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서 지난 설날 특집으로 방송됐던 한국 활과 궁술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상에 대한 해외 유저들의 반응을 살펴봤습니다. 한국의 활 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권에서의 활과 그 관련된 역사에 대한 여러 해박한 지식들을 엿볼 수 있는 댓글들이 많았습니다. 그럼 즐겁게 감상 부탁 드립니다.
<주제글 게시자>
ByzantineBasileus
궁술은 한국 문화에 있어 언제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어. 조선왕조(1392~ 1897) 시대, 일반 백성들뿐 만 아니라 지배 계급이던 양반들도 정기적으로 활쏘는 걸 연마했지. 이 다큐멘터리에선 한국 활이 어떻게 설계되고, 군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중심적 역할을 수행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어.
ㄴ Zhieyen
활쏘기는 원래 다른 전 세계 귀족들도 연마했던 게 일반적인 거 아녔어? 그리고 난 또 일반 백성들이 정기적으로 활 쏘는 연습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글쎄올시다야. 왜냐면 한국의 첫 번째 황제(고종을 말하는 듯 함)가 1900년 경 활쏘기를 대중화시키고 그걸 스포츠 화 시켰던 사람이거든.
ㄴ FriendlyPyre
내 생각엔 귀족들은 검술 쪽에 치중했을 거 같은데.
ㄴEquusMule
그건 문화에 따라 다르지. 동양문화에선 활 쏘기를 귀족적인 것으로 높이 보는 경향이 있었어. 유럽인들도 활을 많이 사용하긴 했지만, 어떤 유럽 문화권에선 활쏘기를 그저 농민들의 기교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지.
사실 활쏘기가 너무 대중화되 십자군원정 이전엔 교황이 다른 기독교인들이 활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 재정 강행을 시도했었거든. 왜냐하면 유럽인들이 활 가지고 서로 살육하는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지.
ㄴKira620
활은 한국 기병, 육군, 해군 병사들의 기본적 무기였어. 궁술은 일본과 만주 침략자들에게 맞서는 우리 방어 전략의 핵심적 요소였지. 궁술을 단순히 귀족적인 기예라고 경시하는 건 옳지 못해.
다른 아시아 문화권에서도 같은진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궁술이 갖는 중요함이 크거든. 그걸 훼손하지 말아줬음 해. .
ㄴ EquusMule
난 한국이 특별하게 궁술을 숭상하는 유일한 나라라고 말한 적 없어. 아시아의 귀족들은 검술보단 궁술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고 말했지. 반면 유럽에선 검술이 더 중요했고 궁술은 일반적으로 피지배 계층에게 유행했지.
다큐멘터리에서 보듯이, 한국군에 있으면서 위명을 새우고 계급이 올라 가는데 있어 궁술에 대한 적성이 매우 중요했지. 전장에서 쓰는 무게 나가는 활을 쏠 수 있다면 신분과 무관하게 그걸로 누구든 군에서 계급 상승이 가능했다는 거지.
다른 많은 아시아 문화권에선 그렇지 않아. 그러나 그게 궁술의 중요성을 낮게 봤다는 걸 의미한 건 아냐.
ㄴKira620
그렇군. 미안. 내가 네 글 논점을 잘 못 이해했어.
ㄴGonarhxus
궁술을 숭배하는 귀족들은 다양한 문화권에 걸쳐 존재했었어. 영국의 헨리8세는 장궁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오스만 술탄들은 여가활동으로 마상에서 활을 쏘곤 했지. 일본의 진무 왕은 전통적으로 활과 함께 묘사되지. 공자는 활을 기품 있는 군자의 예술로 생각했고 만주의 황제들은 마상에서 활로 사냥을 하곤 했어..
ㄴ Syn7axError
민간인의 관점에선 분명 사실이긴 하지. 기사, 사무라이, 보초병, 귀족 등등..은 일상에서 칼을 들고 다니며 그걸 어떻게 쓰는지 알고 있었지. 그들은 때론 칼을 가지고 다니는 게 허용된 유일한 사람들였기도 하지.
