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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ch] 씨름, 유네스코 인류 무형 문화유산 등록, 일본반응
등록일 : 18-11-27 15:21  (조회 : 29,855) 글자확대/축소 확대 축소 | 프린트

한국 당국에 따르면 유네스코 위원회는 26일 
인도양의 모리셔스에서 열린 회의에서 6세기 후반 이후 삼국시대부터 전해지는 
한반도 고유의 스모 '씨름'을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에 등록했다. 
'씨름'은 한국과 북한이 함께 등록을 신청했다. 무형 문화유산 첫 남북 공동 등록이다.

한국은 '대한민국의 씨름(한국 전통 레슬링)' 
북한은'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씨름'이라는 명칭으로 각각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 
북한은 2016년 에티오피아에서 개최된 회의에서 씨름의 무형 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했지만 
실현에 이르지 않아 올해 다시 도전에 임했다. 
유네스코의 보조기관이 지난달 한국과 북한의 씨름을 각각 심사하여 
등록을 권고한 것으로부터 등록이 확실시되고 있었다.

한국 무형 문화재 제131호 씨름은 두 선수가 샅바를 잡고 기술을 걸어 
상대를 이기는 경기로 다양한 문헌과 그림 등으로 명확한 역사성을 확인할수 있다.

따라서 씨름은 한국의 20건째의 무형 문화유산이 되었다. 
지금까지 01년 종묘 제례, 종묘 제례악을 비롯해 
전통가 판소리, 강릉 단오제, 민요 아리랑, 김장 문화 등이 등록되어있다. 
북한에게는 14년의 아리랑 15년의 김장과 함께 3번째 등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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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jpg




<5ch 반응>



ID : hZFrTURD0
씨름에 그런 역사 있어? 
스모는 신에게 바치는 의식이지만 씨름은 근대 스포츠아냐?



ID : /8zx38Jj0
몽골 스모면 몰라도 이런건 처음 보는데



ID : HCpi2fc/0
스모의 기원은 한국이다. 일본은 사죄하라



ID : LbsUH0e70
몽골 제국의 유산이라 추측



ID : iU0hSkg50
유네스코 퀄리티네ㅋ



ID : oULFv7IC0 
아마 어느나라도 비슷한 경기일듯, 원시적인거야



ID : zJjfjcjD0
스모의 기원은 씨름이죠? 반도에서 사람과 같이 건너왔을테니



ID : CLJxyBOq0 
이거 돈내면 가입시켜줌



   ID : oULFv7IC0
   그런거까지 하면 일본도 거의 다 그런거지
   아베가 얼마나 돈을 줬겠냐



ID : z4fmPRJ30
애초에 그런게 없었는데 일본에 있다면 
우리에게도 있었던게 틀림없다며 옛 그림을 근거로 
일본의 스모와 몽골의 부흐를 흉내내고 있는것같은데



ID : 4UB7+NyE0
일본 스모에 대놓고 시비걸것같다ㅋㅋㅋㅋㅋ



ID : K29a4M/T0
이름도 다르고 시스템도 다른 전혀 별개의 문제



ID : g6eAUFau0
몽골 스모잖아. 또 베꼈냐



ID : KdHgOCsT0 
6세기 후반부터 있었군요~ 기원을 주장할 생각으로 가득하구나



ID : 1R7+gF680
점점 만드네ㅋㅋ 어차피 앞뒤 안맞게 되겠지



ID : EuyDS1V00
어쨌든 일본에 영향을 준것이라는 시나리오를 만들고 싶은걸까



ID : 9d9H064U0
일본도 뭐라 못하겠다. 어디라고는 말하진 않겠지만
아무래도 좋을 문화제를 세계 유산 등록하고있고



ID : vdjMyDyQ0
일본의 스모의 기원은 씨름, 벽화에 그려져 있으니까



ID : V2yBbRRD0
한때 TV에서 무작정 한국 스모 소개했던 일도 있었는데 
최근에는 오히려 전혀 안보여주더라



ID : 4aVHAzhd0
여전히 한국 스토커구나, 넷우익은



ID : td7KGELB0
만능 벽화에 그려져있기 때문에 어쩔수없다



ID : 4dktrYbX0 
최근 유네스코는 좀 너무 가혹한데



ID : VXl2D0ZZ
뭐, 그치만 이건 꽤 옛날부터 했던거잖아




ID : T/ECLS2i
등록이 목적이니까 이제부터 사라지겠지



ID : DghEtRnl
한국인들도 아무도 모르는 전통



ID : kqWOgXnB0
결국 몽골도 도둑 한국의 피해자가 된건가?



ID : O0IcbrBL0
쓰촨 파오차이를 베낀 김치도 등록한건지



ID : vNXiS8F30
거짓말 하지마. 그런 경기 아무도 몰라ㅋ



ID : yKYL+i8c0
일본꺼는 인정안되냐



ID : ivenIALG0
동굴에 고대 벽화가 있는거보면 일본보다 역사가 있다



ID : E9ZSq42V
최홍만이 한마디↓



ID : srxcPAg80
유네스코 유산 너무 늘어서 더 이상 가치없지



ID : 49oqZoDa
6세기 후반에도 바지가 있었구나ㅋ 새로운 기원이다ㅋ



ID : 314TxRYv0
각국당 1년에 2개 신청하는 규정을 지금 즉시 없애라
스모라면 일본과 몽골뿐이지



ID : WnGdTi6l0
지금도 씨름해? 멸종한거 아냐?
몽골은 지금도 하고있는것 같던데



ID : sNKNXFlt0
넷우익 눈물ㅋㅋ 스모는 한국 씨름 베낀거



ID : b0+vmBkZ0
이제 스모의 기원은 씨름인게 확정된니다!



ID : x0JqzjOv0
그럼 옛날엔 옷입고 있었는데 왜 지금은 상반신 알몸?



ID : 2HdJpXMQ0
최홍만이 여기 장사 출신이야



ID : 0EGGRF460
명란젓과 동일, 스모가 어원을 찾을수없는 단어인거 보면
일본 발상이 아닌건 확실



ID : iVCriPKi0
이건 인정하지 않을수 없을지도
어디까지나 씨름인거지 스모는 아니지만



ID : 3egxZny70
그러고보니 예전에도 해녀의 기원은 한국!이라며 필사적이었지



ID : 3RZqeMUh0
과연 우리들의 형님입니다



ID : l54I/F5u0
하아 삼국시대? 만능 벽화를 믿은거야? 유네스코 ㅄㅋㅋㅋㅋ
설마 스모의 기원이라고 신청하진 않았겠지?



ID : +EgAKaa0
6세기 후반이라니 역시 거짓말 냄새가



ID : oIFqCKcT0
유네스코는 변함이 없네. 조사를 좀 해보면 어떨까



ID : x8zwbd8i0
이게 스모의 원형인가



ID : s0iTQAwb0
언제나 생각하는거지만 현대 조선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역사와 문화이지요



ID : H5QVwuYx0
우리보다 우위에 서고 싶겠지만 이 씨름이 스모의 원형이라해도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설정이 발달한건 일본의 스모



ID : npHiPSgQ0
글쎄, 거짓말이지. 고구려 벽화를 기원으로 했다쳐도 
고구려는 조선족이 아니라는...



