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리더로서 박정희가 아주 못했다고는 할수는 없지만 아주 박쥐같은 인생을 살았고 천문학적인 국가자금을 빼돌려 사리사욕을 채운 사실도 맞습니다.
박정희가 계속 독재를 했었다면 최후에는 리비아의 카다피 꼴을 면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사람의 권련욕은 끝이 없는 것이라 니까요.
지원을 아무리 해도 안되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처럼 세계에 단기간에 우뚝 설수 있는 나라도 있는 겁니다. 그 차이는 바로 교육열, 높은 저축율, 근명 성실하고 똑똑한 국민성에 있습니다. 이 삼박자가 고루 갖춰지고 기회가 주어지면 급성장하는 것이죠. 중국이 그렇고 대만, 싱가폴이 그렇듯 다들 높은 경제 성장을 이뤘고 삼박자가 잘 갖춰진 국가들이죠.
해외 투자자들이 한 개인을 보고 차관을 내주고 투자를 하는 그런 멍청이들은 아닙니다.
국민성 등을 다 따져보고 자기들에게 이익이 될거 같다 싶으면 투자하는 겁니다.
당연히 발전할수 밖에 없는 국민성 등 여러 좋은 요소가 있는 국가인데 그 공을 한 개인이 다 가져 간다는건 말도 안되는 것이고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현장에서의 국민들의 희생을 모독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긴 한데 박정희처럼 20년동안 통치를 맡겼으면 최소한 노무현 문재인은 박정희보다 훨씬 나은 업적을 남겼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팍팍 드네요. 김대중은 잘 모르겠고.
그리고 친구의 시체를 먹는다며 어묵을 처묵는 상상할수도 없는 개소리를 하는 놈들과
똑같은 짓이라니요. 비교할걸 비교해야죠.
잘되면 다음에는 ㄷㅅㅇ ㅅㅈㅎ ㅅㄹㄷㅇ ㅅㅈㅎ ㅎㅇㄹ ㄷㅅㅇ ㄴㅇㄴㅇㄱㄷ
개들이 흘레 붙는 과정과 비슷하니... 아닙니다. 여기까지 하죠. 이거야말로
당신들의 방식이네요.
그 고속도로 건설할 때 강제로 사유지를 빼앗았음.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 넣고 그걸로도 모자르니까 월남전 파병 장병에게 가야 할 돈을 가로채서 집어넣었지.
건설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어나갔고 졸속으로 부랴부랴 지어놨더니 교통량도 낮고 한동안 애물단지였음. 엄청난 부실공사로 수리비만 어마무시하게 들어갔지.
이런 영상이 올라올 때.. 한국은 오랜 역사와 문화 국가였다는 것을 상세하게 댓글로 남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나도 남기겠지만.. 어떤 외국인 말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제삼자 외국인들은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르니.. 팩트를 가지고 한국의 오랜 역사를 설명해 주는 댓글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박정희의 독재와 재벌 떄문에 한국이 발전했다고 외국인들이 세뇌됐구만
핵심은 새마을 운동으로 인한 강한 정신력으로 전국민의 단합 때문에 나라가 빨리 발전한거다
마음만 먹으면 불가능이 없다라는 말이 이때 전국적으로 일심동체화 된거다
후대를 위해서 모든것을 포기하고 하나에만 매진했기 때문이야
다른 나라들의 지도자와 대기업들은 왜 못하냐?
웃기는 얘기다
이 운동은 박정희 정부에 의해 1969년 새마을 운동으로 명명되었고, 전국적으로 시행, 1975년에는 도시와 공장으로도 확대되었다. 1973년부터 새마을운동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여 전국민적 운동으로 확산시켰다. 1973년 1월 16일 대통령령 6458호로 내무부에 새마을 담당관실을 설치하고 그 산하에 4개의 과를 두었으며 3월 7일 박정희 대통령 비서실에 새마을 담당관실을 설치했다.
분명히 박정희가 잘한일도 있었겠지만 국민들의 눈과 귀와 입을 너무 막아버렸죠..3번의 외환위기및 국가부도(69.74.79)가 있었고, 월남장병들의 급여를 속여서 100달러만 지불하고 나머지 90%는 행방불명이고, 파독광부및 간호사들이 힘들게 달러보내주고 중동에서 노동자들이 달러보내주고,유엔이나 해외지원도 많았고, 국내에서는 싼노동력이 풍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부도가 난것은 정말 불가사의하죠!
미상원 사이밍턴 위원회, 한국뿐 아니라 월남참전 13개국 현황 상세 조사 ‘소위(少尉) 3분의 1 값에 팔렸다’는 주장은 사실무근…
미, 3개국 동일액수 지원 확인, 한국군 해외근무수당, 필리핀보다 많고 태국보다 적어…3개국 큰 차이는 없어 정부가 진작 사이밍턴 회의록 입수했다면 헐값파병 의혹은 조기에 해소할 수 있었다
9월 29일은 미국이 월남(베트남)에서 완전히 철수한 지 49년이 되는 날입니다. 한국도 이날 대사관과 교민들이 철수했습니다.
