에 관심이 부척 높아졌는데요 ㅋㅋ
(루마니아 요즘 한류가 뒷몰아 치는 동네 ㅋㅋ) 물어볼때마다, 자료가 없어서 니한테 물어본다고 해서 ㅠㅠ 어찌나 안습인지, 위키에도 혐한들이 도배를 해놔가지고;;;쩝 ㅠㅠ
루마니아는 오스만 투르크에 몇 백년에 걸쳐 식민지였고.. 그래서 니네 한국 대단하다고 ㅋ
솔직, 내 입장에서 한국이 일본에 30년 식민지 먹은 건 장난이라고 ㅋㅋ 하드만유,,
그 밖에 유럽에서 아일랜드와 핀란드도 거의 500,800년 이렇게 식민지였고..
뭐, 세상사 어찌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지만. 너무 자학할 필요도 없고,
지금 자기 잘나간다고 자만떨것도 없지요 ㅋㅋ 뭐, 미래를 위해 국력은 길러야겠지만요 ㅋ
          
진실 11-04-23 13:02
   
3천번이니 하는 건

그냥 왜구들 해안가 인근 양아치짓 하던 그런 세세한 걸 다 합친 것이고

굵직한 전쟁에서는 우리가 거의 다 이겼다.

고구려 천년동안 전쟁한 걸 함 보길 바람.

전적이 실로 엄청나다.

백제 열도 정벌, 요서 산둥

북조사 연 북위 대군  털어 버린게 벡제다.

신라도 만만치 않고.

이후 당나라 축출해 버린 것 하며

이후 발해시대도 대조영의 천문령 전투부터 무왕시기 당나라 등주 박살.

요서로 밀어 버리는 것.

금나라의 요, 송 궤멸.

고려 거란과 3차 대전 다 승리.

윤관 동북 9성이나.

몽골과의 전쟁도 고려 전체 국력이 아니라 당시 무신집권기의 삼별초 일부 세력이지.

그후 고려 요동정벌이나.



조선에 와서 좀 등한시 해서도 초기 군사력은 2,30만 대군 운용했고

주변은 명나라도 조선 건들이지 못했다.

말이 조공이니 뭐니지 명나라 조선에 뜯긴게 현실이다.


임진왜란도 크게 보면 조선의 승리이고

해전사야 말하는게 아프고 유군에서도 1년뒤면 왜구들

그냥 수세에 몰려 왜성에서 수비하기 급급.


그나마 우리나라 치욕이 일제 35년 국호를 잃은 것이고.


짱개는 우리나라에 쳐 발린게 역사다.

그나마 우리가 밀린건 우리와 같은 문화 혈연관계의 북방 민족이지.
미래의별 11-04-23 12:42
   
짱개와 원생이의 모략질이 마이 보이네~
원나라 11-04-23 12:45
   
원나라를

지금의 짱국과  같은 줄 아는 이야기를 보니

딱 수준이 나오네.


짱개들이 무슨 동아시아 종주국인적이 있냐?

줘럴하네.

수천넌 우리 고구려문명권고 북방 이민족에 쳐 발렸지.


우리나라에 가장 작고 약한 시대라는 조선 15세기에도

조선은 스스로 황제적 지위에서 여진, 왜국,류큐, 동남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조율하면서

또다른 세계를 구축해 냈는데. 뭔 쥐럴.
대고조선 11-04-23 12:51
   
짱개는 지들과 무역하면 그걸 조공이니 헛소리 하는 무개념이다.

쳐 발린 것이 짱개이지.


만주에 고조선 하가점 하층 문화권. 즉 빗살무늬 토기권에선 이미 선석기 후기에

거대 제단과 정교한 옥기류 도시문명들이 등장하는데 반해 화한족 짱개에서는 채색 토기의

그냥 모계 씨족 사회에 불과했던게 고고학적 상황이다.


만주일대 고조선 하가점 하층 문화에서 방어를 위한 밀집 성곽들이 등장하고 청동 유물과

청동 단추로 만들어진 갑옷이 등장 할때 짱개 문화에서 국가라는 개념이 있긴 했냐??


서토의 최초 왕조라는 상나라도 화한족 정복한 동북방의 이민 세력이였고.



한족이라는 한나라 조차도 흉노 묵돌 대선우에게 유방이 쳐 발려 수십년을 실질적 속국아래

해마다 조공과 정치적 통제를 직접 받으며 생활 했다.



우리 천년 사직 고구려가 태왕이라는 고구려 문명권을 형성할때


서토는 수십개 왕조가 사라졌고.
남북국시대 11-04-23 12:56
   
남북국 시대

신라는 장보고를 위시해서 동북아 해상 무역을 장악했고

발해는 당나라에 견주는 대도시를 자그만치 5개나 보유하면

동서로 요동에서 연해주로  남북으로 한반도 북부에서 현재 한러 고고학 탐사에서는

저멀리 시베리아 일때까지 행정 치소가 나오고 있다.

산둥 안에는 버젓히 고구려 유민이 세운 이정기의 제나라가 독립 왕국을 형성하고

당나라 임금은 두번이나 수도를 털리고 도망갔고.


이후 금나라는 신라인 황제과 고구려인 황후가 3명이나 나오면서 신라 고구려연합국으로서


이후 요나라과 송나라마저 궤멸 시키고 거대한 제국을 이룬다.


고려말은 고려왕은 요동 심양왕고 겸했고.


조선 시대의 이성계는 여진족을 휘하로 두고


15세기 세종 대왕은

명나라에  10배의 선불로 후려쳐서 명나라를 뜯어 먹었다.

