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디오는 한국역사에 대해 잘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제작 되었습니다. 한민족이란 어원이 시작되는 고대 한반도 삼국시대 형성시기 부터 통일신라 까지 그리고 말미부분에서 고려까지 언급이 되 있습니다. 고구려, 백제 와 신라간 전쟁과 신라가 통일하기 전까지 역사들이 언급이 되 있는데.. 고구려가 수나라 침공을 맞이하여 수나라를 격퇴 하는 것 이라던지.. 백제가 최후에 왜와 연합해서 신라에 대항하지만 결국 멸망 당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삼국시대에서 나라들이 전쟁의 결과로 지도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한국역사를 궁금해 하는 세계인들에겐 재미있고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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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en Mims
너 3왕조에 대한걸 말 하는구나 좋네. 난 이전에 한국역사에 대해 들은적이 없어. 아주 재미있는 에피소드네
466chalk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역사는 (서양인들에겐 어쩐지) 1910년 부터 시작한듯 한 느낌을 주고 있어. 훌륭한 동영상이야. 이런걸 볼수있게 해줘서 고마워.
Red Panda
나는 미국역사보다 한국역사에 대해 더많이 알고 있는데 ..
한국의 역사는 이웃한 나라들 영토에 비해서 작기 때문에 흥미롭지. 아직까지 살아남은 국가이지. 한국은 세게에서 약소국가로 가장 많은 얘기거리가 있는 나라 이지. 누가 이런 성공담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어?
Carlos Padilla
아주 흥미로운 비디오 네 중세/봉건시대 게르만족 기사단 , 서고트족 이나 이들중 한 부족들에 대한 비디오를 만들수 있어?
Dragon's Armory
나는 고구려 혹은 고려로 불러지는 고대국가로 생각했지만.. 저 시대와 그이후 시대, 후기 고려왕국( 918 ~ 1392)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Phil R
예이~ 또 다른 역사의 흥미로운 부분이네... 이런걸 보게 해줘서 고마워
OzneroL
한국역사는 우리가 알아보면 아주 재미있는 주제야.
Gierhardt Sloan
애들아 7:43분에 보여지는 당나라에 대해서도 알아야 해
Kim Jong-un
0:03부분에 한국에 4개 국가가 보여지지만 곧 하나로 통합 되지
SY Lee.
추가로 지적하자면, 신라는, 정밀하게 말하자면, 3국을 모두 통합을 하지 못했어. 왜냐면 고구려 멸망이후 약20년후 고구려 사람으로 이뤄진 '진'( 일명 발해로 더 유명해진) 또 하나의 강력한 왕국이 세워졌기 때문이지. 이전 영토를 넘어 확장된 나라야. 일부사람들은 통일신라 시대 보다는 남북왕조 시대로 부르기도 해
(* 어떤 역사사관에 물들린 인간인지.. 참 에혀)
Y Wiedie
0:52부분 지도가 나를 어떤걸 상기 시켜주네
open defecation
다음편은 명 과 조선 vs 일본가 전쟁 얘기 일까?
Thrashes
세상에.. 아무리 해도 니 비디오 전체를 다 볼수 없게 되더군...
너 고려가 나중에 KOREA로 변환 된걸 모르는 모양이구나?
김태환
이런 비디오를 만들어 준것에 감사하게 생각해
GeogWoofy
아주 흥미로운 주제이네? 내가 한국 경기도에 살적에 학교 가는길에 항상 나는 고대 돌 기념비, 고구려 남쪽 영토정복을 기록한, 를 지나쳤는데.. 고구려가 먼 남쪽까지 정벌하는 이유는 통합할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거지.
Micahistory 2
난 네가 세상에 덜 알려진 지역의 역사를 알려 주는것 을 항상 잘 보고 있어.
Laszlo
한국에 관한 비디오을 보게 되니 참 좋네.. 나는 중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궁금 해지네. 네 동영상은 참 놀라워
Peter Sivert
7:43에 나오는 당나라
Luke Zuzga
훌륭한 내용이었어. 역사를 너무 간과하고 있지. 심지어 대학교에서도 말야.. 누군가 시간을 내어서 이런일을 해주는게 참 좋네. 고마워 친구~
Liam in Korea
첫번째 비디오 이후 한국역사에 대해 깊이 있는 내용을 기대하지 않았어. 한국 역사는 서양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
Cyrus The Great
또 다른 매우 흥미로운 역사교육 이었어. 한국역사에 대한 지식을 향상 시키는데 도움이 되었어. 좋았고 계속해서 이런 비디오를 제작해주기 바래.
hollowcrown
누구 선덕여왕 드라마 본 사람이 있어? 역사상 가장 위대한 K 드라마 야. 이 드라마는 삼국시대 배경이야
L Maquiel
당태종시절의 당나라 군대에 대해 비디오를 만들어 줘
Micahistory 2
한국역사는 흥미롭게 받아들여지지만, 과소 평가된 부분이 많지
Gwiedo GTL
난 이 비디오가 곧 한국 '삼국시대 통일전쟁'으로 떠오르는 콘텐츠가 될것같은 기분이 드네
concars1234
그 시대는 좋은 왕국이었지. 몽골 침략이 있었는데 정복당한 부끄러운 시절도 있었어
(* 몽골의 세계정복 시절을 의미한듯 )
Rahmat Yavery
넌 이 비디오를 만들기 전에 주몽이란 한국 드라마를 봤어야 해
mena seven
한국의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역사는 재미 있지. 나는 고구려 시절에서 수나라 침공때 댐을 무너뜨려 수나라 군을 몰살시킨 얘기가 참 좋았지.
(* 곧 이땅에서 제2 제3 이런 몰살이 되풀이 될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슴 ㅋ)
Sergio
한국 사랑해!
- 아르메니아 에서 -
panarchy dynamic
너 청나라가 몇일 동안 티벳에서 한일들을 제작할수 있어?
Kos Juludo
아하하 난 당나라에 대한 니 비디오를 봤지
Rein Von Preußen
이 비디오는 매우 재미나네 . 매우 훌륭하고 흥미로운 주제야.
니가 만든 비디오가 참 맘에 들어
Temujin
백제와 왜 에 대한 관계를 한번 알아보는 것도 꽤나 흥미로울 거야. 일본 고대왕실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이 한국(백제) 예술품들이었지. 그러나 지금 이런 백제 - 왜 간 긴밀한 관계를 인정하고 있지 않지.
(* 일본은 백제 마한계가 설립한 고대국가인데 일부 일본의 역사학자들을 제외하곤 인정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최근 '주구묘'( 전방후원묘 의 전형前型으로 유추되고 있는) 최초 발원지가 한국으로 드러나자 일본은 고대유물관련 한국와 논쟁을 중지 시켰습니다.)
Viliam Fiala
지도에서 고구려왕조를 37BC - 668BC로 표기 되 있는데 이거 잘못된거야. 이건 37BC - 668AD로 고쳐야 해. 그냥 궁금해 할까봐 적시하는 거야.
