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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ch] 日 언론 "일본인도 고유종 존재!? DNA로 보는 일본인의 기원"
등록일 : 17-12-29 13:55  (조회 : 35,694) 글자확대/축소 확대 축소 | 프린트

<일본언론 보도내용>
일본인에게도 고유종이 존재했다!? 미토콘드리아 DNA로 거슬러 올라가 보는 일본인의 기원
 
 
현대 일본인은 죠몬인(縄文人/토착민)과 도래인(渡来人/한국 중국 등에서 넘어간 사람들)간의 혼혈로 탄생했다. 국립과학박물관에서 인류의 DNA에 대해 연구하는 시노다 켄이치 박사는, Newton지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인류의 기원을 찾는 연구에서는, 모친으로부터 아이에게 계승되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하여 같은 특징을 같는 그룹 「하플로 그룹」으로 분류하는 방법이 사용된다.
 
 현대 일본인의 DNA에는 죠몬인과 도래인의 DNA가 대략 2:8의 비율로 남아있다고 한다.
그 죠몬인의 DNA가 M7a와 N9b이다.
 
 M7a는 일본인에게서 밖에 볼 수 없는 그룹이며, 한국 일부에서 확인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는 죠몬시대에 일본으로부터 한국으로 이주한 것으로 생각된다. M7a는 남방에 기원이 있다고 여겨진다.
 
 N9b도 또한, 조선반도 연안부에서 일부 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일본인에게서 밖에 볼 수 없는 그룹이다. N9b는 시베리아 부근에서 기원한다고 여겨진다.
 
 이는 대륙에서 온 도래인들이 일본에 정착하고 있던 죠몬인을 도태시키지 않고 서로 어우러지며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하여 현대 일본인의 기초가 되는 야요이인(弥生人)이 탄생했다.
 
또한 죠몬인의 DNA로 보이는 두 개의 그룹은 북방(시베리아 계)와 남방(아시아, 동남 아시아 계)를 기원으로 하는 두 종족이 있었다는 것도 이해 할 수 있다.
 
 인류의 기원은 동아프리카에 존재했던 신인류(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고 여겨진다. 그 동아프리카를 떠난 집단의 일부가 일본열도에 도착하여, 일본인의 선조 중의 하나인 죠몬인이 되었다고 보인다.
 
 신인류가 어느 타이밍에 일본 열도에 온 것인지 까지는 판명되지 않았다. 죠몬시대(약1만5000년-약3000년 전)에는 죠몬토기로 대표되는 수렵이나 물고기 잡이를 중심으로 한 독자 문화를 구축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야요이 시대(약3000년-약1700년 전)가 되자 대륙으로부터 도래인이 넘어와 죠몬인과 합류하였고 벼농사 문화 등을 전수했다. 그리하여 야요이인이라는 호칭이 붙은 것이다.
 
 그 이후의 일은 일본사를 풀어나가다 보면, 일본인이 어떤 역사를 구축해 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죠몬시대와 야요이시대의 문화 레벨에 큰 차이가 있었기에, 죠몬인은 멸망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DNA 감정을 해 보니, 일본인의 원종이라고 할 수 있는 죠몬인의 DNA는, 현대 일본인들에게도 확실하게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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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ch 댓글반응>
 
 
 
ID:KPbmmsuV0
일본인의 뿌리는 한국인
 
 
 
ID:hhDSTBz70
조선반도에서 쫓겨난 패배자들이 일본인의 선조
 
 
답댓글
ID:SPM6i+6L0
바다가 무서워서 못 건넌 겁쟁이들이 한국에 남은 게 아니고?
 
 
 
ID:5FEMhA8P0
일본인은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황색인종」이 아니야
황색인종(옐로)이란 건 한국인이나 중국인을 지칭하는 말이고
구미에서는 오히려 일본인은 백인 동료라고 생각한다고
 
 
답댓글
ID:gON/Afr20
구미인은 아시아인을 한덩어리로 보지
일중한 차이도 모르고, 아시아인이라고 경시한다고
구미인은 백인지상주의
 
 
답댓글
ID:hhDSTBz70
말도 안돼
옐로 잽이란 말은 아이도 쓰는데
 
 
 
ID:zmpae6Lf0
일본인의 시조는 한국인이겠죠
얼굴도 성격도 닮았는데
 
 
답댓글
ID:dbuXxV2G0
전혀 다르거든
 
 
 
ID:LR4TrqpU0
일본인은 아주 먼 옜날 조선반도에서 왔지요
즉 한국은 일본의 선조님이자 형님이지요
덴노(일왕)도 순혈 한국인이라고 하잖아요
 
 
 
ID:hhDSTBz70
일본인의 80%가 한국에서 온 도래인이라고
사실을 인정하자
 
 
 
ID:drQs+V1I0
즉 죠몬혈통은 조금 밖엔 안 남았다는 거네
 
 
 
ID:6JYqVl9q0
일본인은 천손(하늘의 자손) 강림으로 탄생한 민족이라 다른 민족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요
 
 
 
ID:5PzAuVwT0
일본원숭이가 진화한 게 일본인
 
 
 
ID:u6ThF4YC0
결국 어느쪽이던 아프리카인
 
 
 
ID:gkzKRh520
나쁘게 말하자면 잡종
좋게 말하자면 하이브리드
 
 
 
ID:u1x0Ha7+0
한국은 일본의 형님이 아니라 어버이였던 거구나. 놀라워
 
 
 
ID:6zC49qv00
한국 중국과 같은 인종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가 막 전해져 오네!
 
 
 
ID:SZQUUD7m0
일본인 고유종은 아이누 말하는 거 아니었어?
 
 
 
ID:2KNZkdQR0
매일 이런 짓 저런 짓 해 봤자
무엇보다 한국이 싫고 누구보다 한국인이 싫다고
유감이지만 이것만은 변하지 않지
 
 
답댓글
ID:u1x0Ha7+0
같은 뿌리를 가진 민족이라고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서로 증오하는 걸지도
 
 
ID:TF9fAVad0
바보같은 소리 하지도 마라
 
 
 
ID:3qOw3G750
그러니까 남한의 일한동조론(同祖論)처럼 끌어가고 싶은 공작인거지?
한마디로 역효과!
 
 
 
ID:/ThlKluK0
기원찾기 사이언스 방송은 일정 수요가 있더라
 
 
 
ID:OYqb82DB0
솔직히 이런 거 할 여유가 있다면, 현재인들의 DNA를 데이터 베이스화 하는 편이 여러 가지로 좋지 않아?
 
 
 
ID:nsQEleet0
아직도 이런 걸 해?
 
 
답댓글
ID:aVjy3dXt0
당연. 한국의 거짓말은 무진장해서 일본을 훔쳐갈 때까지 계속된다고
 
 
 
ID:Y4KyzbmW0
앞으로 재일을 인베이더라고 부르자
 
 
 
ID:TmZwarG10
뭐 죠몬인이 야요이 문화를 받아들여 야요이인화 한 거겠지
일본인은 예전부터 그랬잖아
 
 
 
ID:MD45AFh+0
일로 아시아계와 엮이는데. 중한은 가까우면서도 먼 느낌이 있어
 
 
답댓글
ID:hRNiHiny0
중한 사람들은 겉모습이 일본인과 차이가 없어서 더 그런걸지도 몰라
 
 
 
ID:Bw5NGxkY0
죠몬인이 오키나와인 아냐?
 
 
답댓글
ID:BgXMg5aD0
오키나와 포함 원래 일본열도에 살고 있던 혈통종족
오키나와와 남규슈, 도호쿠는 그 피가 짙어
 
 
 
ID:4E6KGFPT0
고래로부터 일본 국토에 살던 죠몬인보다도 벼농작 같은 새로운 문명을 들고 온
도래인의 자손이라는 게 더 자랑스럽다고 느끼는 건 나 뿐만인 건 아니겠지
 
 
 
ID:BzeWubxq0
한국인 보다 몽골인, 폴리네이아인 쪽이 일본과 가깝다는 소릴 들으면 안심되고 기뻐(´・ω・`)
 
 
답댓글
ID:FHi/cnMH0
그건 가짜뉴스야
우리들은 유서깊은 한반도계 민족이라고
 
 
 
 
ID:8vwOMG6Y0
일본인의 선조가 한국인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필사적이구나
 
 
 
ID:Jkz1DVMs0
이 화제를 다루다 보면 덴노는 외국인이 되버리니 그만두자
 
 
답댓글
ID:ev39acQn0
그런 소리 하자면 대부분의 일본인도 외국인이지
일본은 중국과 한국에서 온 이민자의 나라
죠몬인도 믹스, 미국 같잖아
 
 
답댓글
ID:WaLjUept0
뭐가 문제인데?
진실이 알려지면 좋지 않다는 거야?
덴노가 그 정도의 존재인가?
당당하게 논의하자고
 
 
답댓글
ID:Cklo5FLP0
일본 귀화해서 10세대 지난 사람을 외국인 취급은 하지 않지
 
 
ID:OXquZbx00
일본열도 원주민과는 별도로 야요이인이라는 인종이 있었던 것처럼 말하지만 요는 전부 왜인이란거잖아
 
 
ID:UtcY3c5Q0
일본인은 A형이 많지, 그 다음엔... 알지?
 
 
 
ID:w23PZBnQ0
브라질인은 거의 O형
 
 
 
ID:xfYtrFjj0
고릴라는 전부 B형
 
 
 
ID:Ac4wzcU10
중국은 일본의 어버이
한국은 일본의 형님
 
 
ID:nCXKamyy0
허리가 길고 다리가 짧은 건 야요이와 죠몬, 누구 탓이냐?w
 
 
답댓글
ID:mQbYWgYb0
그건 야요이
 
 
 
ID:Y5DSoV620
덴노라는 이름으로 많은 무지한 일본인들로부터 친근하게 여겨지는
한국방면에서 온 도래인이, 벼농사를 지도해 주셨습니다
현대에도 그 자취가 남아 니이나메사이(新嘗祭)라고 해서 쌀을 바치는 제사가 있지
하지만 덴노에 종속되지 않았던 죠몬인들을 학살하거나 차별했던 건 잘못
이건 확실하게 반성해야 해
 
 
답댓글
ID:Sx5vW5/o0
「덴노」는 「일본토인(원주민)」이 아니라 「정복자」라고?
그래서 일본에서는 「토인」이 경멸어인 건가
 
 
 
ID:Hg/kUAnC0
한국인은 일본인을 싫어하니
유전자가 다른 편이 기뻐할 일일 텐데
왜 필사적으로 일본인과 같은 유전자인걸로 하고 싶어 하는 거야?



번역기자:kei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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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현 17-12-29 13:57
   
ID:5FEMhA8P0
일본인은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황색인종」이 아니야
황색인종(옐로)이란 건 한국인이나 중국인을 지칭하는 말이고
구미에서는 오히려 일본인은 백인 동료라고 생각한다고
-
제정신인가 이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arauder 17-12-29 14:28
   
진화가 덜된 죠몬인을 백인계로 보는 망상이 남아있죠. 네안데르탈인의 특징을 가장 많이 가지고있다가 사라진게 죠몬인인데 뭐가 자랑스럽다고... 나같으면 꺼내지도않을듯
     
Nightride 17-12-29 15:36
   
오히려 19세기 말에, 서구 학자들이 한국인의 생김새를 보고 '그들은 아리안의 후손이 아닐까'하는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었죠 ㅎㅎ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58291
     
Attcamo 17-12-29 16:33
   
정말 필사적인 자위질ㅋㅋㅋ보기 안쓰러울 정도네욬ㅋㅋㅋㅋ
     
닥목치고 17-12-29 16:38
   
일본은 법으로 신경정신과는 무료 의무진료를 해주는 법안을 통과시켜야 할 듯
     
블뱀 17-12-30 04:16
   
이런 생각이 의외로 많더군요 일본은 아시아가 아닌 유럽이라 생각한더던가 남아공이 인종차별주의일때 일본과 무역때문에 일본을 비아시아로 푼것도 그런이유다 라고 이상한 논리들....
붉은깃발 17-12-29 13:59
   
넷우익 : 빼애애애애액!!
아티파이어 17-12-29 14:00
   
3등이네...
풍선3개 17-12-29 14:00
   
황인종에 해당되는건 한국 중국이고
구미에서는 일본인을 백인 동료로 생각한다


이 뭔 뻘소리인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백운거사 17-12-29 16:58
   
백인에 대한 일종의 사대주의죠.
비구름 17-12-29 14:01
   
맞아. 니넨 일본원숭이가 진화한 종족이지.. 어딜 봐서 사람이야.
바야바라밀 17-12-29 14:02
   
지네들이 주장하고 우리가 그런소리 한다는 정신병적인 망상..
BTJIMIN 17-12-29 14:05
   
번역 감사합니다
풍선3개 17-12-29 14:06
   
한국의 거짓말은 일본을 훔쳐갈때까지 계속된다


이건 또 뭔 ㅋㅋㅋㅋㅋㅋㅋㅋ뚝하면 침략 엿보고 훔쳐갈라고한게 일본 아닌가...
이 분 북한보다 더한듯요. 북한은 인터넷도 막히고 세뇌당하기 좋은조건인데
이 사람은 그냥 뇌가 세뇌당하기 쉬운 구조인가...
직장인 17-12-29 14:09
   
번역 수고하셨어요

이런건 절대로 일본과 엮이는게 싫어서인지 왜인들의 뿌리는 중국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ngngng 17-12-29 14:11
   
알게뭐냐 ㅋㅋ 어짜피 한국인도 단일민족이라지만 북방계와 남방계가 혼합되어 이루어진게 사실
LikeThis 17-12-29 14:17
   
ID:hhDSTBz70
조선반도에서 쫓겨난 패배자들이 일본인의 선조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너무 정확하게 알고 있네...
     