월남 철수 49년과 오바마대통령 방한 등을 맞아 미 국방부 보고서를 수록한 사이밍턴청문회 회의록을 입수, 그동안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됐던 월남전 해외근무수당의 실체를 짚어봅니다
월남전 해외근무수당, 다른 참전국과 동일 이 회의록은 미국이 지급한 월남전 참전 한국 군인의 해외근무수당이 다른 참전국보다 턱없이 적었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부는 사이밍턴청문회 회의록 원본이 아니라 국회 사무국에서 번역한 사이밍턴청문회 회의록 중 한국관련 1권과 국방부 문서 등을 통해 해외근무수당 관련 의혹을 부인해왔으나 이번에 사이밍턴청문회 회의록 12권 전권을 입수·확인한 결과 한국 참전군인들은 필리핀과 태국 참전군인과 대등한 대우를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확인 결과 미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산하 ‘안보협정 및 해외공약 소위원회’는 1969년 9월 30일부터 1970년 11월 24일까지 1년 2개월에 걸쳐 월남전에 참전한 미 동맹군 13개국 지원현황 등을 샅샅이 조사하고\ 2400여페이지 분량의 회의록 12권을 남겼으나 그동안 한국 정부는 한국군 관련 회의록 1권, 그나마 원본이 아닌 번역본 1권만 확보, \다른 나라에 대한 미국의 지원상황을 명쾌히 밝히지 못함으로써 헐값파병 의혹을 키운 셈입니다.
월남전에 대한 조사를 했던 이 위원회의 청문회는 위원장이 스튜어트 사이밍턴 의원이었기 때문에 ‘사이밍턴청문회’로 불리고 있으며, 그 회의록은 월남 참전국 13개국에 대한 미국의 지원 등에 대한 증언과 함께 미 국방부가 제출한 지원보고서 등 상세한 증거를 담고 있습니다.
사이밍턴청문회 회의록 중 필리핀·태국·한국 회의록 각 표지. 사이밍턴청문회 회의록 중 필리핀·태국·한국 회의록 각 표지.사이밍턴청문회 회의록중 미국정부가 월남전 참전국에 지원한 해외근무수당을 상세하게 언급한 대상국가는 한국과 필리핀, 태국등 3개국이며 미국방부가 계급별로 일목요연하게 그 액수를 명시한 내용은 한국군관련 회의록[사이밍턴회의록 6권] 1572페이지, 사이밍턴청문회 필리핀군관련 회의록[사이밍턴회의록 1권]265페이지, 사이밍턴청문회 태국군관련 회의록[사이밍턴회의록 3권] 842페이지에 수록돼 있었습니다.
한국군 관련 회의록(사이밍턴회의록 6권) 1572페이지. 한국군 관련 회의록(사이밍턴회의록 6권) 1572페이지.
회의록에 첨부된 미 국방부 보고자료에 따르면, 월남전 참전 한국군은 필리핀군보다 많은 해외근무수당을 받았고 태국보다는 약간 적게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은 참전국 군인들에 대한 해외근무수당을 참전국 자국에서 지급하는 월급수준에 준해서 책정했습니다.
당시 한국 사병들은 필리핀·태국보다 월급수준이 현저히 낮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근무수당은 상대적으로 많이 지급받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동안 한국 일각에선 ‘정부가 필리핀이나 태국의 3분의 1에 불과한 돈을 받고 젊은이들을 베트남으로 보냈다’는의혹이 제기돼왔습니다.
한국군 소위(少尉)의 해외근무수당은 151.55달러 필리핀군 소위는 441.92달러, 태국군 소위는 389.33달러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위의 회의록은 이 의혹이 전혀 사실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미 국방부는 사이밍턴청문회에서 미국이 소위에게 지급한 해외근무수당은 한국군과 필리핀군 및 태국군 모두 매월 120달러로, 3개국 소위에게 똑같은 액수를 지급했다며 관련 근거 등을 제시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지급하던 소위 월급은 1967년 34달러, 1969년 47달러였으며 필리핀 정부가 지급한 소위 월급은 90달러, 태국 정부가 지급한 소위 월급은 50달러로 기록돼 있습니다.
즉 필리핀 소위의 월급은 한국의 2.6배였지만 미국이 한국군 소위에게 지급한 해외근무수당은 월 120달러로 필리핀 등 다른 나라와 차이가 없었습니다.
사이밍턴청문회 필리핀군 관련 회의록(사이밍턴회의록 1권) 265페이지. 사이밍턴청문회 필리핀군 관련 회의록(사이밍턴회의록 1권) 265페이지.또 중위에 대한 해외근무수당도 매월 한국과 필리핀이 135달러로 동일했고 대위는 150달러로 한국, 필리핀, 태국이 모두 같았습니다.