House of History
와 진짜 놀라운 비디오 야. 나는 결코 이것에 대해 공부하지 못했는데 니 비디오를 보고 내가 공부를 해야 한다고 확신했어. 잘봤어!
Quinn. S.
와 좋은 비디오네.. 질문이 하나 있는데.. 한반도 남쪽에 왕국들이 더 많았다면 농업이 고구려 보다 더 발전되었고 생산성이 좋았을까?
gaslone79
당나라가 오렌지 색깔로 칠해진게 좋네
김영범
이 비디오는 제법 잘 만들어졌어.
좀 사소한 문제가 있지만 못봐줄 정도는 아니야
암튼 네게 축하를 보내고 싶군
Pingu Crimson
중국의 8개 제후국과 16국 전쟁에 대해 비디오를 한번 만들어 줬음 좋겠네. 난 중국역사에서 이기간 에 대해 사람들이 간과 하고 있는것을 좀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어
Blitz Krieg
또 다른 유익한 정보 네 .. 흥미롭고 잘 만들어진 비디오 였어
니 작품들 대부분이 다 좋아
Athaporn MCorp Review
내몽골 침략 역사는 꽤나 하드코어 부분인데..
Rijul Ballal
WA 일본인에 대해 한번 제작해줘 응? 부탁해~
Chan Ho Woo
헤이 헤이~ 애들아 그만해! 중지해! 아니면 니들에게 내 엄마가 나에게 줄려고 만든 김치 팩을 니들에게 보내 버릴거야! 얼마나 국제 운송비가 많이 나온지 알기나 하냐???! XD
Darius DC
스위스 역사에 대한건 어떄? : )
짜증나게 해서 미안한데 내 나라 역사에 대한 비디오, 니 방식으로 제작한, 를 보고 싶네
Tassadar En Taro
오래전 스키타이 인들이 한반도에 유입 되었지. 그리고 유목민 문화가 이전 되었지. 그것이 한반도 문화가 되었지.
그래서 한국언어는 중국과 다른거야. 한국어는 구조상 중앙아시아와 같아. 이뜻은 고대 한국인들은 모두 이민자를 뜻하고 있지.. 중국 보다 중앙아시아의 영향을 받았어. 이것이 신라 왕능에서 스키타이 유물이 출토 되는 이유야
BloodnSteel
잘 알려지지 않은, 심지어 거론 하지도 않았던, 지역들에 대한 일부역사만 봐도 얼마나 대단한지 알수 있지..
Ya ma networks
수나라 군대는 정말 멋지게 보이지 하하
Games Rev TV
블라틱 지역에 대한것도 하나 만들어 줘!
Coffee Succubus
신라는 나중에 최초로 여왕이 다스리는 국가가 되지 하하
YAHUSHA is Torah
친구, 타타르에 대한것도 하나 만들어줘 하하
Dom Butterflies
왜 고대 한국역사 관련 비디오 게임을 해본적이 없었지? 진짜 재미나고 크게 히트를 칠건데 말야
qwerty
이런 유익한 비디오를 만들어 줘서 고마워.. 한국역사는 중국역사와 일본역사에 의해 많이 가려져 있어
onibashu
오 마이 갓! 나는 이것을 기다리고 있었어
Mehrad Stn
1:40 부분을 보고 알게 되었는데 .. 주몽이 진짜 역사적 인물 이였어?
lee senger
매우 흥미롭고 유익한 비디오 이네. 관련 역사을 더 알수 있을까?
이 다음편을 보고싶네 이런 좋은 비디오를 제작 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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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코리아
qwerty
이런 유익한 비디오를 만들어 줘서 고마워.. 한국역사는 중국역사와 일본역사에 의해 많이 가려져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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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더 발전할수록 일본역사가 허구라는 걸 전세계는 알것입니다
Red Panda
나는 미국역사보다 한국역사에 대해 더많이 알고 있는데 ..
한국의 역사는 이웃한 나라들 영토에 비해서 작기 때문에 흥미롭지. 아직까지 살아남은 국가이지. 한국은 세게에서 약소국가로 가장 많은 얘기거리가 있는 나라 이지. 누가 이런 성공담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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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도 한국을 긍정적으로 봐주는 건 좋긴한데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 안타깝다... 앞으로 삼국 역사를 세계에 어필하는 게 필요한 이유..
전국시대 이후로 강해진 일본 이후 일본제국의 악명 ? 때문에.. 수나라 당나라랑 맞짱 떴던 우리가 약소국으로 보여지는 슬픈 현실이여...
USA 캘리포니아 대학.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discover誌“1998년 6월호「일본인의 뿌리」
”고대 한국인의 선조가 일본의 원주민인 조몬인.아이누족을 정복하므로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탄생시켰다.”
동북아는 크게 세개의 문화 세력권으로 볼 수 있는데 북방의 전형적 전투 유목문화, 황하 내륙의 풍부한 토양을 바탕으로 한 전형적 농경문화권,
그리고 반농반목 즉 오랜 정주문명과 유목문화를 함께 공유한 우리 고조선 고구려문명권.
이중에서 우리 문명권의 이런 멀티적 특성은 상당히 재미나고 묘하군요.
유목의 야생적 기마 문화와 함께 정주 도시문명을 함께 공유하면서 힘과 두뇌를 함께 발전시켜온 문화 기반위에서 있다보니 서토처럼 나약하지도 그렇다고 마냥 유목문화처럼 거칠지도 않게 유지하면서 굴곡도 있었지만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보기 힘든 오랜 시간 줄기차게 지속적 왕조와 문화를 이어온 원동력이지 않은가 싶군요.(내치를 위한 문명력과 외적을 무찌를 강한 전투력을 적절히 공유한게 우리 동방문명권의 특징)
668년 고구려 멸망과 이후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동모산 (698년 ~ )에 세운 발해와의 건국
사이에 마치 만주가 무주공산에 당에 의해 일방적 지배하에 있었다는 오해를 하는데
기본적으로 고구려는 후기로 가면 고구려 건국 초기 5부가 이후 태왕이 거하는 3경 체재를 중심으로 사방의
5부 행정체재로 바뀌지만 기본 그 지역의 성주들의 힘이 상당히 작용했던 시기군요(중세 고려도. 이후 근세조선
시대에 와서 정밀하고 높은 강도의 중앙집권화 가능)
이때문에 이후 고수간에 근대 이전 세계 최대급인 4차례의 고수 전쟁에서 수나라가 엄청난 대패를 거듭 당하면서
멸망한 이후 다시 등장한 당나라는 이후 허약해진 국력으로 인해 돌궐에 신속 조공을 바치다가 당 이세민에
의해 북방 지역을 정벌하면서 다시 고구려와의 대전을 시도하지만 대패 이후 병사
다시금 당 고종은 더욱 철저히 고구려
주변 잔가지들을 치는 전략으로 백제등이 멸망 마지막 남은 고구려를 공략했지만 이 역시도 대패를 당하면서
당은 전쟁을 포기하기에 이르군요. 그러다 고구려의 급작스러운 내부 분열로 지금으로 치면 5성 장군급의 대막리지인
연남생이 거란 일부 부족을 데리고 투항을 하는 초유의 사건이 터지면서 당군주도 처음에는 믿지를 않다가
이후 다시금 3차 대전이 불붙게 되었고 이에 따라 고구려의 허실과 요충지를 알고 있는 연남생을 앞세워
요동을 점을 따라 빠르게 치고 들어오면서 평양성이 함락. 이게 고구려의 멸망 어쩌고 보지만
엄연히 압록강 이북의 대표적 안시성,요동성등 11개의 주요 대성들은 여전히 건재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고구려의 부흥운동과 당의 야욕에 다시금 신라가 투항한 백제 고구려 일부 병력까지 통합해서
대당 전쟁으로 당은 제대로 고구려 지배나 전역을 통치할 힘을 잃어버리고 더구나 이런 고구려와의
끊임없는 전쟁으로 토번이나 거란의 반란까지 일어나면서 고구려에 대한 지배력은 더욱 약화되어버리군요.