ID : IufnIGA90
유네스코 이제 탈퇴해라



ID : c2xF8PEw0
버린 문화를 다시 파내는걸 좋아하는구나



ID : 5INDbxIv0
JAP들 화병이 너무 지나친데



ID : kv99H0890
몽골의 반응이 기대된다ㅋ



ID : 7cewaENo0
일본 방송국이 눈치봐서 앞으로 씨름 특집같은거 할것같다ㅋ



ID : S9i+Q2aX0
그럼 스모가 최종 형태인가



번역기자:ParisSG 
해외 네티즌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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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 18-11-27 15:24
   
잘 봤습니다.
골드에그 18-11-27 15:24
   
잘봤습니다... 아니 근데, 저것들 아직도 해녀의 기원이 지들인지 아나?
     
ckseoul777 18-11-27 20:42
   
적극 공감합니다~유네스코에 열도가 후원금을 제일많이네니까
한국과 중국이 위안부할머니들등재시기려고하니.
등재 못시키게 후원금을 끊는다고하니까 보류로 결정까지했으면서
해녀도 열도박사들이 제주도꺼라고 했다가 갑자기 말 바꾸고. 하여간 
열도는 저주받은 드러운피가 흐르는 종자들이에요
          
Sulpen 18-11-27 22:03
   
어찌되었든 해녀는 2016년 11월에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ㅎㅎ

일본이 더이상 왈가왈부할수가 없지요.
민깽 18-11-27 15:24
   
날조와 조작이 일상인 넘들이 조작을 논해??
그런거읍다 18-11-27 15:26
   
이쪽 쳐다보지마라. ㅁㅊ 방숭이들아.
황룡 18-11-27 15:27
   
하여튼 방숭이들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봤습니다 ~!
월하정인 18-11-27 15:27
   
역사도 쥐뿔 짧은것들이 끝까지 고조선,부여,고구려 같은 국가 한국사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발광하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6세기가 아니라 4세기 아니냐
     
ckseoul777 18-11-27 20:44
   
지네들 보물1호도 조선시대에서 훔쳐온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종자들인데요 뭐 가 있겠습니까!!!
지미페이지 18-11-27 15:27
   
다 좋은데 빨강 파랑 빤쓰입고 하는 건 좀 바꿨으면 함.
전통 스포츠라며 촌스럽게 왜 그 딴 걸 입고 하는지...;
     
강낭콩콩콩 18-11-27 15:32
   
그럼 레승링은 빨강 파랑 쫄쫄이 입고하는데 그건 안촌스러움??

벽화에서도 짧은 하의만 입고 하는 그림도 있고 상하의 다 입고하는 그림도 있어요
전통의 전혀 어긋나지 않습니다
          
가스칼 18-11-27 16:22
   
벽화중에 상의 입고 하는것은 없습니다. 씨름도 수박희도 전부다 팬티만 입고있지..
          
감자밭 18-11-27 16:42
   
레슬링 겁나 촌스러움 ㅋㅋㅋ
쫄쫄이 빤스입고 하는건 스포츠성을 부각은 시키는데 전통성을 지우는건 사실이죠.
일단 제 생각은 스포츠로서의 씨름은 좀 망한감이 없잖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 좀더 전통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촌스런 빨강 파랑 쫄쫄이 빤스좀 벗고요.
          
바니러브 18-11-28 13:20
   
벽화는 모르겠지만 씨름 관련 민화보면 웃통 벗고 하는것도 있고 상의푸르고 걸치기만하고 하는것도 있고 다양하죠.
     
허거닭 18-11-27 15:56
   
권투도 빨강 파랑입니다만

뭐가 잘못된거죠?
     
허까까 18-11-27 16:11
   
이분이 지적하고자 하는건 색상보다는 스판팬티인 것 같네요. 사실 전통과 거리가 멀긴 하죠. 근데 그걸 대체할만한게 없는 것도 사실.
     
구름잡이 18-11-27 16:29
   
왜구새끼들 쪽발스런 스모복에 비하면야 양반이지.........
     
ultrakiki 18-11-27 17:37
   
???
     
아넬카 18-11-27 18:48
   
빨강/파랑도 천이 남아돌아서 그걸 입는게 아니라 다 이유가 있어서 입는거 아닌가요?
아시는분 설명좀....예전에 티비에서 그 의미에 대해서 한번 들었던거 같은데...
청실/홍실인각?...암튼 우리나라 전통등도 반은 빨간색, 반은 파란색이잖아요..
씨름옷도 그 맥락인거 아닐까용?
     
ckseoul777 18-11-27 20:46
   
팬티만입고 하는 예전부터 전통적인 스포츠가 많습니다
     
곰시기 18-11-28 10:37
   
전통 레슬링은..........
알 몸으로 해야 격식에 맞는데...............
그럼 ...그게 방송에 나올 수 있나요??
예랑 18-11-27 15:27
   
ㅂㄷㅂㄷ
B형근육맨 18-11-27 15:28
   
열도왜구들 오늘도 본인들한테 통용될 예기를 입에 침도 안바르고 거짓말을 하여간
날조하려거든 좀 디테일하게 하던지
6세기 바지타령에서 빵 터졌네요 ㅋㅋㅋㅋ
무한의불타 18-11-27 15:29
   
ID : 49oqZoDa
6세기 후반에도 바지가 있었구나ㅋ 새로운 기원이다ㅋ
=======================================

진짜 할 말이 없다 ㅋ
     
모나미펜 18-11-27 15:32
   
놀랄만하죠.
쟤들은 6세기에 귀저기 입고 다녔으니...
          
붉은깃발 18-11-27 16:24
   
훈도시
          
키욧 18-11-27 16:33
   
기저귀
               
모나미펜 18-11-27 17:54
   
ㄳㄳ
          
ckseoul777 18-11-27 20:57
   
ㅋㅋㅋㅋㅋㅋㅋ진짜 그래서 훈도시만 입고 스모를 하나보네요?
          
sunnylee 18-11-27 21:17
   
도쿠가와막부  에도 시기전까진..
훈도시도 귀중품이라.. 일반 농노들은  1-2개로 평생 썻다는 기록도 있던대..
               
ckseoul777 18-11-30 23:40
   
우와~진짜  처음으로 알게되었네요^^  대박이네요(⁎˃ᴗ˂⁎ )
          
마시마로5 18-11-28 03:41
   
물론 귀저기의 용도는 다름.  12세기전까진 그냥 옷의 효용이 없었음. 빨가벗은사람이 워낙많았다는.
     
세니안 18-11-28 13:17
   
그때만해도 화장실도 없어서 그냥 아무데나 싸고 휴지또한 없어서 나무와나무 사이에 지푸라기로 만든 줄을 꼬아서 빨랫줄 마냥 걸어놓고 거기에 엉덩이를 끼고 줄을따라 움직여 가며 응가를 닦았더랬죠..정말 원시인 처럼 살았던 것들이라 바지가 있었다는게 신기할수도 있을듯..
재미있는 18-11-27 15:29
   
6세기면 어느 나라나 당연히 바지를 입... 아, 일본은 아니구나.

당나라 시대 거적떼기 두르고 알현하던게 일본이었지...

자기들이 옷을 19세기에 입었다고,

다른 나라도 다 그런 줄 아나 보네...
     
하늘나비야 18-11-28 13:03
   
그러게요 외국에 나가는 사신이 맨발이더군 ..일본만
강낭콩콩콩 18-11-27 15:29
   
6세기 후반이 너네한테는 되게 낯선시대인가보구낰ㅋㅋㅋㅋㅋㅋ
바지가 있었다고 조작이라는식의 비꼼은 뭐지ㅋㅋㅋㅋ보면서 어이가 없다 아주ㅋㅋㅋ

그리고 몽골의 부흐랑은 다른건데ㅋㅋㅋ엄연히 차이가 있는건 알아보지도 않고 캬~~~역시 방숭이들
새콤한농약 18-11-27 15:30
   
잘 봤습니다.
모나미펜 18-11-27 15:37
   
ID : z4fmPRJ30
애초에 그런게 없었는데 일본에 있다면
우리에게도 있었던게 틀림없다며 옛 그림을 근거로
일본의 스모와 몽골의 부흐를 흉내내고 있는것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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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기사도 안읽고..오직 댓글쓰기위해 사는 인생이 여기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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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형 문화재 제131호 씨름은 두 선수가 샅바를 잡고 기술을 걸어
상대를 이기는 경기로 다양한 문헌과 그림 등으로 명확한 역사성을 확인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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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본 기사에 있는 내용이니 좀 읽어라
"한국"이라는 단어 보자마자 파블로프의 개 마냥
제목만 보고 댓글 달지 말고 좀 읽어라.
     
굿잡스 18-11-27 18:38
   
《섬나라 스모 경기에 사용되는 한국어》

'다가 다가 다가라'는 한치도 다르지 않은 우리말 '다가 다가 다가라 다가라 다. ''다가서라, 좀더 다가서서 싸워라''는 경기 지시다. '핫키요이'는 '하기요'. 경기를 시작하라는 뜻이다. 요즘의 평안도, 함경도 등 북쪽 지방 사투리다. ''하기요!''라고 힘차게 외치면 '핫키요이'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노콧다'는 '넣구다'또는 '넘구다'로 추정된다. 손이나 다리를 넣으라는 사인이 아니면 상대방을 잡아 넘겨 메어치라는 말일 것이다.(중략)고구려 씨름은 2세기에 일본으로 처음 건너가 5세기에 정착, 7세기 후반에 성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ㅡ이영희 '노래하는 역사' 1권 일본말의 뿌리는 한국말이다  중


일본에는 8세기 초에 간행된 4가지 고전이 있다. 