이걸 조공??? 쥐럴합니다.
조공이뭐냐 11-04-23 13:03
   
우리나라에서 가장 군사력이 약했던 조선시대 조차도

조선이 명나라에 선불에 10배로 뻥튀겨 장사하는걸  조공이라고 하냐???ㅋ


조선이 명나라에 선불에 10배로 뻥튀겨 장사하는걸  조공이라고 하냐???ㅋ



조선이 명나라에 선불에 10배로 뻥튀겨 장사하는걸  조공이라고 하냐???ㅋ
     
어개 11-04-23 14:20
   
지금까 한족들이 세운 나라는 막장이였음
르노 11-04-23 13:47
   
헐 sea of japan 뭐임??
악플퇴치 11-04-23 14:42
   
조공에 대해서 말이 많군요.

허나 조공자체가 하나 주고 둘을 받아오든 열을 받아오든 그게 문제가 아니라

선조들이 조공을 바칠때의 생각이 중요하겠죠.


조공이 무슨 무역의 한 형태다. 물론 저도 그렇게 배웠습니다만.

그러나..

대부분의 조선의 선조들은 실제로 황제에게 조아리며 조공을 바치고

황제의 신하국으로 생각했다는것이 문젠거죠.

그게 무역이든 바친것이든. 어쨌든 선조들은 그것을 신하들의 예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닌 사람도 있다 라고 주장하시겠지만 대부분이라는건 인정해야 합니다.
저 글에서 나타난 모습에서 그 부분을 우리나라 사람도 아니면 저렇게 생각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죠.
     
굿잡스 11-04-23 16:03
   
대부분의 조선의 선조들은 실제로 황제에게 조아리며 조공을 바치고

황제의 신하국으로 생각했다는것이 문젠거죠. >???

대단히 웃긴 소리인데요.


당시의 조선 통치자가 명나라 짱개 통치자에게 조아림???

어디에 그런 대목이 있음? 당시에 어느 통치자가 외국에 나가서 그런 짓을 하는가요?

조선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르시나 본데

15세기 대세종대왕을 위시한 훈구파시절에 나온 책들이 정도전의 고려국사부터

고려사, 고려사절요, 동국통감 뿐 아니라 아예 만주가 우리 역사의 테두리라고

공공연히 이야기 했던 시기임. 유학자라고 다같은 유학자가 아니였고

실제 조선 초기는 고려시대 귀족들이 가진 사병을 중앙군으로 운용하면서 2,30만 대군

을 가진 강병국이 조선이었고 이에 정도전은 아예 요동정벌 까지 시도하려고 했던

인물임.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조선은 여진족을 영향력 아래 두면서 말을 상급 중급 하급으로

나뉘어 그 값의 정확히 10배를 선불 아니면 하지도 않았고 더 재미 있는건

이런 관계를 조선은 더 하자고 했고 명은 적게 하자고 했던 우스운 기록이 있다는 것이고.

명나라는 당시 비록 물러났지만 북원에 개발리고 있었고

전통적으로 우리는 북방의 이런 유목민과 때로는 전략적 관계로 때로는 우리의

부용세력으로 이용하면서 짱개들 하도 피박해서 명나라도 조선이

북원과 손잡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고 그래서 조선에게 막대한 무역적 이익을

안겨 줄수밖에 없었고 명의 후방을 털 절대 세력중 하나라 북원과 조선이였던 상황임.

그리고 실제 15세기 조선은 명의 눈치 안보고 아예 알아서 여진족 왜국 류큐 동남아에서

상국 노릇을 했고 그들도 상국으로 인정했고.


그외 삼국시대나 남북국 시대야 우리가 동아시아 중심국이였지.


고구려 최전성기인 광개토태왕이후 장수태왕 문자명태왕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북위내에는 고구려계 세종이 등극하면서 고려사당을 짓고 아예 고구려 태왕이 죽으면

상복을 입고 제사까지 지냈고 북위 조정에 고구려인을 따로 추천하는 벼슬 기구까지

있었고 고구려인 세종이 외척인 고구려 세력을 들어와서 아예조성을 장악함.


이런 고구려인의 활약은 이후 수나라 통일 이전까지 이어지고.

이런 시기에도 그냥 서토 왕조를 보면 관계를 조공이라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임

알겠음

무슨 인식?

그건 그냥 서토 사관들이 고대부터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고 자신들의 위치는 과장 미화

하면서 가져온 춘추필법에 그냥 자위적 세계관에 기인한 창조된 용어일뿐임.

실제 짱개들이 화폐나 비단, 공주등을 바치면 연명한게 한나라고 이후 당나라 초기도

송나라고 원나라 시기는 아예 최하층 노예였고. 마지막 청나라 시절에도

관료층에는 짱개들은 만주족 상류층에는 끼지도 못한게 역사적 내용임.


16세기 선조시기에 가서 자신이 왕이 될 자가 아닌 이가 되다보니 정통성 문제로

명에 대한 사대적 관계가 강화된 측면이 있는 것이고.


이것도 이후에는 아예 명나라 짱개들이 청나라 만주족에 망하자

조선 스스로가 가장 세계의 문명국이고 중심국이라는 사상으로 더 우월적인

유교관으로 바뀌어 버렸는데 무슨.ㅋ
          
악플퇴치 11-04-24 00:05
   
선조란건 왕을 뜻하는게 아닙니다 말을 지멋대로 바꿔서 해석하지 마십시오.

님이 예를 든 세종대 시절의 이야기를 하십니까?

왜 세자책봉을 중국황제에게 허락받고 했을까요?

아아. 그건 단지 형식일 뿐이고 실제로 허락 안받아도 세자 책봉한적도 있다?

그럼 중국에 공녀를 갖다 바치는 짓거리를 청나라대까지 끝까지 했을까요?

이것도 무역의 한 형태라고 하실거죠?