이때문에 고구려의 평양성 함락과 발해의 건국 사이에는 요동일대에는 삼국시대 고(구)려를 구분하기 위해
'소고구려'라는 명칭을 따로 둘 정도임.
즉 신라는 서쪽의 백제 지역도 제대로 관리하기 벅찬 정도였고 엄연히 발해 건국 사이
고구려는 끊임없는 저항과 소고구려등에 이후 대조영이 30여년이 안된 시점에서 발해를
건국하면서 빠르게 고구려 유민을 흡수하면서 요동으로 뻗어 소고구려를 흡수하고
발해 무왕시기에는 해상으로 당나라 산둥 등주 해군시설을 박살내어버리고 육지로는 요서로 밀어버림.
(대조영이 이렇게 빠르게 발해를 건국하고 주변을 흡수할 수 있었던 배경 역시 이런 우리 고구려의 유민과 유산 문명이 여전히 존재했기 때문은 당연지사)
아무래도 발해가 딴나라가 아닌이상... 남북국 시대가 당연해 보이네요... 근데 발해는
만주인의 역사도 돼어서 ... 고구려인은 찢어져서 각각 신라와 당에 흡수되고 또 발해를 세운
대조영으로 찢어질수 밖에 없었던.. 어떻게 보면 백제인보다도 나라멸망당시 더 고난했을수도..
SY Lee.
추가로 지적하자면, 신라는, 정밀하게 말하자면, 3국을 모두 통합을 하지 못했어. 왜냐면 고구려 멸망이후 약20년후 고구려 사람으로 이뤄진 '진'( 일명 발해로 더 유명해진) 또 하나의 강력한 왕국이 세워졌기 때문이지. 이전 영토를 넘어 확장된 나라야. 일부사람들은 통일신라 시대 보다는 남북왕조 시대로 부르기도 해
(* 어떤 역사사관에 물들린 인간인지.. 참 에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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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 Lee라는 분이 제대로 말씀하신 겁니다. 통일 신라는 통일이라 할 수 없죠.
5. 남북국 시대의 정치 변화
통일 신라의 발전
통일 이후 신라는 강화된 경제력과 군사력을 토대로 왕권을 전제화하였다. 태종 무열왕은 최초의 진골 출신 왕으로, 통일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왕권을 강화하였다. 아울러 이 때부터 태종 무열왕의 직계 자손이 왕위를 세습하였다. 나아가, 왕명을 받들고 기밀 사무를 관장하는 집사부의 장관인 시중의 기능을 강화하고, 귀족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던 상대등의 세력을 억제하였다. 이로써 통일 이후 진골 귀족 세력이 약화되고 왕권이 전제화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였다.
당시 신라인들이 삼국을 통일했다고 자부했던 것은 사실인데, 삼국사기, 삼국유사, 청주시운천동사적비,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 등에서 일통삼한과 같이 신라의 삼국통일을 말하는 당대 기록이 남아있다. 신라 나름의 민족 융합 정책도 추진되었는데, 옛 고구려, 백제 출신 귀족들에게 본국의 지위에 버금가는 신라의 관등을 일률적으로 주었고
옛 3국에 각각 3주씩 행정 구역을 균분한 점이나 역시 수를 균등히 맞춘 중앙군 편제 등 다방면으로 당시 신라의 통합 의식은 파악할 수 있다
훗날 고구려 계승 의식을 천명한 고려왕조의 역사가 김부식, 일연도
고려의 후삼국 제패 이전에 신라가 삼국통일을 했고
고려가 후삼국시대를 다시 통일했다는 점을 인정했고, 이런 인식은 조선 후기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신라의 통일론은 인정을 받고있다.
한민족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한 것, 한민족의 시초는 통일신라 이후다.삼국시대에는 한민족이란 인식 자체가 없었고,
기록에도 서로 오랑캐로 지칭.
영토 붙어있으니까 삼국끼리 당연히 사이 안 좋고, 외세로 인식.
백제는 왜, 고구려 말갈, 신라는 당나라랑 친했고.
지금 한국이 중국 일본 보듯이, 삼국끼리 그렇게 생각했다.
민족개념 같은거 없으니 신라가 당나라랑 손잡고 전쟁에 끌어들인거다.
그러다 백제, 고구려 멸망 후 신라가 당나라랑 싸우면서 삼국이 동족이고 한민족이라고 인식한거임.
한반도 이북의 고구려 영토는 차지 못 했어도 삼국통일, 한민족 인식의 시초로써 통일신라라고 하는거다.
여기서 통일의 개념: 민족, 문화, 언어 모든 것이 다른 국가를 하나로 만들고 민족 의식을 가지게 함.
참고로 당의 우리 동방문명권에 대한 지배 약욕이 본격화 되자 신라를 중심으로 한 백제 고구려 부흥군들이 합심해서 반당으로 투쟁이 더욱 격화 몰아내면서 한민족으로서의 자극이 더욱 커진 계기가 된 시기지만
그렇다고 삼국시대에 이런 고,백,신이 서로 마냥 다른 이질적 민족이나 문화보다는 앞선 고조선의 후예로 나름 동족 문화와 당연 같은 언어, 풍습을 공유하고 교류가 되어온건 문헌적 고고학적으로도 확인 가능하군요.(지금처럼 같은 남북한이라도 서로 사이 틀어지고 비방할때는 또 서로의 비하 멸칭어도 존재)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 1 시조혁거세거서간)
"(고)조선의 유민이 신라를 건국하였다"
(고구려 본기 제 5 동천왕 21년)
"평양이라는 곳은 본시 선인 왕검의 택지였다.
누군가는 왕의 도읍을 왕검이라 한다."