소령 이상은 한국과 필리핀은 동일했고 태국군은 계급이 올라갈수록 최소 10%, 장군급에서는 30%정도 많았으나 그 대상 인원은 1~2명에 불과할 정도로 극소수였습니다.
사이밍턴청문회 태국군 관련 회의록(사이밍턴회의록 3권) 842페이지. 사이밍턴청문회 태국군 관련 회의록(사이밍턴회의록 3권) 842페이지.특히 사병들의 경우는 한국군 병사의 자체 월급이 필리핀이나 태국의 수십분의 1에 불과했지만 미국이 지급한 해외근무수당은 한국이 필리핀보다 많았고 태국보다는 약간 적었습니다.
이병에 대한 해외근무수당은 한국군이 월 37.5달러인 반면 필리핀군은 33달러, 태국군은 39달러였고 일병은 한국군 40.5달러, 태국군 45달러, 상병은 한국군이 45달러, 필리핀군이 36달러, 태국군이 50달러로 밝혀졌습니다.
한국 정부가 지급했던 이병 월급은 1967년 1달러, 1969년 1.6달러인 반면 필리핀은 30배에서 40배에 달하는 43달러였고 태국군은 20배가 넘는 26달러로 나타났습니다.
이 회의록에 따르면 미국은 각국 정부와 월남전 참전관련 협정을 맺으면서 해외근무수당과 전사자 및 전상자에 대한 보상은 미국이 부담하되 기타 수당이나 부상 등은 모두 자국 정부가 부담하고 미국이 이에 대한 보전을 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명기했습니다.
즉 미국이 참전국에 지원한 비용은 해외근무수당과 전사상자보상금이며 나머지는 참전국의 자체 부담이었습니다.
또 1964년 처음 월남에 파병된 소수의 한국군에 대해서는 미국의 비용부담이 없었다고 명시돼 있어, 한국 정부가 1964년 수당을 지급했다’는 한국 국방부 주장도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참전국 자국의 봉급 수준에 준해서 해외근무수당을 지급한다는 미 국방부의 원칙을 감안하면 미국은 한국군에 대해 다른 참전국과 동일한 수당을 지급함으로써 한국군을 오히려 우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월남전 해외근무수당, 다른 참전국과 동일
그동안 끊임없는 논란이 됐던 월남전 헐값파병 의혹은 이렇게 명확히 입증될 수 있는데도 한국 정부가 초기에 명쾌한 해명을 하지 못함으로써 의혹을 증폭시킨 측면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2004년 11월 30일 한국 국방부는 고엽제전우회의 의혹 제기에 대한 답변 공문에서 ‘기타 연합군에게 지급된 관련자료’ 즉 미국이 한국 외에 다른 월남전 참전동맹국에게 지급한 해외근무수당과 관련한 자료는 ‘보유한 것 없음’이라고 답했습니다.
즉 미국이 다른 참전국에 지원한 현황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답함으로써 헐값수당 의혹을 부풀리는 계기가 됐던 것입니다.
또 이 공문에서 언급한 객관적 자료는 ‘사이밍턴청문회의 청문록’이 유일했으며 그나마 그 원문보고서를 입수하지 못하고 국회도서관 입법조사국이 1971년 10월 25일 간행한 ‘전후 미국의 대한정책’, 즉 사이밍턴회의록의 번역본만을 제시했습니다.
이 문서의 정식 명칭은 입법참고자료 제140호 ‘전후 미국의 대한정책’ (부제 사이밍턴위원회 청문록)으로 419페이지 분량입니다.
사이밍턴위원회가 13개 참전국가를 대상으로 무려 1년 이상 청문회를 진행하면서 미 국방부 보고서까지 첨부, 2400여 페이지 분량의 12권 보고서를 발간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전체 원문보고서는 물론이고 한국 원문보고서조차 제시하지 못한 것입니다.
한국 국방부는 2005년 8월 월남전 참전 용사들에 대한 해외근무수당은 다른 참전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정상적으로 지급됐고 매달 주한미군사고문단이 이를 결산했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전용할 여지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 같은해 12월에도 수천페이지의 한국군 내부문서를 추가 공개하며 태국군과 필리핀군에 지급한 해외근무수당이 한국군과 동일하게 지급됐다고 밝혔지만 태국군과 필리핀군 해외근무수당의 객관적 관련 근거, 예턴대 미국 측 지급내역 등을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현재까지 국방부가 제시한 미국 측 문건은 ‘국회도서관 입법조사국 1971년 간행물 ‘전후 미국의 대한정책’, 즉 사이밍턴청문회 한국회의록 번역본과 ‘베트남전에의 동맹국 참전’이 유일합니다.
한국 국방부는 ‘베트남전에의 동맹국 참전’ 문건을 미 육군성이 1985년 발행한 책자라고 밝혔습니다만 사실은 미 육군성이 1975년 첫 출간한 뒤 1985년 동일한 내용으로 재출간한 200페이지 분량의 책자입니다.
이 책자에는 각 참전국 별 해외근무수당은 구체적으로 명기돼 있지 않습니다.