경복궁의 모습은 어떻죠? 왜 용을 못썼죠? 알죠? 안쓴게 아니라 못쓴거라는거

궁을 지을때 중국을 칭하는 그림과 궁궐 모습보다 한단계낮춰 만들었다는거

모릅니까?

그럼 중기로 넘어가 볼까요? 후기는 어떻습니까?

왜 효종대 북벌을 추진했죠? 역사를 공부했으면 아시겠죠?

북벌의 주장할시 그 대의는 무었이었습니까?

소중화 아니었습니까?

어버이의 나라 중국을 멸망시킨 청나라에 복수하자 아닙니까?

당시 양반들이 정말 님 말처럼 단지 조공무역을 하기위해서 했다구요?

님이 말씀하신 그 자료보다 수백배는 더 많은 자료에서

소중화 의식을 옅볼 수 있고.

고려때부터 조선중기이후까지 수많은 역사서는 우리나라에 문명을 가져다준

고마운 중국과 기자를 숭상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대외적으로 황제라 칭했던 시절이 얼마나 될거 같습니까?

공공연히 외왕내제라 현재 역사에서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 외왕내제라 했습니까?

아아. 그건 단지 타국과의 마찰이나 중국과의 무역에 영향을 미칠지도 몰라서?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는 오랑캐라는 사상은 어떻습니까?

그 사상이 왜 나온거죠? 바로 소중화 사상에서 나온겁니다.

청나라때는 어떻죠? 처음에는 그렇게 오랑캐라고 떠들더니 결국은

끝까지 공물 공녀 바치고 세자책봉에 사사건건 간섭했으며.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나오듯이 청나라 사신들의 추태와 무례를

조선왕조는 어찌 하지 못했습니다.

중간중간 요소요소 님 말하는 곳곳을 다 빼먹고.

지금 뭘 주장하는지 모르겠군요.
               
양앵민이 11-04-24 01:03
   
이봐요. 그냥 밖으로 내뱉은 말을 속도 모르고 그대로 믿어버리면 곤란해요.

효종은 말로는 소중화 따땅! 복수! 따땅! 하지만

속내는 아버지의 복수죠.
               
굿잡스 11-04-24 02:05
   
악플> 이사람 참 어설픈 지식으로 참 계속 헛소리 하시네.

조선이 세자 책봉을 허락 받아??

장난 아시나 조선의 왕위 계승은 알아서 내에서 했고

그냥 형식적으로 명에 통보하는 것에 불과 했음

뭔 헛소리 계속 하남.

그리고  선조 얘기는 뭐잉?

참 당신이 말하는 건 조상 말이고 내가 말하는 건 조선 16세기

선조 시기이고.

이건 뭔 선조가 누구 인지도 모르고 조선 운운 하긴 참.

딱 글 쓰는 걸 보니 무슨 화교 짜장식 논법이군.

그리고 만주족 청이 짱개 역사인가?

그래서 변발 안하면 도륙되고

파차오 안입으면 도륙되었음?

언제 이런게 한족 문화였나?? ㅋㅋ

참 지금의 북경어도 몽골어 만주어가 상당수 놓아있는 언어이면서

도리어 짱국 광동어 쓰지 마라는 무식한 공산당 역사관하군 ㅋㅋ

조소가 절로 나오네.

300여년 동안 이민족에 정복 당해서 겨우 멸만흥안 어쩌고 나온

중공이 무슨 헛소리하면서 대한민국에게 역사 운운하남.

최소한 우리가 가끔가다 발린건 북방 유목민족이지

짱개들은 아니었음.

도리어 내내 노예로 국호도 없이 정복 당한게 짱개들이지.
고구마 11-04-23 14:57
   
당연하지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IQ높은 민족이니까.
     
유령 11-04-23 15:21
   
맞음 ㅋㅋㅋㅋㅋ

한족같이 멍청한 인종은 없음 ㅋㅋ
닻별 11-04-23 15:00
   
댓글까지 모두 정독하고나니 우리역사에 대해 많이 배운 느낌이네요.
걸러낼것은 걸러내 읽었지만, 아직까지도 왜놈에 의해 왜곡된 우리역사가
남아 있다는것이 가슴아픕니다. 다들 어쩜이리 해박하신지..^^
유령 11-04-23 15:21
   
한국은 중국처럼 야만인이 아니니까요

독돼지=한족=중국

인간=알타이어족=한국

중국= 수백만 개의 그림을 문자로 쓰는 ㅄ민족

한국=단 24개의 문자로 모든 소리를 낼 수있는 문자를 개발한 뛰어난 민족

중국은 인류의 적입니다!! 척결해야 할 존재!!
유령 11-04-23 15:26
   
중국은 곧 멸망할 것이다
티베트와 위그르 독립을 지지한다!
도h지 11-04-23 15:32
   
조상님께감사하네용!!!!!!!!!!!!!!!!!!!!!!!
뉴스토크 11-04-23 15:42
   
우리가 빨리 통일이되야 저 입만살은 중국새끼들 땅을 먹을수가있는데
미친도끼 11-04-23 17:13
   
..아이구 정신없고..

..제대로 말하는 사람도 안보이고..
sknfhoq 11-04-23 20:51
   
이런거에 열낼필요 없음
저런 역사를 바꾸려면 통일한국 만들어서 중국일본하고 힘을 비슷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음
억울해도 지금 역사는 최근에 강했던 국가들에 의해 만들어진거니깐
우리가 강해지면 굳이 알리려고 하지않아도 세계에 한국역사가 자연스럽게
알려질꺼임
드르렁 11-04-23 22:09
   
몽골이 40년내내 휘젓고 다녔던 건 아니고 제일 피해가 컸던 건 헌종의 5차와 6차 원정이 맞음.

