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할때)나라의 ‘구다라강(百濟川) 옆에 구다라궁(百濟宮)과 구다라노데라(百濟寺)라는 큰 가람을 지었다. 조메이왕이 구다라궁에서 살다가 서거했을 때 ‘구다라노오모가리(百濟大殯)’로 장례를 치렀다’"
-일본 서기
14세기 초에 씌어진 일본 불교 왕조사인 ‘부상략기(扶桑略記)’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推古天皇元年正月, 蘇我大臣馬子宿. 依合戰願, 於飛鳥地建法興寺,
立刹柱日 島大臣竝百餘人 皆着百濟服, 觀者悉悅, 以佛舍利, 籠置刹柱礎中.”
588년, 백제 왕실에서 건너온 건축가 태량미태(太良未太), 문가고자(文賈古子) 등에 의해 일본 최초의 칠당 가람이 아스카에 착공됐다. 위 대목은, 스이코 여왕이 등극한 직후인 593년 1월에 소가노우마코 대신과 만조백관이 ‘백제옷’을 입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기뻐하는 가운데 백제에서 보내온 부처님 사리함을 찰주의 기초 속에 안치했다는 내용이다. ‘만조백관이 ‘백제복’을 입었다’는 것은 스이코 여왕의 아스카 왕실이 백제계 왕가임을 말해준다.
태화 4년 5월 16일 병오일의 한낮에 백 번이나 단련한 철로 된 칠지도를 ○○○○가 만들었다. 온갖 적병을 물리칠 수 있으니 제후국의 왕(侯王)에게 주기에 알맞다. 지금까지 이런 칼이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 기생성음이 일부러 왜왕을 위하여 정교하게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토쿄대 이노우에 교수
"일본은 고대 한국인이 세운 나라이다. 일본은 임나일본부 설치를 날조했을 뿐 아니라 오오진(應神)왕이 백제계 부여(夫餘) 후왕인 의라(依羅)이며, 기토라 고분의 40대 텐무(天武)왕은 신라 김다수(金多遂)임에도 일본인으로 변조했다. 최초로 일본을 지배한 천황은 백제인의 후손인 15대 오우진(應神·4세기)천황과 16대 닌토쿠(仁德·5세기)천황 부자다. 오우진 천황이 백제 복식을 입었다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나온다. 이들 천황 부자에 의해 고대 일본의 가와우치(河內)왕조가 세워졌다.
USA캘리포니아대학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
고대 한국인의 선조가 일본의 원주민 [조몬인],[야요이인(한국을 제외한 대륙민족)], [아이누족]을 정복하므로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탄생 시켰다.
존 코벨(John Cater Covell,1910~96)
"일본의 신도(神道).. 일왕의 뿌리..일본고분에서 출토되는 유물등...한반도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다..놀라운 일이다
심지여 1945년 8월15일 일왕이 자신이 타고 다니던 백마를 맥아더에게 넘기는 것으로 항복을 표현하는 것조차 한국식 이다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1927∼ ) 교토대학 사학과 명예교수는 일본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국보급인 고대 ‘신찬성씨록’을 자택 서재에 보관하고 있다. 우에다 교수는 그 책을 직접 필자에게 보여주면서 “비다쓰 천황은 백제 왕족이다.
"왜국을 최초로 정복한 한반도의 왕국은 가야가 틀림없다,왜국에서 발견되는 철기 무기가 모두 가야의 제품으로 재질 또한 가야의 철이다"
카큐슈우인대 오오노 스즈무 교수
"한국인은 일본인에게 금속 사용법을 가르치고, 야금·금공 기술을 전했으며,
염색·피혁제조·베틀 직조·기와 제조·의학·역법·천문학·조불(造佛)·사찰 건축·조탑 등 모든 것을 가르쳤다”(‘日本語の 世界’, 1980)
일본에 쇠로 만든 무기와馬具.쇠투구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때는 서기 4세기 후반인데, 이 시기의 일본 고분에서 나오는 철제품은 성분이 한국의 것이며, 일본의 철로 만든 제품은 5세기 후반에야 나타나기 시작한다.
(新日本 제철 야와타 연구소의 분석결과)
이두로 이 글을 다시 풀어보니 놀랍게도 이것은 고구려가 남침한 369년 당시 백제 땅이던 하동에서 후왕으로 있던 장수 집안이 동경까지 망명온 뒤 이곳에서 다시 백제 후왕으로 책봉된 내용을 담은 집안 이야기 였던 것이다.
이두로 풀이한 칼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기 471년에 “고” 확고는 조상이름을 적어 둔다. “오호 비꼬”어르신, 그 아들 “다가리 쪽니”어르신, 그 아들 “고리 확고”, 그 아들 “다사기 확고”. 그 아들 “바라 고비”, 그 아들 “가사 비리”, 그리고 그 아들은 “고 확고”이다. 오늘날까지 우리는 장수로서 대대로 섬긴바 그 임금님은 사기궁에 마실을 차리고 천하를 다스리시는 크신 확가 개로 대왕이시니라. 온 번 불리고 달구어 만든 이 칼에 우리 집안 내력과 뿌리를 적어두는 바이다
...................
이렇듯이 이나리야마 쇠칼의 글은 5세기 가운데 즈음에 옛 일본의 관동, 관서, 규슈 등 세 곳에 백제가 다무로를 다스리고 있었으며, 왜 왕실은 백제 왕실에서 갈라져 나왔음을 밝혀주는 귀중한 역사자료인 것이다
일본인들 열폭하겠네요^^.
위 소개한 댓글 중 일본인이 이걸 한국에 줬다고 하다니....
일본인들은 자기 역사에서 서민들에게 도자기가 엄두를 내지 못하는 물건이었다는 걸 모르죠.
한국의 아주 극히 평범한 막사발이 일본 국보 1호인 것을 그들은 잘 모르죠.
도자기와 밥상(목재)의 조화는 일상 주막이나 기생집이 음식의 가짓수나 종류는 달랐지만 그 기풍은 비슷했죠.
일본 애들이 일제강점기에 한국 와서 놀란 게 귀족이나 먹을 수 있는 요릿집의 요리였죠.
지금도 지방 출장 때 전라도 상차림을 보면 일본인들은 놀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