삼국사기 박혁거세 신화
시조의 성은 박씨, 휘는 혁거세다. 전한 효선제 오봉원년 갑자, 4월 병진[혹은 정월 15일]에 즉위하여 왕호를 거서간이라 하였다. 그때 나이 13세였고 국호를 서나벌이라 하였다. 이에 앞서 <조선유민>이 산곡간에 나누어 살며 여섯 촌을 이루었다. 첫째가 알천 양산촌, 둘째가 돌산 고허촌, 셋째가 취산 진지촌[혹은 간진촌], 넷째가 무산 대수촌, 다섯째가 금산 가리촌, 여섯째가 명활산 고야촌이다. 이들이 진한육부가 되었다. 고허촌장 소벌공이 (어느 날) 양산기슭 나정 옆의 숲 사이를 바라보니 말이 무릎을 꿇고 울고 있어 가서 보니 홀연 말은 보이지 않고 큰 알만 있었다. 알을 깨니 어린아이 하나가 나왔다. 거두어 길렀더니 나이 십여 세가 되자 빼어나게 숙성하였다. 六部사람들은 그 출생이 신이하여 떠받들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세워서 임금으로 삼았다. 진한인들은 ‘호(瓠)’를 일러 ‘박(朴)’이라 했는데 처음에 (났을 때의) 큰 알이 박[瓠] 같다 하여 ‘朴’을 성으로 삼았다. 거서간은 진한어로 왕을 이른다[혹은 귀인의 칭호라 한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주몽의 나이 22세였으며, 한 나라 효원제 건소 2년, 신라 시조 혁거세 21년 갑신년이었다. 사방에서 소문을 듣고 와서 이곳에 살고자 하는 자가 많았다. 그곳이 말갈부락과 인접하여 있었으므로, 그들이 침범할까 염려하여 물리쳐 버리니, 말갈이 두려워 하여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다. 왕은 비류수에 채소가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상류에 사람이 산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따라 왕은 사냥을 하며 그곳을 찾아 올라가 비류국에 이르렀다. 그 나라 임금 송양이 나와 왕을 보고 말했다. "과인이 바닷가 한 구석에 외따로 살아와서 군자를 만난 적이 없는데, 오늘 우연히 만나게 되었으니 또한 다행스런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대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모르겠다." 주몽은 "나는 천제의 아들로서, 모처에 와서 도읍을 정하였다"라고 대답하였다. 송양이 말했다. "우리 집안은 누대에 걸쳐 왕 노릇을 하였고, 또한 땅이 비좁아 두 임금을 세울 수 없는데, 그대는 도읍을 정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나의 속국이 되는 것이 어떤가?" 왕이 그의 말에 분노하여 그와 논쟁을 벌이다가 다시 활 쏘기로 재주를 비교하게 되었는데, 송양은 대항할 수 없었다.
2년 여름 6월, 송양이 나라를 바치며 항복했다. 그곳을 다물도로 개칭하고, 송양을 그곳의 군주로 봉했다. <고구려 말로 옛 땅을 회복한 것을 '다물'이라 하기 때문에 그곳의 명칭으로 삼은 것이다.>
와...ㅄ은 널 두고 하는 소리고 ..ㅉㅉ
왜 남이 이야기 하는데 주제도 파악 못하고 끼어들어서 욕만 처해대는지...정신 장애가 있나 ㄷㄷㄷ
내 댓글 위를 봐라
"SY Lee라는 분이 제대로 말씀하신 겁니다. 통일 신라는 통일이라 할 수 없죠."
난 분명히 이렇게 통일 신라 시대가 아닌, 통일 신라라는 용어에 대해 썼고...저 두 분은 통일 신라 시대가 아닌 남북국 시대로 가르친다라고...내 글을 잘못 알아듣고 "여보세요" 저 분은 도발까지 해서 그거에 대한 나의 답변으로 현행 교과서에 통일 신라에 대한 걸 아직 배운다는 의미로 자료를 제시했는데...
중간에 끼어들어서는 저분들은 시대에 대해서 말한다고 주제 파악도 못하고 지랄병을 처해대는지?? 애초에 내 글은 시대가 아닌 통일 신라에 국한되었는데?? 객이 주를 대체하냐? ㅉㅉ
하여간 저렙 새퀴들은 대가리도 저렙임...으이구...
그리고...니가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식민 사관에 근간을 둔...현재 사학계의 통념일 뿐이잖냐? 누가 그걸 몰라서 그러는줄 아나... 한 치 앞 밖에 못 보는 놈...
지금 니가 말하는 현행 사학계의 기조로는...한민족의 삼국시대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짱깨놈들의 동북공정에 당하기 쉬워지는 거란다... 애초부터 다른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며? ㅉㅉ 다른 민족인데 통일이란 단어를 왜 쓰냐 ㅄ아? 대가리가 참나...에휴...
통일이란 말을 쓰려면...애초에 하나의 나라에서 시작해야 되는 것이 당연한 건데...애초에 하나도 아니었고...동족 의식도 없이 오랑캐 취급했는데...통일이란 말을 왜 써? 넌 니가 중국 정벌하고 나서 통일이라고 쓰겠니? 당나라에 대항하면서 민족 의식이 싹텄다? 개뿔 ㅅㅂ ㅋㅋㅋㅋㅋ 삼국간에 동맹 맺고 이민족과 싸운 전례는 그 전에도 얼마든지 있었는데 그 건 다 무시하고?
이런 어그로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해줘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도 들지만...
우리나라 역사는 애초에 고조선에서 탄생한 거라고 배우는데...동시대에 남한쪽에는 진국이 있는 거부터가 잘못된 거임. 진국의 근거는 어떠한 유물도 없이 단지 중국 역사서 한 줄로 남한 전체를 퉁쳐버리는 우를 범해서...고대사가 아주 개판이 된거임. 굿잡스님 말씀대로 동족의식이 있었다면 그 뿌리는 고조선일 수 밖에 없을 터... 고조선의 유민들이 세운 나라가 바로 고구려, 백제, 신라여야지만 통일에 대한 정당성과 당위성이 생기는 거지...그걸 파악 못하고...신라가 통일하고나서부터 동족 의식이 생겨??? 그 전 역사는 다 버리게? 어휴...
그따위 사관으로 중국이 고구려 먹으려는 것엔 어떻게 대응하게?? 대가리가 있으면 말을 좀 해보길... 불완전한 통일로 고구려의 반도 안되는 인구 흡수해놓고...더 과반수를 흡수한 중국의 동북공정은 어떻게 막을 거냐고? 고구려는 중국의 일부를 이루는 소수민족의 국가였는데...신라가 일부 흡수해서...한민족에 동화되었다라는 게 지금 너나 현 사학계가 말하는 거와 다를 바 없잖아?
또...그 일부를 흡수해서 통일이라고 한다면...동시대에 존재한 발해는? 발해는 아예 거들떠도 안보네...ㅉㅉㅉ
다시 말해...우리는 애초에 고조선에서 탄생한 나라이고...한나라에 고조선 왕권이 멸망하자...지방 토호들이 그 지역을 수세기 동안 지배한 열국 시대가 열린 것임...낙랑도 지방 토호의 국가였는데...초기에만 한나라의 벼슬 한번 받았던 것일 뿐인 거임. 그거 가지고...수세기 동안 한나라의 영토로 간주하는 현 사학계는 진짜...에휴...
그러다...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마한, 동예 등 차츰 통합이 이루어지고...550년 전후에 가야가 신라에 병합되면서 비로소 삼국시대가 열린거임.