그리고 고려는 중앙집권국가가 아닌 각 성의 자치가 컸던 국가였기 때문에
몽골에 협력한 성도 있었고 저항한 성도 있었지.

그리고 3차원정 때를 제외하면 전국을 휩쓸었던 것이 아니고
경기도 지역, 서해지역 이런 식의 부분원정이었음.

그리고 몽골군의 아이를 배면 고려인들이 그 아이를 낳아서 잘 기르고 살았을까?
이건 어느 나라건간에 만고불변의 법칙인데,
태어나는 아기가 사내아이면 즉시 죽여버리고, 여자아이면 노예로 삼는다.

몽골침략으로 딱 하나 도움이 되었던 것은,
그때까지는 고려사람들은 스스로 고구려인 신라인 백제인 여진인 거란인 등으로 인종구분을 했었고,
신라 부흥 백제 부흥을 내건 반란도 자주 일어났는데,
몽골이라는 공동의 적을 만나면서 스스로 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 즉 한겨레라는 의식이
완전히 정착이 되었다는 것.
꿀이 11-04-23 22:21
   
한국이라는 땅에 관심이 없었다는데. 글쎄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저들이 한국이라는 땅에 관심이 없었다면 우리가 왜 그렇게 많은 전쟁을 치뤘나 싶다.
근대화전에는 중국에서 쳐들어오고 근대화후에는 일본에서 쳐들어오고
수 많은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키고 빼았겨도 되찾아오는 선조들이 자랑스럽고
내가 한국인이라서 자랑스럽다.
ㄴㅇㅁ 11-04-23 22:28
   
한민족이 중국의 동화되지 않은 이유는 .. 패쇠 지역이라는 거와 함께 땅이 작다는거 그리고 호의적이었고 동시의 끈질기고 자기나라 역사의 대한 자부심이 깊었다는것을 이유로 들고 싶다 ..
당시의 중원의 국가 입장에서는 저 작은 땅을 얻기 위해 군사들의 손실을 낼 이유는 없었을 태니깐
반대로 일본같은 경우는 대륙의 발판을 위해 .. 군사피해가 있더라도 조선을 침략한거지 ..
..그리고 고려의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애기인데 ..
당시의 몽골은 정말 엄청난 거대제국이었고 그 거대제국이 고려를 침략한것은 고려의 패망을 의미 한거지 동시의 당시의 집권당이던 .. 무인들도 .. 역시 패망이었고 ..
그말은 무인들 입장으로 볼때 항복하나 싸우나 죽는건 마찬가지다 라고 생각하고 싸웟을 거라는 거지
그리고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재내가 수탈하나 최씨정권이 수탈하나 같다고 생각하고 최씨정권과 함께 .
40년동안 항쟁을 하엿던 거지 게릴라로 ..
하지만 그것도 거의 한계의 다달아 .. 몽골의 항복을 한거지 ..
난 단순 하게 받으면 좋겠어
그리고 개인적으로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은 아니야 
우리나라의 대한 역사적 자부심이 만든 허상일 뿐이지 ..
     
굿잡스 11-04-23 23:24
   
땅이 작다라??? 언제부터 우리가 한반도만 우리의 영역있었음?

조선말기까지도 만주 일대가 생활권에 지금도 조선족 자치구가 있고

만주 연해주 일대의 땅만 해도 한반도의 1.5배에 이르는 열도의 5,6배가

넘은 광활한 땅에 만주 일대는 지금의 중공 영토에서 가장 비옥한

양대 곡창지대 인데 폐쇄적이라?

한반도 가장 최남단 서라벌에까지 유럽형 황금 보검과 그릇 등이 나오고

페르시아의 기록에서 신라의 기록이 나아고 인도에서 조차 신라인들이 가는데.

고구려는 어떠한가?

짜장들이 서안에서 실크로드 어쩌고 할때 우리는 엄연히 초원길을 통해

유라시아와 소통했고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에 고구려 사신의 모습이 벽화로 남아 있음

폐쇄???

우리 고구려 문명권이 폐쇄였나?  우리 고구려문명권이 작았음?

예나 지금이나 서토는

지금도 그러하고 기본 지금의 3분의 1이상이 티벳 위그루 북방은


몽골 유목민들의 것이였지 언제 짜장의 영역있었남?


당연히 수천년간 만주는 짜장과는 거리가 지역이며 이질적 문화권이였고.


고작 짜장들이 살던 곳은 내륙의 서안 일대였지.


그리고 무식한 것임?

몽골의 수도가 어디인데 중원 어쩌고 헛소리 하시남?

서안일대가 몽골의 수도임? 원나라 입장에서 그냥 노예계층 한족이라는 변방지역이였음.
          
악플퇴치 11-04-23 23:53
   
언제부터긴요 고구려가 멸망하고 부터죠 . 발해가 없어지고 부터죠.

그로부터 지금 몇천년입니까?

이번에 발견된 신라시대 황금보검도 실크로드를 통해 왔다고 하고

그 이동은 중국을 거쳤으며. 직통으로 신라에 왔다는건

신빈성이 빈약하다고 하는 말은 태어나서 첨 들어본 말이죠?

고대 삼국에서 직접 배 타고 해상무역으로 중동과 인도등과 교류했을거라고

보십니까?

역사 공부 다시하십시오.

님 말이 무조건 맞습니까? 어디서 무식하단 말을 함부로 하시나요/
               
굿잡스 11-04-24 02:58
   
당신글 쭉 위에서 읽어 보니

무슨 기본 역사 지식도 없고 근거 없이


그냥 짜장식 비슷한 이상한 논리로 물타기만 하던데 쯧

기본 들고 오는게 몽골 이야기 청나라 삼전도 어구.

