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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D] 해외네티즌 "한국 활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해외반응
등록일 : 18-09-01 14:31  (조회 : 37,779) 글자확대/축소 확대 축소 | 프린트

KBS에서 지난 설날 특집으로 방송됐던 한국 활과 궁술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상에 대한 해외 유저들의 반응을 살펴봤습니다. 한국의 활 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권에서의 활과 그 관련된 역사에 대한 여러 해박한 지식들을 엿볼 수 있는 댓글들이 많았습니다. 그럼 즐겁게 감상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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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글 게시자>
ByzantineBasileus
궁술은 한국 문화에 있어 언제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어. 조선왕조(1392~ 1897) 시대, 일반 백성들뿐 만 아니라 지배 계급이던 양반들도 정기적으로 활쏘는 걸 연마했지. 이 다큐멘터리에선 한국 활이 어떻게 설계되고, 군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중심적 역할을 수행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어.


ㄴ Zhieyen 
활쏘기는 원래 다른 전 세계 귀족들도 연마했던 게 일반적인 거 아녔어? 그리고 난 또 일반 백성들이 정기적으로 활 쏘는 연습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글쎄올시다야. 왜냐면 한국의 첫 번째 황제(고종을 말하는 듯 함)가 1900년 경 활쏘기를 대중화시키고 그걸 스포츠 화 시켰던 사람이거든.


ㄴ FriendlyPyre 
내 생각엔 귀족들은 검술 쪽에 치중했을 거 같은데.


ㄴEquusMule 
그건 문화에 따라 다르지. 동양문화에선 활 쏘기를 귀족적인 것으로 높이 보는 경향이 있었어. 유럽인들도 활을 많이 사용하긴 했지만, 어떤 유럽 문화권에선 활쏘기를 그저 농민들의 기교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지. 
사실 활쏘기가 너무 대중화되 십자군원정 이전엔 교황이 다른 기독교인들이 활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 재정 강행을 시도했었거든. 왜냐하면 유럽인들이 활 가지고 서로 살육하는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지.


ㄴKira620 
활은 한국 기병, 육군, 해군 병사들의 기본적 무기였어. 궁술은 일본과 만주 침략자들에게 맞서는 우리 방어 전략의 핵심적 요소였지. 궁술을 단순히 귀족적인 기예라고 경시하는 건 옳지 못해. 
다른 아시아 문화권에서도 같은진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궁술이 갖는 중요함이 크거든. 그걸 훼손하지 말아줬음 해.  .


ㄴ EquusMule
난 한국이 특별하게 궁술을 숭상하는 유일한 나라라고 말한 적 없어. 아시아의 귀족들은 검술보단 궁술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고 말했지. 반면 유럽에선 검술이 더 중요했고 궁술은 일반적으로 피지배 계층에게 유행했지. 
다큐멘터리에서 보듯이, 한국군에 있으면서 위명을 새우고 계급이 올라 가는데 있어 궁술에 대한 적성이 매우 중요했지. 전장에서 쓰는 무게 나가는 활을 쏠 수 있다면 신분과 무관하게 그걸로 누구든 군에서 계급 상승이 가능했다는 거지. 
다른 많은 아시아 문화권에선 그렇지 않아. 그러나 그게 궁술의 중요성을 낮게 봤다는 걸 의미한 건 아냐. 


ㄴKira620 
그렇군. 미안. 내가 네 글 논점을 잘 못 이해했어.


ㄴGonarhxus 
궁술을 숭배하는 귀족들은 다양한 문화권에 걸쳐 존재했었어. 영국의 헨리8세는 장궁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오스만 술탄들은 여가활동으로 마상에서 활을 쏘곤 했지. 일본의 진무 왕은 전통적으로 활과 함께 묘사되지. 공자는 활을 기품 있는 군자의 예술로 생각했고 만주의 황제들은 마상에서 활로 사냥을 하곤 했어..


ㄴ Syn7axError 
민간인의 관점에선 분명 사실이긴 하지. 기사, 사무라이, 보초병, 귀족 등등..은 일상에서 칼을 들고 다니며 그걸 어떻게 쓰는지 알고 있었지. 그들은 때론 칼을 가지고 다니는 게 허용된 유일한 사람들였기도 하지.
근데 전장에선 좀 이야기가 달라. 확실한 건, 터키/몽골 그리고 일본은 궁술을 매우 중요시 여겼던 반면 유럽 국가들은 그렇지 않았음.


ㄴsimulacrum81 
난 한 300년 간 정도 영국인들이 긴 활(장궁)에 꽤나 많이 의존했다고 생각했었는데..


ㄴ Syn7axError 
네 말 맞아. 근데 영국에서 궁수들은 군 내 최하위 직들이었어. 그런 경향은 그 시대엔 매우 전형적인 거였지. 고위급 군인들도 분명 궁술을 중요시 여기고 연습도 했지만 봉급 같은 모든 면에서 궁수들 보단 대우가 좋았지. 
난 궁술 자체가 가치 있게 여겨졌다고 말하는 덴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궁수들의 경우엔 그렇지 않지. 그들은 일본이나 몽고에서처럼 상위계층이 아녔어.


ㄴhborrgg 
궁술은 보통 귀족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매우 좋았고 체력 증진과 건강 관리 하는데 좋은 방법으로 여겨졌어. 하지만 실제 전투에서 좋은 갑옷과 말을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은 활을 사용하는 대신 말을 타고 검으로 싸우는 방식을 선호했지.


ㄴ Kira620 
활은 한국에서 기본적인 사냥 도구였기 때문에 매우 일반적이고 정기적으로 궁술을 수련했지. 덧붙여서 활은 가장 중요한 전쟁 도구였고 어려서부터 소년들이 전쟁 놀이 같은 걸 할 때 활을 가지고 놀도록 장려되기도 했어. 
내가 공부한 바 이건 1500년 대 경을 두고 하는 얘기야. 전 세계의 귀족들이 궁술을 연마했던 건 분명 사실이야. 그러나 한국 문화에 있어 활이 얼마나 필수적였는지에 대해 그 의미를 축소 시키는 건 잘못됐다고 봐. 
황제의 중요 덕목 중 하나는 무술 실력이었고 그 중 궁술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지. 신라시대 화랑들은 활을 명상과 훈련의 도구로 썼고 한국 역사에서 이순신을 포함한 모든 유명한 장군들에 대한 기록들을 보면 매우 놀라울 정도로 그들의 궁술실력이 같이 묘사돼 있지. 
난 이거 가지고 몇 시간 썰 풀 자신 있어. 여하튼 궁술은 그만큼 우리 한국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유산이고 여전히 우리 정체성의 일부지. 


