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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D] 해외네티즌 "그림으로 보는 한복의 발전" 해외반응
등록일 : 20-05-28 19:27  (조회 : 42,690) 글자확대/축소 확대 축소 | 프린트

여러분들은 평소에 한복을 얼마나 입으시나요?
요즘은 명절때도 그다지 잘 입지 않게 되었지만,
관광객들을 상대론 경복궁 근처에서 많이 보이기도 하죠.
한 일러스트레이터가 한복의 발전상을 간략하게 그린 그림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자세한 역사는 잘 모르지만, 소매길이와 상의 길이가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 눈에 띄는군요.


000.jpg




<댓글>




snowseth
고구려: 길지만 아직 쓸 수 있는 소매를 만들자.
고려: 한 치수 더 긴 소매를 만들자!
조선 전기: ㅈ까! 2치수 더 긴 소매를 만든다!!
조선 후기: 흠, 아무래도 우리 재단부터 다시해야 될거 같은데.


ㄴnull587
우린 다시 옛날로 돌아갈 필요가 있어.
누가봐도 소매가 충분하지 않다고.


ㄴkyousei8
난 고구려 스타일이 좋아.
겨울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지, 왜냐면 소매가 겁나 긴 셔츠를 입을 수 있거든.


ㄴyoungjabberwocker
아니 진짜로 진지하게 말해서 고구려나 고려 스타일로 다시 돌아간다면 난 오지게 빨 자신있어.


hkfreee
고구려 진짜 있어보이는데


ㄴwowspare
맞아, 하지만 저게 겁나 불편했을거라고 장담하지,
저 소매나 다른 장식들 좀 보라고.


ㄴsaucierlol
난 역사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고구려 스타일은 아이누나 류큐와 비슷한 점이 있는거 같아.
내가 알기로는 그때 아이누나 류큐인들은 한국에 가지 않았고 한국인들도 일본에 간건 나중일로 알고 있어.
그래서 왜 비슷한 점이 있는지 궁금하네.
혹시 상인들이 나라를 오가면서 서로의 의복에 영향을 줬을까?


ㄴJinjindoli
우린 다 같은 몽골리안이라고.
그러니 초기 고대때 이것 저것 작게 비슷한 점이 있다해도 그다지 놀랄일은 아니지.


kermitonh
그러니까 오버사이즈 패션 트렌드가 한국에서는 새로운게 아니였다는거구만?


ㄴapocalypse_later_
오버사이즈 패션은 사실 아주 최근에서야 시작됐어,
아마 2019년 초/중기쯤일거야.
그 전에는 스키니진이나 슬림핏이 주류였지.
하지만 패션트렌드는 돌고 도니까 뭐.


ㄴFenrir0214
글쎄, 여기 미국에선 80, 90년대에 이미 유행했어,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10대 20대때 주로 입고 다니셨지 (난 지금 20대 중후반이야).


ㄴapocalypse_later_
그래서 내가 돌고 돈다고 말한거지.
90년대엔 트랙자켓도 전세계적으로 유행을 타기도 했으니까.


lemmehelpyouwiththat
치마 길이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단 점이 재밌네,
하지만 저고리는 "미니 저고리" 수준으로 줄어들었어0.
마치 미니스커트의 발전을 보는 것 같네 :P


ㄴbigbossunit
크롭탑이 발명된 순간이지


w0APBm547udT
만약 누가 고려 디자인을 현대적인 자켓으로 다시 만든다면,
다 헤져서 못 입을 때까지 입고 다닐거야.


ㄴFenrir0214
이런거 말하는 거야?
여자: 

개량한복 여성.jpg




남자: 

개량한복 남성.jpg

광고나 뭐 그런걸로 규칙에 위반되면 지울거야.
난 이 사이트랑 뭐 주고 받은게 없으니 상관은 없지만.


ㄴSnowballthethird
이거 진짜 멋진데!


ㄴVI-66
딱 이거야. 하지만 덜 비쌌으면 좋겠네.


OMGhowcouldthisbe
나도 소매길이에 대한걸 잘 볼 수 있지만,
더 중요한건 서서히 상의 트렌드가 바뀌더니 결국에는 크롭탑 수준이 됐다는거야.
마치 디자인 한 사람이 "하지만 더 위로 올릴 수 있을거 같은데?"라고 말하는거 같군.