Alice 17-12-29 14:31
   
팩폭.......
알개구리 17-12-29 14:18
   
죠몬인의 대표 = 스즈키 이치로...그냥 딱 원숭이임...
라인크로스 17-12-29 14:25
   
쟤넨 요즘도 명예백인 생활하고 있구나
모란 17-12-29 14:31
   
근데 얘네들 사정이 안좋나...
현실인식 하는 애들이 많아지네
NASRI 17-12-29 14:33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0035632

지들이 묻어놓고 다시 파내서 역사 날조하는게 일본놈이죠.
핵이님 17-12-29 14:33
   
ID:5PzAuVwT0
일본원숭이가 진화한 게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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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판타지를 말하고 있을때 혼자 외롭게 과학적 근거를 가진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구나
     
버섯머리 17-12-30 04:5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unnylee 17-12-29 14:33
   
육체만 아니라 정신적으로..고립종.
생물학적으로 섬에 갖혀살면 몸집이 소형화로 진화하는건 알려진 사실
이젠  정신적,문화가  퇴화  가속화 하느중..
     
ashuie 17-12-29 15:42
   
그것도 있고 근친교배도 있지요
왜소한 외모,한국인으로써는 상상도 할수없는 치열
같은것이 근친교배의 결과라고 합니다.
츄퐈춥스 17-12-29 14:38
   
그래...백인 하고 싶으면 백인해...
아니야 17-12-29 14:41
   
ID:Hg/kUAnC0
한국인은 일본인을 싫어하니
유전자가 다른 편이 기뻐할 일일 텐데
왜 필사적으로 일본인과 같은 유전자인걸로 하고 싶어 하는 거야?
------------------------------------------------------------------------------
싫은 건 싫은거고 팩트는 따져야지. 니들처럼 날조 좋아하는 줄 아냐?
     
프로불편러 17-12-29 22:20
   
우리 입장에선 같은 유전자인게 기분이 좋은건데 말이죠 ㅋ
한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도래인들이 미개한 일본 토착민들에게 선진 문화를 전수하고 지배하면서
세력을 넓혀 토착민들을 배제하고 나라의 틀을 갖춘것이 일본의 시작인데 어찌 기분좋은 일이 아니한가?
일본의 본격적인 농경사회가 한국에서간 도래인들의 지배하에 시작된 것이고
지금도 스스로 한국인이라 칭하는 일왕을 둔 일본은 정신적으로 한국의 지배하인것이 다름없지 않은가?
물어봐 17-12-29 14:43
   
명예백인 ㅋㅋ
헝그리댄서 17-12-29 14:43
   
잘보고가요
뚜뚜루뚜 17-12-29 14:43
   
얘네들 은  항상 기원이나 유래가 역행으로 들어감 

인류의 기원부터  아프리카 ->유라시아 대륙->  동아시아  개념도  무시하고
    국가의 기틀    황화강 -> 반도 -> 열도        이 개념도  열도에서  국가의 기틀 확립해  우리가 따른걸로알고있고
불교 수용으로 왕권강화  인도 ->  중국대륙 -> 반도  -> 열도  이것도  인도 ->중국 -> 열도  -> 반도로
일본의 불교의 영향을 받은게  한국 불교로 알고있음  골때리는 놈들임
     
푹찍 17-12-29 14:49
   
팔만대장경 가지고 싶어서 왜놈들이 미쳐 날뛴거 생각하면 ㅋㅋㅋ
     
노비킴 17-12-29 15:34
   
국가의 기틀 순서가 잘못 되어 있군요. 저희는 황하문명과 아무런 연관도 없고, 또한 황하문명(기원전 2100)과 비슷한 시기 혹은 오히려 조금 앞선 시기 (기원전 2333)에 이미 문명을 가지고 있었고, 국가도 존재했습니다. 중국과 한국의 청동기는 서로 양식도 다르고, 재료도 다르죠.
          
ashuie 17-12-29 15:46
   
맞아요
한국은 기원을 따지자면 중국보다 불가리아가 더 가깝습니다.(매우 의외죠?)
그야말로 중앙아시아 유목민족의 모든 특징이 다 드러난 신라금관을 보세요.
올여름 kbs에서 방영한 한국역사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뚜뚜루뚜 17-12-29 16:36
   
국가의 기틀 ..  다수의 족장 체제에서  중앙집권 의 왕이 지배하는 형태로  진화했다고 말한건데요  ??  이거 한국사 제일 처음에 나오는겁니다 .

군장국가 -> 연맹왕국 -> 중앙집권국가.
(족장)          (부족대표)    (왕)
율령반포 부터해서  중앙집권의 강력한 힘을 주는 종교수용 모두 중국대륙 국가의  영향을 받고 참고하여 발전한겁니다   

삼국의 독자적 특징, 생활상  문화등등 을 말한게 아니라  말그대로  국가의 시스템을 말한겁니다.  관제 관등  지방관 시스템 같은거요

앞서 말한대로  우리나라 삼국에서 넘아간 사람들 덕에  일본 의 여러  연맹들이 성장했죠
                    
굿잡스 17-12-29 17:51
   
율령반포 부터해서  중앙집권의 강력한 힘을 주는 종교수용 모두 중국대륙 국가의  영향을 받고 참고하여 발전한겁니다   

삼국의 독자적 특징, 생활상  문화등등 을 말한게 아니라  말그대로  국가의 시스템을 말한겁니다>??

이건 무슨 출제 시험 문제 마냥 역사를 너무 도식적이고 단편적으로 보는 시선으로

보이군요.

시대에 따라 오늘날 우리가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를 현대 국가에 도입해서 기틀 어쩌고

했다고 앞선 시기 대한제국이나 이전 근세 조선이 국가가 아니라는 식의 오해가 될수

있는 부분으로 보이군요.

그리고 일반적으로 서양 역사학에서도 그리스의 도시국가 같은 소국을 이미

역사적 발전 단계에서 국가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와 비슷한 우리 고대사에 이미 삼국 시대 이전 읍성 국가들에 대해 단순히 중앙

집권적 거대 왕국 형태가 아니라고 해서 단순히 족장이나 부족장? 왕의 개념이

없었을 거라고 보는 건 납득할 수 없는 발전 도식에

서토 왕조도 지방 분권적 제후 제도나 중앙에서 관리가 파견되는 중앙 집권적 형태가

시대별로 엎치락 뒤치락 하군요.

(서토 자체가 중앙 정부의 힘이 약화되면 이민족에 의해 수시로 정복되어

왕조가 교체되거나 유명무실해지면

각지역 군웅들이 들고 일어나서 서로 박터지게 싸우기를 반복했던 역사다 보니)


그리고 오늘날 정밀하게 발달한 현대 정치 국가에서 조차  도리어 중앙집권적

체재보다 느슨한 지방 분권적 체재의 국가들 역시 유럽 선진국등

세계에서 여전히 성행하고 있고

우리 역시도 대통령의 힘이 강하지만 지방 분권적 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상의 시스템을 단순히 일정한 도식화된 방향이나 발전 양상

혹은 어느 지역에서 일방적 어쩌고식은 좀더 제고와 고찰이 필요할 듯 보이군요.
                         
뚜뚜루뚜 17-12-29 18:46
   
우리의 삼한 등등 목지국 백재국  이미 한반도에선 수많은  국가들이있었습니다.
인정안하냐고요 ?? 아뇨  인정하고 있는데요 ??   

과거 한반도 국가의 발전은  최초의 군장국가 고조선과  일부 부족국가들
고조선이 멸망하고  등장한 연맹왕국 부여(왕 +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부여를 멸망시키고  연맹왕국에서 나중에 중앙집권국가로 성장한  고구려
 큰틀로 보면  고조선 부여 고구려로 이어지죠  그럼 여기서  나라가 발전함에 따라
관등 관제  밑  나라의일을 도맡다할 기관들을 꾸리는데  어디서 도움을 받았을까요 ??
바로 옆나라 한 수 당 의 시스템을 보고 발전했습니다.    일본도  우리나라가  발전하면서
만든 관제 시스템을 따라  도움을 받으며 성장했죠 

지금 재 글을 이해를 잘못한거같은데  저는  국가로서의 기틀을 확립한 나라만인정한적이 단 한번도없습니다.

간단하게  국가를 이런 기관을 두고  이렇게 운영하면 편하더라 ~~ 의 진행방향이 
중국대륙 -> 한반도 -> 일본 열도  이렇게 퍼져나간거죠

경찰법도 같습니다.  치안유지로 시작하여  개념을 확립한  영미법계 / 왕권의 선봉의서서 감시자가된 대륙법계    시작은  프랑스.독일->  영국 -> 미국 ->  일본 -> 한국  이렇게 되었다고 볼수있죠  (물론 전세계적으로 고대부터 치안을 담당하는 기관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개념은  고대  민주주의가 성립되기전  왕권을 기반으로 설명하는거지  현대의 대통령제를 가지고  왕권과 비비면서  우리나라는 지방분권적이다라고 하면  어이가없네요.
                    
굿잡스 17-12-29 19:25
   
국가의 기틀    황화강 -> 반도 -> 열도      >

님이 이런 글을 올리니 오해를 하는건 당연해보이군요ㅋ

서토에서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끝내고

분봉제를 폐지하고  중앙집권적 군현제를 실시한게

진(기원전 221년 ~ 기원전 206년)나라 출신인 진시황인데 뭔 뜬금포의 황하 어쩌고에

그 이전 서토왕조나 우리쪽 왕조는 국가 기틀이 없다는 식으로 오해 할만하군요.

그리고

열도의 일본은 우리 선조들 즉 삼한이나 가야 백제인들이 직접 들어가서 도시문명을

개척, 건설하고 국호까지 지으면서 만든 나라이고

서토와 우리 동방 고조선 고구려문명권은 서로가 알력을 가지고 또는 치열하게

싸우면서 서로 문화 정치적 교류들이 나온것이지 무슨 일방적 도식화에

그것도 어느 지점에서 지점으로만 일방적으로 받았다는 식은 분명 재고될

부분이기에 첨언한 것이군요.


님 말맞다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전형적 농경 문화권에 고대에야 대체로 평생 그 지역에서 땅파고 살다 죽을 농경내륙 황하강의

하한족들이 일찍이 외부와 선진 문화적 교류가 더 활발했겠음요??

아님 이미 이른 시기부터 초원길을 따라

북방 유라시아와 소통하면서 빠른 기마의 이동속도를 통한

북방 기마문화권의 국제적 문화,기술 교류들이 더 활발했을것 같은지?