ㄴ dreezyyyy 
한국 역사에 황제란 건 없었어. 한국 역사는 조선 왕조 시대를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감. 고조선 > 삼국시대 -> 통일신라/발해 -> 고려 - 조선 왕조 - 현재 북한/한국. 이렇게 요약되지.
한국 궁술은 천년 이상 한국 역사의 필수적인 부분이었어. 주몽, 박혁거세, 이성계는 과거 한국 역사에 존재했던 세 왕조들의 시조였는데 모두 활에 있어선 최고였지. 


ㄴ redditor_85 
한국엔 두 명의 황제가 있었어. 열강들의 압력을 받고 있던 고종이 1897년 10월 대한제국을 주창하며 황제가 됐지. 황제의 칭호를 얻음으로써, 그는 한국을 청과의 종속적인 관계를 깨부시고 청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지. 그 후 고종의 아들 순종이 두 번째이자 한국의 마지막 황제가 됐고. 


Hamoct 
내가 잘 못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활과 화살은 명예의 관점에서 보면 좀 못 마땅해 보이는 병기였어. 최소한 일본 문화에선 그랬지. 
일본 무사도를 보면 모든 게 칼과 관련돼 있지. 활과 화살을 쓰는 건 수년간 거쳐야 하는 검술 훈련의 이점을 크게 부정하고 없애버리는 거라 인식함.   


ㄴ prozergter 
사무라이는 기병 궁수로부터 시작된 거고 활은 매우 높이 숭상돼 왔어. 카타나(일본식 활인 듯)는 보조 무기였어. 대부분의 사무라이들이 칼에 의지하기 전 에 활과 창으로 싸웠지. 
사무라이 하면 칼을 연상 시키는 인식은 훨씬 훗날 생긴 거야. 실제 사무라이 전쟁이 끝난 훨씬 이 후에 말이지. 


ㄴ Gonarhxus 
이건 사실이야. 일본에서 활과 장창은 전쟁의 기본 무기였음. 총이 나오기 전까지 말이지. 칼이 명성을 얻게 된 건 에도 시대 평화기 때였지. 


ㄴ lettucerock 
너 잘못 알고 있어. 사무라이는 항상 활과 화살 사용했었음. 너 총이랑 혼동 한 듯.


ㄴ Gonarhxus 
일본은 나름 자랑스런 활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 논란의 소지가 있는 그들의 첫 번째 왕인 진무왕은 활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지. 센고쿠 시대에 그들이 못마땅하게 바라봤던 무기는 총기였지. 근데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어. 총이 결국 일본의 전쟁터에서 화살을 꽤나 빠르게 대체했거든.


ㄴPrincealmia 
일본인이 위대한 검술가들였다고 한다면, 한국인들은 동양 최고의 궁술가들였어. 심지어 몽골애들을 능가했지.



TheMaplesAndWe 
몽골인들이 어떻게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를 정복했는지 생각해 보면, 그들의 특기 중 하나였던 마상에서 활쏘기가 가능했던 게 주요하게 작용했지. 
걔들은 심지어 전장에 여자들을 데려가지 않더라도 활 쏘는 훈련을 시켰어. 궁술은 역사에 있어 정말 중요한 이정표 같아.


ㄴ alperendir 
마상에서 활 쏘는 거랑 백성들을 총동원해 이동하면서 전쟁할 수 있던 이 두 가지 요소가 바로 유목민들의 주요 성공 요인이었지. 


ㄴ EquusMule 
난 징기스칸이 행한 통합 정책 때문에 몽골이 그 레벨에 올라설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싶군. 그런 접근법이 없었더라면 몽골은 그저 또 다른 훈족이나 스키타이인들 같이 되었을 거야.


ㄴ Leafklin 
스키타이인들은 여성 기병들을 보유했던 걸로 유명했지.



Baneken 
몽골 활은 매우 효과적이라 원 왕조가 망했을 때 중국의 한족 왕조는 그걸 전면 금지 시켰어. 실제 모든 몽골 활을 폐기토록 명이 떨어졌고 그래서 모두 파괴돼버리고 제조를 금지 당했지. 
그래서 몽골 활을 만드는 비법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어. 오늘날 역사가들은 몽골 활이 만주 쪽과 한국 활 디자인을 약간 섞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ㄴ Gonarhxus 
너 그거 어디서 얻은 정보냐? 그 당시 몽골과 중국의 활 디자인은 같았어. 몽골 활을 금지했다는 건 자신들의 것들도 스스로 금지했다는 건데 말이 되나. 
몽골왕조 정복기 동안 사용했던 활의 유형과 명나라 초기의 활 유형이 같아. 그 활들은 훈, 후니크, 코탄, 창샤오 활이라고 불리곤 했고 중국과 몽골 같은 아시아 전역뿐 만 아니라 러시아, 심지어 헝가리에 까지 흔한 유형이었어. 그 활들은 만주와 한국 활과는 그렇게 큰 유사점이 없었지.


ㄴ Baneken 
몽골과 중국인들은 한번도 같은 모양의 활을 쓴 적 없어. 유일한 유사점이라곤 나무, 뼈대 그리고 시위로 구성돼 있다는 거 말곤 없지. 
몽골인들의 활이 중국이나 한국 것과 같은 유형이라고 주장하는 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인들의 활과 중국인들의 활이 같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iron40 
활을 쓰는 사냥꾼으로써 과거의 진정한 활 대가들에 비해 내가 얼마나 압도적으로 활 실력이 열등한지 알 수 있어. 탄소 섬유 화살이나 광학조준경 같은 오늘날의 신기술이 복합 장착된 첨단 활 없이 난 진짜 아무것도 아니지!


ㄴ 1ce132 
진짜야. 나 어떤 사람이 장궁 쏘는 시범 본 적 있었는데 진짜 힘도 들이지 않고 매번 그냥 과녁 중앙을 맞춰버리더라고. 현대식 양궁과는 다르지만 인상적인 건 똑같더라고.


ㄴ Inkalle 
맞아. 나도 양궁 좀 하는데 진짜 전통 장궁은 난 아마 시위 조차 당길 수 없을 거야. 


WorldCop 
이 다큐멘터리 정말 마음에 든다. 잘 봤어.


ㄴ catchlight22 
몽골인 아빠가 과녁 옆에 서서 딸에게 활 쏘는걸 가르치는 장면 정말 마음에 든다.


ㄴ CaptainArsehole 
ㅋㅋ 맞아! 진짜 대단하다 생각함. 정말 자신감 넘치는 아빠야. 


ㄴ]catchlight22 
“여길 쏴 딸아! 아빠가 늑대라고 생각해!”


Ryankz12 
나 주몽 봤는데 한국 궁술 진짜 끝내주지.