ErryCrowe
혹시 고구려 스타일에 대한 사료가 있을까?
"이게 그 당시 중국에서 입었던 거니까, 아마도..." 같은거 말고.


ㄴmujjingun
있어.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실제로 한국의 의복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이야,
그리고 그가 이 그림을 그린 이유는 한복이 중국의 복식을 "훔쳤"다고 주장하는 중국 역사가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지,
하지만 실제로는 고구려 패션에서 도출된 것들이었지만 말이야.
저 복식은 다양한 벽화와 사료들에 의해 증명된 것들이야.
저 그림에 그려진 버젼은 내가 알기론, 5세기 경 남포에 그려진 벽화에 기반하고 있어.
현재는 북한에 있는 곳이지.


고구려 한복 벽화.png



ㄴPrivacyCookiesTerms
한복은 중국의 한푸가 아니라 우리들의 조상인 유라시아 유목민들에 기원해.
재밌는건 중국의 국수주의자들의 한푸를 다시 복원하려는 시도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거지.
왜냐면 중국에는 국가를 상징할 전통 의상이 없거든.
불행하게도, 조상님이 직접 봐서 알아볼만한 그런 역사적으로 정확한 복식을 입기 보다는,
중국인들은 드라마나 비디오 게임에서나 나올법한 창작 한푸를 입고다녀.
대다수의 이런 창작 한푸의 디자인은 말 그대로 한복이나 기모노를 표절한 다음 좀 더 "중국"스럽게 약간의 변화를 넣은 것에 불과해.


ㄴAstrokiwi
혹시 한복의 기원에 대해 영어로 설명해 놓은 출처 같은게 있을까?
양측 모두에서 국수주의가 나오는 상황이니 외국인의 입장에선 중립적인 시각에서 뭐가 어떻게 된건지 이해하기 힘들어서 말이야.


ㄴmujjingun
나도 복식의 역사에 대해서 빠삭한건 아니지만,
"중립적"이라는 단어는 허상에 불구하단건 알고 있어.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립적"으로 보는건 불가능해, 특히나 고대의 역사를 볼 때는 말이지.
모든 역사가들은 저마다의 아젠다를 가지고 있고,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양측의 역사를 모두 잘 숙지한 다음 너만의 의견을 만드는거야.


ㄴwoeful_haichi
"최선의 방법은 양측의 역사를 모두 잘 숙지한 다음 너만의 의견을 만드는거야"
그리고 딱 2 진영만 신경쓰면 된다는건 보통 운이 좋은 일이지.
(이건 내가 역사에서 낙제점을 받으면서 느낀 감상이지만 뭐 어쨌든.)


stlim0730
조선 초기!


Snowballthethird
왜 상의가 계속 줄어들었는지 궁금하네. 기능성 때문인가?
난 왜 영국/프랑스/이탈리아등등...의 패션이 바뀌었는지 역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
하지만 한국에서 왜 패턴과 디자인이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네.
어디서 영향을 받은건가?
게다가 저 복식들은 누가봐도 딱 하나의 계층만을 보여주고 있지, 그건 어느 계층이야? 난 더 알고 싶다고!!


minreii
지이이인짜 예쁘다 세상에.


Joobin814
남성복 버젼은 없는거야?


kaiisuki
고려는 귀멸의 칼날에서 나올거 같네.


savahan
이제 고조선도 보여줘!


ㄴJ_W_D_2020
그건 그냥 새로 만들어서 보여달라는 말이랑 같아.


magikarpsan
진짜 예쁜데


VI-66
옛날에는 저런 옷을 만들기에는 천이 미친듯이 비싸지 않았나?
평민들은 이거랑 비교했을때 훨씬 더 기본적인 옷만 입고 다녔다고 보면 되는거야?


ㄴJames-farmer2020
딱 맞는 말이야. 말 한번 제대로 했어.


Oceanaid
아주 멋진 그림이야, 하지만 한가지 앞에 3명의 사람들은 귀족 여인들인데, 조선 후기의 여인은 평민처럼 보인다는걸 짚고 싶어.
대체 왜 화가가 이렇게 그렸을까?


ㄴJinjindoli
조선 후기에는 신분제가 폐지되거든.


Noveos_Republic
다른 왕국은 어때?