고대사 책인 일본서기(日本書紀), 고사기(古事記), 풍토기(風土記), 만엽집(萬葉集)이 있다. 

8세기에 편찬된 이들 책들은 7세기 요동치는 한국의 정세판도에 따라 

가야계, 백제계, 신라계, 고구려계의 황족, 귀족 등 

엘리트 집단들이 대거 신천지 열도로 건너가 

서로 정권을 다투는 우리 한국인들끼리의 피 튀기는 정권 각축전을 담은 역사책이다. 

http://cafe.daum.net/sisa-1/f8lD/714?q=%B8%B8%BF%B1%C1%FD
  

"일본 가타카나 기원은 신라 향찰·이두" 

히로시마대 교수

http://cafe.daum.net/nhpaolo/CZFL/1280?q=%BD%C5%B6%F3%20%C0%CC%B5%CE%20%C0%CF%BA%BB%20%B9%AE%C0%DA

고구려 씨름도(각저총) 고분벽화(고조선 건국신화도 간직)

https://news.v.daum.net/v/20171130150304070

동아시아에서 독보적 경지에 올랐던 고구려 고분벽화.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58308&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분벽화&sop=or


구마모토 대학 시미즈 기요시(淸水記佳) 교수 ‘아나타는 한국인’에서 “오늘날 일본어의 모어

(母語)는 한국어이며, 일본의 역사서인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실려 있는 신화와 전설은 전부 고대 한국인의 이야기다”고 말했다.



USA 캘리포니아 대학.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discover誌“1998년 6월호「일본인의 뿌리」
”고대 한국인의 선조가 일본의 원주민인 조몬인.아이누족을 정복하므로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탄생 시켰다.”

토쿄대 사학과의 이노우에 미쓰사타(井上光貞) 교수 ”일본은 고대 한국인이 세운 나라이다”(‘日本國家の起源, 1967) 
 

카큐슈우인대 오오노 스즈무(大野 晋, 1919∼) 교수
”한국인은 일본열도에 금속 제조및 사용법 야금·금공 기술 염색·피혁제조·베틀 직조·기와 제조·

의학·역법·천문학·조불(造佛)·사찰 건축·조탑 조경술등 모든것을 가져왔다(‘日本語の 世界’, 1980


일본의 저명한 사학자인 사에키 아리키요(佐伯有淸)교수는 ”조메이천황은 ’백제(구다라)

천황(百濟天皇)’이라고 말한다 .” 라고 1970년 ’신찬성씨록 연구’를 발표했다

18세기 고증학자 토우테이칸 은, 고대논문 「일본결척」을 인용하여 “응신왕 시대에 백제왕이 봉녀(縫女) 2명을 보내주어 비로소 임금과 신하들이 한복을 입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서민들은 옷을 입지 않은 벌거숭이 모양이었다”고 지적했다.
여왕 등극 때에는 참여한 만조백관 모두가 백제옷을 입었다고 전해진다.

 
고바야시 야스코(小林惠子) 교수, “26대 게이타이 천황,백제 무령왕 친동생”
     
굿잡스 18-11-27 18:52
   
칠지도(백제(Baekje) 어라하(Eolaha)=Emperor가 왜왕에 하사[(下賜 ; Grant)한 보검)    

<앞> 泰○四年 ○月十六日 丙午正陽 造百鍊[銅] 七支刀 生辟百兵 宜供供侯王○○○○作    
태○사년 ○월십육일 병오정양 조백련[동] 칠지도 생벽백병 의공공후왕○○○○작    

<뒤> 先世以來 未有此刀 百濟王世○ 奇生聖音 故爲倭王旨造 傳示後世    
선세이래 미유차도 백제왕세○ 기생성음 고위왜왕지련 전시후세    

칠지도 명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립부여박물관 전시 내용)    

<앞> 泰和四年 五月十六日 丙午正陽 造百鍊[銅] 七支刀 生辟百兵 宜供供侯王○○○○作    
태화사년 오월십육일 병오정양 조백련[동] 칠지도 생벽백병 의공공후왕○○○○작    

<뒤> 先世以來 未有此刀 百濟王世子 奇生聖音 故爲倭王旨造 傳示後世    
선세이래 미유차도 백제왕세자 기생성음 고위왜왕지련 전시후세    

태화 4년 5월 16일 병오일의 한낮에 백 번이나 단련한 철로 된 칠지도를 ○○○○가 만들었다. 온갖 적병을 물리칠 수 있으니 제후국의 왕(侯王)에게 주기에 알맞다. 지금까지 이런 칼이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 기생성음이 일부러 왜왕을 위하여 정교하게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금동관모의 소유자, 백제의 중앙 조정에서 왕(王)·후(侯)·장군등의 작호를 수여. 

* 지금까지 발굴된 백제의 금동관모 출토지. 
 공주 수촌리 고분군 등 중서부지역에서 5점, 전남지역에서 1점, 옥전 M23호분 등 가야지역에서도 2점이 출토. 일본 규슈의 에다후나야마(江田船山) 고분. 
  
사진 

http://cafe.daum.net/alhc/3Cdg/675?q=%EC%97%90%EB%8B%A4%ED%9B%84%EB%82%98%EC%95%BC%EB%A7%88(%E6%B1%9F%E7%94%B0%E8%88%B9%E5%B1%B1)%20%EB%B0%B1%EC%A0%9C%20%EA%B8%88%EB%8F%99%EA%B4%80%EB%AA%A8
     
굿잡스 18-11-27 18:58
   
이런 예는 비단 칠지도에 국한된게 아니라 앞서 규슈일대에서 발굴된 강전선산고분에서도 백제가  담로로 다스리던 지역에서 발견되는 금동관모,신발, 칼 명문 사서 기록등 외에도 

칠지도같은 하사품에 백제 어라하와 열도내 백제 친왕이자 어라하의 후왕이며  왜왕에게 준 일본 와카야마현(和歌山県) 스다하치만(隅田八幡) 신사에 소장된 신사 인물화상경(人物画像鏡) 명문(銘文)에도 지위의 상하 차이와 백제 본국 어라하와 열도 백제 왜왕 관계를 알 수 있는 유물. 

원문(原文) 

 癸未年八月日十大王年寽弟王在意柴沙加宮時斯麻念長奉遣開中費直 

穢人今州利二人荨取白上同二百旱作此竟 

계미년 8월 10일 대왕의 시대에 율제왕이 의시사가궁(意柴沙加宮)에 있을 때 

사마(斯麻)를 영원히 받들어 모시기를 염원하며 보낸다. 

개중[오사카]의 비직과 예인 금주리 두 사람 등이 깨끗하고 질 좋은 구리 200한을 골라서 이 거울을 만들었다. 


기존 대왕으로 지칭된 사마가 누구를 말하는지 일본학자도 몰랐다가 우리쪽 백제 무령 어라하의 무덤이 발굴. 지석 명문의 사마가 백제 어라하를 지칭함이 밝혀지군요. 

즉 이는 백제 본국 무령 어라하가 열도 백제 친왕인 남동생 계체왜왕 즉 게이타이왜왕에게 준 칠지도와 같은 성격의 하사품.
     
굿잡스 18-11-27 19:23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삼국시대 열도를 정복 지방 담로로 다스린 백제의 황제격인 최고 통치자를 어라하(Eolaha)로
불렸다면 고조선을 이어 다시 북방의 만주를 석권하고 주변 거친 전투 유목민족들을 휘하 부용세력으로 굴복  거느린 우리 고조선 동방문명권을 다시금 재정립한 천년사직 고구려의  최고 통치자는

태Tae(The greatest)왕Wang(King) = Emperor = King of Kings

태왕(太王)으로 불렸고 이후 남북국시대를 맞아 북쪽의 대발해와 더불어 삼한 세력을 흡수하며 동북아 해상무역을 장악했던 신국(神國)의 신라(Shillna)에서도 고구려 태왕의 전통을 이어 사용한 흔적이 보이군요.