근데 전장에선 좀 이야기가 달라. 확실한 건, 터키/몽골 그리고 일본은 궁술을 매우 중요시 여겼던 반면 유럽 국가들은 그렇지 않았음.
ㄴsimulacrum81
난 한 300년 간 정도 영국인들이 긴 활(장궁)에 꽤나 많이 의존했다고 생각했었는데..
ㄴ Syn7axError
네 말 맞아. 근데 영국에서 궁수들은 군 내 최하위 직들이었어. 그런 경향은 그 시대엔 매우 전형적인 거였지. 고위급 군인들도 분명 궁술을 중요시 여기고 연습도 했지만 봉급 같은 모든 면에서 궁수들 보단 대우가 좋았지.
난 궁술 자체가 가치 있게 여겨졌다고 말하는 덴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궁수들의 경우엔 그렇지 않지. 그들은 일본이나 몽고에서처럼 상위계층이 아녔어.
ㄴhborrgg
궁술은 보통 귀족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매우 좋았고 체력 증진과 건강 관리 하는데 좋은 방법으로 여겨졌어. 하지만 실제 전투에서 좋은 갑옷과 말을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은 활을 사용하는 대신 말을 타고 검으로 싸우는 방식을 선호했지.
ㄴ Kira620
활은 한국에서 기본적인 사냥 도구였기 때문에 매우 일반적이고 정기적으로 궁술을 수련했지. 덧붙여서 활은 가장 중요한 전쟁 도구였고 어려서부터 소년들이 전쟁 놀이 같은 걸 할 때 활을 가지고 놀도록 장려되기도 했어.
내가 공부한 바 이건 1500년 대 경을 두고 하는 얘기야. 전 세계의 귀족들이 궁술을 연마했던 건 분명 사실이야. 그러나 한국 문화에 있어 활이 얼마나 필수적였는지에 대해 그 의미를 축소 시키는 건 잘못됐다고 봐.
황제의 중요 덕목 중 하나는 무술 실력이었고 그 중 궁술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지. 신라시대 화랑들은 활을 명상과 훈련의 도구로 썼고 한국 역사에서 이순신을 포함한 모든 유명한 장군들에 대한 기록들을 보면 매우 놀라울 정도로 그들의 궁술실력이 같이 묘사돼 있지.
난 이거 가지고 몇 시간 썰 풀 자신 있어. 여하튼 궁술은 그만큼 우리 한국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유산이고 여전히 우리 정체성의 일부지.
ㄴ dreezyyyy
한국 역사에 황제란 건 없었어. 한국 역사는 조선 왕조 시대를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감. 고조선 > 삼국시대 -> 통일신라/발해 -> 고려 - 조선 왕조 - 현재 북한/한국. 이렇게 요약되지.
한국 궁술은 천년 이상 한국 역사의 필수적인 부분이었어. 주몽, 박혁거세, 이성계는 과거 한국 역사에 존재했던 세 왕조들의 시조였는데 모두 활에 있어선 최고였지.
ㄴ redditor_85
한국엔 두 명의 황제가 있었어. 열강들의 압력을 받고 있던 고종이 1897년 10월 대한제국을 주창하며 황제가 됐지. 황제의 칭호를 얻음으로써, 그는 한국을 청과의 종속적인 관계를 깨부시고 청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지. 그 후 고종의 아들 순종이 두 번째이자 한국의 마지막 황제가 됐고.
Hamoct
내가 잘 못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활과 화살은 명예의 관점에서 보면 좀 못 마땅해 보이는 병기였어. 최소한 일본 문화에선 그랬지.
일본 무사도를 보면 모든 게 칼과 관련돼 있지. 활과 화살을 쓰는 건 수년간 거쳐야 하는 검술 훈련의 이점을 크게 부정하고 없애버리는 거라 인식함.