ㄴstlim0730
내 예상에 저 한복들이 역사상의 주류였을거야 나머지는 대부분 동일한 모양새를 보였을거고,
하지만 뭐, 나도 다른 왕국은 어땠는지 한번 보고 싶네.


heyieatjunk
질문이 하나 있는데 조선 후기 한복은 벨트가 가슴 바로 아래에 오는거 같아...
그래서 만약 내가 잎게 되면 내 가슴이 위로 드러날거 같은데 만약 직접 입어본다면 상의가 너무 짧진 않을까?
내가 틀렸다면 신경쓰지 말고 알려줘!
난 한번도 한복을 입어 본적이 없어서 ㅇ실제로 어떻게 될지 몰라서 그래.


ㄴErryCrowe
빈곤과 기근이 팽배한 시절에는 (19세기처럼) 하층민의 여성들은 때때로 가슴을 "드러내놓고" 다니기도 했어.
또 이건 모유수유를 하는데도 편하기도 했지.
게다가 모유수유를 할 수 있다는건 하층민들의 여성들에게는 일종의 자부심과도 같은 거였지.

하지만 사회적 지위가 있는 여성들에겐 (당연히 최하층민은 예외로 두고)
어떤 방식으로든 속살을 보이는건 아주 극도로 부적절한 일이었어.
그래서 그런 일을 막으려 겹겹이 속옷을 입기도 했지.


ㄴheyieatjunk
와, 나도 사실 공공장소에서 모유수유를 하는건 부끄러워 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생각했어,
그러니 가슴이 드러나는 옷을 입은건 마치 배지를 단 것과 같다는거구나 (그렇게 입은 사람들이 그걸 편하게 여긴다는 가정하에 말이지).
이미 브라가 사회적인 기준에서 필요하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 됐지, 지지하는 역할이 아니라면 말이야.


garmanz
대체 언제부터 한국인들이 애니 캐릭터의 눈을 가지게 된거지???


Karmaisnow
처음 2개를 보면 일본의 영향이 확실하단게 보이지.


ㄴspacechannel_
ㅋㅋㅋㅋㅋ일본은 고려나 고구려에 영향을 줄만한 위치가 절대 아니었어.
영향은 오히려 일본이 받아갔지.


ㄴErryCrowe
너 20세기 전까지는 문화적 영향력이 보통 일본을 향한건 알고 말하는거지?



번역기자:PowerJ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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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쌍둥이 20-05-28 19:28
   
제일 이쁜 전통복
     
ckseoul777 20-05-29 00:30
   
진짜로 너무 너무 멋있고 품격있고 이쁘죠^^
소유자™ 20-05-28 19:31
   
ㅋㅋㅋㅋㅋ 쭝쨉새1끼들 ㅋㅋㅋ

어떻게든 지들꺼라고 지들이 영향줬다고 ㅈ나게 우겨대네 ㅋㅋㅋㅋ
이제 그말이 개소리로 판명이나니 오키나와 상인이 영향을주셨다 ㅇㅈㄹ ㅋㅋㅋㅋㅋ
오키나와복식이 되려 고려의 삼별초가 피신오면서 영향을 줬겠지 빡대갈이 쭝쨉들아 ㅋㅋㅋㅋㅋ
     
소유자™ 20-05-28 19:32
   
그리고 한국사학계만큼 자국에 냉혹하고 객관적인 입장이 어디에 있다고 국수주의 국뽕 ㅇㅈㄹ이냐 멍청이들아 ㅋㅋㅋㅋ
어떻게든 우리선조님들의 문화적창작력을 인정못하고 깎아내리고 남한테 영향을받았다고 우겨야 직성이풀리는 ㅂㅅ 빡대갈이들 ㅋㅋㅋ
ㅂㅅ들아, 제발 고려시대까지 오키나와가 어떤문명생활을 했는지좀 찾아봐라, 문화라는게 높은곳에서 낮은곳으로 흘러들어가는거 아니냐 ㅋㅋㅋㅋ
이새1끼들은 이런 최소한의 이치조차도 모른단말인가????
          