동북아 최강대국, 독자적 동방문명권을 구축한 고조선 고구려문명권.   


신석기 혁명, 빗살무늬 토기의 발명지.   

유라시아의 동쪽, 한반도가 가장 앞선 지역이었던 이유   

https://news.v.daum.net/v/20171015140004655?rcmd=rn&f=m
    

    
    
고조선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등 분포도   

https://blog.naver.com/itcoms0/220344390104?proxyReferer=http%3A%2F%2Fsearch.daum.net%2Fsearch%3Fw%3Dimg%26q%3D%25EA%25B3%25A0%25EC%25A1%25B0%25EC%2584%25A0%2520%25EC%2584%25B8%25EB%25A0%25A5%25EB%25B2%2594%25EC%259C%2584%26docid%3D33MvZ9OeFqASojmtT-%26da%3DIIM%26rurl%3Dhttp%253A%252F%252Fblog.naver.com%252Fitcoms0%252F220344390104����
    

서토보다 앞선 동아시아 최초의 고조선 금속갑옷   

http://cafe.daum.net/luck5194/MFUT/283?q=%B5%BF%BA%CF%BE%C6%20%B0%A9%BF%CA%C0%C7%20%BF%F8%C1%B6%20%B0%ED%C1%B6%BC%B1-%20%B0%ED%B1%B8%B7%C1����
    

고대 한류로서 갑옷문화의 국제적 위상(1)   
고조선 갑옷이 중국에 준 영향   

http://www.breaknews.com/sub.html?section=sc5§ion2=������/문���������� 


고조선, 고구려의 뛰어난 제강기술력.   

http://hyala.tistory.com/247����
    
http://cafe.daum.net/gjgumdo/36Hr/27?q=%B0%ED%B1%B8%B7%C1%20%BF%EC%BC%F6%C7%D1%20%C1%A6%B0%AD%B1%E2%BC%FA����


魏略曰:其國殷富,自先世以來,未嘗破壞。   

위략 왈 그 나라는 매우 부유하며, 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한번도 파괴당한 적이 없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부여조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시에 강병이 100만이고 남으로는 오(吳), 월(越)의 나라를   

침입하였고, 북으로는 유주,연,제,노나라를 휘어잡아 중국의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수(隨) 왕조의 멸망도 요동 정벌에 의한 것입니다."   

高麗百濟 全盛之時 强兵百萬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爲中國巨 隋皇失馭 由於征遼   

-삼국사기 <최치원전>   


(북위)세종이 이르기를,“고구려가 대대로 상장(上將)의 직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해외(海外)를 모두 제압하여 사나운 오랑캐인 구이(九夷)를 모두 정벌하였다   
    
《후위서》   


其地後漢時方二千里。至魏南北漸狹,纔千餘里。至隋漸大,東西六千里。   
    

그 땅은 후한때에 사방 2천리였다. 위나라 때 남북이 점점 좁아져서 겨우 1천여 리였으며,   
    
수나라 때 점점 커져서 동서가 6천리가 되었다.ㅡ통전   
    


도표로 한눈에 보는 천년 사직 고구려의 위엄.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h1002&logNo=30152299778����
    

동북아 최강대국 고구려의 역대 전적.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58906&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A%B3%A0%EA%B5%AC%EB%A0%A4+%EC%A0%84%EC%A0%81&sop=and&spt=-5409&page=1����
    

근현대 독소전쟁 이전   

고대사 세계 최대 대전인 2차 고수전쟁 수나라의 300만 대군은 얼척의 과장인가?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78013&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88%98%EB%82%98%EB%9D%BC+400%EB%A7%8C&sop=and����
    


고구려 초기 2대 유리왕시절 축조되기 시작한 환도성   

앞 궁궐 건물지 무려 90미터.   

http://mnews.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Total_Id=343393����
    


고구려  5세기   
    
<안학궁 남삼문(南三門) 중 남중문(南中門) 38m 앞면 7칸   

안학궁 남궁 1궁전(정전) 62m 앞면 11칸   

안학궁 중궁 1궁전(편전) 87m.  앞면 19칸 >   
    
    
7세기에 세워지고 확장된 당나라의 최대궁전인 대명궁의 정전인 함원전 정면 길이가 67.33m   
    
북경  자금성에서 가장 큰 건물 태화전 정면 64m   


동대사 크기는 높이 48m, 가로 57m, 세로 50m라오. 안의 대불은 15미터  =>우리 백제인에 의해 건립.   



인도의 타지마할의 기단 크기 94m, 건물 크기 57m   

남북국 시대 발해의 상경용천부 제2궁전 기단 크기 120m, 건물 크기 93.5m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56234&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D%83%80%EC%A7%80%EB%A7%88%ED%95%A0&sop=and����
    

    
고구려는 안학궁으로부터 750m 떨어져 있는 유사시를 대비한 배후 산성이   
    
대성산성으로 전체 9km가 넘고 둘레는 7km가 넘으며 남문이 있는 골 안에서는 2   
    
중으로,주작봉과 국사봉 골 안에서는 3중의 겹성에 내부에는 연못이 자그만   
    
치 170여개가 존재.   
    
http://blog.naver.com/bestchoi21/20018007630��-> 대성산성 사진   


우리나라의 고대 도시 축조 역량과 위엄.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11385&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D%83%80%EC%A7%80%EB%A7%88%ED%95%A0+%EB%B0%9C%ED%95%B4&sop=and����
    

북위의 권력을 쥔 고구려인   

http://blog.naver.com/csred7/80130397982����


우리나라는 문물과 예악이 흥행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며 장삿배가 연이어 내왕하여서 값진 보배가 날마다 들어오니, 중국과 교통하여도 실제로 소득이 없을 것입니다. 거란과 영구히 절교하지 않을 터이면 송 나라와 교통함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하니 따랐다. 

 <고려사절요 문종 12년>
eradicate 18-11-27 15:37
   
아무도 뭐라 안했는데 스모타령 하는거 보니 스스로 찔리나보네
쌈바클럽 18-11-27 15:40
   
쓰모의 기원이 정확히 씨름인지는 모르겠지만 씨름은 니들 역사보다 오래됐어.
모나미펜 18-11-27 15:41
   
ID : DghEtRnl
한국인들도 아무도 모르는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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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특유의 날조와 선동이 가득한 헛소리 나오죠?

옛날에 씨름경기가
정말 국민적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는데 ㅉㅉ

그럼 지금 연예계에 있는 강호동이나 이만기는 대체
뭐하던 사람인데???
     
바니러브 18-11-28 13:22
   
근데 이건 좀 안타깝긴함 일본에서 스모의 인기는 아직도 상당하죠.
하지만 한국에서는 추석이랑 설에 어르신들이나 보는 경기가 되어버림.
LikeThis 18-11-27 15:45
   
몽골 씨름 부흐 대회 중 가장 큰 대회인 '나담축제'가 2010년 유네스코에 등록되었습니다.
한국의 씨름이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고 해서 몽골이 반발할 일은 없습니다.
모나미펜 18-11-27 15:45
   
감사합니다.

스크린 캡쳐된 기사 제목을 보니
[씨름]을 [시루무]로 표기하네....대단하다. 진짜.
시루무는 대체 뭐여?
새로운 무 품종이여?
     
세니안 18-11-28 13:25
   
시루에 무가 있는거인듯 ㅋㅋㅋㅋㅋ
     
ckseoul777 18-11-28 20:00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혀의 발음이 안되니 택시도 타구시라고하죠^^
열도의것들은 영어권에가서도 발음이 안되니 못 알아듣는사람들이 많습니다^^
해충퇴치 18-11-27 15:48
   
ID : 49oqZoDa
6세기 후반에도 바지가 있었구나ㅋ 새로운 기원이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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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후반에 바지가 없는게 이상하다는 생각은 못하나?
     
굿잡스 18-11-27 20:11
   
섬나라는 근대 이전 에도시대(1603~1867)까지도 8할의 대다수 농민들은 제대로된  의복을 입기 힘들었군요.