이 보고서 57페이지에 계급별 해외근무수당만이 개략적으로 언급돼 있을 뿐입니다.
▲ 베트남전 당시 김성은 국방장관이 파월 장변의 해외 근무 수당을 협의하기 위해 비치 주한 미군사령관에게 보낸 서한일부.
전투수당 지급근거
한국군의 월남전 참전은 미국의 요청과 당시 한국내의 정치, 경제, 군사 등의 제반 요인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볼수 있다. 1964년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월남에서의 전황이 예상외로 어렵게 되자 한국을 포함하여 25개 자유우방국에 월남전 지원요청 서한을 보낸 것이다. 당시 5.16 혁명후 박정희 정부가 미국과의 관계개선과 경제 및 군사원조가 절실했던 시기로 과거 한국동란시 연합국에 진 빚에 대한 명분 이 아니더라도 미국의 동남아 전략속에서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한국군의 월남전 파병으로 경제발전의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만일 미국의 월남전 참전요청을 거부 했다면 주한 미군 2개사단이 월남전에 투입 될 것임으로 한국방어의 공백은 물론 한.미동맹의 심각한 타격을 주었을 것이다.
▣ 한국경제 기사회생의 돌파구
1962년부터 의욕적으로 시작한 제1차 경제개발 5개 계획은 출발부터 자금란으로 적자가 누적되어 1963년 수출 8.600만$에 경상수지 적자는 무려 2억 4000$ 이었다. 이 시기에 한국경제 기사회생의 돌파구로 작용한 것이 월남전 파병이었다. 한.미동맹의 결속과 경제 및 군사원조 등 난제들이 한꺼번에 해결 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더욱이 1966년 월남전 확전으로 미국이 한국군 전투사단 증파를 요청 해 옴으로써 또한번 우리 정부의 실리를 최대한 반영한 브라운각서에 의한 합의사항을 문서로 받아 내는 성과를 이룩했다.
브라운각서란?
1966년 3월 미국정부가 한국군 전투사단의 월남 추가파병을 요구 해 옴으로서 우리정부가 그 전제조건으로 요구한 양해사항을 당시 브라운 주한 미 대사를 통해 한국정부에 전달한 미국정부의 공식문서다. 한국은 1964년 비전투부대 파병에 이어 1965년 10월 국군 맹호사단 본대를 월남에 파견 했으나 월남정부는 전세가 불리 해 지자 미국을 통해 추가로 전투사단 파병을 요청 하였다.
이에 박정희 정부는 추가 파병에 따르는 국가안보에 대한 담보와 경제원조 및 미군 수준의 참전수당 등 선행조건을 미국정부에 제시했고 미국은 이에 대한 보장과 약속을 각서형식으로 다음과 같이 통고 해온 것이다.
군사원조
1. 한국군의 현대화를 위해 수년동안 상당량의 장비를 제공한다.
2. 베트남 추가 파병에 따른 소요경비와 병력에 필요한 무기와 장비를 제공한다.
3. 한국에서 추가병력 훈련 및 소요재정을 부담한다.
4. 한국군의 대간첩 활동을 위한 필요한 요구가 있을시 이를 지원한다.
5. 한국군의 탄약소요 증가에 따른 병기창 확장시설을 지원한다.
6. 베트남 주둔부대와 서울, 사이공 정부와의 통신망을 확충한다.
7. 한국군 작전을 위해 C-54 대형 수송기 4대를 지원한다.
8. 한국군의 막사,취사,오락실 등 부대 복지시설 개선을 위해 잉여물자를 제공한다.
9. 한국군 처우개선을 위해 1966. 3. 4일 비치 유엔군 사령관과 김성은 국방장관이 합의한 비율에 따라 미국이 한국군의 해외참전수당을 부담한다.
10. 전,사상자는 한.미합동군사위서 합의한 액수의 2배를 보상금으로 지급한다.
경제원조
1. 한국군 1개 사단과 1개 예비여단 편성에 소요되는 예산을 방출한다.
2. 한국군 파월 기간중 군원이관을 중지한다.
3. 파월 한국군에 필요한 보급물자, 용역 등 을 한국에서 발주한다.
4. 한국의 수출진흥을 위해 기술협력을 강화한다.
5. 현재 지원중인 1억 5천만$ AID차관외 한국의 경제발전을 돕기위해 추가로 1억 5천만$을 제공한다.