ㄴ Darepuppers 
크.. 그 전설적인 사극!


ㄴ Ryankz12 
난 주몽 이후론 다른 어떤 역사 드라마도 보질 못하겠더라고. 주몽 말곤 다 그냥 노잼.


ㄴ disguiseunknown 
선덕여왕도 좋지.



Inferno25Amj 
이 다큐멘터리가 왜 대한민국이 세계 양궁계를 지배하고 있는지 잘 설명하고 있군.



ㄴmumpie 
궁술이 역사적으로 중요하다는 건 그렇다 치고, 올림픽 양궁에서 한국이 성공하고 있는 건 정부와 양궁단체들의 후원 때문인 게 더 크지. 
아래 링크 가보면 한국의 올림픽 양궁 유망주들이 유년시절부터 어떻게 선발되는 지 알 수 있을 거야. 
https://www.archery360.com/2016/11/02/4-reasons-korea-dominates-archery/

이 링크는 한국의 궁사들이 감내해 내는 혹독한 정신적/육체적 트레이닝에 대한 세부 정보 관련된 거고.
https://www.archery360.com/2016/11/02/4-reasons-korea-dominates-archery/


ㄴ 1ce132 
어떤 티비쇼에서 한국 궁사들이 양궁이란 스포츠를 즐기고 기꺼이 궁사가 되려는 사람들 찾기가 유독 요즘 시대 들어 어렵다고 한 걸 본 기억이 나. 


ㄴ EquusMule 
링크 건 애 말 저거 사실이 전혀 아니야. 한국의 양궁 지배력은 한국엔 어떤 경계도 없기 때문이야. 뭔 소리냐면 한국에선 양궁을 배우고 싶으면 쉽게 배울 수 있고 장비가 일반적으로 제공돼. 
그래서 인적 자원이 풍부한 거지. 덧붙여, 나라 규모가 비교적 작아서 공식경기에 더 많은 사람들을 한데로 끌어 모을 수 가 있어. 그래서 경쟁이 심하고 그런 경쟁을 통해 더 나은 궁사들이 배출되는 거지.



mumpie 
영상을 보면서 몇 가지 주의 깊게 본 거. 

1. 아시아나 유럽이나 물고기 부레가 최고의 접착제 원료 중 하나로 알려졌다는 사실.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는 거.

2. 활의 중심 설계 구조가 한국과 몽골에게 특별한 게 아님. 다수의 동양권 국가들과 심지어 미국 인디안 들에게도 비슷한 구성으로 만들어진 활이 있음.

3. 중간에 이옥 씨 부분에서 언급되는 활의 힘과 길이에 대한 주장은 정확하지 않음. 같은 품질 수준이라는 가정 하에 보통은 더 큰 활이 짧은 활 보다 더 효율적인 편임. 뒤로 휘어진 짧은 활은 말 위에서 다루기가 더 쉽기 때문에 주로 마상에서 사용됨. 영상 끝 편에 나오는 전통 한국 활을 영상 초반부 활들과 비교해 보면 그것의 더 길고 쭉 뻗은 디자인때문에 더 짧고 뒤로 휜 활들 보다 땅에서 더 잘 쏠 수 있었을 거야.   

4.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몽골 식 손가락 그립 대신에 지중해 식 스타일로 시위를 당기는 걸로 보임. 전통적 한국 궁술에서 사용하는 눈물 모양의 엄지손가락 링은 이 링크 페이지 들어가면 하단에 있는 것들과 비슷함.
http://www.atarn.org/FAQ/thumbring_fit.htm


ㄴ 1ce132 
내 생각엔 그게 한국 활에만 쓰이는 것들이라고 한 게 아니라 한국 활은 몽골 활이 쓰지 않는 생선 부레 같은 어떤 특정 재료를 쓴다고 말한 거 같아. 
그리고 같은 무게로 당겼을 때 보통은 뒤로 휜 활이 긴 활에 비해 화살 속도가 더 빠르다고 한 거 같아. 뭐 한국어를 조금 알아 듣는 수준으로 내가 이해한 것들일 뿐이야.
(역주. 자막 퀄이 그렇게 좋지 못해 댓글들 보면 영상 내용을 오해하는 부분들이 보이곤 합니다.) 




shortenda 
나 궁사 나오는 한국 액션 영화 하나 봤었는데, 최종병기 활인가 그럼.  역사적 고증 수준이 높은진 모르겠는데 여하튼 대략 16세기를 배경으로 한 흥미로운 영화였어.


ㄴ Pugad 
그 영화에서 활싸움 씬 정말 끝내주지!



SeouloftheBeaver 
재연된 장면들이 하이라이트였지만 진심 전반적으로 매우 잘 만들어진 다큐야. 살짝 선동적인 부분도 있긴 하지만 뭐 그 정도는 애교로 참을 수 있는 정도.



Blvck_sunshine 
음.. 한국은 정말 항상 올림픽에서 양궁 메달을 획득하는 듯.


번역기자:둥빠 
해외 네티즌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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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기자 : 둥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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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 18-09-01 14:32
   
잘 봤습니다.
17학번 18-09-01 14:49
   
잘 보고 갑니다.
팬더롤링어… 18-09-01 14:55
   
ㄴ prozergter
사무라이는 기병 궁수로부터 시작된 거고 활은 매우 높이 숭상돼 왔어. 카타나(일본식 활인 듯)는 보조 무기였어. 대부분의 사무라이들이 칼에 의지하기 전 에 활과 창으로 싸웠지.
........................................................................................................................................................................

카타나는 일본식 활이 아니라 일본도를 보고 카타나 라고 합니다...
모나미펜 18-09-01 14:56
   
감사합니다.
스코티쉬 18-09-01 15:09
   
일본에 기병궁수라니?? 개그친건가..

일본활이 얼마나 웃긴지 모르는듯.
     
cz1324 18-09-01 20:44
   
일본활이 특이하게 위쪽으로 긴게 그 흔적이라고 함. 손잡이 위치가 활의 중앙이 아니라 아래쪽에 위치함.
          
사라니드 18-09-01 20:53
   
일존이란 섬 지역 특성상 재료가 부족해 단일 재료인 대나무로 단순궁 형태로 만들어서

좀 기형적인 비대칭 활 모양을 하고 있죠 이것도 역사 자료 보면 중국쪽을 기원으로 하더라구요
               
원형 18-09-02 00:34
   
자작나무 껍질을 제외하고는 다있죠

한국은 중요재료인 물소뿔ㅇ 없고

그래서 한국이 더 만들기 힘들죠

그냥 일본이 기술이 없는겁니다

ㅜㄴ명 백제는 있었을텐데 기술이 퇴보하는게 유물로도 나오니
               
쿠룰루 20-01-10 01:45
   
음....
     