ㄴ prozergter
사무라이는 기병 궁수로부터 시작된 거고 활은 매우 높이 숭상돼 왔어. 카타나(일본식 활인 듯)는 보조 무기였어. 대부분의 사무라이들이 칼에 의지하기 전 에 활과 창으로 싸웠지.
사무라이 하면 칼을 연상 시키는 인식은 훨씬 훗날 생긴 거야. 실제 사무라이 전쟁이 끝난 훨씬 이 후에 말이지.
ㄴ Gonarhxus
이건 사실이야. 일본에서 활과 장창은 전쟁의 기본 무기였음. 총이 나오기 전까지 말이지. 칼이 명성을 얻게 된 건 에도 시대 평화기 때였지.
ㄴ lettucerock
너 잘못 알고 있어. 사무라이는 항상 활과 화살 사용했었음. 너 총이랑 혼동 한 듯.
ㄴ Gonarhxus
일본은 나름 자랑스런 활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 논란의 소지가 있는 그들의 첫 번째 왕인 진무왕은 활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지. 센고쿠 시대에 그들이 못마땅하게 바라봤던 무기는 총기였지. 근데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어. 총이 결국 일본의 전쟁터에서 화살을 꽤나 빠르게 대체했거든.
ㄴPrincealmia
일본인이 위대한 검술가들였다고 한다면, 한국인들은 동양 최고의 궁술가들였어. 심지어 몽골애들을 능가했지.
TheMaplesAndWe
몽골인들이 어떻게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를 정복했는지 생각해 보면, 그들의 특기 중 하나였던 마상에서 활쏘기가 가능했던 게 주요하게 작용했지.
걔들은 심지어 전장에 여자들을 데려가지 않더라도 활 쏘는 훈련을 시켰어. 궁술은 역사에 있어 정말 중요한 이정표 같아.
ㄴ alperendir
마상에서 활 쏘는 거랑 백성들을 총동원해 이동하면서 전쟁할 수 있던 이 두 가지 요소가 바로 유목민들의 주요 성공 요인이었지.
ㄴ EquusMule
난 징기스칸이 행한 통합 정책 때문에 몽골이 그 레벨에 올라설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싶군. 그런 접근법이 없었더라면 몽골은 그저 또 다른 훈족이나 스키타이인들 같이 되었을 거야.
ㄴ Leafklin
스키타이인들은 여성 기병들을 보유했던 걸로 유명했지.
Baneken
몽골 활은 매우 효과적이라 원 왕조가 망했을 때 중국의 한족 왕조는 그걸 전면 금지 시켰어. 실제 모든 몽골 활을 폐기토록 명이 떨어졌고 그래서 모두 파괴돼버리고 제조를 금지 당했지.
그래서 몽골 활을 만드는 비법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어. 오늘날 역사가들은 몽골 활이 만주 쪽과 한국 활 디자인을 약간 섞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ㄴ Gonarhxus
너 그거 어디서 얻은 정보냐? 그 당시 몽골과 중국의 활 디자인은 같았어. 몽골 활을 금지했다는 건 자신들의 것들도 스스로 금지했다는 건데 말이 되나.
몽골왕조 정복기 동안 사용했던 활의 유형과 명나라 초기의 활 유형이 같아. 그 활들은 훈, 후니크, 코탄, 창샤오 활이라고 불리곤 했고 중국과 몽골 같은 아시아 전역뿐 만 아니라 러시아, 심지어 헝가리에 까지 흔한 유형이었어. 그 활들은 만주와 한국 활과는 그렇게 큰 유사점이 없었지.
ㄴ Baneken
몽골과 중국인들은 한번도 같은 모양의 활을 쓴 적 없어. 유일한 유사점이라곤 나무, 뼈대 그리고 시위로 구성돼 있다는 거 말곤 없지.