원형 20-05-28 21:48
   
왜놈들의 식민사학을 전공한 한국의 식민사학자들 때문에 냉혹한 것은 사실이지만 객관적이지도 않죠.
있는것도 부정하는 것은 객관과는 거리가 한참 멀고요.
뭐 그렇다고...
patron 20-05-28 19:34
   
삼국시대는커녕 조선시대까지도 미개토인이었던 왜국이 영향을 줬네마네하는거 ㅈㄴ웃김ㅋㅋㅋㅋㅋㅋ
중국, 몽골, 인도 같이 육지로 연결된 나라들끼리는 서로 영향 주고받았겠지만 왜국?이 삼국시대때 다른나라에 문화적 영향?ㅋ 꺄르르
     
소유자™ 20-05-28 19:38
   
적어도 남북국시대때 당풍인 단령포(흔히말하는 관복)가 들어오기 전까지 자생적인의복이 대세였다는게 요즘 사학계의 대세
     
ckseoul777 20-05-29 00:29
   
훈도시 한장에 게타짝끌고 디녔던 왜구놈들이 감히 미개한것들!!
     
ckseoul777 20-05-31 12:34
   
ㅋㅋㅋㅋㅋㅋㅋㅋ 팩트폭격이네요^^
최강베어스 20-05-28 19:46
   
기본적으로 의복은 신분을 표시하는 수단이지. 의식주에서 의가 가장 먼저 나오는 이유이기도하고..따라서 일본은 적어도 의복에 관해서만큼은 대한민국탄생이전까지 눈꼽만큼의 영향도 준적이 없음.
조선시대임진년이건 구한말일제강점기건간에 그들의 의복이 자의로 받아들여진적이 없음. 단 대한민국이후 일본이 좀 잘나가던 시절 젊은이들(지금 한40대쯤 됬겠네)의 패션에 영향을 주긴했지. 소위 일본문화가 한국문화보다 좀더 나았던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냈던 사람들..왜구풍 패션이 핫하던 시절까지 부정하진 않겠음 내기준 오빠 언니 패션에 경악을 금치못하던 시절이 있었지
     
원형 20-05-28 21:49
   
몸빼바지가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편하다고 계속 사용중이죠.
없어지지 않을듯.
가출한술래 20-05-28 19:49
   
잘 보고 갑니다
쿤신햄돌 20-05-28 19:49
   
고구려옷 소매 너무 넓게 그린거 아님?
     
mymiky 20-05-28 21:08
   
벽화 참고ㅡ
     
예지 20-05-29 11:57
   
작자가 기본적 개념 자체가 없어서 그런듯..
한복이란 복식의 개념은..
조선시대 의복을 통칭하는것이라..
고구려한복, 고려한복 같은건 존재할수 없음.
또한 고구려는 우리역사에 잇어 유일하다시피한 약탈국가인데.
당연히 저런의복이 존재하기 어려움.
왕실이나 지금으로 따지면 의전이나 제사등에서나 입을까.
그나마 그 자체도 두루마리에 국한.
          
mymiky 20-05-30 07:03
   
(한복)이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그 이전 왕조들까지
포함한 한민족의 전통의상을 말하는 겁니다

님이야말로ㅡ기본적인 개념이 없으신듯 합니다

또한,  엄연히 고구려 벽화가 존재하는데?  왜 님이 있네, 없네를 운운 하시죠?

당시 생활상을 보려면 , 벽화를 참고하는 것이  최고 좋은 방법인데요?
               
ckseoul777 20-05-31 12:37
   
상대를 해주지마세요^^
항상 말같지도 않는 논리를펄치니까요~
뭐꼬이떡밥 20-05-28 20:07
   
조선전기 옷이? 저래요?

왕실에서나 입는 옷 아닌지
     
mymiky 20-05-28 21:13
   
다른 나라 전통 복장들도
주로, 상류층 의복 위주로 소개하지

가령, 농부들 의상을 전통의상이라고 소개하진 않습니다 ㅋㅋ

조선 전기 의복은

폭이 넓고 소매도 길고
여성의 치마도 크게 부풀려서ㅡ

중국 사신들이
 꼭 우산을 뒤집어 쓴거 같다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나름 저 스타일 ,원나라 말기부터~명초기까지
고려양ㅡ한류의 원조로 불릴 정도로 중국 대륙을 휩쓸었어요ㅡ
          
바람퉁이 20-05-28 21:23
   
고려양이 있었다는 애기들 들어서 알았는데
보니깐 예쁘네요. 유행할만 한듯.
조선 전기 옷이  제눈에는 가장 멋나는듯.
          