딱 이런 걸 들고와서 이야기 꺼내면서 가는 사람 보면 답 나오지.

금나라 안 배웠음.


고려 말기도 비록 몽골의 영향력이 커지만 엄연히 심양왕으로 만주 일대까지

경영했던게 고려고 이후 이원적 체계로 다스리고 실제 고려인들이

제법 많이 살고 있던 곳이 만주 일대라서 고려사에도

요동정벌을 단순히 새로운 땅의 개척이 아니라

고려 백성을 안녕케 하기 위한 것이라 기술하고 있음.

즉 이전 우리의 영토니 그냥 다시 곤고히 하는 의미로.

이성계 역시 휘하의 무력 기반이 여진족이였고.

조선 초기에 이성계는 여진족에게 벼슬을 주고 다스렸고.

그런 영향력 하에 조선은 여진족을 왜국보다 제 1서열로 대우하면서

말을 받아 명나라에 10배로 선불로 후려 팔아 먹었고.

조선과 명은 글자 그대로 대단히 형식적 의미의 관계이지

조선의 왕위 세습은 조선이 알아서 했고 후통보 일 뿐이었고.

조선은 스스로 명 눈치 안보고 국제 외교에서 황제적 놀이했고.

명나라 고작 200여년이 다인데

16세기에 선조가 뻘짓해서 임진왜란으로 국력 상실 할때 빼고

이때되면 명나라도 이미 쇠퇴 이후 만주족에 캐덜려 망해버리는데 무슨.

짜장이 사대 어쩌고 우리에게 역사 운운하남.

<최소한 우리나라는 우리와 친여성 있는

북방 민족에게 혹여 밀리거나 발린 적은

있어도

짱개처럼 허접하게 국호를 빼앗기지도 않았고

 짱개를 다구리는 시켜도 다구리 당한 적은

없는 역사임.>

그나마 우리 5천년 역사에 최대 치욕을

국호를 잃은 일제 35년 강점기로 보는 것일 뿐.그것도 부모의 나라에

칼들고 설치 왜국이니 더욱 분노하는 것이고.
     
굿잡스 11-04-23 23:41
   
중원이니 어쩌니 하는 헛소리는 짜장입장이고

<고구려는 스스로 천하관의 중원 고구려비를

우리 동방문명권 중심에 두고 스스로 천하관으로 다스리며 초원길과

해상을 통해 유라시아와 바다로 국제 교류를 했음.>



짱국이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던게 아니라

서안에 쳐 박혀 사방 영토를 사해니 바다로 해석할 정도로  내륙에 쳐 박혀

북방과 동이족에게 발려 지내니 기어 나올수가 있어야지.


서토의 최초 왕조 역시 동북방의 선진 이민족 집단이 하환족을

정복하며 세운게 상나라 역사였고

한나라 역시도 흉노의 묵돌 대선우에 의해 유방이 생포되면서 수십년 튀어 나올수

없었고


동북방의 천년사직 고구려가 버티고 있으니

선비족의 활동 범위로 동쪽으로 막혀 나가지 못하고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한족을 발라버리면서 북위의 남북조 시대를 연 것이고.

짜장의 왕조는 한마디로 북경 일대부터 만주 일대로는 북방과 동이족 계열에게

제대로 펴지도 못해서 기어 나오지 못했으니 올수가 없었던 것임.


선비족이 세운 북위도 당시 고구려 침공을 하려 하다 고구려의 위세에 눌려

침공할 걸 포기했던게 기록에도 분명히 나오고




그나마 통일 왕조가 나온게 수나라고 그런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하기 위한 결정적 계기도

고구려는 북방 유목민들을 부용세력으로 휘하에 둔 패자였고

고구려 사신이 돌궐과 만나는 것을 수나라 사신이 우연찮게 발견하면서 부터

자신들에게 맹공을 가하지 않을까 하여 이후 수나라의 군사준비가 시작했었고.

피할수 없는 전쟁을 알자  598년 고구려의 영양태왕은 말갈병 1만 명을 동원하여

요서 지역의 임유관(臨瑜觀)을 선제 공격하여 보급기지를 사전에 궤멸 시켜 버림으로서

장거리 보급 수송에 막대한 차질을 빚게 만들었던 것임.

이후 30여년간 4차례의 수나라 재침은 고구려의 살수대첨처럼

300여만명이 수륙 양륙으로 침공했지만  별동대

30여만의 평양 진군 수나라 병사중 고작 살아 돌아간 짜장이 3천명도 되지 않는등

결국 패망의 길에 이른 것임.
굿잡스 11-04-24 00:04
   
<해동 성국 발해>

당나라가 고작 고구려을 턴 것은 일부 요동 일대와 신라와의 연합에 의한 평양 수도 정도의 함락이였지

실제 여전히 강원도 일대나 요동 여러성이고 만주 동북방은 고구려 세력이 견제했고

2여년 뒤에는 고구려 부흥 세력이 평양일대도 당나라 군대를 몰살 시켰버렸고.

당나라는 고구려 부흥 세력이나 신라에 의해

상당한 국력을 소진하면서 이로 말미암아 지금의 티벳인 토번의 성장과 위협을 당해야 했고.

이후 얼마 있지 않아 일어나 발해의 대조영은 천문령 전투에서 당나라 대군을 격파하면서

이후 서안을 중심으로 하는 당나라에 맞먹은 거대한 영토를 가진 대제국으로 발도움하며

5대의 국제적인 대도시인 5경을 바탕으로 200여년간 해동 성국이라는 기치아래 신라와 함께

남북국 시대를 연것임.

이미 당나라는 중기에 가면 유명 무실해 지고 발해 장문휴에 의해 산둥 등주가 발살하고 요서로 밀려나

버리고.