몽골인들의 활이 중국이나 한국 것과 같은 유형이라고 주장하는 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인들의 활과 중국인들의 활이 같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iron40
활을 쓰는 사냥꾼으로써 과거의 진정한 활 대가들에 비해 내가 얼마나 압도적으로 활 실력이 열등한지 알 수 있어. 탄소 섬유 화살이나 광학조준경 같은 오늘날의 신기술이 복합 장착된 첨단 활 없이 난 진짜 아무것도 아니지!
ㄴ 1ce132
진짜야. 나 어떤 사람이 장궁 쏘는 시범 본 적 있었는데 진짜 힘도 들이지 않고 매번 그냥 과녁 중앙을 맞춰버리더라고. 현대식 양궁과는 다르지만 인상적인 건 똑같더라고.
ㄴ Inkalle
맞아. 나도 양궁 좀 하는데 진짜 전통 장궁은 난 아마 시위 조차 당길 수 없을 거야.
WorldCop
이 다큐멘터리 정말 마음에 든다. 잘 봤어.
ㄴ catchlight22
몽골인 아빠가 과녁 옆에 서서 딸에게 활 쏘는걸 가르치는 장면 정말 마음에 든다.
ㄴ CaptainArsehole
ㅋㅋ 맞아! 진짜 대단하다 생각함. 정말 자신감 넘치는 아빠야.
ㄴ]catchlight22
“여길 쏴 딸아! 아빠가 늑대라고 생각해!”
Ryankz12
나 주몽 봤는데 한국 궁술 진짜 끝내주지.
ㄴ Darepuppers
크.. 그 전설적인 사극!
ㄴ Ryankz12
난 주몽 이후론 다른 어떤 역사 드라마도 보질 못하겠더라고. 주몽 말곤 다 그냥 노잼.
ㄴ disguiseunknown
선덕여왕도 좋지.
Inferno25Amj
이 다큐멘터리가 왜 대한민국이 세계 양궁계를 지배하고 있는지 잘 설명하고 있군.
ㄴmumpie
궁술이 역사적으로 중요하다는 건 그렇다 치고, 올림픽 양궁에서 한국이 성공하고 있는 건 정부와 양궁단체들의 후원 때문인 게 더 크지.
아래 링크 가보면 한국의 올림픽 양궁 유망주들이 유년시절부터 어떻게 선발되는 지 알 수 있을 거야.
어떤 티비쇼에서 한국 궁사들이 양궁이란 스포츠를 즐기고 기꺼이 궁사가 되려는 사람들 찾기가 유독 요즘 시대 들어 어렵다고 한 걸 본 기억이 나.
ㄴ EquusMule
링크 건 애 말 저거 사실이 전혀 아니야. 한국의 양궁 지배력은 한국엔 어떤 경계도 없기 때문이야. 뭔 소리냐면 한국에선 양궁을 배우고 싶으면 쉽게 배울 수 있고 장비가 일반적으로 제공돼.
그래서 인적 자원이 풍부한 거지. 덧붙여, 나라 규모가 비교적 작아서 공식경기에 더 많은 사람들을 한데로 끌어 모을 수 가 있어. 그래서 경쟁이 심하고 그런 경쟁을 통해 더 나은 궁사들이 배출되는 거지.
mumpie
영상을 보면서 몇 가지 주의 깊게 본 거.
1. 아시아나 유럽이나 물고기 부레가 최고의 접착제 원료 중 하나로 알려졌다는 사실.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는 거.
2. 활의 중심 설계 구조가 한국과 몽골에게 특별한 게 아님. 다수의 동양권 국가들과 심지어 미국 인디안 들에게도 비슷한 구성으로 만들어진 활이 있음.