쨉극우나 친쨉매국사관에 함몰된 학자들이 에도시대 특정 극상류 대상인의 사치만을 보고 부유하고 화려한 에도시대 어쩌고 떠들어대고 확대 과장하지만

조선에서 훔친 연은분리법(鉛銀分離法)으로 인해 왜국에서도 은광 개발과 은생산이 본격화 활기를 띠면서 임진왜란때 전비고 이후에도 상당한 생산량을 보이나 
이는 상류층의 향락 사치에 소비될 뿐이였고 후진적 정치 사회상에 농업기술력도 여전히 정체된 가운데 비싼 비단은  서토나 조선의 중계무역으로 상류층에서 소비되고 그보다 저가의 면직물도 제대로된 기술 생산력이 없다보니 조선에서 수입. 오늘날 청바지가 일반 경제력있는 국가에서는 서민용품이지만 후진국 국민의 서민에게는 부담되는 사치품처럼 느껴질 수 밖에 없었듯 무엇보다 왜는 정치가 후진적이다보니 사대부들에게 사치를 제약했던 조선과는 달리

왜는 그들 상류층의 사치를 위해 대다수 농민을 고세율로 철저히 묶어두다보니 에도시대 일반 대다수 농,서민들은 빈약하고 불결한 밀집 판자 가옥에 비단도 아닌 일반 면직물 옷이나 이불도 제대로 사서 입기가 쉽지 않았던 열악한 시대상이였다보니 어느 시대보다 성장점이 최저점 시대로 마비키라고 신생아까지 솎아내기로 인구제한을 했던 패륜적 미개 사회상이 만연하게 되군요.


오늘날 반도체에 비견되는 금,은보다 비쌌던 조선의 바이오 의약품-인삼(및 홍삼)과 인삼대왕고은(人蔘代王古銀) 특수화폐.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commu07&wr_id=3593845&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삼&sop=or
     
굿잡스 18-11-27 20:21
   
「나라시대 민정 경제의 수적 연구」에 있는 단위면적당 평균수확량이 타당한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시즈오카 대학 농학부의 佐藤洋一郎 조교수외는, 登呂遺跡의 복원 논에서 고대 농법에 따르는 벼재배 실험을 실시해, 2천 년전의 쌀의 단위면적당 평균수확량을 추정했습니다.  

실험은, 카시하라 고고학 연구소의 寺沢薫씨의 그룹도 행해, 밭 하나당 평균수확량 백십3킬로그램의 수치를 냈습니다.사토 그룹의 수치는 2백6십 킬로그램으로, 쌍방의 수치로부터 추정 밭 하나당 평균수확량을 백구십 킬로그램으로 했습니다.실험으로 얻을 수 있던 추정 단위 면적당 평균수확량의 백구십 킬로그램은, 시대의 변천 속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요.  

 사토씨에 의하면, 야요이 시대 중기부터 2천년 후의 1887년(메이지 20년)의 단위면적당 평균수확량은 약 백팔십 킬로그램입니다.  
「2천 년간의 쌀생산량은 거의 옆걸음으로, 평균 2백 킬로그램 정도입니다.・・・」  

 고대 한국의 도래인이 일본에 농사를 전래한 이후 2000년 동안 농업생산력 향상은 없었다. 라는 주장이다.  

http://blog.naver.com/marich77/40200001447��

'出羽奥州와 奥州(현재의 동북지방)에서        
매년 1만 6, 7천명, 上総(현재의 지바현)에서는        
3~4만명의 갓난아기가 솎아냄(마비키) 되고 있다'        
ㅡ에도시대 농학자 사토 노부히로        

쌀로부터 돈(화폐와 상품 경제)으로, 경제의 중점이 옮겨 갔다.상품 경제에 날려 돌려진 농민은, 돈 갖고 싶음에, 농지를 담보로 하고, 고리의 돈을 지주나 상인・고리대금등에서 빌린다.이 농민의 빚정책은, 가난한 농민의 대량생산을, 필연적으로 재촉했다.      
「오공 오민」은, 마침내「6공사민」의 맹렬한 착취에까지 발전했다.막부의 大寒・神尾는, 이것에 관해서「백성은 참깨의 기름과 같아서, 짜면 짤수록 잘 나온다」라고 공언하고 있다.      

에도시대의 대략 250년간, 일본의 총인구는 2500~3000만명의 사이에 정체하고 있다.  이 원인으로서는, 어려운 연공이나 부역의 징집으로, 농민은 생활에 필요한 최저의 축적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은 채, 조그만 흉작에서도 빈농은 기아로 연결되어, 아사하고 있는 것과 평년이라도 생활을 위협해지고 있던 농민이, 스스로의 지금의 최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갓난아기를 죽이거나(솎아냄), 버리거나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라고 생각되고 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arich77&logNo=40143933532&proxyReferer=&proxyReferer=http%3A%2F%2Fwww.google.com%2F      


 왜농민의 의복에 관해서는, 삼・무명으로 한정되어 노동에 적절한 염색되지 않은 筒袖・잠방이가 사용. 농민의 주거에 관해서는, 더 비참해서, 가건물기둥에, 토방을 강제. 마루는 불경제로 여겨져 토방 위에 멍석이나 짚을 깔고 잤습니다. 땀으로 부드러워진 멍석이나 짚은, 논의 비료로 사용. <농민의 식사에 관해서는, 엄격하게 규제되어 보리나 조가 주식이었습니다. 작은 새의 먹이입니다. 부식이나 간식도 금지.> 오락도, 연중 행사 이외는 금지      

http://blog.naver.com/marich77/40201615696
     
굿잡스 18-11-27 20:23
   
대화재와 전염병으로 신음하던 후진적 주거환경과 빈약한 생활 수준의 에도의 대다수 백성(닭장주거)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commu07&wr_id=171418&page=1077��

19세기 말 일본 일반 백성(사진)  

[실제로 가면 기대한 것만큼 실망하게 된다  도쿄는 큰마을 정도의 느낌이다 그리고 도시에 널려있는 빈약한 목조주택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왕의 거처도 궁전이라기 보다는 단순한 성벽같은 모습에 매우 초라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심각한 모습은 바로 통치자의 행태이다 바로 민족의 낮은 수준을 그대로 방치하고 근절하는데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의 발전은 가장 핵심 공중도덕에 있다 하지만 일본인에게 공중도적은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옷을 벗고 다니고 아무데서나 소변과 대변행위를 한다 한 마디로 공중도덕 완벽히 결여되어 있는것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인의 사고방식은 유럽인과 너무 차이가 난다 일본은 방문하는 사람들은 유럽과는 일거수 일투족이 전혀 다른 모습들을 늘상 목격하게 될것이다 어떤 도시든 마을이든 목욕탕이 있고 그곳에서는 어김없이 남녀가 한곳에서 목욕을 하는 모습을 발견할수 있다 그리고 특히 일본의 시골은 모두가 전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너무나 비참한 모습들이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93956��

윗 실제 쨉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서민 주거 건물 사진들을 눈여겨 보면 알겠지만 빈약한 밀집 허름 판자가옥에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주거지가 지상이 아닌 땅속에 쳐박혀 있는 형태임을 볼  수 있을 것이군요.(이정도의 후진적 주거가옥 형태는 우리쪽에서는 삼국시대에도 찾아보기 힘든 미개상)
마이크로 18-11-27 15:52
   
밀어내는게 무슨 운동이냐.
영ㄱㄴㄷ 18-11-27 15:53
   
만능 벽화래ㅋㅋㅋㅋ 왕같은 고위층의 무덤에 그려진 벽화만큼 귀한 자료가 있겠니ㅋ 고고학의 기본도 모르는 무지렁이들ㅋ
아리온 18-11-27 15:55
   
ID : hZFrTURD0
씨름에 그런 역사 있어?
스모는 신에게 바치는 의식이지만 씨름은 근대 스포츠아냐?