이 영상에도 보다시피...삼국시대라 해놓고 가야가 있으니 사국시대라고 하는 외국인들 있잖음? 왜 스스로를 속이는지 당최...연맹 왕국이라 뺐다고? 연맹 왕국은 국가가 아님? 그리고 삼국시대를 700년 동안이라고 해버리면...그 사이에 있었던 수많은 국가들은 대체 어쩌는 거임? 이해할 수가 없음.
이렇게 한반도와 만주쪽의 모든 국가들은 고조선의 후예라는 동족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통일 전쟁을 했던 것이고...신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 일부를 흡수했지만...곧바로 고구려는 발해로 이어져서 통일이라 할 수 없는 거... 통일은 고려시대에 와서...발해까지 흡수하고 비로소 이루어진 거임. 고려 초기 영토도 다시 설정해야 함. 역사서에 분명히 서북쪽은 고구려 영토에 미치지 못했지만...동북쪽은 뛰어넘었다고 나오는데...무슨 한반도 이남으로 한정하는지...
이게 내가 파악하고 있고 현 사학계에 가로막혀 기조학설이 되지 못한 흐름임.
얘기가 너무 길어졌음.
후대의 관점으로 해석하려고 하면 오류를 범하기 마련이지. 뭐 까짓거 좋다이거야, 오류가 없으면 말이지.
근데 넌 플러스로 의도까지 가지고 있으니까 뇌내망상에 개소리를 찍찍 내뱉고 자빠지네 ㅉㅉ
저렙이 어쩌고 이 지럴하는데, 차라리 저렙이 낫지
얼마나 뻘소리를 싸지르고 다녔는 알 만하다, 이 레벨만 높은 등신새키야~
살다살다 고려가 발해를 통일시켰다는 개소리를 다 듣게 되네. 발해는 거란한테 멸망당한거 아니냐?
물론 발해유민들이 고려로 건너 가기도 했지만,
후에 유민들이 여러 군데에서 여러 세력들로 정안국, 후발해, 흥료국 등 서로 다른 이름 써가며 부흥운동했다가 실패하고 말갈에서 금나라가 건국되니까 그쪽으로 통합했는데 뭔 개소리를 갈기고 자빠졌냐?
예를 들어 이란, 몽골에 개털리고 그 이후로 몽골 왕족이 이란화 되어 쭉 이어져오다가 영국의 식민지도 됏다가 무려 900년 가까이 외세의 지배 또는 영향력 하에 있지만 누구도 이란을 약소국이라 하지 않죠.
우리는 고려시대까지 중간에 몽골에 굴복한 사례가 있긴 하지만, 3000년 이상을 동북아 강자의 위치에 있었죠. 근데도 약소국으로 규정 되어 버렸죠.
역사 내내 동네 찌질이였다가 근대에 한번 반짝한 일본과 비교 좀 하면서 역사평을 했으면 좋겠어요.
번역자분 수고하셨는데. 통일신라 시대에 발해가 존재할때 남북국 시대로 봐야 한다는 한 댓글 견해에 대해 비아냥 거리셨는데..그 또한 편견 역사관이라 봄. 삼국 통일 왕조인 통일신라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분명히 한계가 있는 통일이었고 고구려 유민이 세운 강력한 왕조 발해가 있었다는 역사적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 그 견해라면 중국넘들이 발해를 자기들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것에 항변할 근거를 우리 스스로 차버리는 꼴. 신채호 같은 민족사관 역사가들이 가진 남북국 시대 개념이 좀 더 역사적 진실에 가까움.
금나라 황릉의 모델은 고려 황릉(왕릉)이었다.’ 12세기 북중국을 장악했던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1115∼1234) 황릉이 고려 황릉과 형제처럼 꼭 닮았다는 비교 연구가 국내에서 처음 나왔다. 금 태조 완안아골타(1068∼1123)가 10세기에 건국한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고 불렀던 것을 감안하면, 당대 사회적 문화적 역량을 총집결시켰던 국책사업인 황릉 조성을 한반도에서 벤치마킹했던 것이다
장경희 한서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는 최근 학술지 ‘동방학’에 게재한 논문 ‘12세기 고려·북송·금 황제릉의 비교 연구’에서 “고려와 금 황릉은 양식적으로 매우 유사하며 같은 시기 북송 황릉과 뚜렷이 구별된다”고 주장했다.
번역자님.통일신라와 발해를 남북국시대라고 해서 어떤 역사사관에 물들였다뇨. 관점의 차이입니다. 신라가 한민족을 하나로 통일한 시기는 짧은 데다 바로 발해가 등장을 해서 고구려강역+연해주를 먹었으니. 남북국시대가 틀린 말은 아니죠. 오히려 번역자님이 역사사관을 넘어 편협한 사고방식을 가진 듯 한데요.
야인과 왜인들은 모두 우리의 번리이고 우리의 신민이니 왕된 자는 똑같이 대우하고 차별을 없이하여 혹은 무력을 사용기도하고, 내가 즉위한 이후에 남만, 북적, 이것은 하늘의 끌어들이는 바이지, 나의 슬기와 힘이아니다. 흑룡강, 속평강, 건주위, 올량합, 이만주 동창등 심처 야인과 삼위 달자가 관문을 두드리고 입조하기를 청하거든, 그 종인을 줄여서 후대하여 올려보내라
이런 유익한 비디오를 만들어 줘서 고마워.. 한국역사는 중국역사와 일본역사에 의해 많이 가려져 있어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일본역사는 한국역사에서 파생된 역사고
중국역사는 이민족들에게 수 없이 정복되고 동북공정으로 부풀려진 역사고
우리는 여기저기 침략당하고 갈라지고 그랬지만
쭉 한민족이 지배한 나라의 역사인데
옆집아줌마 애기한테 큰소리 치고 잔소리하는걸 들으니까 국뽕이 연기처럼 날아간다
서구 열강에 알려질 때 하필 가장 국력이 약해 졌을 때라 외국애들은 그때만을 기억하는 듯하네요 한국은 절대로 약소국이 아니었어요 일본이 득세 한게 얼마나 됬다고 지난 역사를 봐도 겨우 100년 될까 말까한 기간만이 일본이 노략질과 전쟁 일으켜서 수탈한 자원으로 한국보다 좀 잘 살았을 뿐입니다.
SY Lee.
추가로 지적하자면, 신라는, 정밀하게 말하자면, 3국을 모두 통합을 하지 못했어. 왜냐면 고구려 멸망이후 약20년후 고구려 사람으로 이뤄진 '진'( 일명 발해로 더 유명해진) 또 하나의 강력한 왕국이 세워졌기 때문이지. 이전 영토를 넘어 확장된 나라야. 일부사람들은 통일신라 시대 보다는 남북왕조 시대로 부르기도 해
(* 어떤 역사사관에 물들린 인간인지.. 참 에혀)
Tassadar En Taro
오래전 스키타이 인들이 한반도에 유입 되었지. 그리고 유목민 문화가 이전 되었지. 그것이 한반도 문화가 되었지.