3. 중간에 이옥 씨 부분에서 언급되는 활의 힘과 길이에 대한 주장은 정확하지 않음. 같은 품질 수준이라는 가정 하에 보통은 더 큰 활이 짧은 활 보다 더 효율적인 편임. 뒤로 휘어진 짧은 활은 말 위에서 다루기가 더 쉽기 때문에 주로 마상에서 사용됨. 영상 끝 편에 나오는 전통 한국 활을 영상 초반부 활들과 비교해 보면 그것의 더 길고 쭉 뻗은 디자인때문에 더 짧고 뒤로 휜 활들 보다 땅에서 더 잘 쏠 수 있었을 거야.
4.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몽골 식 손가락 그립 대신에 지중해 식 스타일로 시위를 당기는 걸로 보임. 전통적 한국 궁술에서 사용하는 눈물 모양의 엄지손가락 링은 이 링크 페이지 들어가면 하단에 있는 것들과 비슷함.
http://www.atarn.org/FAQ/thumbring_fit.htm
ㄴ 1ce132
내 생각엔 그게 한국 활에만 쓰이는 것들이라고 한 게 아니라 한국 활은 몽골 활이 쓰지 않는 생선 부레 같은 어떤 특정 재료를 쓴다고 말한 거 같아.
그리고 같은 무게로 당겼을 때 보통은 뒤로 휜 활이 긴 활에 비해 화살 속도가 더 빠르다고 한 거 같아. 뭐 한국어를 조금 알아 듣는 수준으로 내가 이해한 것들일 뿐이야.
(역주. 자막 퀄이 그렇게 좋지 못해 댓글들 보면 영상 내용을 오해하는 부분들이 보이곤 합니다.)
shortenda
나 궁사 나오는 한국 액션 영화 하나 봤었는데, 최종병기 활인가 그럼. 역사적 고증 수준이 높은진 모르겠는데 여하튼 대략 16세기를 배경으로 한 흥미로운 영화였어.
ㄴ Pugad
그 영화에서 활싸움 씬 정말 끝내주지!
SeouloftheBeaver
재연된 장면들이 하이라이트였지만 진심 전반적으로 매우 잘 만들어진 다큐야. 살짝 선동적인 부분도 있긴 하지만 뭐 그 정도는 애교로 참을 수 있는 정도.
Blvck_sunshine
음.. 한국은 정말 항상 올림픽에서 양궁 메달을 획득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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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prozergter
사무라이는 기병 궁수로부터 시작된 거고 활은 매우 높이 숭상돼 왔어. 카타나(일본식 활인 듯)는 보조 무기였어. 대부분의 사무라이들이 칼에 의지하기 전 에 활과 창으로 싸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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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夷는 從大從弓東方之人也라” “(종대종궁동방지인야)
“동방사람은 대인으로서 활을 잘 다룬다.”
-설문해자(說文解字)
“동방을 ‘이(夷)’라 한다. ‘이’라고 하는 것은 뿌리이다. 말하기를,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한다고들 한다. 모든 것은 땅에 뿌리박고 있으므로 천성이 유순하고 도로써 다스리기 쉬워서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가 있게 된 것이다.”
-후한서 동이전(東夷傳)
서토 최초의 정치체 왕조로 보는 상나라 자체가 황하유역의 하한족들이 주체가 아니라 만리장성 밖 우리 고조선문명권에 있던 동북방의 선진 동이족이 남하 내륙 하한족을 정복하고 성곽, 예악, 점복, 제천의식,청동,옥기등 다양한 도시문명부터 한자의 원형 문자인 갑골문등을 발명한 외래 정복왕조사에서부터 시작.
“은(상)나라는 동북쪽에서 와서 흥했으며, 망한 뒤에 동북으로 돌아갔다”
-고고학자 푸쓰녠(부사년)
짱국 하남박물원(河南博物院)
장발영(張發潁)의 저서 <봉황토템 동이인 및 그 문화의 공헌>- <시회과학집간>2001년 2기- 에서
한국 역사에 황제란 건 없었어.>???