월탱러 18-09-02 00:27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통 일본역사를 임진왜란때부터 알아서 그래요. 원래는 일본 애들도 전투양식이

말타고 원거리에서 활쏘면서 전투를 했습니다. 물론 일본 활 퀄리티가 떨어져서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원거리라기보다 근거리이지만요.

https://namu.wiki/w/%EC%98%A4%EC%98%A4%EC%9A%94%EB%A1%9C%EC%9D%B4

https://namu.wiki/w/%EC%9D%BC%EB%B3%B8%20%EA%B0%91%EC%98%B7
BTJIMIN 18-09-01 15:15
   
번역 감사합니다
booms 18-09-01 15:29
   
어떻게든 별거 아니다식으로 까내릴려고 하는애들이 보이네. 일본이나 중국, 터키애들인가??
예랑 18-09-01 15:44
   
서양애들이 얼마나 일본 사무라이 미화에 영향을 받았는지 알것같네요;;
     
ㄴㅇㅀ 18-09-01 18:23
   
솔까 그 미화에 젖지 않은 사람 찾는게 더 빠릅니다 압도덕이죠
     
쿠룰루 20-01-10 01:45
   
동감..
FK리스 18-09-01 15:45
   
우리나라 역사중에 무예로 뛰어난 것 중 가장 대표적이고 오래된 게 신궁이라 불리웠던 동명성왕(주몽)이란 걸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역시 칼보다는 활 쪽이 더 발달한 것 같아요
식보이 18-09-01 15:46
   
잘봤습니다
su수 18-09-01 15:48
   
번역 잘 보았습다.
굿잡스 18-09-01 16:09
   
“夷는 從大從弓東方之人也라” “(종대종궁동방지인야)
“동방사람은 대인으로서 활을 잘 다룬다.”
-설문해자(說文解字)

“동방을 ‘이(夷)’라 한다. ‘이’라고 하는 것은 뿌리이다. 말하기를,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한다고들 한다. 모든 것은 땅에 뿌리박고 있으므로 천성이 유순하고 도로써 다스리기 쉬워서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가 있게 된 것이다.”
-후한서 동이전(東夷傳)

서토 최초의 정치체 왕조로 보는 상나라 자체가 황하유역의 하한족들이 주체가 아니라 만리장성 밖 우리 고조선문명권에 있던 동북방의 선진 동이족이 남하 내륙 하한족을 정복하고 성곽, 예악, 점복, 제천의식,청동,옥기등 다양한 도시문명부터 한자의 원형 문자인 갑골문등을  발명한 외래 정복왕조사에서부터 시작. 

 “은(상)나라는 동북쪽에서 와서 흥했으며, 망한 뒤에 동북으로 돌아갔다”
 -고고학자 푸쓰녠(부사년)

짱국 하남박물원(河南博物院)  


장발영(張發潁)의 저서 <봉황토템 동이인 및 그 문화의 공헌>- <시회과학집간>2001년 2기- 에서  

동이문화의 유적분포는  
- 연산(燕山)의 남북과  
- 료녕(遼寧)의 부신사해문화(阜新查海文化)를 포함해서  
- 심양(沈陽)의 신락문화(新樂文化),  
- 산동의 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 하무도문화(河姆渡文化)와  

그 후의  
- 조보구(趙寶溝), 흥륭와(興隆洼), 우하량(牛河梁) 및  
- 은상문화(殷商文化)까지  

동이문화는 봉황(鳳凰)을 토템으로 하였다.  
통일된 문화체계는 아니지만 문헌에 기록된 이후의 생활은 이 지구(地區)의 조상들의 범칭(광범위한 동이문화)이다.  
   
봉황을 모(母)토템으로 삼고 각종 새들을 자(子)토템으로 하는 북방 봉황토템 동이의 조상들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들은 모두 연산산맥(燕山山脈)의 동이문화권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다.  
복희(伏羲)에서 하상(夏商) 2대까지 동이문화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 온 것이다.  

동이족 사람들은  
- 깃털달린 활과 화살을 발명했으며,  
- 문자를 창조했으며,  
- 청동기를 제작하고,  
- 철을 단련했으며,  
- 배(舟)와 수레(車)를 만들었고,  
- 농업을 발전시키고 치수(治水)를 하였다.
     
쿠룰루 20-01-10 01:46
   
감사합니다..
굿잡스 18-09-01 16:16
   
東海之內 北海之偶 有國名曰 朝鮮 

"동해(서토 동해안) 안쪽, 북해(발해) 모퉁이에 조선이란 나라가 있다” 


君君子國在其北 衣冠帶劍 食獸 使二大虎在旁 其人好讓不爭 有薰華草 朝生夕死 一曰在肝楡之尸北 [海外東經] 

군자국이 그 북쪽에 있는데 옷을 입고 관을 쓰고 칼을 찬다. 짐승을 잡아 먹고 두 마리 큰 호랑이를 부려 옆에 둔다. 그 사람들은 양보하기를 좋아하고 다투지 않는다. 훈화초(현 대한민국의 
  
국화(國花)인 무궁화의 옛이름)라고 있는데 아침에 생겼다가 저녁에 진다. 혹은 간유시의 북쪽에 있다고 한다. 

靑丘國在其北 其狐四足九尾 一曰朝陽北 [海外東經] 

청구국이 그 북쪽에 있는데 그 곳의 여우는 네 개의 발과 아홉 개의 꼬리가 있다. 혹은 조양의 북쪽에 있다고 한다. 

有靑丘之國 有狐 九尾 [大荒東經] 

청구국이 있는데 여우가 있어 꼬리가 아홉 개이다. 

-산해경 



又東五百里 日丹穴之山 其上多金玉 有鳥焉 其狀如鷄 五采而文 名日鳳凰 

다시 동쪽으로 500리를 가면 단혈산이 있어 그 위에 금과 옥이 많다. 

새가 한 마리 있는데 닭같이 생겼으며 오색무늬가 있어 봉황이라 부른다. 

그의 머리 무늬(首紋)는 덕, 익문(翼紋)은 의(義), 배문(背紋)은 예(禮), 응문(膺紋)은 

인(仁), 복문(腹紋)은 신(信)을 나타낸다. 이 새는 자연물을 먹으며, 스스로 노래하고 춤춘다. 

이 새가 나타나면 천하가 태평해진다.” 