그래서 한국언어는 중국과 다른거야. 한국어는 구조상 중앙아시아와 같아. 이뜻은 고대 한국인들은 모두 이민자를 뜻하고 있지.. 중국 보다 중앙아시아의 영향을 받았어. 이것이 신라 왕능에서 스키타이 유물이 출토 되는 이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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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이런 소리가 더이상 안나왔으면 좋겠군요,
분명히 여러사서에서는 한국인이 토착민이라고 써 있는데, 그놈의 지긋지긋한 스키타이설 ㅡㅡ;;;
더군다나 저들은 유목문화가 맞지만, 우리들은 농경문화 입니다, 단지 유목문화 사람들이 말을잘 탄다는 선입견 하나 때문에 우리까지 유목문화를 집어넣는건 순 오류란 말입니다,
우리는 유목문화는 아니지만, 농경과 기마를 겸한 “기마민족” 입니다, 말을 탄다고해서 유목민일것이다 라는 생각은 순 선입견이자 오류란 말입니다!!!!!
스키타이와 유사해 보일 수 있으나,분명히 다른문화와 문명을 누른게 우리 한국문명인데.....
소유자님의 글을 잘읽었고 심정적으로 공감합니다만
우리 선조들이 물려준 문화속에 농경문화와 마찬가지로
유목문화또한 강하게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대에 환웅깨서 아사달에 수도를 정하고 그 터전에
정착하며 조선을 국명으로하고 한민족의 역사가 시작되는
설화에서 환웅과 웅녀로 사이에 단군왕검이 태어난것은
두 새력간의 혹은 2 문화간의 화합과 융화의 과정속에서
한민족의 첫국가가 시작되었음을 말합니다
국가의 초석을 설계하고 홍익인간으로 잘알려진
천지인 삼신철학의 비전으로 개개인의 인간(백성)을
개몽하려했던 우리민족의 최초의 교육자 환웅과 단군
에만 시선을 두지말고 한민족의 영역으로 융화된
웅족의 문화가 비록 환족의 문화보다 토속적이고
미신적일순 있으나 홍익삼신정신속에 함깨녹아
분명히 지금까지 어떤형태로든 남아있을것이고
대규모 목축을위해 목초지를 찾아 이동해야하는
유목의 단점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농경과의 융화를 통한
합리적인 농경과 목축이 융화된 문화로 발전한것이라
추론하며 오히려 우리 문화에서 농경과 유목의 문화가
모두 발견되는것은 한민족 문화의 유구함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사에 대한 외국인의 인식은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고, 그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도 똑같습니다.
"19세기까지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잘 나가는 나라였는데 일본인들이 자국 역사를 뻥튀기 날조하고, 한국사를 깎아내리는 홍보를 한 탓에 한국이 저평가받는다"는 식으로 말하는 한국인이 많습니다.
일본인들은 "일본은 수천년전부터 중국과 대등한 황제국, 강대국으로 동북아 패권을 다툰 나라"라고 말해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서 일본을 별도의 문명으로 분류한 반면,
한국 관료 학자들은 "수십년전 세계서 가장 못 살던 한국이 선진국 됐다"는 논리를 세금 들여가며 홍보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일본 얘기 나올 때만 짐짓 애국심을 표출하는 척할 뿐, 실제로 그에 걸맞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외국인 이용해 자국민 후려치는 정도, 자국 저소득층 이익 보호하지 않는 정도는 한국이 중국 일본보다 심합니다.
한국 신생아 수가 세계서 가장 빨리 줄어들고 있어도 관료/정치인들은 "한국인이 줄면 외국인 더 수입해서 채우면 되지 뭐"라는 마인드로 정책 추진하고 있으니, 힘들게 정권교체해도 얻는 바가 적습니다.
일본이 수천년전부터 중국과 대등한 황제국? ㅋㅋㅋㅋㅋㅋㅋㅋㅋ일본놈들 하여튼 날조가 심한듯 ㅋㅋㅋㅋㅋㅋㅋ역사이래 일본이 중국과 대등한적 없었음 고작 해봤자 16세기 임진왜란때일뿐 고대에 중국과 대등하긴 뭘 대등했다는것지 ㅋㅋㅋㅋㅋㅋㅋ중국과 전쟁도 별로 해본적 없었고 그나마 당나라와 싸워다던 백강전투도 일본의대패였는데 ㅋㅋㅋㅋㅋㅋㅋ그리고 수서에서 수나라 수양제한테 쪽바리사신들이 자기나라왕을 천황이라고 칭했다간 바로 쫒겨났고 추방당함 수양제가 격분했다고 나옴 중국과 당당히 맞서싸운 나라는 고구려와신라.발해였지
새뮤얼 헌팅턴이 동양역사에서 대해서 얼마나 잘알겠습니까 수박 겉핥기 식이니까 중국과 대등한 관계였다고 하겠죠. 심지어 중국에서 일본과 교류할때 일본의 왕은 쇼군이었습니다.
일왕이 아니라요. 쇼군을 왕으로책봉했죠. 중국과 언제나 타국과 대등한관계를 맺은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조공외교였죠.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가는게 흐름이었는데 일본이 중국가 대등한 황제국이고 강대국이었다니 진짜 개소리... 임란전까지만해도 전국시대여서 지들끼리 서로 죽이느라 강대국이 될수도 없던 나라죠.
역사 나 정치관련 논쟁에는 가급적 간여하지 않을려고 합니다만.. 또, 번역자 입장에선 중립적 관점을 유지해야 마땅한 일이나. 간혹 어쩔수없이 때로 밝힐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점 양지 해주시기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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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친둘리' 님 댓글에 대한 답변
내가 코멘트한게 문제인듯 하군요. 암튼 지금에서 그 출처를 찾아봐도 그시절 신문기사와 관련문서들이 전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걸 바로 찾아서 보여 드릴수 없게 되었군요. 내 기억을 더듬어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배경설명 :
이때는 고대사 즉, 전방후원 무덤지가 일본이 주장하는 바의 " 임라 일본부설"의 근거로 한일역사학자들끼리 엄청난 논쟁으로 시끌법적 한 시절 이었습니다.( 2011~ 2013년?) 정확하지 않아요.. 기억이니.. 이 기간에서 새롭게 전환기가 되었던게 바로... 일본에서 전방후원 무덤지의 시원으로 보여지는 한 무덤지가 출토 되는데.. 이것이 주구묘가 전방후원으로 변형되는 중간단계 였던 것으로 결론이 나게 되었지요..