짱국 공산당의 주석이라는 용어격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란
호칭이 있듯 고대 만주와 연해주 한반도와 열도를 아우르는 우리 고조선 고구려 동방문명권에도 정복을 밥먹듯
당하든 노예사로 점철된 서토 짱개에도 있는 황제라는 호칭격이 없었을거란 개솔인가?ㅋ
우리나라는 문물과 예악이 흥행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며 장삿배가 연이어 내왕하여서 값진 보배가 날마다 들어오니, 중국과 교통하여도 실제로 소득이 없을 것입니다. 거란과 영구히 절교하지 않을 터이면 송 나라와 교통함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하니 따랐다.
<고려사절요 문종 12년>
고구려 벽화에서도 단군이나 주몽을 천제지자(天帝之子)로 동일시 했고(우리
고조선 건국신화 자체가 하늘의 직계 천손인 환웅이(선진문화세력) 내려와 당시 토착재지 세력인
곰 토템 숭상의 웅족과 호랑이 토템 숭상의 호족 중 웅족을 파트너로 해서 이런 천족과 인족이 만나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재세이화, 천손강림, 광명사상, 하늘숭배,인본주의를 바탕으로 이야기
되는게 고조선 건국 신화)
태화 4년 5월 16일 병오일의 한낮에 백 번이나 단련한 철로 된 칠지도를 ○○○○가 만들었다. 온갖 적병을 물리칠 수 있으니 제후국의 왕(侯王)에게 주기에 알맞다. 지금까지 이런 칼이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 기생성음이 일부러 왜왕을 위하여 정교하게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우리나라 할때)나라의 ‘백제천(구다라강:百濟川) 옆에 백제궁(구다라궁; 百濟宮)과 백제사(百濟寺)라는 큰 가람을 지었다. 조메이왕이 구다라궁에서 살다가 서거했을 때 ‘구다라노오모가리(百濟大殯)’로 장례를 치렀다’"
-일본 서기
토쿄대 이노우에 교수
"일본은 고대 한국인이 세운 나라이다. 일본은 임나일본부 설치를 날조했을 뿐 아니라 오오진(應神)왕이 백제계 부여(夫餘) 후왕인 의라(依羅)이며, 기토라 고분의 40대 텐무(天武)왕은 신라 김다수(金多遂)임에도 일본인으로 변조했다. 최초로 일본을 지배한 천황은 백제인의 후손인 15대 오우진(應神·4세기)천황과 16대 닌토쿠(仁德·5세기)천황 부자다. 오우진 천황이 백제 복식을 입었다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나온다. 이들 천황 부자에 의해 고대 일본의 가와우치(河內)왕조가 세워졌다.
USA캘리포니아대학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
고대 한국인의 선조가 일본의 원주민 [조몬인],[야요이인(한국을 제외한 대륙민족)], [아이누족]을 정복하므로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탄생 시켰다.
카큐슈우인대 오오노 스즈무 교수
"한국인은 일본인에게 금속 사용법을 가르치고, 야금·금공 기술을 전했으며,
염색·피혁제조·베틀 직조·기와 제조·의학·역법·천문학·조불(造佛)·사찰 건축·조탑 등 모든 것을 가르쳤다”(‘日本語の 世界’, 1980)
잉글랜드 100, 조선 134, 중국(강소성, 절강성) 191.
중국전체의 평균 총요소생산성은 191 이하일 것이나 이 역시 잉글랜드보다 高.
◇ 1인당 GDP 비교(조선 vs. 중국)
1820년 1인당 GDP - 중국: 600달러, 조선: 600달러
┃중국의 1인당 GDP 추이
- 인구의 비약적 증가로 인해 1500년부터 320년간 600달러 수준.
- 1870년 530달러로 추락.
- 1920~30년대 550달러대에서 등락을 반복.
┃조선의 1인당 GDP 추이
- 1870년 604달러로 반등
- 1911년 777달러(아시아 2위)
- 1917년 1,021달러
- 1939년 1,459달러
조선의 생활수준은 16세기말부터 상승하여 18세기 영·정조시대(1724~1800)에 정점을 기록한 후 하락.