(서토에 통일 세력이 들어설때면 강성해져 우리가 때론 문화적 교류와 영향력도 받았지만

애초에 서토 내륙 하한족 자체가 이런 내륙에 박혀 있던 농경문화권이다 보니

국가의 기틀 역시도 이들 세력보다는 외부 세력에 의해 정복당하면서 그곳의

곡창 생산력의 증대와 노예 노동력 확보와 맞물려 자극받고 수혈되면서 발전하고 때론

의복이나 문화들이 강제되었던 역사.)


진시황 이야기가 나와서 한마디 더 하자면

서토에서 민간 대중 신앙으로 인도에서 흘러들어온 불교 이상으로 보편화된 기복적 불로

장생의 도교적 원류를 찾아보면 사마천의 사기의 진시황본기에 진시황이 불로장생을 위

해 산둥의 우사(도사급)를 찾아가는데 그 우사가 이게 발해만일대에서 흘러

왔다는 기록도 있군요.(춘추전국시절 지리서인 산해경에 보면 발해만일대에 조선이라는

분명한 명칭이 적시).
                    
굿잡스 17-12-29 19:53
   
짱국 하남박물원(河南博物院)


장발영(張發潁)의 저서 <봉황토템 동이인 및 그 문화의 공헌>- <시회과학집간>2001년 2기- 에서

동이문화의 유적분포는
- 연산(燕山)의 남북과
- 료녕(遼寧)의 부신사해문화(阜新查海文化)를 포함해서
- 심양(沈陽)의 신락문화(新樂文化),
- 산동의 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 하무도문화(河姆渡文化)와

그 후의
- 조보구(趙寶溝), 흥륭와(興隆洼), 우하량(牛河梁) 및
- 은상문화(殷商文化)까지

동이문화는 봉황(鳳凰)을 토템으로 하였다.
통일된 문화체계는 아니지만 문헌에 기록된 이후의 생활은 이 지구(地區)의 조상들의 범칭(광범위한 동이문화)이다.
 
봉황을 모(母)토템으로 삼고 각종 새들을 자(子)토템으로 하는 북방 봉황토템 동이의 조상들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들은 모두 연산산맥(燕山山脈)의 동이문화권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다.
복희(伏羲)에서 하상(夏商) 2대까지 동이문화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 온 것이다.

동이족 사람들은
- 깃털달린 활과 화살을 발명했으며,
- 문자를 창조했으며,
- 청동기를 제작하고,
- 철을 단련했으며,
- 배(舟)와 수레(車)를 만들었고,
- 농업을 발전시키고 치수(治水)를 하였다.

http://cafe.daum.net/hupower/LOHB/54?q=%C7%CF%B3%B2%BC%BA%20%B9%DA%B9%B0%B0%FC%20%B5%BF%C0%CC%C1%B7
                         
굿잡스 18-01-01 00:22
   
國有玄妙之道하니 曰風流라.

우리 나라에는 현묘한 도가 있었으니, 일러서 풍류(風流)라 하였다.

設敎之源이 備詳仙史하니 實乃包含三敎하야 接化群生이라.

 이 교를 창설한 내력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밝혀져 있는데, 실상인즉 세 가지 교(유, 불, 선)를 포함하여 인간을 교화하는 것이다.

 且如 入則 孝於家하고 出則 忠於國은 魯司寇之旨也오.

 말하자면, 집에 들면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가면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유교(노사구(魯司寇:孔子))의 뜻이요,

 處無爲之事하고 行不言之敎는 周柱史之宗也며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이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도교(노자)의 교훈이요,

 諸惡莫作하고 諸善奉行은 竺乾太子之化也라.

 모든 악행을 하지 않고 모든 선행을 실천하는 것은 불교(석가)의 교화이니, 즉 이와 같은 것들이다

-최치원 '난랑비 서문'
     
굿잡스 17-12-29 17:34
   
국가의 기틀    황화강 -> 반도 -> 열도>??

애초에 서토 최초의 정치체 왕조인 상(商)나라는 서토 내륙 황하의 하한족 세력이 전혀 아니라

도리어 만리장성 밖의 동북방(우리 고조선 문명권 지대) 이민 선진 동이족이

서토 내륙 하한족을 정벌하면서 세운 정복 왕조군요.(서토 학자들 조차 오늘날 한족 어쩌고는

우리 대한민족처럼 일정한 왕조와 민족으로 반만년 도도하게 이어진게 전혀 아닌 이미 북방과 동방

이민족등에 의해 쳐발려 사멸한 종족으로  봄)


한자의 원형을 동이족 상나라 갑골문으로 보는데 이런 거북이등 뼈에 뭔가를 새기는 문화

자체가 서토 내륙 하한족에게는 나오지 않는 만주와 한반도에서 성행하던 동이족 문화.

(더구나 이런 갑골문은 상나라가 전쟁시에 점을 치든 내용들이 새겨져 있던 점복신앙이 강한

문화로 이 역시 서토 내륙 하한족에서 보이든 것이 아니라 신권(神權)문화가 강한 우리 고조선

문명권에서 보이든 문화들 )


갑골문화 분포도

http://blog.daum.net/pance73/5509


“군사를 일으킬 때 소를 잡아 제사 지내고 소의 굽으로 출진 여부를 결정했다. 굽이 벌어져 있으면 흉하고 붙어 있으면 길하다.

有軍事亦祭天 殺牛觀蹄 以占吉凶 蹄解者爲凶 合者爲吉


魏略曰:其國殷富,自先世以來,未嘗破壞。

위략 왈 그 나라는 매우 부유하며, 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한번도 파괴당한 적이 없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부여조





그리고 또한 애초에 서토 내륙 황하 하한족문명권과 우리 고조선 고구려(부여) 동방문명권은

세계를 보는 수리관 즉 의식 세계,기질, 문명관 자체가 궤를 달리하면서 발전.


인류의 보편적 구석기 시대를 지나 자신만의 독자적 정체성을 자각하고 예술성에 눈을 떠면서

수렵에서 잉여 생산물의 저장 개념을 통해 점차 신분화, 정치체화되는 사회로 한차원

진화해 가는 혁명적 사건으로 토기의 발명과 사용을 이야기하면서

이걸 신석기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유라시아의 동쪽, 한반도가 가장 앞선 지역이었던 이유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171669


이 부분에서부터 이미 우리는 빗살무늬 토기로 명명되는 한반도와 만주를 진핵으로 한

독자적 토기권의 발명지로 1만년을 상회하면서

이게 이미 이른 시기 북방과, 유라시아와 소통하면서 전파된 흔적들이

나오는 상황.(링크에 있는 도표를 보면 이동 경로를 쉽게 이해)


이런 서토 황하와 다른 독자적 우리만의 이른 토기를 발명하고 토기에 빗살무늬 형태의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담은  문명체를 남기기 시작했다는 건 글자 그대로 이런 만주와 한반도가

일찍이 신석기 시대부터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진

거의 단일 생활권이자 다른 문화권과 구변되는 독자적 문화권의 적날한 표상들이군요.


도리어 서토 쑤빙치 학자의 연구 결과를 빌리면 세계 4대 문명 어쩌고 하는 황하 앙소문화의

채색토기(색을 입힌 토기)는 도리어 만리장성밖 빗살 무늬 토기권인 우리 고조선 선대 요하

일대에서 이미 500여년 앞서 나오면서 이곳의 영향을 받아

일명 Y벨트의 지형을 타고 북방 기마권의 남하와

맞물려 서토 내륙 황하 앙소문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결과를 내놓은 바 있군요.


만리장성밖 고조선 선대 요하일대의 요하문명의 정교한 옥기류 영상.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1981


그리고 우리 고조선 고구려 문명권은 서토와 기질, 세계를 보는 수리관 자체가 궤를 달리 합니다.


서토 내륙 황하 하한족들은 토 즉 흙을 바탕으로 하는 전형적 농경문화권으로

2,4,8로 분화되는 짝수적 대칭, 정체를 안정과 편안함으로 보지만

우리 동방문명권과 북방의 기마 문화권은

하늘 숭배사상에(우리 고조선 건국 신화 자체가 천손 강림, 광명사상, 하늘 숭배)

1,3,5의 홀수 분화로 이런 불안정성을 도리어 역동성과 생명력으로

편하게 느끼는 기질과 의식 세계관을 가지고 그걸 문명에 투영시키면서 산 문화권이군요.

(이건 오늘날까지도 우리 문화와 대한민국 국민 의식 밑바닥 기저의 정체성으로 짙게 남아 있어

고조선 고구려의 하늘 숭배로

대표되는 새숭배 토템 신앙은 솟대문화나 고구려의 삼족오와 역대 왕조에서

관모에 조우관등에 오늘날까지도 대한민국 대통령의 상징인 봉황, 삼태극 사상,

한글의 창제 원리인 천,지,인(3수분화), 현대에는 이름까지 세 글자 고집이 많고,

기업에서도 삼성등 ㅋ)
     
굿잡스 17-12-29 19:03
   
고조선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등 분포도

https://blog.naver.com/itcoms0/220344390104?proxyReferer=http%3A%2F%2Fsearch.daum.net%2Fsearch%3Fw%3Dimg%26q%3D%25EA%25B3%25A0%25EC%25A1%25B0%25EC%2584%25A0%2520%25EC%2584%25B8%25EB%25A0%25A5%25EB%25B2%2594%25EC%259C%2584%26docid%3D33MvZ9OeFqASojmtT-%26da%3DIIM%26rurl%3Dhttp%253A%252F%252Fblog.naver.com%252Fitcoms0%252F220344390104


서토보다 앞선 동아시아 최초의 고조선 금속갑옷

http://cafe.daum.net/luck5194/MFUT/283?q=%B5%BF%BA%CF%BE%C6%20%B0%A9%BF%CA%C0%C7%20%BF%F8%C1%B6%20%B0%ED%C1%B6%BC%B1-%20%B0%ED%B1%B8%B7%C1
 

고대 한류로서 갑옷문화의 국제적 위상(1)
고조선 갑옷이 중국에 준 영향

http://www.breaknews.com/sub.html?section=sc5§ion2=활/문화일반


우리 고조선의 발달한 비파형 동검은 그 모양에서 비파형의 독특한 형태를( 고조선

선대 요하문명인 우하량 여신묘유적(BC 3500)에서 비파형 옥검이 발굴) 가지면서

서토의 단순 일체형 동검에 비해 고조선은 손잡이가 분리형으로 되어 있어 파괴시에 교체

가능한 형태에 발달한 합금기술로 서토의 납이나 단순 동검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성분 비율을 가짐.


비파형 동검의 경우 주목되는게 아연합금이군요. 기본적으로 동72%, 아연7%, 주석13.%

로 서토동검에서는 나오지 않는 탄성과 경도를 높이는 아연 성분의 경우  950℃에서 증발을 하는데

구리의 녹는점이 1083℃이라 현대에도 구리와 아연의 합금은 상당한 기술력이 필요한

제련기술이군요. 이런 기술은 로마제국도 기원 전후에서나 보이는 것으로 서토동검에서는

보이지 않는 고조선에서 비파형 동검에서 나오는 발달한 합금기술.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시에 강병이 100만이고 남으로는 오(吳), 월(越)의 나라를

침입하였고, 북으로는 유주,연,제,노나라를 휘어잡아 중국의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수(隨) 왕조의 멸망도 요동 정벌에 의한 것입니다."