당나라 한폭판에 고구려 유민 세력이 수도를 털면서 두번이나 허둥되고 도망 단녔던게 당나라 통치자였음.

이후 금나라 역시도 발해 이후의 발해 (고구려 백성)은 여전히 만주일대에 2,300여만명이 정주하면서

살고 있었고 이들 고구려 발해 부흥 세력과 연합한 신라인 황제의 금나라가 이후 요 송을 멸망시킨 것임.


당시 고려는 송나라도 어찌못한 요나라를 궤멸시켜 버리고 만주 일대의 고구려 세력이나 여진족이

고려 조정에 입조하며 문종시기에는 만주일대를 경영하기 시작했고.

그런 가운데 윤관이 만주 일대에 동북 9성을 쌓고 이런 저력과 여러 문화적 혈연적 관계에 의해

일어난 금나라 역시 고려의 국력을 대등한 관계와 친여성을 가지고 반요 사상에 입각해서

요나라와 이후 압박해 오던 송나라를 궤멸 시켜 버림.

기본  서토의 짱개를 정복한 정복 왕조가 나온 산실은

다름 아닌 북방 몽골계와 만주일대의 고구려 문명권에서였고

이들은 때로 고구려의 강성함에 때로는 고구려연합 세력과 신라세력에 의한 금나라 처럼

우리과 거의 동질적 정치적 문화권에서 나온 세력이니 당연히

그 응징에서 짱국에게 타격이 컬수 밖에 없었던 것임.


마지막 서토의 왕조인 청나라 역시도 도리어 자신의 지역인 만주를 신성시 했고

아예 한족 출입 봉쇄지역으로 조선은 고토와 가장 가까운 혈연적 문화적 교류지역이니

상당히 신경을 써던 나라였음. 실제 청 나라 사신 대열에서 가장 제 일선에 있던 나라가 조선이였고.


만주족 청은 조선의 국호와 문화를 인정했지만 한족에게는 변발과 만주족 복식을 철저히 강요하고

따르지 않을 경우 무자비한 탄압과 도륙을 통해서 명나라 전성기 시대의 인구가

청나라 강희제 시기에 오면 절반 이상이 사라져 버릴 정도로 강경에 철저한 복종으로 씨을 말려 버리면서

만주족에 철저하게 복속시켰던게 청왕조임.
     
악플퇴치 11-04-24 00:19
   
님 정말 심각하군요 .

극우 민족주의를 제대로 배우셨네요.

고려가 동북 9성을 쌓은 이야기를 포장해서 동북아 일대를 호령하고 다닌것으로

쓰면서

요와 금의 침입으로 고려가 ㅤㅆㅜㄷ대밭이 되버린건 쏙 들어가버렸군요.

요의 침입당시 일직선으로 단 한차례도 승리하지 못하고 밀려서 내려왔다는건 아시나요?

서희가 왜 외교적으로 해결하려 했었나요?

전세가 이미 고려의 국운이 휘청할정도로 밀리고 있었고

1,2차때는 북방은 초토화 됐죠. 수도까지 밀린건 말할것도 없구요.

금나라는 어떻습니까?


몽골은요?

몽골과의 전쟁에서 수십년 버텼다고는 하지만 그 수십년동안

전국은 피폐할대로 피폐했고

강화도 천도이후 . 그대로 몽골군은 전국을 누볐고 수많은 문화재가 약탈되고

유린되었던 지난날을 잊으신겁니까 

단 한차례도 큰 승리 없이 대부분 밀렸던 전쟁은요?

국사책에 나오는 그 승리는 소규모 전투였거나 이기고 난뒤에 바로 다시 굴복했던

치욕의 역사를 미화시켰다는것 정도는 국사책 너머로 공부했으면 아실텐데요.

당시에 몽골에 다 굴복했는데 우리는 그래도 부마국정도는 된다 이러실겁니까?

청나라에 삼전도의 그 치욕스런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청나라는 우리나라와 동질적이어서 대접 잘해줬다 이러실겁니까?

독립문이 있던 자리에 원래 뭐가 있었는지 정도는 아시죠?

그 곳까지 대신들이 뛰어나가 사신들을 맞이해야 했던 치욕을 아시면서

청나라가 대접잘해줘서 좋다 이러실겁니까.

사진들이 올때마다 공녀라고 전국의 처녀들을 다 잡아가는 그 행태를 아시면서

청나라는 동질적이라고 하시겠습니까.
          
굿잡스 11-04-24 00:54
   
님이 제대로 모르군요.

우선 거란이나 몽골은 짱국의 역사가 아니라 정복왕조 역사로

구분해서 말해야 함을 앞선 윗글에서 이야기 했습니다만

(저 윗글에 당시 무인백년 시기에 고려의 군사 체계가 붕괴되어 고요 전쟁처럼

중기병등 중앙 대군 운용체계가 무너진 고려 입장에서 이후 몽골에 의해

국토가 유린되는 등은 적어 놓았으니 읽어 보길 바람)

이런 구분없이 몰짱개사 어쩌고 한다면 님의 역사관 부터 제대로 바꾸어야

할것이고.


동북아의 의미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고려가 요나라

3차 대전 이후 승리함으로서 고려의 국제적 위상은 높아지고

더이상 요나라가 고려와 군사적 충돌을 할 여력을 상당히 상실함으로서

 문종시기에 가면

고려가 만주경영을 한 정황이나 기록 판세는 사서에서도 찾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만

뭐가 잘 모르시나 보군요.


그리고


<서희가 세치혀로 땅까지 얻었다??>

님이야 말로  겉핥기로  고요 전쟁을 아시는 것 같은데

어느 미친 작자가 단순히 말 몇마디의 외교 담판으로 땅을 내어 주남요?


