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한국을 소개하는 사이트에 올라온 포스팅 내용입니다.
댓글은 없었던 관계로 포스팅 내용만 번역했습니다.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프랑스의 시선
개요
이 글은 한국 사회 또는 한국인에 대한 철저하고 완벽한 에세이는 아니다. 이 글은 프랑스인의 대표적인 한국에 대한 시각을 조사한 글 또한 아니다. 이것은 부분적이고 편향된 시각의 글이다.
먼저 한국에 대한 특정한 시각을 갖고 있는 청중들과 프랑스인 가운데 살고 있는 사람들을 고려해 보았을때, 이 문서는 한국의 정신을 이해하기 위한 의도의 관점으로 결론을 맺을 수 있다.
북한
2011년 6월 SM 엔터테인먼트 콘서트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아직도 남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대다수의 프랑스인들의 한국을 바라보는 방식은 언론이나 텔레비전에 의해 만들어진 국제적 매체에 따른 것이다.
구글 검색 엔진의 ‘뉴스’ 섹션은 비록 과학적으로는 의문을 가질 수 있으나 일러스트레이팅 평가 방식으로 이용된다. ‘한국’ 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첫 번째 링크의 10개 중 5개, 즉 가장 인기 있는 것 중 절반이 북한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야후 검색 엔진의 뉴스 섹션에서는 북한에 관한 그 비율이 심지어 더 높다. 처음으로 연결되는 링크의 10개 중 7개가 북한과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한국 이라는 단어의 언급이 일반 대중들에게 커다란 혼란을 주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계속되는 북한과 남한 간의 충돌은 같은 명칭을 공유하고 있는 각국의 좋은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도 해가 된다.
이스라엘의 언론 보도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이 작은 국가는 팔레스타인과의 충돌로 인해 국제적 범위의 논란의 원인이 되어왔다. 그러나, 프랑스 대중의 마음 속에 이 두 나라의 정체성에 대한 모호함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이스라엘은 유태인 국가이고 반면에 팔레스타인은 아랍 국가였다. 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아직도 이 두 한국 중 어떤 쪽이 자본주의 국가이고 어떤 쪽이 공산주의 국가인지 헷갈리고 있다.
그러나, 재정관이나 대기업의 전문가 같이 행정이나 관리의 입장에서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남한에 대한 더욱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
엘리트
GDP순위에서 13위를 차지한 한국은 이제 진정한 경쟁자이다. 그렇지 않다면 조선, 자동차 산업, 전자 그리고 최근에는 원자력 발전까지 점점 더 다양한 경제 분야에서 리더로서 자리를 잡고 있다.
일반적 경제지의 독자들은 이 나라가 꽤 훌륭한 경제적 업적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삼성과 현대 같은 대기업들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면 엘리트들은 이를 존중한다.
남한은 이전에 프랑스가 지배하였던 철도나 원자력발전과 같은 산업 분야에서 경쟁자로 나타났다.
반면에 금융가는 삼성과 같은 그룹의 기원에 대해서 의심의 여지를 갖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의심은 일반적 대중들에게만 남을 것이다. “삼성이 일본 그룹 아니었나?”
세계화된 젊은이
결국, 현실을 가장 가깝게 받아들이는 인식은 예상하지 못했던 대중들에게서 오히려 다가오는 것 같다. 의식하지 못한 채 삼성과 엘지의 핸드폰을 사용하고 기아와 현대의 차를 운전하며 ‘선천적 디지털’ 세대인 십대 또는 젊은이들은 언어적 장벽과 시차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한국인들과 같은 속도로 그 누구보다 최신 유행하는 한국 노래와 최근의 티비 드라마 시리즈에서 연기한 배우들의 이름을 잘 알고 있다.
이 젊은이들을, 아시아에서, 특히 한국과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프랑스에서 나타나는 이 에너지와 대담성을 정치적 수단이나 예방적 원칙으로 자주 억제되어 해석된다.