高麗百濟 全盛之時 强兵百萬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爲中國巨 隋皇失馭 由於征遼

-삼국사기 <최치원전>

(북위)세종이 이르기를,“고구려가 대대로 상장(上將)의 직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해외(海外)를 모두 제압하여 사나운 오랑캐인 구이(九夷)를 모두 정벌하였다
 
《후위서》

북위의 권력을 쥔 고구려인

http://blog.naver.com/csred7/80130397982


우리나라는 문물과 예악이 흥행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며 장삿배가 연이어 내왕하여서 값진 보배가 날마다 들어오니, 중국과 교통하여도 실제로 소득이 없을 것입니다. 거란과 영구히 절교하지 않을 터이면 송 나라와 교통함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하니 따랐다.
  <고려사절요 문종 12년>


왜국은 일본국이다.
본래 이름인 왜를 부끄러워 했는데, 극동에 있어서 스스로 일본이라 부른다.
지금 고려에 신하로서 속하고 있다.
-도화견문지(1080년경에 송나라의 곽약허가 지은 책)



금나라 황릉의 모델은 고려 황릉(왕릉)이었다.’ 12세기 북중국을 장악했던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1115∼1234) 황릉이 고려 황릉과 형제처럼 꼭 닮았다는 비교 연구가 국내에서 처음 나왔다. 금 태조 완안아골타(1068∼1123)가 10세기에 건국한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고 불렀던 것을 감안하면, 당대 사회적 문화적 역량을 총집결시켰던 국책사업인 황릉 조성을 한반도에서 벤치마킹했던 것이다
 
장경희 한서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는 최근 학술지 ‘동방학’에 게재한 논문 ‘12세기 고려·북송·금 황제릉의 비교 연구’에서 “고려와 금 황릉은 양식적으로 매우 유사하며 같은 시기 북송 황릉과 뚜렷이 구별된다”고 주장했다.
 
http://news.donga.com/3/all/20140313/61666261/1
 

女真酋長乃新羅人 (송막기문- 남송기록)
("여진의 지도자는 신라인이다")
"其初酋長本新羅人" (몽골  금지(金志))
(여진의  초기지도자는 신라인이다.)
"金之始祖諱函普,初從高麗來,年已六十餘矣" (금사 (金史))
(금의 시조  함보는 처음에 고려에서왔을 때  60세였다.)


  "만주족은 신라로부터 나와..."
  因滿族自新羅、
  "신라성씨 김이 금나라의 원류이다."
  新羅王金姓則金之遠派
  "금의 시조 함보는 처음에 고려로부터 왔다."
  金之始祖諱哈富(舊作函普)初從髙麗來

-청황제 칙령의 만주원류고 중
          
뚜뚜루뚜 17-12-29 19:49
   
지금 말하시는거 보면 이해못한거 맞네요  전성기고 나발이고 강대국이고 소국이고 떠나서 

삼국시대  5부 5방 5주 로 지방의 토착세력이 아닌 왕의 지방관을 파견하는  체제를 만들고

발해의  5경 15부 (고구려)  62주 (당나라)  를 만들어 나라를 관리했고

중국 한나라때  전해져  신라 를 거쳐  고려까지 이어져온 과거제도
고려의  중앙통치제도  독자적: 도병마사 . 식목도감 /  송나라 영향 : 중추원 삼사 /
 당나라 영향      고려시대 사회시스템 전부

 
제가말한 국가의 기틀은  전성기고 나발이고가 아니라  나라의 뼈대가 되고 초석이되고
기반이 되는  사회 전반적인  중앙과 지방 시스템  이지  전성기고 나발이고  왕릉이 어디에 영향을주고  는 국가의 기틀 얘기에선 정말 하등 쓸모없는 얘기일뿐이죠.

우리나라 대표적으로 국가의 기틀을 다진  삼국 시대  고려 시대 에서  대륙의 영향을 빼놓을수없고    일본의  중앙국가 시작에서  백제계와 고구려 신라계를 빼놓고 얘기할수없는 이유가 저거죠  영향을 받았으니까요 ㅇㅋ??
               
굿잡스 17-12-29 20:04
   
??윗글이나 차분히 보길 바라군요.

왕권 강화에 누가 서토의 정치시스템이나 과거제등을 참조하지 않고 국사에서

이런 기본 모르는 사람이 있는지??ㅋ

처음부터 본인이 뜬금포의 무슨 도식화된 정답마냥

국가의 기틀    황화강 -> 반도 -> 열도      > 이런 글을 남기니 사람들이

오해해서 줄줄이 댓글 달고 첨언한다고 했군요.



삼국시대  5부 5방 5주 로 지방의 토착세력이 아닌 왕의 지방관을 파견하는  체제를 만들고

발해의  5경 15부 (고구려)  62주 (당나라)  를 만들어 나라를 관리했고 >??

그리고 님이 제대로 알아야 하는게 고구려의 존속기간이 기본 700년에서

앞선 선대시기와 맞물려 천년사직 어쩌고 할만큼 긴 왕조군요.

이동안 서토왕조는 수십개가 생겨났다 망하길 반복했던 기간이고.

당연히 우리 고구려 역시 문화 정치 변화를 그 긴 시간동안 다층으로 겪어 왔던건 당연지사.

여기에 서토에서 최초의 군현제같은 직접적 중앙집권을 시작한게

춘추전국시대를 끝낸 진나라 진시황이지만 이후 한나라 시기에 가면 봉건제적

군현제가 부분적으로 시행되었고 과거제등 이런 관련 서토의 정치체재를 우리가

참조한 것은 사실이나 기본적으로 님이 나열한 삼국시대 고구려의 5부나 발해의

5경체재등은 서토 체재와는 기본 출발에서 달리하군요.

발해의 5경을 혹자는 당의 영향을 받았니 어쩌고 하지만

실제 당나의 5경은 4년 정도의 짧은 기간 안사의 난의 피신처로 발해와는 용도에서나

근본 성격부터 달리하며 당시 당나라는 장안, 낙양의 양경 체제임.

 
발해의 5경은 기본 고구려의 5부에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더 높군요. 그리고

이런 고구려 5부는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초기 토착 재지 5부연맹에서 출발했고

이게 이후 고구려 태왕의 왕권 강화와 맞물려 태왕을 중심으로 하는 사방 5부 행정 체재로

확립된 우리 고조선 고구려 동방문명권의 역사성에서 기인했다고 보는게 합당.

그리고 이런 고구려 5부의 영향을 받아 발해의 5경체재로 다시 이후 발해가 멸망해도

이후 북방의 국가였던 요나라 역시 이런 발해인들이 주도적으로 도시문명을 일꾸는 역할

을 담당하면서 5경체재로 신라계황제와 발해인 연합의 금나라로 영향력이

이어져 왔던 것이고.


기본적으로 서토왕조는 우리식의 이런 다중 수도 체재가 아님.

그리고 해동성국 대발해도 당시 당의 3성6부제를 차용했지만 내용적으로

봐서도 3성 6부제 중 3성은 정당성, 선조성, 중대성이고 6부는 충부, 인부, 의부, 지

부, 예부, 신부으로 발해만의 독자적 성격을 띄군요.


중·일엔 없는 선비의 공론정치

같은 유교문화권이지만 성리학의 영향, 특히 공론(公論)의 강도는 조선·명·에도막부가 달랐다. 에도막부에선 5~6명의 로주(대신)가 비밀 회합으로 대소사를 결정했다. 공론은 없었다. 황제의 권한이 강했던 중국에선 공론이 사실상 허락되지 않았다. 조선만 공론을 지켜냈다

http://news.joins.com/article/14101382


587년 전 세종이 국민투표를 실시한 까닭은?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nec1963&logNo=220959591555
 


세계최초의 민중? 서명운동, 조선시대 만인소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17828&sca=&sfl=mb_id%2C1&stx=shrekandy&page=1


우리가 서토의 과거제나 중앙정부의 시스템을 일정 차용한 건 사실이나

동아시아 대표적 삼국중에서 이런 조, 명,왜 중에서

유일하게 제대로된 발달한 공론정치의 선진 정치 시스템을

구현한 나라는 조선뿐이라는게 여러 전문가의 일치하는 견해군요.

(왕조시대다 보니 오늘날 우리의 국민주권 직접 민주주의에는 못미치지만

현대의 대의 민주주의의 공론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당대 세계사적으로도 선진적

공론 정치구현)

이는 질이나 내용에 있어 조선의 정치 시스템을 보면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조선의 대표적 언론삼사(言論三司)로 홍문관, 사간원, 사헌부의 언론 기관이 이런

왕의 전횡을 막고 다양한 언론과 민심을 왕에게 전달할 수 있는 출입구를 만들어

확립된 선진적 나라였던데 비해 당시 명나라는 승상의 2인자도없이

통치자 1인독재 체재에 도찰원이라는 감찰기관을 두고 과거 구소련이나 지금의 짱국

공산당과 다르지 않는 전횡을 일삼던 정치 시스템.


그리고 조선의 언론기관중 홍문관의 경우는 조선만에서 보이는 특별한 기관으로

왕의 경론 연구기관적 성격이 이후 정치적 조언등으로 확대되어 정치적 공론의

장으로 왕에게 간언할 수 있는 형태로 자리잡은 조선만의 독특한 정치 언론기관이군요.

그리고 이런 삼사가 이후 중기로 가면서 정치적으로 변질 이용되자 이후

상언(上言)과 격쟁(擊錚)으로 진화했고 특히나 이런 격쟁은 백성들이 문서가 아닌

직접 현장에서 왕에게 목소리를 내서 문제를 제기할 만큼 상당히 파격적, 오늘날에도

쉽게 보기 힘든 민주적 언쟁 자리였군요.


그리고 이게 이후 대한제국 시절에는 만인공동회로 이어지는 수준 높은

민주주의의 공론장의 표본들은 남긴 정치 역사를 이어갔던 것이고.


세계 최초의 평민교육기관-고구려의 경당

http://cafe.daum.net/hankookhistory/47AT/27?q=%BC%BC%B0%E8%20%C3%D6%C3%CA%C0%C7%20%BC%AD%B9%CE%20%B1%B3%C0%B0%B1%E2%B0%FC%20%B0%E6%B4%E7


그리고 우리는 이미 1500여년전에 귀족뿐 아니라 서민을 위한 교육 기관을 두고

이런 교육에 대한 투자와 중요성은 이후 중세와 조선를 지나 현대에까지도 이어져

왔군요.


서토왕조라는 자체가 초기부터 이민 동이족 상나라에서부터 국가의

기틀이 시작되어 여러 북방, 동방세력에게 정복당하면서 그에 따라 단순히 서토 내륙 하한

족 문명권이 무슨 일방적으로 문화나 정치가 우리에게 전해졌던게 전혀 아니라 도리어

이런 동방문명권이나  북방 세력에 의해 서토 왕조 역시 문화 정치적으로 상당한 영향과

변천의 부침을 거듭했던 점을 새삼 주지할 필요가 있을 듯 하군요.
          
yj12 17-12-29 20:38
   
도화견문지에 일본이 고려의 신하, 속국 이라고 적혀져 있는건 애초에 그때 당시에는 조공바치면 신하나 속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적혀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애초에 속국이란 개념조차도 동양의 속국하고 서양의 속국하고 다름
서양의 속국의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자주권도 없는 국가 그럼 개념이고 그때당시 동양의 속국의 개념은 그냥 조공바치는 신하국이나 제하국 그런 개념임
대표적인 예로 조선왕조실록 기록 보아도 명나라 황제나 사신 청나라 사신등이 조선보고 자신들의 속국이라고 말한 기록도 있고 조선 스스로도 자신들의 명나라나 청나라 속국이라고 말한 기록도 있지요
 고구려같은 경우도 고구려가 조공무역 개념에서 남제에게 조공바치자 남제가 자신들이 고구려는 자신들의 신하라고 말한걸자신들의 사서에 적은 기록들도 있고
따라서 그때당시 신하나 속국 이런 개념들은 그냥 조공무역을 위해 조공바치는 국가 이런 개념에 불과합니다
               
굿잡스 17-12-29 21:55
   
님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긴 한데

쨉 극우들은 정작 이런 기록은 애써 무시쳐하면서 조명간이고 우리가 서토간의

공무역에 대해서는 속국 어쩌고 드립 열심히 날리긴 하지요.ㅋ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조선이 학문과 내치에 치중하고 200여년 가까이 이렇다할 적대 세력이

없다보니 군사력 강화에 힘써지 않는 때에 명나라도 해금정책으로 서로간에도 육로

교류가 주류였지만 남북국시대 발해 신라이고 신라의 장보고를 위시한 동북아

해상 무역을 장악하고 중세 고려를 세운 왕건의 집안 자체가 이런 해상무역으로

부를 이룬 집안이라 고려 역시도 전통적으로 해상 무역등이 조선이 비해 활발하고

상비군이나 군사력도 강하게 키우던 때라서 조선시대 왜와의 공무역때와는 좀

다른 공세적 상황이지 않나 싶군요.