=====================================
그 신이 백제왕
     
하늘나비야 18-11-28 13:24
   
ㅋㅋㅋㅋㅋ 그쵸 백제 왕이 신이죠 일본애들한테는
한이다 18-11-27 16:19
   
ID : 49oqZoDa
6세기 후반에도 바지가 있었구나ㅋ 새로운 기원이다ㅋ

6세기 후반에 바지도 없이 살았다니...일본 스고이~
구름잡이 18-11-27 16:24
   
이 간사한 왜구새끼들이 있지도않은 공자 한국기원 조작질로 들떨어진 짱께새끼들 이간질시키더니 아주 재미붙였네...........
루프 18-11-27 16:29
   
삼국시대면은 그때 일본은 문명조차도 없던것들이 고기말고 골룸처럼 물고기 먹던애들아님?
하얀그림자 18-11-27 16:31
   
ID : 49oqZoDa

6세기 후반에도 바지가 있었구나ㅋ 새로운 기원이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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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덜이 가지지 못했다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https://i.imgur.com/VjELnng.jpg]
훈또시나 천으로 대충 하반신을 두룬 니덜 클라스
칠갑농산 18-11-27 16:36
   
씨름은 젊은층 유입시켜 대중화를 도모할려면
원색 빤스부터 바꿔야됨
이게 진입장벽임
공통 유니폼으로 삼베 바지로 바꿔야
뭔가 새롭게 시도나 해보지
우디 18-11-27 16:38
   
까불다가 강호동한테 쳐맞는다. 원숭이들아
주니해피 18-11-27 16:41
   
씨름이 근대 스포츠라고 짓거리는 뇌가리 없는 방숭이새끼는 머지 대체;;;;
SpearHead 18-11-27 16:42
   
댓글에 답 나와있네요
씨름  씨루무 쓰루무  쓰무 스무 스모...

일본어 ㅂㅅ. 발음 때문에 저리 된듯.
근데 낫또도 그렇고 베끼다 제대로.못베껴서 하다만거마냥

별기술도 없이. 밀어대기만하는 스모를. 화려한 기술씨름에 비교질 하지는 마라 실례다 잽들아
흑마술사 18-11-27 16:42
   
일본은 6세기에 바지가 없었나 보네 ㅋㅋㅋ 기저귀 차고 다녀서 없었나?
Durden 18-11-27 16:44
   
제대로 된 역사도 없는 놈들이 뭔들 알겠니.
꽁지 18-11-27 16:58
   
우리 나라만 그런게 아니라 전세계에
어느나라나 대형 포털 사이트 댓글은 피해의식 과대망상 정신병자들밖엔 없구만
GAME 18-11-27 16:59
   
야구장에  있는 씨름선수들도 씨름판으로 복귀해야
될텐데
이후후훗 18-11-27 17:00
   
무조건 반사적인 피해망상이 가득하구나
우익들은 우리댓글로 역사를 많이 배웠을듯 ㅋㅋ
이것도 번역해~
포스원 18-11-27 17:02
   
ID : 49oqZoDa

6세기 후반에도 바지가 있었구나ㅋ 새로운 기원이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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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일본 너희들은 6세기에 바지가 없었어????  헐~
     
설설설설설 18-11-27 17:05
   
지네들은 들은 팬티만 입고다니니깐요 ㅋㅋ
          
포스원 18-11-27 17:59
   
엄밀히 말하자면 것도 팬티라기 보다는 천쪼가리예요
재봉한것이 아니라 보다는 긴천으로 샅바처럼 묶는거라 ㅋㅋㅋ
     
ckseoul777 18-11-28 20:04
   
역사를 제대로 직시하지못하고 제대로 된 역사를못배우니 저모양 저 꼴이죠!!!
설설설설설 18-11-27 17:03
   
교묘하게 연대도 날조하는건가 우리나라발? 언론같은데

6세기후반이 아니라

5세기초임.

연대차이가 100년이상이나 있는데 ;;
GAME 18-11-27 17:09
   
우리가 어려웠던 시절 쪽바리들 날조된 역사를 퍼나르고
뒷돈줘가면서 조작하고 그걸 쉬쉬한 친일파까지
태백 18-11-27 17:09
   
일본은 날조가 생활해 되어 있는 국가일겁니다
일본이 섬기는 신의문자 한글...
한글 기원도 지들 이라고 방송에 나온적도 있었네요
암튼 웃기는 족속들임
     
ckseoul777 18-11-28 20:06
   
적극 공감합니다~진짜로 말도안되는것들이 유트뷰에도 널렸더군요 진짜로 쪽팔린줄도모르나보네요^^
칼까마귀 18-11-27 17:14
   
유물이 없으니 일본은 날조 할수밖에 역사가 없음 니뽕은
Korisent 18-11-27 17:15
   
일뽕들 무식하군. ㅋㅋ 수모도 일본이 날조. ㅋㅋㅋㅋ
햄돌 18-11-27 17:17
   
6세기 후반에 바지가 없었대...

미개국 아니랄까봐

바지도 없었니?
2018수호랑 18-11-27 17:25
   
하여튼 쪽국 아니랄까봐...안심이 된다. ㅋㅋㅋㅋ
booms 18-11-27 17:26
   
일본이 역사가 있냐? ㅋㅋ
전쟁망치 18-11-27 17:27
   
어폐가 있는건가 유네스코에서 스모라고 표현한 건가 아니면
전달 하는 일본 야후에서 스모라고 표현 한건가
그리고 우리가 씨름을 등록 하던 말던 지들이 무슨 상관인건가?
스모랑 엄연히 급차이가 있다 왜구들아 스모 줘도 안해 걱정마
mymiky 18-11-27 17:27
   
6세기에 바지 있는게 왜 그리 놀람?
더 이전 시대의 흉노족들 유물에서도 바지가 출토되는데?
그게 놀라운 일인가? ㅋㅋㅋ
얼마나 섬에서 미개인으로 살았으면, 바지에 놀라 자빠지냐???
직장인 18-11-27 17:32
   
번역 수고하셨습니다
북창 18-11-27 17:35
   
왜구 열등감 폭발은 한 편으론 이해가 감.
6세기에 왜국은 겨우 군장 국가의 형태를 갖췄는데, 이웃 나라는 세계 문화 유산이 생기고 이건 뭐 ㅋㅋㅋ
차이가 너무 심하니...현실 부정 말고는 이 세상을 살아갈 힘이 안생기는가 봄ㅋ
ultrakiki 18-11-27 17:39
   
ID : 49oqZoDa
6세기 후반에도 바지가 있었구나ㅋ 새로운 기원이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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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개함극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늘나비야 18-11-28 13:25
   
일본은 옷이 없어서 벗고 다녔으니 놀랄만 하겠죠
바두기 18-11-27 17:45
   
잘봤습니다.
스펑키 18-11-27 18:02
   
ID : 49oqZoDa
6세기 후반에도 바지가 있었구나ㅋ 새로운 기원이다ㅋ
<-머리 변발하고 훈도시만 걸친채 칼차고 싸움질만 하던 미개한 섬오랑캐들이였던 니들 선조들이 바지를 기록에 남겼겠냐
안녕하다 18-11-27 18:04
   
조금만 검색해도 삼국시대 벽화에 그려진 씨름 다 나오는구만 뭐만 하면 조작이라니 지들이랑 똑같은줄 아나
가출한술래 18-11-27 18:17
   
잘 보고 갑니다
retinadisplay 18-11-27 18:17
   
일본인들은 '씨름도'나 명절씨름대회방송을 볼일이 없으니깐 모를수는 있다만, 저 댓글들은 확실히 알든 모르든 부정적으로 적으려고 노력한것같습니다.
테스크포스 18-11-27 18:27
   
하아..이래서 무식한것들은 정말...;;;일본내의 역사학자들은 다 몽골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의 스모가 탄생된걸 다 아니까 너무 괘념치 마세요;;하여튼..옅은지식과 무식하면 입 다물고 있어야하는건 동서고금 막론한 진리인듯
유일구화 18-11-27 18:48
   
기륵기륵
아잉몰라 18-11-27 19:02
   
스모 ㅋㅋㅋㅋㅋㅋㅋ스모가 근대스포츠겠지
무영각 18-11-27 19:04
   
일본반응이 심심해졌다
병아리쓸빠 18-11-27 19:35
   
이제 곧 일본침몰.
댓글러123 18-11-27 19:39
   
얘네는 한국 타령 그만하고 이제 이불 밖에서 좀 나와야...
섬나라호빗 18-11-27 19:44
   
1대부터 14대 천왕을 모두 날조로 만들었을 정도로 역사책 자체가 소설인 것들이 ㅎㅎ 이 정도면 얼마나 많이 날조를 했을지 짐작조차 안 될 지경
구르미그린 18-11-27 20:09
   
삼국시대 한반도 인구, 경제력이 일본을 훨씬 앞섰는데
지금 한국국민은 한국 GDP가 일본의 3분의 1인 현실에 만족하고, 일본은 곧 망할 나라라고 까며,
신남방외교랍시고 동남아 11개국에 5년, 10년까리 비자 줘가며 외국인 대량이주 확대하는 정부를 방치하고
한국 신생아 수가 세계역사상 가장 빨리 줄고 있으니
이 추세가 계속되면 한국이 일본보다 확실히 먼저 사라집니다.