이것 때문으로 전방후원의 시원이 바로 주구묘 로 급하게 전환이 되었고.. .이 결과 일본과 한국 양쪽에서 주구묘가 누가 앞서느냐에 따라.. 전라도 전방후원 무덤으로 야기된 " 임라 일본부설"의 결론이 정해지는 결정적 사료로 부각이 되었습니다. 그결과 한,일 양국에서 자국내 주구묘 발굴에 올인하는 ... ㅋㅋ 그런 헤프닝이 벌려졌고... 일본의 경우는 대부분.. 4세기 전후반이 태반이었는데.. 한국에서 강원도인가?(정확하지 않아요) 어디서 발굴된 2세기? 정도의 최초 주구묘 형태가 발굴이 되었고.. 이것이 한일 역사학자들이 몰려들어서 그 출토품을 조사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때 출토물들이 모두 현 일본의 주구묘들 보다 1세기 또는 2세기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자.. 일본의 한 역사학자가.."평생 내가 공부한게 다 헛사 구나~ " 하는 한탄과 자괴감에 빠져 절망에 빠진 것을 생생하게 기사화 한걸 기억합니다. (이게 그때당시에는 이 기사가 사실로 받아 들였지만.. 현재 기레기들이 본색을 드러난게 이미 10여년 전부터 임을 고려하면.. 이역시 신뢰를 가질수 있는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나. 한,일 양쪽에서 발굴된 주구묘 시대적 배경
(..)
일본의 경우 이런 주구묘는 지난 64년 도쿄 근처에서 최초 발견된 이래 긴키(近畿)지방을 중심으로 일본 열도 곳곳에서 수많은 보고가 이뤄지고 있으며 조성연대는 야요이 시대 후기 이래 고분시대 초기(서기 3∼4세기경)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주구묘가 지난 94∼95년 충남 보령군 관창리 유적에서 99기나 발굴된 것을 시작으로 충남 서천군 당정리 유적(23기), 전북 익산군 영등동 유적(5기)에 이어 고창-군산간 서해안 고속도로 건설예정지 구간에서도 이번에 43기가 쏟아졌 다.
이들 한반도 주구묘는 축조시기가 빠른 것은 기원전 4세기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되며 그 중심연대는 기원후 2∼3세기로 보고 있다.
이런 결과는 그동안 일본열도에서 발생한 일본 고유 고분양식으로 알고 있던 주구묘의 기원이 한반도가 될 수도 있다는 강력한 증거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주구묘가 서기 4∼5세기를 지나면서 이른바 전방후원형의 대형 고분으로 발전하고 백제에 완전 편입되기 전 한반도 남서부 지방 또한 한반도식 전방후원형 대형고분인 장고분과 대형 옹관묘가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활발히 조성된다는 점에서 한반도 주구묘의 의미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
다. 한일간 주구묘 쟁론
관련 신문기사 === > 기 언급 했듯이.. 내가 찾고자 하는 신문이 사라졌고..현재 남아 있는 기사는 두개인데...
곧 개봉한다는 조커 예고편 리뷰중 인상깊게본
화O 님과 기OO.. 님의 리뷰중 기OO.. 님의 리뷰중
공감하는 부분을 옴겨 적어 봅니다
( 단순히 알게 된 것들을 나열하는 것만이 아니라
알고있는 것들을 기준으로 들어온 정보들을 해석해서
여러분과 담론을 나누는 장소가 되면 좋겠습니다 )
올해가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 이라는것을
여러분 모두 잘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동아게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던 낮익은 분들과
뜨거운 관심과 진실을향한 마음으로 글을 쓰신
글쓴이를 포함한 여러분들이 미래의 100년을
밝히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주인 같습니다
존경의 마음을 담아 글을 씁니다
가생이 유튜브 기타 넷이 소통되는 모든곳에
정의롭지 못한 컨텐츠와 정보가 날로 쌓여 가지만
새대를 초월해 진실하고 의미있는 정보를 공유하려는
깨인분들또한 우리곁에 점차 늘어가는 느낌입니다
비록 우리 개개인의 활동이 작을지라도 그것이
공감을 얻고 공유를 통해 인식확산의 시간을 거치면
우리 역사의 진실도 바로 서리라 확신합니다
1. 우리 역사에 발해는 주역사가 아니라.. 부역사에 해당 합니다. 정통성을 가지지 못한 패망한 고구려와 주변 말갈, 거란족을 모와 나라를 결성 했으니... 역사적 정통성이 부족한 겁니다.
2. 역사는 그 지역을 차지한 사람들의 정체성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 입니다.
즉 통일신라 => 고려 => 조선 => 대한민국 으로 이어져 내려 온 반면에.. 발해는 거란족에 의해 멸망을 한 나라에 해당하고.. 그 잔존 난민이 통일신라에 복속된것 이지요.(잔존 발해민들이 통일신라에 몇 프로나 차지 했을까요?)
3. 한민족의 정체성으로 보면..
한민족이 최초로 성립된 것은 통일신라 이후 부터 입니다. 그전의 고구려 , 백제, 신라는 고대국가에 해당하지만 말은 서로 같지 않았습니다. 비록 한자문화권에 포함 되지만.. 고구려-백제는 모르겠으되, 신라와는 분명히 서로 달랐다고 판단 합니다. 통일신라 이후... 비로서 이들 3국이 서로 혈통적으로.. 문화적으로 통합 되어 오늘의 한민족이 이뤄졌기에.. 한민족시원 관점에서 보면.. 통일신라를 기초로 하는게 바른듯 합니다.
4. 현재 한국의 성씨 태반은
통일신라 이후에 만들어진 겁니다. 백제의 "흑치", "부여" 나 고구려의 "소실(小室), 수미(首彌), 숙(叔),숙신(肅愼) 성씨들은 오늘에는 없는 성씨 입니다. 이들 모두 고구려 및 백제 정통 왕족과 귀족계급들의 성씨이고 이들 모두 한반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현재의 성씨는 모두 신라계 이거나 통일신라 이후 만들어진 성씨들 입니다. 즉, 현재의 모든 혈통들은 통일신라계가 주축이란 뜻 입니다. 잘못된 역사교육 탓으로 봅니다. 현재의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들 역시 통일신라 이후 한민족에 포함된 사람들이란 소리 입니다.
백제 와 고구려 주핵심 세력 = 왕족과 귀족과 그 권속들이 모두 당나라에 끌려가서... 전부다 전 중국 각 지역에 산개(散開)되어 퍼져 나가서.. 모두 현지 지역민들과 피가 섞여 놓았습니다. 이게 좀 안타까운 일이나.. 당나라가 자신들을 괴멸 시켰던 고구려와 백제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던 거지요..
이때 당나라에 끌려간 백제의 경우는 사료에 10만명에 육박하다고 적혀져 있으니.. 백제 자체를 전부 당나라에 이전 해 놓았다고 봅니다. 나중에 잔존 백제인민( 사비성 외 다른 지역에 거주)과 왜에 정착한 마한계 여왕과 그 아들에 의해 30~50년간 전쟁준비 끝에 지금의 금강 하구언에서 2차 백제복원전쟁이 발발 했지만.. 패망해서 남아 있던 백제와 왜 세력들이 이땅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즉 씨종자도 없어져 버렸고.. 나중에 또다시 이땅에 들어온 족속은 마한계가 아닌.. 해적무리들 입니다..
속일본기 740년 발해사신 이진몽(已珍蒙) 일행이 일본을 방문했고 이때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 신라 유학생이 통역을 위해 동석.(발해와 신라가 서로 통하는 언어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지명에 대한 음을 풀어쓴 것과 뜻을 풀어쓴 표기가 함께 등장하므로 옛 언어를 알 수 있다. 현재 고구려 단어로 알려진 것은 대략 80여개에 이른다.