고려가  요나라 침입에 대해 간과하여 여진의 언급에도 전쟁 준비를

하지 못하면서 초기 일시에 밀리면서 전세가 불리해서 조정 내에서 공난이 있었지만


서희는 성종에게 그 부당함을 강력히 제기했고,

이지백은 성종이 송나라 풍습만 따르면서

고려의 고유풍습인 연등(燃燈), 팔관(八關), 선랑(仙郞) 같은 것을

못하게 하여 국가의 힘을 잃었다며 왕의 정책을 비판하고 거란과 강력하게

전쟁을 할 것을 요구

고려가 항복하지 않고 버티자

소손녕은 대군을 몰아 안융진(安戎鎭)을 공격하니 중랑장(中郞將) 대도수(大道秀 : 발

해의 마지막 왕자로 고려에 귀부한 대광현의 아들)와 낭장(郞將) 유방(庾方)이 소손녕

군대를 대파.

안융진 패전 후 소손녕은 태도를 바꿔 고려에 협상을 요구합니다.

성종이 합문사인(閤門舍人) 장영(張塋)을 파견하자 소손녕은

그의 직급이 낮음을 탓하여 대신의 파견을 요구합니다.

서희는 소손녕이 명분을 원하는 사실을 간파하고 자기가 사절로 가겠다고 나섭니다.

고려가 거란의 연호를 받아들이겠다는 제안을 한 이유는 바로 철수명분을

거란에게 주고자 한 것임.

거란이 태도를 바꾼 것은 바로 서희, 이지백, 대도수, 유방 같은 사람들이

보여준 의지와 안융진에서 승전한 것 때문이지

단순히 서희의 세치 혀와 협상능력에 의한 것이 아님

서희의 협상력은 대신들의 강력한 전쟁의지,

 안융진에서 거둔 고려군의 승전에서 나온 것입니다.

개전 초기에 강계에서 고려군이 대패하고 지휘관이 전사했을 때

소손녕은 고려의 협상 사절을 만나주지도 않았음


강동6주를 획득한 것이 서희의 원맨쇼에 의한 것도 아니지만,

단순히 서희의 협상능력으로 얻어낸 결과물도 아님.

전후사정을 잘라내고 서희만 부각하는 교육만 하게 되면

말싸움으로 국가간 외교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쉬운 것임.


도대체 어느 나라가 고대에 군사력등의 국력이 바쳐주지 않고 알아서

말 몇마디로 물러가고 땅까지 내어 주남???


정리하자면 강동6주의 획득은

1. 서희, 이지백 같은 대신들의 강력한 항전의지가 조정을 대세를 장악했고

2. 대도수, 유방 같은 장수들이 적에게 승리를 거두었으며

3. 거란이 명분을 얻어 철수할 수 있도록 명분을 제공해 준 서희의 외교술

이렇게 3박자가 함께 얻어낸 결과물.
               
굿잡스 11-04-24 01:11
   
<고려는 이미 문종시기부터 만주 경영>

3차 대전에서 요나라를 궤멸 시킨

강감찬의 귀주 대첩의 승리는 말할 필요가 없고

이런 문종 시기에 오면

허인욱씨의 논문< 고려 중기 동북계에 대한 고찰>

http://blog.naver.com/knightblack/10089042378- 좀더 쟈세히

에서 보면 만주 장광재령 지금의 길림과 송화강 유역 까지 이르는

넒은 영토로 까지 뻗어 세를 과시했던 게 고려임.


그리고 알아야 하는게 발해 멸망후 요나라는

발해 만주 일대를 단순히 유목적 체계가 아니 정주 행정 체계로 다스렸음

무슨 말인가

바로 발해 이후의 5대 대도시에는 여전히 고구려(발해인)들이 상당히

살고 있었고 염언히 수십년씩 같 발해나 고구려을 계승한 세력들이

난입하면서 지속적으로 만주 일대에서 활동 하고 있었다는 것임.

알겠음?

 서경압록부(西京鴨濫府)에서 일어난 대씨(大氏)의 후발해국(後渤海國,

926∼?)에서10여 년 만에 열씨(列氏)의 정권으로 바뀌면서

정안국(定安國)으로 1029년 발해 왕족 후손인(대조영의 7세손)

 대연림(大延琳)이 흥요국(興遼國)에서 다시 1116년 고구려 왕족 후손

고영창(高永昌)이 대원국(大元國) 등

홍콩의 발해사 학자인 김광석의 논문 내용을 보면

<당시 발해 유민 300만명중 190만명은 동단국에서 거란의 직접 통치를 받았고 나

머지 110만명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중 10만여명은 고려로 넘어갔고 60만명은

여진으로 도피했으며 1만명은 일본으로 망명하기도 했다.

왕족 2명, 귀족 25명을 포함 발해 유민이 대거 고려로 들어오자 고려는 이들을 후대

했다. 고려 태조 왕건은 "발해는 본래 우리의 친척 국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동단국은 이후 동거란으로 국명을 바꾸면서도 발해의 행정체제와 규모

를 그대로 유지했다"며 사실상 동단국은 발해국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발해는 거란 이후 동북지방의 주도세력이 된 여진과도 특수관계를 맺고 있었다. 흑

수말갈이 합류한 여진의 금나라는 당시 동북지구에서 최고 문명을 자랑하던 발해

를 대거 포섭해 끌어들였다. 금나라의 역대 황제 가운데 발해족을 생모로 둔 황제

는 해릉왕, 세종, 위소왕 등 3명에 이른다. >
                    
굿잡스 11-04-24 01:34
   
<금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자 봅시다.