-산해경(춘추전국시대에서 늦어도 한초기 사이에 편찬) 

봉(鳳) 

봉은 신조(神鳥)이다. 동방의 군자국(君子國)에서 나는데, 사해(四海)의 밖에서 날아올라, 곤륜산(崑崙山) 

을 지나서 지주(砥柱)에서 물을 마시고 약수(弱水)에서 깃을 씻고, 저녁에는 풍혈(風穴)에서 잔다. 이 새가 

나타나면 천하가 크게 태평해진다. <설문(說文)> 

  

맹조(孟鳥) 

맹조는 맥국(貊國)의 동북쪽에서 나는 새의 이름으로, 그 새의 무늬는 적색, 황색, 청색이다. 

<산해경(山海經> 


고조선,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고 새숭배(하늘숭배)의 토템을 간직한 우리의 전통적 조우관(새의 

깃털장식을 한 관모)이나 솟대 문화등으로 면면히 이어져 오늘날 우리 대통령의 상징 역시 

새숭배(하늘숭배)의 봉황에 모든 생명의 시작과 광명을 상징하는 동방의 뜻을 내포.
Tenchu 18-09-01 16:27
   
유럽에서 합성궁쓴 유일한 국가가 헝가리임. (훈족후예)
굿잡스 18-09-01 16:28
   
ㄴ dreezyyyy 

한국 역사에 황제란 건 없었어.>???
짱국  공산당의 주석이라는 용어격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란
호칭이 있듯 고대 만주와 연해주 한반도와 열도를 아우르는 우리 고조선 고구려 동방문명권에도 정복을 밥먹듯
당하든 노예사로 점철된 서토 짱개에도 있는 황제라는 호칭격이 없었을거란 개솔인가?ㅋ

동북아 최강대국, 독자적 동방문명권을 구축한 고조선 고구려문명권. 


신석기 혁명, 빗살무늬 토기의 발명지. 

유라시아의 동쪽, 한반도가 가장 앞선 지역이었던 이유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171669
  
  

고조선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등 분포도 

https://blog.naver.com/itcoms0/220344390104?proxyReferer=http%3A%2F%2Fsearch.daum.net%2Fsearch%3Fw%3Dimg%26q%3D%25EA%25B3%25A0%25EC%25A1%25B0%25EC%2584%25A0%2520%25EC%2584%25B8%25EB%25A0%25A5%25EB%25B2%2594%25EC%259C%2584%26docid%3D33MvZ9OeFqASojmtT-%26da%3DIIM%26rurl%3Dhttp%253A%252F%252Fblog.naver.com%252Fitcoms0%252F220344390104
  

서토보다 앞선 동아시아 최초의 고조선 금속갑옷 

http://cafe.daum.net/luck5194/MFUT/283?q=%B5%BF%BA%CF%BE%C6%20%B0%A9%BF%CA%C0%C7%20%BF%F8%C1%B6%20%B0%ED%C1%B6%BC%B1-%20%B0%ED%B1%B8%B7%C1
  

고대 한류로서 갑옷문화의 국제적 위상(1) 
고조선 갑옷이 중국에 준 영향 

http://www.breaknews.com/sub.html?section=sc5§ion2=������/문������ 


고조선, 고구려의 뛰어난 제강기술력. 

http://hyala.tistory.com/247
  
http://cafe.daum.net/gjgumdo/36Hr/27?q=%B0%ED%B1%B8%B7%C1%20%BF%EC%BC%F6%C7%D1%20%C1%A6%B0%AD%B1%E2%BC%FA


魏略曰:其國殷富,自先世以來,未嘗破壞。 

위략 왈 그 나라는 매우 부유하며, 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한번도 파괴당한 적이 없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부여조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시에 강병이 100만이고 남으로는 오(吳), 월(越)의 나라를 

침입하였고, 북으로는 유주,연,제,노나라를 휘어잡아 중국의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수(隨) 왕조의 멸망도 요동 정벌에 의한 것입니다." 

高麗百濟 全盛之時 强兵百萬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爲中國巨 隋皇失馭 由於征遼 

-삼국사기 <최치원전> 


(북위)세종이 이르기를,“고구려가 대대로 상장(上將)의 직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해외(海外)를 모두 제압하여 사나운 오랑캐인 구이(九夷)를 모두 정벌하였다 
  
《후위서》 


其地後漢時方二千里。至魏南北漸狹,纔千餘里。至隋漸大,東西六千里。 
  

그 땅은 후한때에 사방 2천리였다. 위나라 때 남북이 점점 좁아져서 겨우 1천여 리였으며, 
  
수나라 때 점점 커져서 동서가 6천리가 되었다.ㅡ통전 
  


도표로 한눈에 보는 천년 사직 고구려의 위엄.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h1002&logNo=30152299778
  

동북아 최강대국 고구려의 역대 전적.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58906&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A%B3%A0%EA%B5%AC%EB%A0%A4+%EC%A0%84%EC%A0%81&sop=and&spt=-5409&page=1
  

근현대 독소전쟁 이전 

고대사 세계 최대 대전인 2차 고수전쟁 수나라의 300만 대군은 얼척의 과장인가?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78013&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88%98%EB%82%98%EB%9D%BC+400%EB%A7%8C&sop=and
  


고구려 초기 2대 유리왕시절 축조되기 시작한 환도성 

앞 궁궐 건물지 무려 90미터. 

http://mnews.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Total_Id=343393
  


고구려  5세기 
  
<안학궁 남삼문(南三門) 중 남중문(南中門) 38m 앞면 7칸 

안학궁 남궁 1궁전(정전) 62m 앞면 11칸 

안학궁 중궁 1궁전(편전) 87m.  앞면 19칸 > 
  
  
7세기에 세워지고 확장된 당나라의 최대궁전인 대명궁의 정전인 함원전 정면 길이가 67.33m 
  
북경  자금성에서 가장 큰 건물 태화전 정면 64m 


동대사 크기는 높이 48m, 가로 57m, 세로 50m라오. 안의 대불은 15미터  =>우리 백제인에 의해 건립. 