지금 한국의 고령화 정도는 90년대 후반 일본과 비슷하고, 한국 1인당 GDP(3만불)는 1992년 일본과 비슷합니다.
당시 일본의 연간 신생아 수는 120만명. 지금 한국의 연간 신생아 수는 30만명대 초반.
"페미 때문에 한국남이 일본처럼 초식남 돼, 신생아 수 줄고, 한국녀/페미가 ㅈ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네티즌이 많은데,
이미 한국 출산율은 2001년부터 쭉 일본보다 낮고, 2010년대 30대 한국남 미혼율은 30대 일본남 미혼율보다 높지만
페미는 전혀 타격 없습니다.
(지금 결혼하고 애 낳을 만한 80년대 90년대 출생자 수는 일본이 한국의 1.88배 정도인데
연간 혼인 건수는 일본이 한국의 2.2배 정도. 연간 신생아 수는 일본이 한국의 2.9배 정도)

일본 보고 독일을 배우라는 한국인이 많은데, 독일은 식민지에 일본 수준의 사죄와 배상조차 안 했습니다.
일본은 독일처럼 하고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한국이 유대인처럼 하지 않는 현실입니다.
지금 한국의 정책 추세는 저출산 양극화 완화에도, 부국강병에도, 사죄와 배상 받는 데에도 역행합니다.

19세기 말 조선이 재빨리 산업화하지 않은 점을 아쉬워하는 한국인이 많은데
당시 조선 입장에서는 전세계가 서구열강에 먹히고 문명이 천지개벽하는 대전환기에 정답을 찾는 일이었기에, 조선이 엄청 큰 삽질을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조선에 비해 훨씬 유리하고, 기본에만 충실해도 지금보다 훨씬 나은 국력을 가질 수 있는데, 국력신장과 역행하는 정책 조합만 골라서 하는 탓에
일본 국력을 앞지를 절호의 타이밍을 날리니, 후손들은 19세기 조선인보다 지금 한국인을 훨씬 더 깔 겁니다.
뮤젤 18-11-27 20:18
   
김홍도..
수박수박수 18-11-27 21:02
   
스모는 신 역할을 맡은 쪽에게, 인간 역할을 맡은 쪽이 아슬아슬하게 지는 연출을 하는 쇼일뿐
애초에 실력과 기량을 기루는 경기도 아니고, 그냥 종교 행사가 기원이잖아
비교 대상도 아니다.

일본이 스모를 문화유산에 등재하겠다고 하면 한국인은 그냥 "아 그렇구나" 하고 말 일인데
일본은 대체 왜 남의 나라 일에 이렇게 악의적인 거짓말까지 섞어가면서 화를 내는지 이해가 안간다
sunnylee 18-11-27 21:25
   
끈쪼가리 하나입고. 몸집만 불려 밀어내는게..무슨 스포츠라고..ㅉㅉㅉ
아니지.. 도쿠가와 막부 에도시대 이전까진...
그 훈도시조차 귀중품이라..2-3개 장만해..평생 입었고..
그나마 그건  생활이 좀 나은 사람 이야기라고 책에서 본듯...
백운 18-11-27 21:48
   
남녀간의 몸싸움(?)을 '어루다'라고 하고,
남자나 여자 끼리의 몸싸움을 '씨루다'라고 합니다.

어루는 분야의 유명한 인물로는 조선 성종 때의 얼우동(於乙宇同)이  있지요.

언어학자들은 씨름의 어원으로 씨루다를 들고 있습니다.
이는 씨름이 남자끼리의 몸싸움의라는 뜻이지요.

씨름은 페르시아의 벽화에도 나타나는 데, 그들은 씨름을 '쎄라'라고 부릅니다.
벽화를 보면 우리의 씨름하는 모습과 꼭 같으며 명칭도 비슷합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이 천사와의 씨름애 이겨 얻은 땅이라고 성서는 말합니다.

히브리어로 이스라(Ysra)는 겨루다(strugle)는 뚯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Ysra-EL)은 신과 겨루었다는 뜻이지요.

히브리어로 이스라(Ysra/Isra)가 겨루다는 뜻인 데,
만주어로는 씨름을 이썰러(Isele)라고 하지요.

결국 씨름이 쎄라나 이스라, 이썰로 등으로 불리고 있다는 말이지요.

어떤 이름이 재일 처음으로 불린 것인지는 알수 없으나 씨름이라는 문화는
시대를 초월하여 공통적으로 향유하고 있었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씨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둥재된 것이 너무나 당연허다 할 것입니다.
어쩌면 너무 늦었다고 봐야 겠지요.

이런 마당에 어찌 왜인들이 왈가왈부 할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머리 숙여 고맙게 생각해야 겠지요.
patron 18-11-27 22:07
   
거짓말안하고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소식 더 잘아는듯.....
시리타이야 18-11-27 22:20
   
씨름이 유네스코에 등재되던 말던 일본애들이 무슨상관이길레.. 정말 징그럽게 달라붙네요.
     
ckseoul777 18-11-28 20:10
   
열도 방숭이들은 한국에대한 열등감을 심해서그렇죠.
아직까지도 딱 1990년대에 머물러있습니다. 갈라파고스이죠
최순실 18-11-27 22:52
   
잘봤습니다.
자기자신 18-11-28 02:48
   
잘 봤네요
싸대기 18-11-28 08:24
   
반토막들 지들 고유문화란 해적질!!! 뿐인걸 모르네 ㅎ
칸헤원 18-11-28 10:54
   
씨름 비슷한 것은 인도에도 있고 동남아시아
하물며 스위스에도 있다고 들었음

기원전 3000년 정도를 기원으로 보고
중국 전국시대에도 씨름 비슷한 게 기록에 있다고 하고

중국 송나라 때는 나체인 여자들의 씨름대회도 있었고
원나라 때는 주변국 고려, 동남아시아 모두 불러다가
국제 씨름대회도 했었음
아미고 18-11-28 11:03
   
조선의 문화는 독자적인 문화라기 보다는 모방 문화가 대세였다.
그러나 그 모방이 모방으로만 그친 게 아니라 우리 민족에 맞게 변형, 발전시켜 어느 시점에 가서는 전혀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내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민족이다.
만약에 씨름도 몽골의 씨름을 보고 모방했다면 쌑바라는 새로운 유형의 방법을 만들어 낸 것이다.
     
굿잡스 18-11-28 13:06
   
??? 조선문화는 모방의 문화가 대세?? ㅋㅋ  몰 근거로 이런 말을 하는지??

우선 님이 말하는 몽골족은 13세기 가서야 징기즈칸에 의해 그나마 잠시 몽골제국으로 흥하기 전에는 우리 천년사직 고구려 시절에는 고구려에 제대로 명암도 못내밀던 휘하 부용세력이였고 심지어 거란부족에게 개발리고 살아왔으며 우리 고조선시대에는 족보도 안나왔던 종족.
(한국인을 몽골리안 어쩌고 하는 식도 대단히 무지한 서구적 관점일뿐 오늘날  한국어의 언어계통을 독자적 한국어족으로 이야기하는게 대세이듯 도리어 역사상 몽골의 조상격인 우리나라 사람을 보고 자식 이름을 가져다 붙이는 격)

그리고 위에도 언급했지만 애초에 그 지역 생활 문화권과 매우 밀접한 신석기 혁명의 토기에서부터  한반도와 만주를 아우르는 문화권의 빗살무늬토기는 서토 앙소문화 토기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그리고 전혀 이질적 토기를 독자적으로 만들어 사용한 문화권에서 출발.