왜에 통상을 요구하는 고려

열도의 역사서 백련초(百練抄)의 기록
 
 997년 고려에서 3통의 서신을 보내 통상을 요구하였으나 일본은 고려의 요구를 거절하고 쓰시마와 큐슈 지방의 경비를 강화하였다. 이 일로 고려가 일본 큐슈지역을 침입했다 기록,

 다른 기록에는 고려군 병선 500척이 침공 한다는 정보를 큐슈의 다자이후(太宰府)가 일본 조정에 급보를 올렸다는 내용이 있다
 
 백련초의 (997년) 10월 1일조에 고려인이 큐슈에서 침입한 기록
이 때 고려인들은 큐슈에 와서 민가를 태우고 재산을 수탈하고 남녀 300명을 납치해갔다
(백련초”초우 토쿠 3년 1월 1일의 나가사키의 역사)

그 이전부터 침입한 고려국인이 큐슈에서 살인을 일삼고 있다고 기록

(백련초의 토쿠3년(997년) 10월 1일조)
 

규슈 지역에서 고려국인의 그 지역에서 일본인을 살해하였다,
피해규모가 치쿠젠, 치쿠고, 사츠마, 이키, 쓰시마에 이르며 수백명의 사람들이 납치 당하고 죽었다
(백련초 토쿠3년(1001년)기록)
 
고려는 17년간 일본에 통상을 요구하고 무력으로 침입하였다
 
그 이후..
 
 
 11세기 중엽 고려와 일본 간에는 북큐슈와 금주(김해)를 오가는 무역로가 있었다.

고려에 도항하는 일본인들 중에는 상인 이외에
일본국사, 대마도주,살마주사 등 토산물을 헌상하고 있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지방관에 의한 고려에의 ‘조공’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문종대인 11세기 후반부터 큐슈 각지의 지방관과 민간상인들이 고려에 도항하여
 
 ‘방물(方物)’을 바쳤기 때문에,

“동쪽에 있는 왜(倭)가 바다를 건너 보배를 바쳤다”는 평가가 내려질 정도였다
 
 일본에서 내왕하는 선박을 일본인들이 진봉선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물품을 바친다는 뜻으로 진봉이란 용어사용은 이미 오래되었으며
일본인이 물품을 진봉하는 항례적인 법규가 제정 되었다
 
 때로는 고려에서 주는 사급품을 노리고 일본인들이 진봉하기 위하여 상호간에 경쟁이 심하여 서로 싸우는 폐단까지 생겨 고려에서는 진봉 그자체에 대하여 좋아하지 않은 경향을 보였다
이같은 경향은 일정 기간내에 일본상선을 출입선수 횟수에 대하여까지 제한을 두었다
 
 
이 시기의 양국 교류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고려가 일본에 의사파견 요청을 한 사건이다.
1079년(문종33)에 중풍을 앓고 있던 문종의 병치료를 위해 고려의 외교를 담당하는 예빈성에서 일본에 의사파견을 요청하는 문서를 일본에 보냈다.
이를 전한 사람은 일본의 다자이후에 거주하고 있던 중국계 상인인 왕칙정(王則貞)이었다.
외교문서에 의하면 「국왕은 수년 전부터 중풍을 앓고 있으니 귀국의 명의( 의사)를 선발하여

고려에 보내주면 좋겠다.
만약 치료에 효능이 있으면 후한 상을 내릴 것이다. 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조정에서는 회의를 열어 고려의 의사파견 요청에 대한 오랜 논의 끝에 잠정적으로 파견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며칠 뒤에 열린 회의에서는 만약 병을 치료하여 차도가 없으면 일본의 망신이라는 한 공경의 제의에 다른 사람들도 이에 호응하였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46154&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A%B3%A0%EB%A0%A4+%EC%9D%BC%EB%B3%B8+%EC%B9%A8%EA%B3%B5&sop=and


그리고 남북국시대에도 신라에게 왜가 박살나면서 단순히 이런 조공무역 관계를

넘어 열도 내정에까지 간섭이 깊숙히 들어가는

신라에 거의 속국하에 있었던 기록을 봤을때도 그렇고
               
굿잡스 17-12-29 21:59
   
삼국시대 우리 가야 백제 세력이야 실질적으로 열도에 도시문명을 건설하고 이후 본토

백제가 패망하자 본격적으로 일부가 탈출

열도에 우리나라할때 나라헤이안시대와 일본이라는 국호를 연 주체임은 분명하군요.


‘大原眞人. 出自諡敏達孫百濟王也. 續日本紀合.’

대원진인, 그의 조상은 시호가 민달(비타쓰(敏達))이라는 백제 왕족이니라. ‘속일본기’ 기록에도 부합한다.

-신찬성씨록(서기 815년 일본 왕실이 편찬한 왕과 귀족 족보)


"제30대 비타쓰 천황(敏達·572~585 재위)은 나라(奈良)에 ‘백제대정궁(구다라오이궁 :百濟大井宮)’을 지었다”

비타쓰왕의 친손자인 제34대 조메이왕(舒明·629∼641 재위)도

"(우리나라 할때)나라의 ‘백제천(구다라강:百濟川) 옆에 백제궁(구다라궁; 百濟宮)과 백제사(百濟寺)라는 큰 가람을 지었다. 조메이왕이 구다라궁에서 살다가 서거했을 때 ‘구다라노오모가리(百濟大殯)’로 장례를 치렀다’"
 
-일본 서기

14세기 초에 씌어진 일본 불교 왕조사인 ‘부상략기(扶桑略記)’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推古天皇元年正月, 蘇我大臣馬子宿. 依合戰願, 於飛鳥地建法興寺,

立刹柱日 島大臣竝百餘人 皆着百濟服, 觀者悉悅, 以佛舍利, 籠置刹柱礎中.”

588년, 백제 왕실에서 건너온 건축가 태량미태(太良未太), 문가고자(文賈古子) 등에 의해 일본 최초의 칠당 가람이 아스카에 착공됐다. 위 대목은, 스이코 여왕이 등극한 직후인 593년 1월에 소가노우마코 대신과 만조백관이 ‘백제옷’을 입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기뻐하는 가운데 백제에서 보내온 부처님 사리함을 찰주의 기초 속에 안치했다는 내용이다. ‘만조백관이 ‘백제복’을 입었다’는 것은 스이코 여왕의 아스카 왕실이 백제계 왕가임을 말해준다.
 

칠지도(백제 어라하(황제격의 호칭)가 왜왕에 하사)

<앞> 泰○四年 ○月十六日 丙午正陽 造百鍊[銅] 七支刀 生辟百兵 宜供供侯王○○○○作
태○사년 ○월십육일 병오정양 조백련[동] 칠지도 생벽백병 의공공후왕○○○○작

<뒤> 先世以來 未有此刀 百濟王世○ 奇生聖音 故爲倭王旨造 傳示後世
선세이래 미유차도 백제왕세○ 기생성음 고위왜왕지련 전시후세


<앞> 泰和四年 五月十六日 丙午正陽 造百鍊[銅] 七支刀 生辟百兵 宜供供侯王○○○○作
태화사년 오월십육일 병오정양 조백련[동] 칠지도 생벽백병 의공공후왕○○○○작

<뒤> 先世以來 未有此刀 百濟王世子 奇生聖音 故爲倭王旨造 傳示後世
선세이래 미유차도 백제왕세자 기생성음 고위왜왕지련 전시후세

태화 4년 5월 16일 병오일의 한낮에 백 번이나 단련한 철로 된 칠지도를 ○○○○가 만들었다. 온갖 적병을 물리칠 수 있으니 제후국의 왕(侯王)에게 주기에 알맞다. 지금까지 이런 칼이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 기생성음이 일부러 왜왕을 위하여 정교하게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토쿄대  이노우에 교수
"일본은 고대 한국인이 세운 나라이다. 일본은 임나일본부 설치를 날조했을 뿐 아니라 오오진(應神)왕이 백제계 부여(夫餘) 후왕인 의라(依羅)이며, 기토라 고분의 40대 텐무(天武)왕은 신라 김다수(金多遂)임에도 일본인으로 변조했다. 최초로 일본을 지배한 천황은 백제인의 후손인 15대 오우진(應神·4세기)천황과 16대 닌토쿠(仁德·5세기)천황 부자다.  오우진 천황이 백제 복식을 입었다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나온다. 이들 천황 부자에 의해 고대 일본의 가와우치(河內)왕조가 세워졌다.
 
USA캘리포니아대학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
 
고대 한국인의 선조가 일본의 원주민 [조몬인],[야요이인(한국을 제외한 대륙민족)], [아이누족]을 정복하므로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탄생 시켰다.
 
존 코벨(John Cater Covell,1910~96)
 
"일본의 신도(神道).. 일왕의 뿌리..일본고분에서 출토되는 유물등...한반도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다..놀라운 일이다
심지여 1945년 8월15일 일왕이 자신이 타고 다니던 백마를 맥아더에게 넘기는 것으로 항복을 표현하는 것조차 한국식 이다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1927∼ ) 교토대학 사학과 명예교수는 일본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국보급인 고대 ‘신찬성씨록’을 자택 서재에 보관하고 있다. 우에다 교수는 그 책을 직접 필자에게 보여주면서 “비다쓰 천황은 백제 왕족이다.
 
"왜국을 최초로 정복한 한반도의 왕국은 가야가 틀림없다,왜국에서 발견되는 철기 무기가 모두 가야의 제품으로 재질 또한 가야의 철이다"



카큐슈우인대 오오노 스즈무 교수
 
"한국인은 일본인에게 금속 사용법을 가르치고, 야금·금공 기술을 전했으며,
염색·피혁제조·베틀 직조·기와 제조·의학·역법·천문학·조불(造佛)·사찰 건축·조탑 등 모든 것을 가르쳤다”(‘日本語の 世界’, 1980)
 

 일본에 쇠로 만든 무기와馬具.쇠투구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때는 서기 4세기 후반인데, 이 시기의 일본 고분에서 나오는 철제품은 성분이 한국의 것이며, 일본의 철로 만든 제품은 5세기 후반에야 나타나기 시작한다.
 (新日本 제철 야와타 연구소의 분석결과)
               
굿잡스 17-12-29 22:07
   
“이나리야마”에 새겨진 백제의 열도 지배

...............

이두로 이 글을 다시 풀어보니 놀랍게도 이것은 고구려가 남침한 369년 당시 백제 땅이던 하동에서 후왕으로 있던 장수 집안이 동경까지 망명온 뒤 이곳에서 다시 백제 후왕으로 책봉된 내용을 담은 집안 이야기 였던 것이다.
 
이두로 풀이한 칼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기 471년에 “고” 확고는 조상이름을 적어 둔다. “오호 비꼬”어르신, 그 아들 “다가리 쪽니”어르신, 그 아들 “고리 확고”, 그 아들 “다사기 확고”. 그 아들 “바라 고비”, 그 아들 “가사 비리”, 그리고 그 아들은 “고 확고”이다. 오늘날까지 우리는 장수로서 대대로 섬긴바 그 임금님은 사기궁에 마실을 차리고 천하를 다스리시는 크신 확가 개로 대왕이시니라. 온 번 불리고 달구어 만든 이 칼에 우리 집안 내력과 뿌리를 적어두는 바이다
 
...................


이렇듯이 이나리야마 쇠칼의 글은 5세기 가운데 즈음에 옛 일본의 관동, 관서, 규슈 등 세 곳에 백제가 다무로를 다스리고 있었으며, 왜 왕실은 백제 왕실에서 갈라져 나왔음을 밝혀주는 귀중한 역사자료인 것이다
 
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168467§ion=sc1§ion2


우리 고구려 문명권이 건설한 열도의 협산지(狹山池:사야마이케)저수지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56291&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98%A4%EC%82%AC%EC%B9%B4+%EC%A0%80%EC%88%98%EC%A7%80&sop=and
 
열도내 우리 유적 -신롱석산성(神籠石山城:고고이시산성)

사가현(佐賀縣) : 오츠보산성(おつぼ山城, 1.87km)
사가현(佐賀縣) : 쿠마산성(帯隈山城, 2.4km)
후쿠오카현(福岡縣) : 코우라산성(高良山城, 2.8km)
후쿠오카현(福岡縣) : 녀산성(女山城, 3.0km)
후쿠오카현(福岡縣) : 라이산성(雷山城, 2.3km)
후쿠오카현(福岡縣) : 하키성(肥木城, 2.63~3.0km)
후쿠오카현(福岡縣) : 카케노우마성(鹿毛馬城, 2.35km)
후쿠오카현(福岡縣) : 고쇼카다니성(御所ヶ谷城, 2.55km)
후쿠오카현(福岡縣) : 도바루성(唐原城, 2.5km)
후쿠오카현(福岡縣) : 미야지다케성(宮地岳城, 2.5km)
야마구치현(山口縣) : 이와키산성(石城山城, 4.0km)
에히메현(愛媛縣) : 에이누산성(永納山城, 2.8km)
카가와현(香川県) : 키산성(城山城)
오카야마현(岡山縣) : 키노산성(鬼ノ山城, 3.2km)
오카야마현(岡山縣) : 오메구리고메구리산성(大廻小廻山城, 3.0km)
효고현(兵庫縣) : 시로산성(城山城)

평균 2~3km, 최대 4km의 산성.