인도의 타지마할의 기단 크기 94m, 건물 크기 57m 

남북국 시대 발해의 상경용천부 제2궁전 기단 크기 120m, 건물 크기 93.5m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56234&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D%83%80%EC%A7%80%EB%A7%88%ED%95%A0&sop=and
  

  
고구려는 안학궁으로부터 750m 떨어져 있는 유사시를 대비한 배후 산성이 
  
대성산성으로 전체 9km가 넘고 둘레는 7km가 넘으며 남문이 있는 골 안에서는 2 
  
중으로,주작봉과 국사봉 골 안에서는 3중의 겹성에 내부에는 연못이 자그만 
  
치 170여개가 존재. 
  
http://blog.naver.com/bestchoi21/20018007630-> 대성산성 사진 


우리나라의 고대 도시 축조 역량과 위엄.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11385&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D%83%80%EC%A7%80%EB%A7%88%ED%95%A0+%EB%B0%9C%ED%95%B4&sop=and
  

북위의 권력을 쥔 고구려인 

http://blog.naver.com/csred7/80130397982
  

우리나라는 문물과 예악이 흥행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며 장삿배가 연이어 내왕하여서 값진 보배가 날마다 들어오니, 중국과 교통하여도 실제로 소득이 없을 것입니다. 거란과 영구히 절교하지 않을 터이면 송 나라와 교통함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하니 따랐다. 
  <고려사절요 문종 12년>
바두기 18-09-01 16:30
   
잘봤습니다.
astraea 18-09-01 16:30
   
일본활만큼 후진활도 없는데 ㅋㅋㅋㅋㅋㅋ
     
쿠룰루 20-01-10 01:46
   
동감..
바람노래방 18-09-01 16:31
   
일본활을 운운하는 사람들은 일본활을 보기나 했을지 의심스럽네요 ㅋㅋ
장난감이나 다름없는 물건을 두고 일본활이라니 ㅋㅋ
굿잡스 18-09-01 16:48
   
고구려

국강상광개토호태왕비(國罡上廣開土好太王碑)

태왕(太王) -왕중의 왕,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

고구려 벽화에서도 단군이나 주몽을 천제지자(天帝之子)로 동일시 했고(우리  
고조선 건국신화 자체가 하늘의 직계 천손인 환웅이(선진문화세력) 내려와 당시 토착재지 세력인  
곰 토템 숭상의 웅족과 호랑이 토템 숭상의 호족 중 웅족을 파트너로 해서 이런 천족과 인족이 만나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재세이화, 천손강림, 광명사상, 하늘숭배,인본주의를 바탕으로 이야기  
되는게 고조선 건국 신화)  



칠지도(백제 어라하(황제격의 호칭)가 왜왕에 하사)  

<앞> 泰○四年 ○月十六日 丙午正陽 造百鍊[銅] 七支刀 生辟百兵 宜供供侯王○○○○作  
태○사년 ○월십육일 병오정양 조백련[동] 칠지도 생벽백병 의공공후왕○○○○작  

<뒤> 先世以來 未有此刀 百濟王世○ 奇生聖音 故爲倭王旨造 傳示後世  
선세이래 미유차도 백제왕세○ 기생성음 고위왜왕지련 전시후세  

칠지도 명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립부여박물관 전시 내용)  

<앞> 泰和四年 五月十六日 丙午正陽 造百鍊[銅] 七支刀 生辟百兵 宜供供侯王○○○○作  
태화사년 오월십육일 병오정양 조백련[동] 칠지도 생벽백병 의공공후왕○○○○작  

<뒤> 先世以來 未有此刀 百濟王世子 奇生聖音 故爲倭王旨造 傳示後世  
선세이래 미유차도 백제왕세자 기생성음 고위왜왕지련 전시후세  

태화 4년 5월 16일 병오일의 한낮에 백 번이나 단련한 철로 된 칠지도를 ○○○○가 만들었다. 온갖 적병을 물리칠 수 있으니 제후국의 왕(侯王)에게 주기에 알맞다. 지금까지 이런 칼이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 기생성음이 일부러 왜왕을 위하여 정교하게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예군 묘지명에 적힌 ‘日本’은 ‘百濟’지칭”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42301032430074011
  

“일본은 원래 백제땅 일컫는 말이었다” 

일 교수, 678년 ‘예군 묘지명’ 근거 
“실제 일본은 해좌·영동으로 표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36435.html
  

‘大原眞人. 出自諡敏達孫百濟王也. 續日本紀合.’ 

대원진인, 그의 조상은 시호가 민달(비타쓰(敏達))이라는 백제 왕족이니라. ‘속일본기’ 기록에도 부합한다. 

-신찬성씨록(서기 815년 일본 왕실이 편찬한 왕과 귀족 족보) 


"제30대 비타쓰 천황(敏達·572~585 재위)은 나라(奈良)에 ‘백제대정궁(구다라오이궁 :百濟大井宮)’을 지었다” 

비타쓰왕의 친손자인 제34대 조메이왕(舒明·629∼641 재위)도 

"(우리나라 할때)나라의 ‘백제천(구다라강:百濟川) 옆에 백제궁(구다라궁; 百濟宮)과 백제사(百濟寺)라는 큰 가람을 지었다. 조메이왕이 구다라궁에서 살다가 서거했을 때 ‘구다라노오모가리(百濟大殯)’로 장례를 치렀다’" 
  
-일본 서기 


토쿄대  이노우에 교수 
"일본은 고대 한국인이 세운 나라이다. 일본은 임나일본부 설치를 날조했을 뿐 아니라 오오진(應神)왕이 백제계 부여(夫餘) 후왕인 의라(依羅)이며, 기토라 고분의 40대 텐무(天武)왕은 신라 김다수(金多遂)임에도 일본인으로 변조했다. 최초로 일본을 지배한 천황은 백제인의 후손인 15대 오우진(應神·4세기)천황과 16대 닌토쿠(仁德·5세기)천황 부자다.  오우진 천황이 백제 복식을 입었다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나온다. 이들 천황 부자에 의해 고대 일본의 가와우치(河內)왕조가 세워졌다. 
  
USA캘리포니아대학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 
  
고대 한국인의 선조가 일본의 원주민 [조몬인],[야요이인(한국을 제외한 대륙민족)], [아이누족]을 정복하므로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탄생 시켰다. 

카큐슈우인대 오오노 스즈무 교수 
  
"한국인은 일본인에게 금속 사용법을 가르치고, 야금·금공 기술을 전했으며, 
염색·피혁제조·베틀 직조·기와 제조·의학·역법·천문학·조불(造佛)·사찰 건축·조탑 등 모든 것을 가르쳤다”(‘日本語の 世界’, 1980)
     
냥냥뇽뇽 18-09-01 17:14
   
여윽시 팩트로 조져야된다는
굿잡스 18-09-01 17:13
   
고구려 사람들은 "책을 좋아하여 문지기·말먹이의 집에 이르기까지 거리마다 큰집을 지어 경당이라 부르며 자제가 결혼하기 전에는 밤낮으로 이곳에서 책을 읽고 활쏘기를 익힌다"

-구,신당서 열전(列傳)-고려(高麗)

고등교육 기관인 태학 뿐 아니라 1600여년 전  문무겸비
세계 최초의 평민교육기관-고(구)려의 경당 
http://cafe.daum.net/hankookhistory/47AT/27?q=%BC%BC%B0%E8%20%C3%D6%C3%CA%C0%C7%20%BC%AD%B9%CE%20%B1%B3%C0%B0%B1%E2%B0%FC%20%B0%E6%B4%E7

세계 도시와 비교한 고려의 도시규모 포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37014

고려 문화의 포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37015


조선 도시의 포스와 에도시대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36980

조선 후기 상업의 발달과 성시(城市)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37001

18세기 평양 모습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94356&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97%90%EB%8F%84%EC%8B%9C%EB%8C%80+%EB%8B%AD%EC%9E%A5&sop=and
  


황태연 교수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1800년까지 중국 또는 동아시아의 1인당 국민 소득은 영국과 유럽을 앞질렀다. 그렇다면 조선은? 