6. 베트남 수출지원을 위해 1천5백만$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 문제점 제기
2005년 외교통상부가 월남전 비밀문서를 30년만에 공개했으며 국방부도 당시 파월장병들에게 지급한 해외근무수당 내역을 사실대로 밝혔다. 그러나 1965년 전투사단인 맹호부대 추가파병을 조건으로 정부가 호주,태국,카나다 등 다른 참전연합국 군인과 동일한 수준의 전투수당을 요구한 자료와 당시 김성은 국방장관과 드와이트 비치 유엔군 사령관 사이에 합의했다는 영문원안은 지금까지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1)해외근무수당과 전투수당은 다르다
가. 박정희 정부는 1965년~1973년까지 8년동안 한국군 약32만 여명을 월남전에 파병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은 해외근무수당을 대통령령 제1895호 규정에 의거 아래와 같이 지급 했다. ( 1968년도 환율 : 1$=272,55원 )
나. 1975년 종전후 국내는 물론 미주 등에 거주하는 파월 장병들이 월남전 당시 해외참전수당(근무+전투)이 미군 및 연합국이었던 호주나 필립핀, 태국군에 비해 20%수준 이었음을 지적하고 정부에 진상조사 청원서를 내자 2005년 5월 국방부가 몇가지 근거를 들어 파월장병 수당은 적법하게 지불됐다는 발표를 했다.
그러나 공개한 내용은 해외근무수당과 전투수당에 대한 부분이 명확하지 않았으며 당시 협상의 주인공이었던 박정희 대통령과 김성은 국방장관이 작고 함으로서 전투수당에 대한 의혹은 미궁에 빠진 상태다.
브라운각서 제9항(한국군 파월장병 대우)에 비취 유엔군사령관과 김성은 국방부장관과 합의 했다는 계급별 해외근무수당에 대한 지급세항 영문원안이 없는 상태(은닉 또는 파기추정)에서 당시 대통령령으로 지급된 위 해외근무수당이 마치 해외근무수당+전투수당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음.
한국군의 베트남참전에 관한 <국방정책연구> 자료에서 서울대 박태균 교수는 월남파병 군인들의 월급 및 수당은 얼마를 받았는지 의혹만 남아 있다고 했다. 또한 다른 국방부 자료를 보면 한국군의 월급과 전투수당 등이 미국과 호주, 카나다, 뉴질랜드 등 다른 참전국과 비교 할때 크게 차이가날 수 없다며 전쟁터에서 목숨바처 피를 흘린 대가성 문제는 참전명분에 타격을 줄수 있음으로 지금까지 하나의 신화로 묻혀가고 있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2) 전투수당 지급 근거 및 자료
군인보수법 국방부제정 법률 제1338호(1963.5.1) 제17조(전투근무수당)에 의하면 전시, 사변, 국가비상사태시 등 전투에 종사하는 자에 대하여는 국가가 각령이 정하는 바에따라 전투수당을 지급한다로 되어있다.
1964년 최초 이동외과병원 및 비들기부대 등 비전투 부대원들에게는 해외근무수당을 지급한 것은 맞다. 그러나 1965년 맹호부대 증파부터 는 실제로 전시작전에 의한 전투대원으로 참전하였음으로 전투수당 지급근거는 명확하다.
1975년 미.육군성이 발간한<월남참전 동맹국에 대한 연구>논문 P-155를 보면 1965년 6월23일 김성은 국방장관이 증파에 따른 국회동의를 앞두고 주한 유엔군사령관 비치장군에게 파병조건으로 제시한 10개항 중 8항에 의하면,( Provision of financial suport to Korean units and individual in Vietnam, including combat duty pay at the same rate as paid to US personnel.---)
註) 파병되는 한국군 장병들에게 미군에 지불되는 동일수준의 전투수당을 지불 하기로 하고 전상자의 보상금과 현지 월남 고용인의 급료도 미국이 지불한다. 로 되어있다.
위와같은 근거자료로 보아 최종적으로 합의 할시 조정 되었음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연합군의 20%수준은 턱없이 적은 액수로 박정희=김성은, 비치장군=김성은 장관 사이에 이면계약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박정희 영도력<베트남 파병과 한국과학기술>책자에도 월남파병장병의 해외근무수당 가운데 일부가 이면계약을 통해 전용됐다는 의혹이 있다고 했다.
3) 전투수당 증언과 천문학적 자산
2012년 4월 18일 한국군 2대 주월사령관이 었던 이세호 대장(예)은 서초동 전자랜지 강당에서 있은 안보강연에서 월남파병 해외근무수당에 대해서 언급 하면서 정부가 미국측으로부터 병장기준 500$을 받아서 1/10인 50$만 지급하고 나머지는 국고에 귀속하여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국가기간산업 확충을 위해 썼다고 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박정희희 대통령이 서독을 방문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보고 1968년 2월 착공하여 1970년 7월, 2년 5개월만에 완공한 우리나라 최대역사로 그동안 국가 기간산업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음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문제는 공사비 430억으로 월남파병 대가로 받은 미국의 원조, 그리고 월남특수 및 파월장병 전투수당 유입으로 충당했다.<국토연구원>자료에 의하면 현재 경부고속도로의 국가경제적 시너지효과는 연간 13조 5천억으로 평가 된다고 한다.