"일본 가타카나 기원은 신라 향찰·이두"

히로시마대 교수 발표

http://cafe.daum.net/nhpaolo/CZFL/1280?q=%BD%C5%B6%F3%20%C0%CC%B5%CE%20%C0%CF%BA%BB%20%B9%AE%C0%DA
 

JAP,아리타 도자기의 시조(始祖)격으로 조선인 사기장 이삼평.

『일본 도자기의 신, 사기장 이삼평』

http://cafe.daum.net/gwansan/KAN1/516?q=%C0%CF%BA%BB%20%B5%B5%C0%DA%B1%E2%C0%C7%20%BD%C5%20%C1%B6%BC%B1%C0%CE%20%C0%CC%BB%EF%C6%F2
 


야끼니꾸는 2차세계대전 후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교포들이 일본의 식재료를 활용해 구워먹던 불고기로 아직도 일본내 야끼니꾸 전문점의 70%이상이 한국인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
 

쨉의 최고 소고기 품종이라는 와규는 우리의 전통 품종인 흑우를 강탈해서 자기 것으로 둔갑.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59047&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D%9D%91%EC%9A%B0&sop=and
               
굿잡스 17-12-29 22:20
   
남북국시대(발해-신라)

동북아 해상무역을 장악한 신국(神國)의 신라.

성덕왕(聖德王) 30년,
일본국 병선 300척이 바다를 건너 우리의 동쪽 변경을 습격하였는데, 왕이 장수를 시켜 군사를 내어 이를 크게 깨뜨렸다. (日本國兵船三百?, 越海襲我東邊, 王命將出兵, 大破之.)
 
- 제대로 상륙도 하지 못하고 박살난 일본, 결국 용서를 빌기 위해 서기 742년에 사신을 파견하지만‥

애장왕(哀莊王)
5년 여름 5월에 일본국이 사신을 보내와 황금 300량을 바쳤다. (五年夏五月, 日本國遣使, 進黃金三百兩.)

- 이를 기특하게 여긴 신라는 드디어 일본을 용서하고 속국으로서 인정한다. 서기 806년 속국에게 하교하는 신라.

애장왕(哀莊王) 7년,
봄 3월에 일본국 사신이 왔으므로 조원전(朝元殿)에 불러 접견하였다. 교서를 내려 말하였다. 『절을 새로 짓는 것을 금하되, 다만 수리하는 것은 허락한다. 또 수놓은 비단을 불교 행사에 사용하는 것과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의 사용을 금한다. 마땅히 담당 관청으로 하여금 이를 널리 알려 시행하도록 하라.』(七年春三月, 日本國使至, 引見朝元殿. 下敎禁新創佛寺, 唯許修葺. 又禁以錦繡爲佛事, 金銀爲器用, 宜令所司, 普告施行.)
 
- 사찰을 수리하는 것조차 '종주국' 신라의 허락이 없으면 감히 하지 못했던 일본. 이후 '속국' 일본에 대한 종주국 신라의 사랑은 계속되고… 신라의 어버이와 같은 사랑에 감동한 일본은 서기 882년, 보답한다.
 
헌강왕(憲康王) 8년,
여름 4월에 일본국 왕이 사신을 보내 황금 300량과 야광주[明珠] 10개를 바쳤다. (八年夏四月, 日本國王遣使, 進黃金三百兩·明珠一十箇.)


성종 28권, 4년(1473 계사 / 명 성화(成化) 9년) 3월 13일(계묘) 3번째기사
일본국 경극전 경조윤 좌좌목씨 등이 사람을 보내 와서 토의를 바치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07&wr_id=624145&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A1%B0%EC%84%A0+%ED%99%A9%EC%A0%9C&sop=and
 

에도막부, 조선통신사 일행에 극빈 대접

“한해 쌀 수확량 12% 접대비로 사용”

옥스퍼드大 루이스 교수 논문

“일본이 조선통신사의 한 차례 방문에 쓴 접대비용은 (일본의) 한 해 쌀 수확량의 12%를 넘었다.”


http://news.donga.com/3/all/20090202/8690797/1


“예군 묘지명에 적힌 ‘日本’은 ‘百濟’지칭”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42301032430074011
 

“일본은 원래 백제땅 일컫는 말이었다”

일 교수, 678년 ‘예군 묘지명’ 근거
“실제 일본은 해좌·영동으로 표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36435.html
                    
yj12 17-12-29 22:34
   
그 때 당시 조공은 그냥 말이 조공이지 사실상 무역 관계 입니다
 A라가 B나라에게 조공 바치면 B나라가 A나라에게 하사품을 주면서 사실상 무역을 하는 관계의 개념
일본이 고려나 신라 조선에게 조공바친것도 사실상 단순히 무역으로 이득을 보기 위해서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조공은 그때 당시는 무역관계 이기 때문에 부끄러운것도 아니였고
그리고 확실히 일본은 삼국시대 때는 한반도 도래인들이 일본을 점령해서 그곳에서 국가를 세워서 일본이라는 나라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삼국시대 때 일본은 확실히 백젱디 간섭과 지배하에 있었지만 백제멸망 이후부터 일본은 사실적으로 독립국가였지요
실제로 그 이후부터 일본은 자신들의 독립적인 고유 연호를 사용하고 왕성국 사건때문에 신라하고 일종의 자존심 문제로 싸우기도 했지요
그거 때문에 일본이 발해한테 도움 요청해서 신라 침공 계획까지 세웠지만 결정적으로 침공 결정 직전에 발해가 거절하고 신라 침공 계획을 세운 후지와라 나카마로가 죽자 신라 침공 계획은 취소되었고
뭐 삼국시대에 신라가 일본한테 일반적으로 명령하는 저 기록은 그건 그때는 사실상 조공바치면 자기들 신하나 속국이라고 생각하던 시대이기 때문에 신라가 일본은 자신들의 속국이라고 멋대로 생각해서 일방적으로 명령한거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 삼국시대 이후 일본이 신라한테 내정간섭 당했다고 말할수는 없지요
애초에 그때당시 일본은 허세가 심했고 고유 연호까지 사용했기 때문에 신라가 멋대로 그런 명령해도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고 그리고 일본이 신라가 일본을 자신들의 속국이라고 생각해서 멋대로 명령했는 저 기록을 따랐다는 기록도 없고 또 최소한 내정간섭을 받으면 원나라가 고려에게 그랬듯이 최소한 신라가 일본에게 다루가치같은 내정간섭을 직접적으로 하는 사신을 보내서 내정간섭을 하는 기관 같은걸 만들어야 하는데 삼국사기에도 그런 기록 같은건 없기 때문에
근데 그건 신라뿐만이 그때당시 조공바치면 속국,신하국으로 생각했는건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라서 조선 왕조 실록을 보아도 명나라 황제나 청나라 황제, 사신이 조선은 자신들의 속국이라고 하면서 무엇무엇을 따르도록 해 라고 명령하는 기록이 실록에도 굉장히 많습니다
따라서 삼국시대 이후 부터는 일본이 백제나 고구려가 망하고 한반도로 부터 자주적으로 독립했다고 보아야지요
그리고 넷우익들은 그런 드립 치는건 개들은 그냥 생각이 없는 놈들이라
                    
yj12 17-12-29 22:59
   
그리고 일본이 조선 통신사 한테 저렇게 환대했는건 저렇게 잘 대접해주어야 다음에 조선에게 통신사를 요구했을때 조선이 응해줄수 있기 때문이지요
애초에 일본이 조선 통신사 한테 통신사를 요구했는 이유는 조선 통신사가 일본의 요구로 오는거기 때문에 조선도 우리의 요구로 통신사를 보낼정도로 자신들을 인정하는 막부다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국민들한테 홍보해서 일종의 자신들의 국민들한테 자신들의 정권의 위엄을 보이게 하기 위해서지요
일종의 책봉관계 하고 비슷합니다
책봉도 책봉을 받는 이유가 사실상 다른 강대국들도 자신들을 왕으로 인정하는걸 내서워서 국민들한테 자신들 정권의 위엄 내세우기 위해서 하는 거기 때문이니
하지만 보통 책봉 받는다고 해서 속국이라고 말하지는 않지요
그때 당시 일본도 그거하고 똑같은 개념입니다
따라서 그걸 가지고 일본을 서양적 개념의 속국이라고 말할수는 없지요
애초에 그 때 당시 조선하고 일본은 일본쇼군이 조선국왕에게 조선국왕이 일본쇼군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전하라고 할정도로 실질적으로 대등한 관계였지요
                         
굿잡스 18-01-01 02:59
   
애초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무리한 대외원정은

결국 조선에서 12만 이상의 왜군이 죽어나갔고 이때문에 당시 변방에 밀려나

있던 도쿠가와는 이런 임진왜란의 패전으로 인해 명분에서나 무력에서도 약화된 도요토

미세력을 어부지리로 날름하면서 나온게 에도 막부.


1. 이때문에 반히데요시의 선봉장인 도쿠가와 입장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대내외 명분을

제대로 줄 수 있는 건 조선일수 밖에 없는 건 당연지사.

2. 그리고 당시 히데요시가 열도를 통일했다고 했지만(이당시의 열도는 지금의

열도가 아니라 현 오키나와는 류쿠왕국이라는 엄연한 다른 왕조에 홋카이도는

메이지 유신 이후에 병합, 도쿄의 관동 평야 역시 뻘진창에 불과) 무력에 의해 힘으로

누른 일시적 통일로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을 보면 지배계급이라는 무사들 중에는

상당수가 제대로 병법서 한줄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 칼질만 하던 까막눈들이 대다수였을

만큼 행정을 위한 내치를 위해서는 문과 글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이런 기반 자체가

제대로 안된게 당시 낮은 문명 수준의 왜국 상황이다 보니

히데요시도 이런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무력을 어떻게든 소비할려다 보니 결국 무리

한 대외원정까지 추진하다 박살.

다시 말해서 이후 도쿠가와는 이런 에도 막부 즉 왜국에 제대로된 내치와 안정을

위해서는 이런 조선의 발달한 선진관료 체재를 도입할 필요 역시 절실했던 상황.

이를 통해 조선의 사농공상을 바탕으로 왜국도 선비 사에서 무사사만 바꾸고 같은

신분제와 관료 체재를 학습하고 배우면서 내치에 안정화를 기할 수 있게 된 것임.

3. 그리고 당시에 이런 지방 세력들 역시 여전히 에도막부를 위협할 수 있는

긴장된 연속이기에 이런 조선 통신사를 핑계로 이들을 접대함으로서 지방영주들의 재정

력을 약화시켜 힘을 빼는 다중적 이유들이 존재했군요.


그리고 앞서도 말했지만 쨉의 현재 영토 체재는 19세기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오키니와와 홋가이도를 병합하면서 나온 것이고 에도시대에 가서야

왜국은 오사카가 점차 번성해지기 시작했고 도쿄의 관동 뻘진창도 점차 개발되기

시작. 그 이전까지 수도인 쿄도는 조선의 5대 대도시(한양, 개성, 평양, 의주, 진주등)

비해 상당히 협소했군요.