◇ 숙련노동자의 실질임금 비교 


- 조선(1780~1809): 쌀 8.2kg 
- 밀라노(1750~1759): 빵 6.3kg 
- 런던(1750~1959): 빵 8.13kg 

◇ 경작면적기준 총요소생산성 비교(1800년) 


잉글랜드 100, 조선 134, 중국(강소성, 절강성) 191. 
중국전체의 평균 총요소생산성은 191 이하일 것이나 이 역시 잉글랜드보다 高. 

◇ 1인당 GDP 비교(조선 vs. 중국) 


1820년 1인당 GDP - 중국: 600달러, 조선: 600달러 
┃중국의 1인당 GDP 추이 
- 인구의 비약적 증가로 인해 1500년부터 320년간 600달러 수준. 
- 1870년 530달러로 추락. 
- 1920~30년대 550달러대에서 등락을 반복. 
┃조선의 1인당 GDP 추이 
- 1870년 604달러로 반등 
- 1911년 777달러(아시아 2위) 
- 1917년 1,021달러 
- 1939년 1,459달러 
조선의 생활수준은 16세기말부터 상승하여 18세기 영·정조시대(1724~1800)에 정점을 기록한 후 하락. 
- 16~17세기에는 중국보다 낮을 수 있으나 18세기 중국을 추월. 
- 19세기(1820년)에는 다시 중국과 비슷한 수준. 

◇ 조선의 교육복지 


┃세종치세(재위 1418~50) 이후 18세기까지 지방향교, 사학(四學), 성균관 등 모든 유생들에게 무상교육, 무상숙식, 학비지급, 학전(學田)지급, 면세 및 요역면제. 
 -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는 「논어」의 유교무류(有敎無類)의 원칙에 따른 것.
     
하늘나비야 18-09-04 18:25
   
굿잡스님 글 너무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님글 볼때마다 감탄사가 절로나오네요
          
쿠룰루 20-01-10 01:47
   
동감이요..
유일구화 18-09-01 17:28
   
번역 감사합니더.
병아리쓸빠 18-09-01 17:37
   
잘 봤습니다. ^^
황룡 18-09-01 17:39
   
잘봤습니다~!
무침 18-09-01 17:59
   
한국활만의 특징인 편전 얘기는 없나부네요. 그게 포인트일텐데..
몽골과 한국 활의 유사성과 차이점만 주목한 다큐인가봐요.
     
helfenmir 18-09-01 18:37
   
편전자체는 한국활만의 특징은 아닙니다.
비잔틴의 솔레나리온도 짧은 화살이고 투르크나 인도에서도 짧은 화살을 사용했습니다.
     
가스칼 18-09-01 18:38
   
편전이 교류의 산물인지 자생한것인지는 모르지만 편전 형태는 터키에도 있습니다.
     
ㄴㅇㅀ 18-09-01 18:47
   
세계 유일하게 조선만 갖은건 아닌데 삼국시대부터 있었고 유독 사랑하고 기술이 뛰어나서 기술 유출에 유의할 정도 였다고함.
          
촐라롱콘 18-09-01 19:36
   
조선전기까지만 해도 주변국가와 민족들에 비해(특히 일본에 비해서는...)
궁술, 활쏘는 사수들이 상대적으로 뛰어나고 전력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지만.....
왜란과 호란을 거치며 조선후기로 갈수록 조총 등 화약병기를 취급하는 포수들의 역할이
비약적으로 커지게 됩니다.

무엇보다 활쏘는 사수들은 적어도 1년 이상 훈련해야 겨우 전장에 투입이 가능하고
숙련된 수준까지 도달하려면 몇 년의 훈련기간이 소요되는 반면에
조총은 두어달의 훈련기간만 거치면 충분히 전장투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지비 차원에서도 보자면 초기장비를 갖추는 비용에서만 조총이 활보다 많이 들 따름이지
일단 갖추어놓으면 조총은 거의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반면에
활은 관리하기도 까다로우며, 수명이 길지않아 수시로 교체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유지비용이 조총과 비교하면 몇 배 이상 듭니다.

따라서 조선후기에는 사수 뿐만 아니라 주로 칼과 창 등의 냉병기를 다루는 살수들 또한
점차 비중이 떨어지게 되며... 기병의 비중 또한 현저히 떨어지게 됩니다.

결국 18세기 영조~정조 시기에 이르면 숙련된 활 쏘는 사수들조차 조선땅에에는
확연히 줄어들어.... 이전 시기까지는 엄격한 군사기밀로 취급되었던 편전의 제조와 운용술이
청이나 일본으로 유출되어도 큰 신경을 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원형 18-09-02 00:54
   
유지비용도 조총이 많이 들어요.

바로 화약

화약이 비싼겁니다.

조선의 세수가 부족해서 (애시당초 세금을 많이 겆지 않음) 화약을 생산하지 못해훈련이 부족해서 조선의 군사력이 약해졌고 (주변국에 비해서) 그래서 멸망

단지 총의 밀집된 위력이 활에 비해서 강한겁니다

화약이 얼마나 비쌌냐면 기관총이 처음 나왔을때 총알값이 너무 비싸서 (화약) 보급이 잘안되었습니다

터키술탄은 자기를 망하게 하려고 하냐고 했었죠

프랑스는 훈련을 하지 않아서 정작 전쟁에서 쓰기도 힘들어했고 (보불전쟁)
가출한술래 18-09-01 18:16
   
잘 보고 갑니다
ㄴㅇㅀ 18-09-01 18:25
   
한국에선 양궁을 배우고 싶으면 쉽게 배울 수 있고 장비가 일반적으로 제공돼. -> 이런 얘기 들을때마다 어느나라 얘기하는지 모르겠어요 보통은 활을 직접 본 사람조차 많지 않을듯한데 어릴적부터 가르친다는둥 ..
     
가스칼 18-09-01 18:37
   
최근엔 중형 도시 이상엔 번화가 어디에나 양궁장이 있는데요? 최근 5년 안에 한국을 다녀간 사람인가보네요.