항상 ‘한류’라고 불리는 이 모든 현상의 화려한 면과 꾸며진 면을 비판하는 비난적인 해설자들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현상은 많은 대중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대부분 나이가 들거나 선택적인 학자들에 의해 대중들에게 제한된 다른 전통적인 예술과는 다르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모든 한국인들을 대중음악 뮤직 비디오나 아시아 전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그리고 급증하는 성장세를 보이는 인기 있는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좋게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어떤 사람들은 한국인들을 매우 로맨틱하고 무조건적으로 진실한 사랑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현실은 불가피하게도 더욱 복잡하고 미묘하다. 그러나 대중 문화는 의심의 여지 없이 그 표면적인 모습을 넘어 한국의 영혼과 한국인의 정서를 발견하는 중요한 창구가 될 수 있다.
한국인과 그들의 행동에 대해 클리셰로 가득 찬 프랑스의 젊은이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클리셰를 넘어
비교적 프랑스의 한국인들의 미미한 존재를 고려해볼 때, 새로운 세대에 의해 발전된 아주 먼 국가에 대한 열정은 꽤 놀라워 보인다.
비록 파리에 한인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고, 특히 미술 학도들이 다수 있다 하여도, 그들을 발견하는 것은 아직도 어렵다. 프랑스의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다시 재조직화를 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몇몇은 동향의 사람들과도 연락을 하지 않는다.
파리의 한인 커뮤니티는 비록 많지만, 한국인에 대한 지원과 프랑스인들에 대한 개방 사이에서 이 둘을 구별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재불협회에서 기획한 오픈 파티 형식의 추석 맞이 이벤트 같은 것 만으로도 대중들에게 파리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과 한국의 문화를 알고 싶어하는 프랑스 인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면, 프랑스 내의 한국인들과의 만남을 통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생기는 장벽은,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한국의 생활 양식과는 너무나 다른 프랑스인들의 생활 양식 때문에서만 방해 받을 것이다.
이를 통해 총체적 문화의 흡수만이 한국인들의 정신과 영혼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인 이유이다.
한국인의 영혼에 대한 스케치
몇 달간 한국에서 지낼 수 있었던 프랑스인들은, 무엇이 이 나라를 그리고 사람들을 이렇게 사랑 받게 만드는지 훓어 볼 수 있었던 아마 유일하게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고도로 빠르게 현대화된 한국에서, 50대이거나 50대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활발하고 에너지 넘치게 열심히 일하고, 공원에서 산책하고 스트레칭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누구나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한국의 장점과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완전히 바뀐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인상적인 적응력을 그들의 자신감과 위엄을 포기하지 않은 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전후 건설 세대는 회복의 정신의 살아있는 상징이다. 잘 알려진 구호인 ‘파이팅’으로도 유명한 세대이다. 이 구호에 공격성은 없으며 단지 최선을 다하자는 의지를 표현하며 그들이 만나게 될 삶의 도전에 맞선다는 의미이다.
따뜻함과, 자발적이고 계급적인 예절의 공존은 정반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끊임없이 인용되고 있으며 또한 아직까지 사실이다. ‘모순의 나라’ 라는 용어의 사용은 진부해 보일지 모르나 동시에 실수이다. 한국은 고유한 일관성을 모순 안에서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아마도 한국의 매력이자 장점이다.
유교는 역사적으로 힘들었던 기간에도 한국인들이 단결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까지도 예절과 존경이 한국어의 완전히 한 부분이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한국인의 정신의 확장이기도 하다. 프랑스인들은 이 세계 어딘가에서 상호 존중이 공유된 가치로 존재한다는 점에 매우 안심하고 있다.
공동체의 요구는 일상 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인들은 그룹을 지어서 일을 하거나 놀러 가거나 술을 마신다. 혼자 있는 것은 의심스러워 보이는 것이다. 개인주의로 지배되는 서구 문화에서 한국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사회적 결속 원칙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다른 것들 중에서, 이것이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으며, 발견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 나라는 결국 친구들을 만드는 것이 다소 쉬운 다른 곳들과 비교된다.
번역기자:bean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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