도리어 쑤빙치같은 짱국학자의 연구내용을 빌리면 서토 하한족의 채색토기는 만리장성 밖 우리 고조선 선대 요하지역에서 500년 앞서 나오고 있고 Y벨트 지형을 따라 남하한 세력에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

그리고 우리 고조선 고구려의 묘제 양식만 봐도 흔히들 아는 고인돌 지석묘 돌방무덤등으로 대변되는 돌양식 무덤인데 비해 서토 하한족은 땅을 파서  묻는 형태로 전혀 이질적 문화양상에

고조선의 대표적 비파형동검을 봐도 서토의 일체형 동검에 비해  손잡이와 분리된 비파형의 독특한 양식과 청동성분도 서토의 단순 동검과는 다른 정교한 합금 성분으로 뚜렷하게 구분.

도리어 서토 최초 왕조이자 하한족을 정복 군림한 동북방에서 내려온 이민  동이족 상나라에 의해 서토 하한족은 고조선 문화지역부터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동이족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성장.

그외에도 서토는 이민 정복왕조로 점철되다보니 마지막 만주족 청의 변발이나 의복등  이민족 문화에 수시로 강제.

또한 한자라는 상형문자도 무슨 하한족의 독자문자가 전혀 아니라 하한족을 정복한 이민 동이족 상나라의 갑골문에서 출발 여러 세대 여러 종족을  거치면서 변화.

또한 우리는 이런 동아시아 공용 상형표의 문자에 만족하지 않고

향찰 이두 같은 부분 우리발음 표기를 위한 표음 문자식을 고안해내다 이후 한글이라는 완전한 표음문자를 발명했고  세계 활자 종주국답게 금속활자의 발명이나 우리의 한복이라는
의상 역시 서토 하한족들이 수시로 이민 정복당하면서 의복이 강제 변했던데 비해 우리는
고조선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일부 시대적 변형 발전은 있었지만 그 고유 기본은 줄기차게 유지.
(갑옷등도 도리어 서토보다 앞서 발명 서토에 영향을 줌)

그리고 사상적 면에서 인도의 불교를 서토를 거쳐 받아들인건 있지만
서토의 대표적 더 민중 저변인 도교 신앙이나 사상은 사마천 사기
진시황본기등을 보면 산둥 우사 즉 도사들이 이런 문화가 당시 고조선이 있던
발해만 일대에서 흘러 들어왔다는 기록들이  있으며 이때문에
진시황이 불로장생을 위해 동방으로 사람을 보내던 이야기는 유명등
우리의 선도사상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아보임(삼국사기등에도
평양을 선인왕검이 거하는 지역으로 기록)

그리고 서토에서 유교를 집대성한 공자의 출신 자체가 동이족 상나라의
후예로 기록. 공자가 서토인일지  모르지만 공자는 어린시절부터 동이족 제기를
가지고 놀면서 동이족 예법이 익숙했던 인물로 그의 사상적
그리고 예악등이 서토 하한족 주나라 예법이 아닌 동이족 문화에 정통했던 이로 그가 스스로 무에서 유교라는걸 창조해서 만들지는 않았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군요.

그외 고구려의 춤이나 중세 고려시대의 고려양등이 크게 유행하며 원,명의 의복이나
생활양식에도 영향을 주었고
  그외에도 신라계 황제와 발해인 연합의 금나라는 요,송을 멸망시키고
오늘날 짱국 수도가 된 북경에 국무총리격인 금나라 고구려계 장호가 직접 중도라는
수도를 건립.(세계 최초의 공중보건의학서이자 우리의 독자적
의학을 구축한 동의보감, 세계 최초의 함대함포 해전사, 서구보다 200년 앞선
송도사개부치법같은 현대적 복식부기등)


왜 여직(진)발해본동일가(女直渤海本同一家)라고 했을까?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88992&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D%95%9C%EA%B7%9C%EC%B2%A0&sop=and

금나라 황실 조정내의 고구려계(발해인) 파워 

http://blog.naver.com/knightblack/10106493129

금나라 황릉의 모델은 고려 황릉(왕릉)이었다.’ 12세기 북중국을 장악했던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1115∼1234) 황릉이 고려 황릉과 형제처럼 꼭 닮았다는 비교 연구가 국내에서 처음 나왔다. 금 태조 완안아골타(1068∼1123)가 10세기에 건국한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고 불렀던 것을 감안하면, 당대 사회적 문화적 역량을 총집결시켰던 국책사업인 황릉 조성을 한반도에서 벤치마킹했던 것이다   
    
장경희 한서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는 최근 학술지 ‘동방학’에 게재한 논문 ‘12세기 고려·북송·금 황제릉의 비교 연구’에서 “고려와 금 황릉은 양식적으로 매우 유사하며 같은 시기 북송 황릉과 뚜렷이 구별된다”고 주장했다.   
    
http://news.donga.com/3/all/20140313/61666261/1��


■ 이렇듯 동북아는 크게 우리 고조선 고구려 동방문명권과
서토 문명권이 서로 엎치락 뒤치락하면서 때론 상호 충돌과 교류, 발전해왔던 것이지
일방적 형태의 흐름이 전혀 아니였군요.(오늘날 짱국등 동아시아에 한류가 유행한 것이 현시대만이 아니였다는 말)

애초에 세상과 문명을 보는 수리적 세계관 자체가 우리와 서토는 확연히 구분.
우리는 1, 3, 5의 천.지.인처럼 홀수적 세계관을 불안정성보다 역동성과 생명력으로
변화되는 기질과 속성이라면
서토는 짝수 대칭의 정체를 안정으로 보는 세계관.

장발영(張發潁)의 저서 <봉황토템 동이인 및 그 문화의 공헌>- <시회과학집간>2001년 2기- 에서 

동이문화의 유적분포는 
- 연산(燕山)의 남북과 
- 료녕(遼寧)의 부신사해문화(阜新查海文化)를 포함해서 
- 심양(沈陽)의 신락문화(新樂文化), 
- 산동의 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 하무도문화(河姆渡文化)와 

그 후의 
- 조보구(趙寶溝), 흥륭와(興隆洼), 우하량(牛河梁) 및 
- 은상문화(殷商文化)까지 

동이문화는 봉황(鳳凰)을 토템으로 하였다. 
통일된 문화체계는 아니지만 문헌에 기록된 이후의 생활은 이 지구(地區)의 조상들의 범칭(광범위한 동이문화)이다. 
  
봉황을 모(母)토템으로 삼고 각종 새들을 자(子)토템으로 하는 북방 봉황토템 동이의 조상들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들은 모두 연산산맥(燕山山脈)의 동이문화권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다. 
복희(伏羲)에서 하상(夏商) 2대까지 동이문화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 온 것이다. 

동이족 사람들은 
- 깃털달린 활과 화살을 발명했으며, 
- 문자를 창조했으며, 
- 청동기를 제작하고, 
- 철을 단련했으며, 
- 배(舟)와 수레(車)를 만들었고, 
- 농업을 발전시키고 치수(治水)를 하였다. 


東海之內 北海之偶 有國名曰 朝鮮 

"동해(서토 동해안) 안쪽, 북해(발해) 모퉁이에 조선이란 나라가 있다”
관측 18-11-28 13:31
   
번역 감사합니다
동방 18-11-28 15:36
   
ID : zJjfjcjD0

스모의 기원은 씨름이죠? 반도에서 사람과 같이 건너왔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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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식 천재인대?  고구려 고분벽화 장천1호분 그림이다.  옛다!! 확인해 봐라. 
https://www.facebook.com/changhyun.hur/posts/1929042750536584
아날로그 18-11-28 16:40
   
고대 유물 하나도 안나오는 나라 열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있다는게 더 신기함.

역시, 세상을 움직이는 건 돈인가?
오다주웠다 18-11-28 21:04
   
잘 보고 갑니다.
바람아 18-11-29 08:18
   
존나게 시비 터네 일본 놈들 진짜.
무나혁명 18-11-29 14:27
   
이 일본인들은 베베꼬여가지고 일상생활 자체가 가능하시려나 .
방안 세상에 사시는 분들인듯..
명불허전 18-12-02 19:18
   
씨름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