저희 회사도 회식 후에 항상 양궁으로 내기하고 그러는데
          
ㄴㅇㅀ 18-09-01 18:52
   
네 요즘에 카페(?) 많이 생겼다는건 알아요 프랜차이즈도 있더라구요  근데 예전부터 외국인들이 애들이 체육시간에 배워서 인재가 많다고 그러는데 체육시간에 가르치는 학교가 많나요? 딱 한번 봤는데 그나마 활 쏠 환경이 안돼서 위험하다고 못하게 하더라구요
아리온 18-09-01 18:37
   
일본활 이야기는 정말 웃기네. ㅋㅋㅋㅋㅋㅋ
그 장난감을 칼보다 중시했다니.
     
쿠룰루 20-01-10 01:47
   
동감..
쥬스알리아 18-09-01 18:39
   
잘 보고 가요~
이리듐 18-09-01 18:42
   
그래도 토론수준이 높네요
후아앙 18-09-01 19:12
   
ㅆ합성궁 . 쓰는 나라가. 몽골... 터키.. 헝가리... 인디언.. 한국.. ??
셀틱 18-09-01 19:56
   
카타나는 일본 대도를 얘기합니다. 활이 아니고...
클린트 18-09-01 20:03
   
외국인이다 보니 잘 모르네요.
한국에서 활쏘기가 중시된 것은
유학의 영향입니다.

예기에서의 육예엔 활쏘기가 포함되어 있고
사경에서도 활쏘기에 대해 나옵니다.
공자의 논어에서도 활쏘기가 나오죠.

활쏘기는 선비가 마음을 수양하는 주요한 방법으로 생각해 중시했습니다.

창덕궁에 보면 후원에 부용지와 괘궁정을 둬
임금들도 활쏘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외부와의 교류로 다양한 사상이 유입되고 송대 이후 유학이 옅어진 중국에선(훗날 명대조차도)
우리나라처럼 교조적으로까지 활쏘기를 숭상하진 않았죠.
     
국밥햄 18-09-01 23:32
   
북방 기마민족의 전통이라면 활과 기마술입니다. 한반도를 포함해 만주족과 여진족 등 기마민족들은 같은 신화를 공유할 정도로 유사성이 있고 고구려 시조 주몽이 활을 잘쏴서 이름이 주몽이었다고 한 바로는 궁술이 신성시 되었다고 봐야하죠.

활쏘기가 중시된 건 유학의 영향도 있겠지만 본래 기마민족의 전통으로 내려온 군사전통으로 봐야 합니다. 도교적이었던 고구려 고분벽화에 무수하게 그려진 게 마상궁수들이 그걸 대변하죠.
          
쿠룰루 20-01-10 01:48
   
동감...
     
하슬리 18-09-03 16:49
   
공자묘 날려버리곤 했던 무수한 유목민 왕조들은 유교를 믿어서 활을 숭상했나보군요????
웃기는 소리. 만주, 몽골 등지와 그에 영향받은 모든 곳은 활쏘기를 중시했습니다.
초기 화기를 써서 우위를 잡은 것 역시 금나라 같은 마상 활쏘기를 엄청나게 잘한 나라였구요.
soho 18-09-01 20:30
   
일본활은 일단 너무 커서 매복이 안됩
그리고 거리도 얼마 안되지만 속도도 느려서
그거 맞고 죽으면 죽어도 쌈
자기자신 18-09-01 20:51
   
잘 보았어요
김삿갓삿갓 18-09-02 00:03
   
롱보우같은것도 꽤 사거리 있는걸로 아는데...크다고 나쁜게 아님
그리고 서양 활스킬도 상당히 좋습니다 유튜브에서 현실 레골라스 검색해서 보면 눈돌아가는 스킬도 많음
     
원형 18-09-02 00:46
   
크면 파워가좋죠

국궁은 작으면서도 같은 위력이죠 거기다가 마상궁수인거고

당연하게도 국궁에 비하면 나쁜거죠

레골라스는 단궁이고 눈앞에서 쏘는거죠

한두명의 스킬이 좋은것과 기본스킬이 좋은것은 전혀다른겁니다

국궁사장에서 쓰는 화살이 촉이 없는건 아시나요?

그런데 명인들중에서 그 촉없는 화살을 국궁용 나무 과녁에 꽂는분이 계시더군요

기술이고 뭐고를 떠나서 말이 않되는걸 하더군요 (오래전 다큐에 나왔던, 강원도에 계시는 명인)

종이도 집단도 아닌데 ㅋ

이런 분이 화살촉이 있는 진짜 화살을 날리면 갑옷이고 뭐고... 그런거죠
최순실 18-09-02 10:39
   
잘보고갑니다
헝그리댄서 18-09-03 02:30
   
잘보고갑니다
하슬리 18-09-03 16:56
   
일본, 일본, 아니 한국 활과 귀족의 역사 언급 하는데 사무라이는 왜 저렇게 찾는지. 차라리 금나라 철기병이나 거란의 기병 같은 한국이 화기를 쓰기 이전 육로로 국경이 맞닿아 활로 대응하고 영향받으며 군제에 영향을 주고 받았던 나라들을 이야기 해야 말이 맞는거 아니겠습니까? 임란은 이미 화기의 시대이니. 애초에 활잘쐈다는 주몽이 나라를 세우고. 조선조차도 활을 잘 쏘는걸로 유명한(실제 여부와 별개로 활 잘쏘는게 사람들이 숭상하는 요소라서 갖다 붙였을 가능성도 있지만) 장군이 나라를 세웠는데, 활 쏘는걸 귀족들을 안했을 것이라니. 아무리 한국 역사에 관심이 없어도 토론 참여할려면 시조 왕 이야기는 접하고 시작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군요.

그나저나 유럽은 궁병 대우가 안 좋았군요. 그러니 동쪽에서 활로 쏘면서 올 때마다 털리지.

그리고 황제가 없다니. 고구려, 고려는 나라가 아니라 신화였나 보군요.
하늘나비야 18-09-04 18:48
   
일본활 사정거리도 모르고 일본 애니판다지가 현실인줄아는 애들 댓글이 참 많네요 일본이 얼마나 자국을 미화시켜 그 왜곡되고 과장 된허상으로 세상사람들의 생각을 기만시켰는지 보여서 씁쓿하네요 일본이 이런 짓을하는 동안 일본에게 몹쓸짓 당한 나라들은 먹고살기힘들어 신경쓸 겨를도 없었고 일본이 던져 주는 돈 때문에 앞다 억울하단 소리도 못한 나라들과 피해자들 생각하면 가슴이아픔니다
ckseoul777 18-09-05 04:58
   
잘 보고갑니다 ^♡^
명불허전 18-09-06 21:49
   
역사적으로 우리는 활을, 짱깨들은 창을, 왜구들은 칼을 잘 썼다고 함
코코이 18-11-16 16:32
   
흠 잘 보고 감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