한편 1964년~1973년까지 약 8년동안 월남전에 한국군을 파병함으로서 얻은 ①미국의 군사원조는 약 17억$로 한국의 국방비 지출을 경감케 하였고 ②월남수출확대 급증과 ③물자수송 및 용역 등 전쟁특수로 12억 ④국내기업과 근로자의 월남진출에 따른 효과 등을 계산할 경우 총 외화수입은 대략 50억$로 추정했다. 당시 이 액수(5조)는 5천년 역사상 월남전 참전으로 얻은 천문학적 자산이라고 했다 <채명신사령관 회고록>
▣ 결 론
지난해 5월21일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대한민국 월남참전자회와 사)파월전사연구소에서 공동주최한 “월남참전 유공자의 공훈과 예우”에 관한 세미나에서 유영옥 경기대교수와 제성호 중앙대교수 등은 월남참전유공자와 타 유공자와의 형평성 문제를 지적했고 법무법인“주원”의 고정욱 변호사는 참전군인들의 전투수당요구는 정당한 권리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하겠다고 했으며 현재“월남참전권익포럼”주관으로 공청회 및 전국적인 서명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분명한건, 월남전 파병용사분들은 당시 보수가 문제가 아니라, 현재 처우에대해서 굉장히 불만을 갖고있습니다. 고엽제 후유증이란것도 굉장히 애매모호한 기준이 적용되기도하고, 현재 파병용사들에 대한 대우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죠. 누가 알아주기는 커녕, 사실상 파병가서 그나라 일반인 여자들을 대놓고 강@간했네 일반인을 학살했네 뭐네 하는 소리만 듣고있으니(당시
전시강@간은 불가능했고, 매춘이었다고합니다 하지만 세간에서는 그냥 월남 파병용사들이 무차별 강@간으로 애들 싸질렀다는 소리만 하고있죠)
물론 처자식들 먹여살리려는, 단순 용병이라는 시각도 존재하지만(저희 아버지는 장남으로써 동생들 대학보내려고 자원한 케이스입니다), 분명한건 이들의 희생으로 대한민국 발전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것도 사실이죠. 최소한 국가발전에 공헌에 이바지했다는 정도는 인정받고 싶어하는 편입니다.
요즘 이상하게 월남전 참전 용사들을 비하하던데
전쟁의 당위성을 떠나서
그 당시 어느 나라 어느 누구보다도 조국을 위해서 용맹하게 싸웠고
독보적인 대민지원과 전쟁사에 길이 남을 엄청난 전투들로 우리군의 위상을 높였죠
파병으로 인한 미국 경제 원조들도 그분들의 목숨값임을 부정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존중 받고 우리가 자랑스러워 해야 할 분들인데 이런 시선들이 안타깝네요
위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듯, 1960년도 한국 1인당 GDP는 155달러로, 짐바브웨 가봉보다 낮았지만,
일본은 479달러, 스페인은 396달러로 빔바브웨 가봉보다 그리 낫지 않았습니다.
그 후 한세대 반 정도인 50년 뒤, 2010년도경의 한국 일본 스페인의 1인당 GDP는
50년 전보다 100배 정도 증가했습니다.
1인당 GDP가 높을수록 더 높이기가 어렵다는 걸 감안하면, "경제 기적"을 말한다면 일본 스페인이 한국보다 더 합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후 30년만에 중국을, 40년만에 러시아를 전쟁에서 이기고, 50년만인 1차 대전 직후 경제규모가
4위에 오르고, 승전국 자격으로 UN의 전신인 국제연맹 상임이사국이 됐으며,
2차 대전으로 잿더미가 되고도 25년 만에 2위 경제대국이 됐고,
90년대 후반 일본의 1인당 GDP는 스위스와 1위 경쟁했습니다.
다수의 한국인이 "19세기까지 한국보다 못한 나라였다"고 평가하는 일본조차도 이러한 성공을 특정 개인의 공으로 돌리지 않고, 다수 일본인이 노력한 결과, 일본 민족의 저력으로 평가하는데
한국이 "아프리카 수준이던 한국이 이렇게 발전한 건 다 누구 덕분. 누구 아니었으면 결코 발전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논리구조상
한국의 자체적 역량 << 넘4벽 << 일본의 자체적 역량
임을 자동으로 인정하는 격입니다.
일본 정부/국민이 자국의 성공사를 세계인에게 설명하는 서사 구조가 winning mentality 에 기반을 둔 데 반해
한국 정부/국민의 그것은 losing mentality 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서사 구조를 한국정부가 세금 들여가며 세계인에게 홍보해 확대재생산하는 것이야말로
지금까지 혐한 일본인의 한국 비하 노력을 전부 다 합친 것보다 훨씬 큰 해악임을 모르는 사람은
사회과학적 분석력이 꽝인 셈입니다.
"이과생은 나라에 기여하는데 문과생은 탁상공론만 한다" "문과생이 또..." 라고 문과를 까는 사람이 가끔 있는데
대체 뭐가 진정으로 한국을 세계에 높이 알리는 길인지, 뭐가 한국을 비하하는 건지 구분도 못하는 사람은 문맹입니다.