고구려 잔존언어의 1/3 이상이 중세한국어와 일치 또는 유사함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고구려언어가 신라어와 함께 한국어의 근간이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수(數) 부분에 있어서 신라어는 중세한국어보다 도리어 고구려어에 가깝다고 한다. 또 고구려어는 알타이의 여러 언어 가운데 퉁구스어와 매우 가깝다. 즉 우리언어는 알타이 여러 언어 - 퉁구스어 - 고구려어 - 신라어 이런 식의 연관이 있다.
물론 고구려 언어가운데 일본어와 같은 것도 많다. 고구려-백제-신라 사람들이 일본에 많이 갔으니까 영향을 준 것은 당연하겠다. 하지만 일본어가 곧 고구려어일 수는 없겠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약간 살펴보겠다.
아래에 인용한 글들은
1) 이기문, “한국어형성사“. 삼성문화문고 160. 1981년를 참고하여 작성한 것이다.
이 외에 북한에서 만든 2) 조선전사 3권 고구려사, 1991년판 에도 고구려언어에 대한 글이 있어 참고가 되나, 두 책간에 상이한 서술방식으로 인해 우선은 이기문의 책을 기준으로 작성하였다. 3) 임병준, 고구려말의 차자 표기 연구, 건국대석사논문(고구려 연구회 자료실에 원문자료가 올라와 있음) 도 참고할 만하다.
한반도 남쪽에는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이 할거하고 있었다. 『삼국지』 「동이전」에서 진한에 대해 ‘其言語不與馬韓同(그 언어가 마한과 같지 않다)’고 했고, 변한에 대해선 ‘弁辰與辰韓雜居 言語法俗相似(변진은 진한과 섞여 살았는데, 언어와 법속은 서로 비슷했다)고 했다. 진한과 변한의 언어는 비슷했지만, 마한과 달랐다는 것이다. 진한과 변한은 지리적으로 한반도 남동부에서 가까이 위치했으므로 언어의 유사성이 컸고, 마한은 한반도 중부와 남서부에 위치했으므로 지리상 언어의 차별성이 강조됐을 것으로 보여진다.
주장에도 일리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거는 주역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역사가 맞다는겁니다.
고구려는 우리역사가 아닙니까? 고구려가 이어지는게 발해이므로 발해도 우리역사가 맞는거죠. 지배계층의 성씨가 뭐가 중요합니까? 중간에 성씨가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것일 뿐이죠.
무엇보다 발해가 망하고 발해 유민이 다시 고려에 흡수되지 않습니까? 신라의 통일은 일시적인것이었고 신라가 흡수하지못한 고구려의 유민들이 발해를 세웠고 그 발해가 망해서 다시 흡수 됬습니다.
결국은 고조선 - 기타 등등 잡다 국 - 3국시대 - 통일신라 - 신라 + 발해 - 후3국 - 고려 이런식으로 가는게 맞는거죠. 발해를 빼버릴 이유가 없습니다. 3국이 신라만 남고 다 망했다가 발해랑 신라가 되고 그게 다시 후3국을 거쳐 고려가 된것일뿐이니까요
남서북의 모든민족을 정벌하고 북방의 기마민족들을 휘하에 거느리고
수양제의 실패를 곱씹으며 철두철미한 준비후에 연개소문의 고구려를 쳤지만
그야말로 영혼까지 탈탈탈탈 털리고 패퇴한 중국역사의 가장 위대한 전쟁군주였지.
고구려엔 안타깝게도 멸망시 모두 수탈당했기때문에 사서가 남아있지 않아.
당태종과 고구려의 전쟁은 모두 중국사서에 쓰여진 자국입장에서 극히 미화된 패전기록뿐이야.
그 미화된 기록에서 고구려에 탈탈 털리는거고.
SY Lee.
추가로 지적하자면, 신라는, 정밀하게 말하자면, 3국을 모두 통합을 하지 못했어. 왜냐면 고구려 멸망이후 약20년후 고구려 사람으로 이뤄진 '진'( 일명 발해로 더 유명해진) 또 하나의 강력한 왕국이 세워졌기 때문이지. 이전 영토를 넘어 확장된 나라야. 일부사람들은 통일신라 시대 보다는 남북왕조 시대로 부르기도 해
(* 어떤 역사사관에 물들린 인간인지.. 참 에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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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안 저거 무슨 뜻이죠? 원댓글 작성자가 쓴 글인가요 아니면 번역가님이 붙인 말인가요?
저 댓글의 남북국 시대가 잘못됐다는 뜻인가요?
고구려 멸망후 698년쯤 대조영이 당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진"국을 건국합니다 후에 당에서 친하게 지내려고 발해군왕으라 부르고 진국도 713년쯤 발해로 국호를 바꾸죠
그 뒤에도 무왕 문왕때 스스로 고구려 국왕이라 칭하기도 합니다
흔히 동이사아 역사에서 중원이라고 하면 지금의 중국 지도의 중심쯤 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러나 고대 동아시아에서 중원은 지금의 중국지역이 중심인게 아니라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이었습니다.
문명은 물을 끼고 발전합니다. 큰 강이나 바다를 낀 세력들이 거대함 문명의 핵심이자 중추가 되죠. 한민족이 바로 그런한 위치였습니다. 힘 있는 세력이 제일 좋은 땅을 차지하고 강력한 문화를 건설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지금 중국땅이 중원인게 아니라 한반도에 살던 우리 선조들이 발로 중원을 놓고 세력을 형성하던 중심 축이었단 거지요.
흔히 말하는 중원은 오로지 중국이었던게 아니라 우리까지 포함된 의미였다는걸 이해할 필요가 있죠. 단지 지금의 중국의 땅이 넓고 우리가 한반도 안으로 들어와 있다고 해서 역사까지 그런것이 아니란걸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바로 한국인들이 진짜에 역사에 눈을 뜰까봐 두려워 시작한 겁니다.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 문명을 이루고 중원을 호령했는지 아직 한국인들을 잘 모릅니다. 일제가 만든 패배의 역사관으로만 역사를 배우기 때문.
만일 우리가 침략만 당하고 방어만 한 민족이었다면 어떻게 그 넓은 땅들을 가질수 있었으며 수쳔년 동안 문화를 유지하며 살아올수 잇었겠습니까. 우리가 침략만 당할 약한 민족이었더면 진작에 역사에서 사라졌어야 상식적으로 납득이 더 잘되죠. 우리 역사에서 공격이 모두 빠진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적어도 우리가 가르치는 역사 교과서엔 모두 빠져 있죠. 중원을 놓고 수천년을 살아왔는데 공격한 역사가 단 하나도 없다니? 상식으로 설명되지 않죠.
일제에 의해 많이 조작되었고 이후로도 우리가 역사에 대해 잘못 접근해온 탓입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제의 역사 왜곡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되찾고 지키려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이제부터 바꾸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