당신이 금나라는 어떻고 했는데 금나라 어떤 나라임?

요나라와 송까지 궤멸 시키면 북방의 거대한 제국을 세운 금나라의

은 120년간을 간 왕조에 금나라 황후 생모중에

고구려계가 3명이나 된다는 건 뭘 말할까요?

당시 만주일대의 상당한 고구려인(발해인)들이 살고 있었고

아골타도 이들의 세력과 도모하지 않을 수 없기에 한 일가라는 표현을

사용해 받아 들임으로서 황후의 외척 세력으로 금나라의 큰 한 기둥을

이룬 것임.

실제 금나라의 대국 행정은 기본 고구려인들에 의해 이루어졌고

요나라 뿐 아니라 금나라 옮긴 지금의 북경 일대의 중도 건립이나 대수로

지금의 황제의 정원이라는 북해공원도 다 고구려인에 의해 직접 설계

건설되었음.


그기에 금사나 고려사 기타 상당히 많은 사서나.

송황제 볼모를 데려가기 위한 송나라 사신이 기록한 기록등에도

금나라 황제가 다름 아닌  신라인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음.

즉 통치자 우두머리가 신라인이고  조정을 이루는 외척 세력이 고구려인

으로 이들의 연합에 의해 이루어진 나라가 금나라임.



자신의 무지와 역사적 관점을 혼돈 말기 바람.

그리고 물론 고려도 그만한 국력을 가지고 있던 나라이기에

금나라는 혈연적 문화적 역사적 동질성에 고려의 국력에 견주어

실제 금나라 고려 사이에는 거의 충돌이 없으면서

금나라가 조진건 발해를 멸망시킨 반요사상에 입각한 발해인들에 의해

요나라 멸망과 이후 압박하는 송나라의 수도 함락이었던 것임.




향후 교과서고 이건 제대로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내용으로

금나라 어디 우리와 동떨어진 관계의 나라가 아닌 상당한 관계성을

가진 나라임을 제대로 알리고 재편할 필요가 있는 나라임.


몽골 이야기는 앞서 했고 삼전도의 굴욕 어쩌고 하는데

15세기와는 달리 16세기 선조와 관학파가 집권하면서 정치적으로

사대, 의리 어쩌고 하는 사상에 빠지면서 두번이나 뒷통수를 치니

그런 식의 총돌이 난 것이지.

당신의 논리면

고구려가 가야를 밀어 버리고 신라를 구하면서

신라을 거의 속국 치급하고 백제를 굴어 앉힌 광개토 태왕도 역시나

같은 논리요 북한이 전쟁에서 남한을 치기 우리와 관계없는 민족이고 역사임?


청 정도야 최소한 우리 역사 편입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최소한 만주족은 짱개 역사가 아닌 정복왕조사로

그리고 그 만주족 로얄층의 문화나 혈연적 관계가 우리과 제법 친여성을

가진 정도는 제대로 인식하고 가야 할 것임.


실제 만주족이 얼마나 한족들을 도륙했는지 기록을 보면 황당할 정도임.


그기에 청나라의 변발이 한족것임?

파차오가 짱개 복식인가?


만주족은 스스로 만주 문자를 사용했고

러시아와의 국경 협약의 국경선은 만주문자로 기록했고

한자는 그냥 짜장들 다스리는 수단에 불과 했음.

그기에 북경 내몽골 만주 일대의 3경 수도 체계로 다스렸고

다단계 과거제로 한족들 피말리는 시험 공부만 시켰지

정작 관료 등료에는 만주족 후짱 빠는 극소수 아니면 등용 시키지도 않았고.

그게 한족을 철저히 지배한 정복왕조 청나라였음.

그리고 지금의 중공은 그런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멸만흥한으로 일어난

나라이고.
                         
굿잡스 11-04-24 11:30
   
<지금의 중공은>

중공은

우리처럼 전 왕조의 문화와 역사와 세력을 규합하면서

신생왕조가 계승의식을 가지고 이어온 역사가 아니라.

만주족을 몰아내자

만주 문화를 배척하자는 쑨원의 멸만흥한으로 일어나

세운 나라가 현 중공임.

얼마나 명백한 차이가 있는 줄 아시겠음?


짱국사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문화나 복식부터 매 왕조마다

중구난방이요 국적 불명에 이민족 정복사로

점철되어서는 .


그리고 우리에게 그렇게 관심 없어???

수나라는 4차례나 백만 대군으로 쳐들어 왔다 털려 망하고

당나라 이세민도 왔다 패전하면서 병사해 죽고 그렇게 다시 두번을

더 침입하다 이후 국력 소진으로 중기에 가면 춘추전국 시대처럼

조정은 무기력해지고

토번에 발해에 이정기 제나라에 털려 버리고.

송나라도 어찌 못한 거란의 요나라는 3차례나 왔다가 아예 고려가

만주 일대를 경영하는 형태로 확장되는 계기를 만들어 줘 버렸고.

기본 짜장은

북방 이민족과 동북방 우리나 관련 세력에 의해

쳐발려 거의 제대로 쉼쉬고 살지 못했다는 게

정답임.
난닝구전사 11-04-24 04:29
   
그건 그렇고,,
우리나라가 하루빨리 통일이 돼야 할텐데....
방구뽕 11-04-25 05:07
   
심장!! 거울보니까 아무래도 몽골한테 관광좀 당한거같긴함..
칼끼없는놈 11-04-29 06:14
   
승질 때문에......
가생의 11-10-22 23:25
   
어쨌든 대단한거여 저 무식한 중국옆에서.. 몇천년을 같이 공생했다는게..
아이리스 11-11-07 02:27
   
잘 보고 갑니다..
밥사랑 12-06-03 18:00
   
잘보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