현대에도 세계 주요 10대 대도시로 서울, 도쿄, 뉴욕,파리,런던 어쩌고 나열되고

이런 대도시 기반의 국가들의 경제력이 더불어 큰걸 알 수 있듯

고대에도 이런 도시의 규모와 양상을 통해 당시 도시문명의 수준이나 경제력 국력을

어느 정도 가름할 수 있는 증표들이 되군요.(이미 우리는 삼국시대 고구려 3경 신라

서라벌 백제 사비성과 열도에 아스카등 유럽 최대 도시라는 로마 이상의 여러 대도시를 구축하고

남북국시대

발해 5경과 신라 서라벌을 중심으로 하는 5소경 체재에 중세 고려 역시도 개경을

수도로 서경(평양), 동경(서라벌), 남경(서울)의 대도시 체재를(신라계  황제와 발해인  연

합의  금나라가 송을 멸망시키고 북경에 세운 중도 역시 고려계 국무총리  장호가 주도) 이

후 조선으로 이어온 나라.)
                         
굿잡스 18-01-01 03:53
   
토쿄대  이노우에 교수
"일본은 고대 한국인이 세운 나라이다. 일본은 임나일본부 설치를 날조했을 뿐 아니라 오오진(應神)왕이 백제계 부여(夫餘) 후왕인 의라(依羅)이며, 기토라 고분의 40대 텐무(天武)왕은 신라 김다수(金多遂)임에도 일본인으로 변조했다. 최초로 일본을 지배한 천황은 백제인의 후손인 15대 오우진(應神·4세기)천황과 16대 닌토쿠(仁德·5세기)천황 부자다.  오우진 천황이 백제 복식을 입었다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나온다. 이들 천황 부자에 의해 고대 일본의 가와우치(河內)왕조가 세워졌다.
 
大原眞人. 出自諡敏達孫百濟王也. 續日本紀合.’

대원진인, 그의 조상은 시호가 민달(비타쓰(敏達))이라는 백제 왕족이니라. ‘속일본기’ 기록에도 부합한다.

-신찬성씨록(서기 815년 일본 왕실이 편찬한 왕과 귀족 족보)


"제30대 비타쓰 천황(敏達·572~585 재위)은 나라(奈良)에 ‘백제대정궁(구다라오이궁 :百濟大井宮)’을 지었다”

비타쓰왕의 친손자인 제34대 조메이왕(舒明·629∼641 재위)도

"(우리나라 할때)나라의 ‘백제천(구다라강:百濟川) 옆에 백제궁(구다라궁; 百濟宮)과 백제사(百濟寺)라는 큰 가람을 지었다. 조메이왕이 구다라궁에서 살다가 서거했을 때 ‘구다라노오모가리(百濟大殯)’로 장례를 치렀다’"
 
-일본 서기


고조선시대 삼한 이후 삼국시대 우리 가야 백제 세력이 직접 들어가서

열도를 개척하고 아스카 문명을 건설하면서

백제가 담로로 다스리지만 이후 본토 백제가 망하면서 일부가 탈출 이후 열도에

본격적 도성 체재가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왜라는 글자를 부끄러워했던 우리 지배층이

이후 일본이라는 국호를 사용하면서 열도내에 본격적 독자적 횡보를 구가하기 시작한건

맞으나 그러나 그런 열도 지배 왕족과 귀족층의 상당수가 이런 가야, 백제를 주축으로

신라, 고구려의 삼국 세력들이 다양하게 여전히 존재하면서 이안에서 세력 싸움과

쿠데타등 다양한 변천사와 함께 남북국시대에도 이런 열도는 당보다는 발해 신라

특히나 대신라 견문사의 왕래가 압도적 횟수로 높다는 점을 알아야 할 듯 하군요.

(영국등 유럽인들이 북미 대륙을 개척하면서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로 이후 고립정책을

펴면서 독자적 노선을 걷지만 여전히 인종에서나 문화적 영향력은 여전했듯.

그리고 무엇보다 나라 헤이안 시대의 이런 우리 도래인들의 정치세력은 고립이

아니라 신라와의 압도적 견문사를 통해 왕래가 많았다는 점은 열도 정치 문화

내부적으로도 어느 정도 직간접적 영향력을 여전히 배제 할 수 없었던 시대 흐름이군요)


위에서도 언급한 815년에 편찬된 헤이안 시대 초기의 일본왕에 대한 족보서가

신찬성씨록인데 황별(皇別)은 왕족이고 신별(神別)은 귀족, 그리고 제번(諸蕃)은 도래씨족

으로 이야기되고 있고 이중에서 삼국시대 후말기 우리쪽에 따라 열도의 정치가

얼마나 유동적으로 변화하고 영향력을 받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을 듯 하군요.


5세기 광개토 태왕의 기병의 남하로 인해 가장 피해를 본게 금관가야등

가야 세력이였고(이후 결국 신라에 복속) 이런 고구려의 본격적 남진 정책과 맞

물려 남부의 가야나 백제가 본격적 열도로 재차 들어가면서 난립이 가속화되고

이후 백제가 열도를 통합하면서 이와

맞물려 열도에서도  이전 소소한 고훈에서 최대 전방후원분이라는 인덕왕릉의 출현등 고

고학적 상황만 봐도 이런 추세의 흐름을 알 수 있군요.(백제가 5세기 고구려의

대대적 남진으로 남으로 밀려나면서 서열도로 본격적 도래가 되면서 평정해가

기 시작해서 7세기경에는 열도의 실질적 패자가 되던 시기와 맞물려 나옴. 이런

과정에서 인덕왕릉같은 대형 고분이 나오고 이후 7세기부터 점차 정치체가 안정

화되면서 대형화 추세가 사라지는 고고학적 흐름.)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과의 형제간 권력 힘싸움에서 밀려난 둘째 왕자였든

부여교기(夫餘翹岐)와 이를 지지하든 고관 및 장군들이 재차 열도로 밀려 나면서

열도에 이미 터전을 잡고 있던 상황에서 7세기 중엽 왜의 정권을 잡고

부여교기가 천지천황이 되면서 일본서기의 편찬이나 본토 백제의 멸망때 대대적 군사

지원군을 파병하다가 백촌강 전투에서 개털리고 열도로까지 침입이 두려워

앞서 우리가 열도 개척을 위한 신롱석산성(神籠石山城:일명 신이 깃든 고고이시산성)

이후 2차 조선식 성곽이 대대적으로

증축되기 시작. (이후 백제의 동쪽 지리 명사로 불리든 일본이라는 용어가

본토 백제가 망하면서 7세기 말에 본격적 일본이라는 국호 탄생과 국가가 생겨나게

된 배경임. 이를 통해 기존 백제의 사찰 위주의 아스카문명에서 이후

우리나라 할때 나라헤이안 극소수 귀족시대를 열게 되면서 급격한 도성이 출현

즉 이런 기존에 없던 급진적 도성 체재의 도시문명이 출현한다는 건 뚜렷한

외래 이주 선진문명 세력의 도래를 반증하는 것이고 이런 극소수 귀족은 다름 아닌

백제계를 주류로한 삼국시대의 우리쪽 도래인들이 주축이 되어 향찰문학이나

정원문화, 의복, 정치체재가 정비되기 시작. 다만 여전히 열도의 문명 수준이나 발달이

미비하고 국가의 재정여력이 충분치 못해서 성곽도 석성 위주가 아니라

일종의 셋트장 같은 목책성에 궁도 기와보다는 여전히 판자형태의 판개궁이 주류.

그외 관동일대 에조 세력이 여전히 날뛰고 있어 관동일대에 대한 방어목책성

을 구축. )


그리고 또 주목할사건이 672년 임신(壬申)의 난이라고 이런 열도내 우리 세력들간에

내전이 발발하는데 당시 백제를 지원하기 위한 부여교기의 왜군이 백촌강 전투에서

신라에게 박살이 나면서 이런 친백제계 세력을 엎고 친신라계 세력의 천무천황(天武天皇)

이 전면에 나서게 되는 중요한 쿠데타 사건이 나오게 되군요.

이 천무왕에 대해 위에 언급한 도쿄 이노우에 교수의 경우는 신라 김다수(金多遂)임에도

왜인으로 변조했다고 주장하거나 혹은 낮은 학설의 연개소문 어쩌고등 여러 주장도 나오

긴 하는데 (그만큼 이런 일본서기등이 우리 도래인들이 백제 본국이 망하고 열도에 본격

정착해서 나라 헤이인 시대를 열면서 열도의 선주민에게

신급의 지배계층으로 지배하다보니 정치적 명분

과 정당성 확보를 위해 일본 서기등 변조를 심하게 함으로 일본왕가내 실존과 허구가

교차하고 나이나 연대가 맞지 않는 점등이 나옴. 그래도 왜국 고대사에 딱히

참고할 사서들이 마땅치 않으니 참조로 교차 검증해야하는 상황)


하여튼 이런 임신의 난등을 보면 결과론적으로 이런 우리쪽과 관련된

세력 정치 양상이 열도내 도래한 또다른 우리도래인들에게도 상당한 영향력을 주었다는

걸 알 수 있는 사건들에 남북국 시대에도 왜국은 비록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떨어진

공간이였지만 여전히 나라헤이안시대에도 이런 우리쪽 선진문화를 배우고 교류하면서

도래인들 스스로의 향수와 문화를 이어가고 있었고 이후 남북국시대에 신라에서

고려로 왕조교체가 되는등 급변하는 상황이 도래하자 열도는 쇄국으로

열도내에서도 막부시대로 가면서 점차 왜색적 색채로 한층 강화된 흐름으로 봐지군요.

(이때부터 도리어 열도의 일왕은 점차 왜인 백성들 사이에서 존재감이 사라지면서

에도 시대에는 이런 일왕이 존재하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쇼군이 득세하다 이후

메이지시대 서양식으로 입헌군주제를 표방하면서 왜왕이 다시 전면에 나타나나

이역시 전범 극우들의 꼭두각시로 군국주의의 도구로 전락)


"일본 '만엽집' 등은 고대 한국어의 보물창고"

일본에는 8세기 초에 간행된 4가지 고전이 있다.

고대사 책인 일본서기(日本書紀), 고사기(古事記), 풍토기(風土記), 만엽집(萬葉集)이 있다.

8세기에 편찬된 이들 책들은 7세기 요동치는 한국의 정세판도에 따라

가야계, 백제계, 신라계, 고구려계의 황족, 귀족 등

엘리트 집단들이 대거 신천지 일본으로 건너가

서로 정권을 다투는 우리 한국인들끼리의 피 튀기는 정권 각축전을 담은 역사책이다.

http://cafe.daum.net/sisa-1/f8lD/714?q=%B8%B8%BF%B1%C1%FD
응응응응 17-12-29 14:48
   
ID:5PzAuVwT0
일본원숭이가 진화한 게 일본인


오늘의 베스트 댓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헤 17-12-29 14:48
   
일본원숭이가 진화한 게 일본인이랰ㅋㅋㅋㅋㅋㅋ진짜 귀엽다
인천쌍둥이 17-12-29 14:51
   
그 시절 중국인은 바다를 건너지 않았다
오로지 한반도인이 바다를 건너 일본에 갔지
부모의 나라 한국
야차 17-12-29 14:55
   
뻐드렁니에 까무잡잡하고 왜소하며 골격이 약함 = 죠몬인
훤칠한 키에 골격이 크고 사람답게 생김 = 도래인

너네들은 도래인이 있었기에 그나마 사람구실하게 된거다.
동남아 폴리네시안계라서 너네들은 그 풍습이 근대까지 남아있었잖아 이를 검게 칠하거나 온몸에 문신하고 맨발로 다니는 등 ㅋㅋㅋ
허까까 17-12-29 14:56
   
저놈의 명예백인론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과함께 17-12-29 15:14
   
단순한 드립이 아니라 진짜로 자신들이 유전적으로 백인의 후손이라 생각하는 일본인들이 있다니 놀랍네요
작은 키에 왜소한 체구만 보면 백인보다는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에서 발견되었다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일본인들의 유전적 조상일 가능성이 커 보임
그나마 한반도나 대륙에서 건너온 몽골로이드와의 혼혈 덕분에 지금 수준의 신장이라도 얻었다고 보임
안그랬으면 진짜로 반지의제왕을 일본에서 찍을뻔 했음
햄돌 17-12-29 15:21
   
도래인 절대다수가 한반도인들이었다
넷우익들도 모르지는 않네
성당턴스님 17-12-29 15:22
   
ID:Hg/kUAnC0
한국인은 일본인을 싫어하니
유전자가 다른 편이 기뻐할 일일 텐데
왜 필사적으로 일본인과 같은 유전자인걸로 하고 싶어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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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같은 자식 ㅅㄲ가 부모를 부정하고 천륜에 반하는 짓거리만 골라하는데, 그게 부모를 욕하는게 맞냐? 개망나니 자식 ㅅㄲ를 욕하는게 맞냐? 좋아하겠냐?
ysoserious 17-12-29 15:27
   
뿌리는 섞였을지 모르나...
몇천년동안 섬에서 퇴화한 걸 생각해야지...
ashuie 17-12-29 15:32
   
ID:hhDSTBz70

조선반도에서 쫓겨난 패배자들이 일본인의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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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가장 정확함
역대 왕조의 왕이되지 못한 왕자나 권력쟁탈전에서 패배한 세력들이
지배자의 화를 피하기 위해 덜 발달된 지역으로 진출하는건
세상 모든 지역에서 모든 역사에 공통된 기록입니다.
딱히 부끄러워할거도 없는게
세상 모든 나라가 이런방식으로 민족과 나라가 분산되어 발전해온거에요
당장 우리역사에도 예로들만한사례가 많습니다.
부여의 왕자였다가 권력쟁탈전에서 탈락하고 나라를떠나 고구려를 세운 동명왕,
그 동명왕의 아들인 온조또한 고구려를 등지고 남쪽으로 내려와 다시 자신들만의 백제를 새웠죠
고조선의 민족들 또한 토착세력이 아닌 어딘가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고
현재 한국인의 직계혈통으로 여겨지는 예맥족도 러시아 바이칼호수부근해서 이주해온 세력이라고하죠
왕좌를 놓고 두세력이 타투고 패배한쪽이 이주해서 다른나라를 세우는건 세계적인 관점에서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이치이고, 그로인해 고대한반도국가의 권력타툼에서 탈락한 사람들(도래인)이
넘어가서 일본이란 국가의 기틀을 닦게되는건 아주 필연적인 이치였습니다.