- 16~17세기에는 중국보다 낮을 수 있으나 18세기 중국을 추월.
- 19세기(1820년)에는 다시 중국과 비슷한 수준.
◇ 조선의 교육복지
┃세종치세(재위 1418~50) 이후 18세기까지 지방향교, 사학(四學), 성균관 등 모든 유생들에게 무상교육, 무상숙식, 학비지급, 학전(學田)지급, 면세 및 요역면제.
-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는 「논어」의 유교무류(有敎無類)의 원칙에 따른 것.
조선전기까지만 해도 주변국가와 민족들에 비해(특히 일본에 비해서는...)
궁술, 활쏘는 사수들이 상대적으로 뛰어나고 전력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지만.....
왜란과 호란을 거치며 조선후기로 갈수록 조총 등 화약병기를 취급하는 포수들의 역할이
비약적으로 커지게 됩니다.
무엇보다 활쏘는 사수들은 적어도 1년 이상 훈련해야 겨우 전장에 투입이 가능하고
숙련된 수준까지 도달하려면 몇 년의 훈련기간이 소요되는 반면에
조총은 두어달의 훈련기간만 거치면 충분히 전장투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지비 차원에서도 보자면 초기장비를 갖추는 비용에서만 조총이 활보다 많이 들 따름이지
일단 갖추어놓으면 조총은 거의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반면에
활은 관리하기도 까다로우며, 수명이 길지않아 수시로 교체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유지비용이 조총과 비교하면 몇 배 이상 듭니다.
따라서 조선후기에는 사수 뿐만 아니라 주로 칼과 창 등의 냉병기를 다루는 살수들 또한
점차 비중이 떨어지게 되며... 기병의 비중 또한 현저히 떨어지게 됩니다.
결국 18세기 영조~정조 시기에 이르면 숙련된 활 쏘는 사수들조차 조선땅에에는
확연히 줄어들어.... 이전 시기까지는 엄격한 군사기밀로 취급되었던 편전의 제조와 운용술이
청이나 일본으로 유출되어도 큰 신경을 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일본, 일본, 아니 한국 활과 귀족의 역사 언급 하는데 사무라이는 왜 저렇게 찾는지. 차라리 금나라 철기병이나 거란의 기병 같은 한국이 화기를 쓰기 이전 육로로 국경이 맞닿아 활로 대응하고 영향받으며 군제에 영향을 주고 받았던 나라들을 이야기 해야 말이 맞는거 아니겠습니까? 임란은 이미 화기의 시대이니. 애초에 활잘쐈다는 주몽이 나라를 세우고. 조선조차도 활을 잘 쏘는걸로 유명한(실제 여부와 별개로 활 잘쏘는게 사람들이 숭상하는 요소라서 갖다 붙였을 가능성도 있지만) 장군이 나라를 세웠는데, 활 쏘는걸 귀족들을 안했을 것이라니. 아무리 한국 역사에 관심이 없어도 토론 참여할려면 시조 왕 이야기는 접하고 시작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군요.
그나저나 유럽은 궁병 대우가 안 좋았군요. 그러니 동쪽에서 활로 쏘면서 올 때마다 털리지.
일본활 사정거리도 모르고 일본 애니판다지가 현실인줄아는 애들 댓글이 참 많네요 일본이 얼마나 자국을 미화시켜 그 왜곡되고 과장 된허상으로 세상사람들의 생각을 기만시켰는지 보여서 씁쓿하네요 일본이 이런 짓을하는 동안 일본에게 몹쓸짓 당한 나라들은 먹고살기힘들어 신경쓸 겨를도 없었고 일본이 던져 주는 돈 때문에 앞다 억울하단 소리도 못한 나라들과 피해자들 생각하면 가슴이아픔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