"서유럽, 동아시아는 2차 대전 후 미국 원조를 받으면 산업/기업이 일어나서 경제가 발전했는데
왜 아프리카, 중남미는 원조를 받아도 산업/기업이 일어나지 않고 계속 가난할까?"
라는 20세기 말 서구학자들의 의문에서 나온 것이 바로
"국부의 원천은 지하자원이 아니라 사람이다." "인적 자원을 개발한 정도에 따라 국가 경제가 발전한다" "따라서 교육이 중요하다" "사회적 자본" 이라는 일련의 논리이며
여기서 곁다리로 나온 말이 (아프리카가 왜 못 살까 변명거리를 찾다보니 나온 게) "자원의 저주"이며
연장선상에서 나온 통계가 바로 인간개발지수 HDI 입니다.
(저는 통계산정방식의 문제 때문에 HDI 를 신뢰하지 않지만 정말로 HDI 를 믿는 사람이라면
결코 "한국은 자원이 없는 나라이니 서유럽보다 임금이 낮은 게 당연하다"고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 HDI가 서유럽 수준 = 한국 인적자원이 개발된 정도가 서유럽 수준 = 한국국민은 서유럽 국민만큼 국부를 생산해, 소득 누릴 자격이 있다" 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
서구학자들이 한중일의 경제발전 비결을 설명하는 논리 구조는 기본적으로 위와 같습니다.
동북아시아는 지난 2천년간 유럽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문명 수준이 높은 지역이었다가
19세기 이후 100여년간 서구에 밀렸을 뿐입니다.
외국인들은 중국, 일본을 몇 세대 전에 아프리카 수준의 국가였다가 누구 덕분에 발전한 나라라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우니나라가 수십년 전에 아프리카 수준의 국가였다가 누구 덕분에 지금처럼 발전했다"고 말하는 중국인, 일본인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국에 먹칠하는 바보입니다.
중국 일본엔 그런 바보가 없는데 한국은 정부가 세금 들여가며 그런 자폭 논리를 세계에 확대재생산하는 것은
한국 스스로 중국 일본보다 클래스가 낮은 나라라고 동네방네 외치며 고개 숙이고 사는 격입니다.
말귀를 못알아 처먹네 이 인간은... 지금 박정희 추종자들은 경제발전의 모든 공이 우리의 위대한 박정희 각하 덕분~~ 이렇게 생각하잖아? 국민 모두가 우리도 한번 잘먹고 잘살아보자 즉 박정희 리더쉽 +미국 원조+모든 국민의 허리가 끊어져라 일해서 경제를 일군거라고 생각을 안한다고... 박정희 프레임에 씌인 인간들은...모든 공은 박정희 폐하의 은덕이야~~라고 외치고 있잖아..
뭔가 착각하신거 같으신데요. 당시는 전후복구에 매달리느라 무역량이 적었죠.. 1인당 GDP는 단순히 그나라의 무역량을 대비하는거로 일본이 단지 3배정도라고 해도 개들이 보유하고 있는 사회기반시설의 차이는 우리의 수십배였습니다. 우린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거라면 일본은 원래 좀 살던애가 부자가 된 경우로 우리랑 비교하는게 말이 안됩니다. 게다가 일본도 일왕이라는 구심점에 맞춰서 노력한겁니다...
게다가 일본 정부/국민이 자국의 성공사는 대부분의 식민지약탈에 의한 기반을 둔건데 지들이 똑똑해서 됬다고 역사부정하고 있죠..
참 웃기는 인간이네...
애초에 미국이 일본과 싸바싸바 안했으면 우리도 태국처럼 식민지는 안되을꺼고
그럼 애초에 분단도 안됬을꺼고... 그럼 625가 왜 일어남....
게다가 독도도 처음에 우리쪽에 편입시켰다가 쪽발이들이 뭐라그러니까...
나는 모름 알아서 하심한 것도 미국이고... 내가 미국을 까는게 아니라 미국도 우리에게 있어서는 좋은 기억도 있지만 신미양요같은 나쁜 기억도 잊지는 말라는 얘기에 의미지...
뭔 딱지같은 소리하네... 그렇게 할 일없으면 당신 코딱지나 파던지....ㅉㅉㅉㅉㅉㅉㅉ
좆족,짱개들은 60~80년대 한국인들이 얼마나 일을 많이하고 공부를 많이 시켰는지를 모름.
미국이 원하는대로 그렇게 만들수 있다면 동남아도 잘사는 나라 하나쯤은 나왔겠지.
니들 짱개들이야말로 바퀴벌레같이 많은 인구시장때문에 한국을 포함해 전세계 선진국기업들이 진출한 덕분에 그정도로 큰걸 다행으로 알아라.
거지같이 살던것들이.
그리고 미국덕에 컷다고 예시한게 딱 일본이라고 보면됨.
공산국가 견제하려고 온갖기술들 다 전수해줬잖아.최근까지도.
우리는 중국,북한하고 가깝다고 유출염려해서 잘 알려주지도 않고.