ID:nCXKamyy0

허리가 길고 다리가 짧은 건 야요이와 죠몬, 누구 탓이냐?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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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미안하게 생각한다ㅋㅋㅋㅋㅋ
     
zzag 17-12-30 00:06
   
바이칼에서 민족이동이 있었을 시기 남쪽을 향한 무리는 우리의 조상이 되고 북쪽을 통해 베링을 건넌 무리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조상이 되었다고 보여집니다.  인디언 구전'역사'서  "몽골리안 1만년의 지혜" 참조..
참치 17-12-29 15:42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지 않으면 우리가 싫어할 이유가 없지..

왜 방귀껴놓고 코막는 사람 욕하나??
     
ckseoul777 18-01-07 19:3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박^^ 진심으로 공감하게되는군요^^
hangover3685 17-12-29 16:10
   
일본 원숭이 진화론에 한표... 주변 다니다가 일본 원숭이 보이면 큰절 올려 니들 조상이니.
samanto.. 17-12-29 16:14
   
갈라파고스 고유종 인정.......
xeon 17-12-29 16:23
   
마지막놈 전형적인 왜구방숭이 ㅋㅋㅋ일본인이고싶어하는건 니들왜인망상 신체적으루 지금은 완전히 다른인종 ㅋㅋ
우디 17-12-29 16:28
   
잘 보고 갑니다
Attcamo 17-12-29 16:38
   
ID:3qOw3G750
그러니까 남한의 일한동조론(同祖論)처럼 끌어가고 싶은 공작인거지?
한마디로 역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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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그 일한(선)동조론 자체도 너거들 존나 빠는 메이지시대의 쓰구 타다미치秀次道孝부터 일제시대의 기타 사다키치喜田貞吉 주장한 거거든? 너거들이 에도시대부터 일본인은 조선인과 뿌리가 같다고 존나 자위질하던 때부터 니들은 그냥 왜倭거든? 지들이 존나 자위질하고 싸고 먹고 치우고 애쓴다 애써ㅋㅋㅋ
닥목치고 17-12-29 16:40
   
제발 엮지 말라고 너네가 백인이라면 믿어줄게
그러니까 우리하고만 엮지만 말고 너네끼리 자위하면서 살아만가라
지나가는이 17-12-29 16:43
   
이 기사의 유전자검사한게 일본인인데 뭔 한국이 자꾸 지들과 엮이고 싶다고 착각하는건지....
코코라마 17-12-29 16:54
   
웃기네 원숭이들 그냥 똥남아인들일뿐이지
샥th핀 17-12-29 16:58
   
ID:5FEMhA8P0

일본인은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황색인종」이 아니야

황색인종(옐로)이란 건 한국인이나 중국인을 지칭하는 말이고

구미에서는 오히려 일본인은 백인 동료라고 생각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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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도 없나 봅니다. 제발 유럽으로 꺼져버리던가 ㅋㅋ
니네가 제일 미개했어 동북아에서
거울이라도 있으면 입을 벌리고 봐봐
어떻게 생겼는지
winston 17-12-29 16:58
   
니깟놈들의 조상은 지금 온천욕 하고 있잖아!!
돌돌맨 17-12-29 17:01
   
원숭이들에게 문화를 전수해줘서 인간답게 살게해준게 백제인들이고
일왕도 백제의 후손임을 밝히고 자랑스럽게 여기는데 이 진화덜된 원숭이들은 은혜를 모르고 부모같은 나라에 해꼬지를
 한단말이야..
     
magister 17-12-31 00:01
   
사실 백제보다는 가야계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BTJIMIN 17-12-29 17:04
   
번역 감사합니다
솔오리 17-12-29 17:26
   
아주 오래전부터 일본에서 '일본인은 아시아인종이 아니다' 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쭈욱 있어왔었죠...당연히 학계에선 너무 터무니없는 내용이다보니 인정받지 못하고
여기서 일본에 대해 유추할 수 있는건 얼마나 일본인들이 백인을 우상시 하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우스게소리로 '일본인은 명예 백인'이라며 자위질 하는 꼴을 보면 정말 얘들이 과연 재정신인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같은 아시아인으로써 저는 일본이 너무나 처량해보입니다.
벌레소리를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일본인 스고이~! ㅋㅋㅋ
월하정인 17-12-29 17:37
   
원래 동북아시아인도 아니였던 죠몬원숭이 ㅄ들이 ㅋㅋㅋㅋ

동북아시아고인종은 한국,중국,몽골 정도밖에 없음.
월하정인 17-12-29 17:39
   
ID:Hg/kUAnC0
한국인은 일본인을 싫어하니
유전자가 다른 편이 기뻐할 일일 텐데
왜 필사적으로 일본인과 같은 유전자인걸로 하고 싶어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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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들 항상 보면 기사를 제대로 안읽은건가 ㅋㅋ
왜 우리를 들먹이지 ㅄ들이;; 니네나라 언론사 가서 따져 죠몬원숭이 ㅄ들아
khikhu 17-12-29 17:42
   
와 지린다.
명예백인설 농담인줄 알았는데
내손안에 17-12-29 17:47
   
이제서야 알아냇니?
니놈 죳몬들을 본시 학명으로 호모 갈라파고스 사피엔스 잽 사피엔스 라고 부른단다
내손안에 17-12-29 17:51
   
ID:gkzKRh520
나쁘게 말하자면 잡종
좋게 말하자면 하이브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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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이놈이 결국 나를 웃겨죽이는구나
그런데 니들은 하이브리드가 아니고 아이노꾸라고 한단다
BTSv 17-12-29 18:20
   
대당 17-12-29 18:42
   
쪽바리들 지들이 무슨 우월한 인종 이라고 단독 dna 찾고 이지럴 하는지 ㅋㅋ
키 작고 뻐드렁이에 왜소하고 못생겨
지들도 지들 유전자가 부끄러워 국책으로 혼혈 정책을 펴 대대적인  인종개량을 했던 것들이 ㅋㅋㅋㅋㅋ
설설설설설 17-12-29 18:47
   
키작고
체격왜소
털 많고
치아불규칙
피부 시커멓고

존나 민족 자체가 심각하게 구리고 하급한 잡종민족
근본 자체가 없음.
꽤빙 17-12-29 18:57
   
중국인 한국인보다 제일 샛노란 피부의 놈들이 명예 백인 행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울좀 봐라
할움 17-12-29 18:57
   
실제로 고대 한국인들이 서일본쪽으로 건너가 개척하면서 열도 원주민들은 점점 북동쪽으로 쫓겨 났지요.
고등문명 집단과 수적 우위 앞에선 어쩔 수 없는 일.

다시 말하면 일본과 일본인은 한류의 피조물이라는 것 ㅋㅋ
옷이작다 17-12-29 19:06
   
ID:5PzAuVwT0
일본원숭이가 진화한 게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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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최고다.. 오늘에 장원이다...
nouri 17-12-29 19:07
   
일본과 같은 DNA이고 싶은 게 아니라
유럽은 한반도, 미국은 일본 식으로 추측하는 거지
한반도 도래인 건너간 후부터 열도가 성장하기 시작했으니까
일본의 모든 것들이 고대 한반도 도래인의 것이 아닌 걸 찾기가 힘드니까
가출한술래 17-12-29 19:39
   
잘 보고 갑니다,.
최순실 17-12-29 20:25
   
잘보고갑니다
황금거북이 17-12-29 22:01
   
고유종이지........ 방사능 원숭이들  (づ_ど)
아날로그 17-12-29 23:31
   
토종 죠몽인의 조상은 폴리네시안 계열.....

지들이 그렇게 멸시하고...조롱해대는 토인(土人)..이 그들의 직계조상.....

고로....누워서 침뱉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형 17-12-30 01:11
   
북방아시안을 부정하는분들은 댓글이 없네?
자기자신 17-12-30 02:46
   
잘 봤네요
못생김 17-12-30 02:48
   
종족의 다름이 특별함을 갖는다는 미개한 발상은 히틀러나 하는 생각인줄 알았습니다.
버섯머리 17-12-30 04:53
   
잘 보고 갑니다.
짜져 17-12-30 07:19
   
제발 그래야 한다. 백제의 후손 이니 하는 개소리 절대 하지마라. 쪽빠리는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작고 못생기고 악날하고 야비한게 쪽빠리.
서늘한여름 17-12-30 10:35
   
잘 봤습니다^^
배꼽티앙 17-12-30 17:48
   
백인이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6시내고환 17-12-30 17:57
   
ID:hhDSTBz70
조선반도에서 쫓겨난 패배자들이 일본인의 선조 ㅇㅇ 이게 펙트야
숭구리 17-12-30 18:15
   
M7a는 일본인에게서 밖에 볼 수 없는 그룹이며, 한국 일부에서 확인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는 죠몬시대에 일본으로부터 한국으로 이주한 것으로 생각된다. M7a는 남방에 기원이 있다고 여겨진다.

 N9b도 또한, 조선반도 연안부에서 일부 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일본인에게서 밖에 볼 수 없는 그룹이다. N9b는 시베리아 부근에서 기원한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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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원문의 내용은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ㅋ 잽들은 이걸 보고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ㅋㅋㅋㅋㅋㅋ
일본에서 말하는 그  죠몬인이라는 것 조차 고대 한반도에서 건너 간 사람과 시베리아에서 결국 한반도를 통해 건너 간 사람이라는 걸 뜻하잖아.
뭔 일본의 고유종? ㅋㅋ

이는 죠몬시대에 일본으로부터 한국으로 이주한 것으로 생각된다. <--- 반대로 해석하는 쪽뽕 특유의 깨알 같은 망상은 지치지도 않고 ㅋㅋ
권선비 17-12-31 00:20
   
웃기는 댓글!~
ID:SPM6i+6L0
바다가 무서워서 못 건넌 겁쟁이들이 한국에 남은 게 아니고?

- 사실 고대든 중세든 근대든 누가 섬으로 가려고 하겠어요?
일본 친구들 역사 인식이든 상식이든 정말 안타깝네요.
춘스리 18-01-01 19:31
   
"한국은 일본의 형님이 아니라 어버이였던 거구나. 놀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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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원숭이 ㅅㄲ들이 댓글 센스가 좋단말야...
명불허전 18-01-02 18:41
   
일본 원숭이가 일본인 고유종의 하나라는 건 전세계가 다 아는 사실
ckseoul777 18-01-07 19:32
   
바다가 무서워서 못 건넌 겁쟁이들이 한국에 남은 게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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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맞다 맞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