서양이 중세암흑기 시절때 한국은 세계최고의 기술국가이자 인권국가, 문화강국(금속활자, 측우기, 거북선, 세계최초의 10만명 이상의 국민설문조사등등)이었죠.. 우리는 다만 옛명성을 회복했을뿐..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한강의 기적만 강조합니다. 우리도 홍보방향을 바꿔야지요..
박정희 업적이 없다는분들 이해가 안가네요;; 박쥐같이 이리저리 붙다가 대통령까지 하시고 장기독재정권 잡고 자기 사리사욕 위해 국가를 주식회사처럼 잘 운영하셔서 값싼 국민들 미국 노예들같이 굴리고 수출해서 이렇게 잘살게 만들었잖습니까. 개같이 일한 그 시대 국민들은 자기들의 노동력 때문에 이나라가 이렇게 컷는지 모르시고들 세뇌 당해서 아직까지도 왕처럼 받들고 향수에 젖어 모시고 있죠. 분명 한국경제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경제 망하게 하고 전통과 인재를 싹다 뺐어가고 없애버린 일본과 북한의 충견이었으나. 참 거지같은게 아직도 새마을 운동 노래를 부르면서 훌륭한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로 남아있죠. 정말 아이러니 합니다. 결국 돈 이면 만사오케이인 나라가 됨.
박정희가 한국발전에 기여한건 사실이죠
왜놈이랑 지 멋대로 개코딱지만큼의 돈을 받고 식민지시절 퉁 쳐버려서 지금까지 보상문제와 위안부 문제로 이 나라를 골병들게 만들었고 경제 발전을 위하여 재벌시스템을 만들어 우리 재벌들을 부유하게 만드셨죠 그 과정에서 벌어진 노동자 농민들의 희생은 뭐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때부터 정경유착이란게 시작되서 노동자 피빨아 번돈이 정치권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고 작금에 최순실같은 사태를 만들게 되었네요.
무엇보다 만주에서 독립군 때려잡으시다 신분세탁하시고 대한민국의 장교가 되신게 참 신기할뿐이구요 아 그러다 남로당에 가입하셔서 빨갱이짖거리도 하셨죠 참 그때 사형이 집행이 왜 취소됐는지...
지금 현재의 좆망하는 시스템의 초기를 구축하신게 우리 다까끼 각하시네
거기다 정신 못차리는 딸래미까지 생산하셔서 자손대대로 나라를 말아드시네
게다가 가끔씩 그 당시 한국 경제가 매우 어려워서 어쩔 수 없었다는 분들도 있는데
그렇게 애국자였으면 국가를 전복하는 쿠테타가 아니라 국회의원이 되서 대선에 도전하면 될 일 임.
박정희 독재하고
일본제국이 조선에 와서 지들 멋대로 국권 빼았고 식민 통치를 조선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자위질 하는 것과 뭐가 다른지.
정말 박정희얘기만나오면 매일 똑같은 레퍼토리네요..
박정희정권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킨건 맞지만 어떤 의미로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토대를 마련한 아이러니한 정권이죠.
민주주의라는게 그냥 아무곳에나 툭 던져준다고 올바르게 굴러가는것도아닐뿐더러 민주주의가 제대로 굴러가는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중 하나인 중산층을 양산하는데 큰역할을 한게 사실아닌가요?
지금 시대상으로 그당시를 보면 진짜 최고의 사회악중 하나일지 몰라도 그당시 시대의 관점에서 봐야하는게 맞다고보네요.
대도시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지역에 가로등이고 전기고 하나없어서 실제로 호롱불켜고 생활했고 끼니도 잘 못먹고 보릿고개넘기면서 힘들게 생활하다가 시골 구석구석까지 가로등하나씩 들어오면서 하루의 활동가능한 시간이 길어지며 더 생산성이 높아지고 그런 모든장면을 직접 목격하신분들이 박정희의 모든걸 부정하지않고있는데 왜 지금 시대상에 놓고 판단해서 모든걸 욕하는지 모르겠네요.
경제발전얘기하면 꼭 그건 누가 대통령이였어도 됐을일이였다. 미국이 다해놓은거다니 뭐니 별 말같지도 않은 말을 하는데 그러면 박근혜가 나라 개똥같이말아먹은건 누가 대통령이였어도 벌어졌을일인가요?
국민의 근면성실함이 발전시킨거지 정부는 한게 없다는 얘기도 많은데 분명 국민들의 피땀어린 노력과 성실함덕분에 발전할 수 있었지만 그건 위에서 방향제시가 되었기 때문아닌가요? 국민들이 노력만한다고 발전되는거 아니고 정부가 발전계획만 세운다고 발전되는거 아닙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거 아니겠습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권력욕에 눈이먼 쓰레기이지만 공과 과는 확실히 구분해야죠.
나쁘다고 생각한다고 모든걸 나쁘게 얘기하면 일베충같은 것들이랑 뭐가다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