원형 20-05-28 21:51
   
서양 근대 드레스가 딱 그 스타일이죠.
코르셋으로 조이고 고래 뼈대로 치마를 부풀리는 형태죠.
          
나비야나비 20-05-29 04:02
   
유럽은 서민 복장이 전통복장의 대명사인 경우가 많습니다.
농부나 낙농업자들 옷이요.
국가행사 등에서 전통복 입으면 귀족복식은 거의 등장 안합니다.
한국도 서민 복식의 비중이 넓어지리라 봐요
     
국밥햄 20-05-28 21:19
   
조선이 굉장히 긴 시간 지속한 나라입니다
조선 전기와 후기는 당연히 크게 차이나요
전기는 고려에서 조금 달라진 정도일 뿐이죠
          
원형 20-05-28 21:52
   
고려와 거의 같은 이유는 같은 사람들이니까요.
왕가만 바뀐것입니다. 고려말이면 이미 사대부들이 장악하고 있었죠
     
예지 20-05-29 12:08
   
작가가 개념이 없어서 그런듯. 
조선의 여성용 의복은 상의는 비교적 타이트하고 하의는 실루엣이 큰 옷을 입었음.
그위에 두루마기 형태의 옷을 입는데 상류층은 쓰개치마 또는 너울이라는 이름으로 입었고.
평민들은 장옷이라는 조금 간편한 형태를 입었음.
그림은 한복+장옷의 형태를 모두 갖추고 있음.
          
쿤신햄돌 20-05-29 13:30
   
조선의 여성용 의복은 상의는 비교적 타이트하고 하의는 실루엣이 큰 옷을 입었음.

같은 조선이라도 시기에 따라서 다르단다
예지야 무식하면 가만히있어라
               
예지 20-05-29 15:12
   
당연히 시대가 흐르면서 변형이 있지.
특히나 세종이후 복식은 간소화와 실용성에 방점이 잇으니.
태조시대의 한복은 조선전기라기 보단 고려때 복식이 넘어온 과정이고.
굳이 분류하자면 초기라고 하는게 맞지.
그렇다고 초기라고 해도 저위에 나와있는 복식은 맞지않아.
가장 오래된 복식을 엿볼수 있는게.
고려말 원나라 출신의 노국공주인데.
웹에서 검색해봐라.
얼마나 다른가 ㅎㅎ
더욱이 노무현때 5만원권 신권을 발행하면서
온갖 역사적 고증을 거친 조선전기 신사임당의 의복을 봐봐.
아참 지갑에 5만원짜리는 커녕 만원짜리도 없나 ㅋㅋ
                    
쿤신햄돌 20-05-30 00:36
   
노무현때 5만원이 나왔다고?
먼 소리 하지 얘?
                    
mymiky 20-05-30 06:59
   
노국 공주의 초상화는 당대의 것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현재 노국공주의 초상화라고 불리는 작품들은  ㅡ모두 고려시대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에 와서 ㅡ 노국공주는 이렇게 생겼을 것이다  하고
후대인들이 상상해서 그린 작품이고

정확히는 제사 지낼때  쓰는 무속화로 그려진 것들 입니다
               
예지 20-05-29 15:20
   
기본적으로 한복의 너플거림은..
전부 두루마기야.
조선 중후반으로 넘어가면 여성옷 두루마기는 조선초 남자가 쓰던 장옷 이나  너울 또는 쓰개치마 등으로 변형될뿐.
상식적으로 저딴옷을 입으면 일상생활을 어떻게 하냐 ㅎㅎ
고려 & 조선전기와 후기의 복식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실용적인것도 있지만 염색에 있어.
세종이후 소위 색동같은 오색저고리따위를 철저하게 금지시키거든.
남자의 복식역시 후기로 갈수록 신분의 고하를 구분하기 어려워질정도로 단순화 되면서.
술띠의 기능이 강화되는것도 마찬가지야.
                    
mymiky 20-05-30 07:36
   
전부 두루마기라고  하는건? 무얼 근거로 하는 소리인지?

님의 뇌피셜인거 아시죠?

저는 헤이안 시대 의상보면 어떻게 저런걸 입고
일상생활을 하는지?  신기하던데요 ㅋㅋ

님의 걱정과 달리 , 조선초기 의상 입고서도 일상생활 가능했구요ㅡ

Kbs사극 대왕세종 ,  jtbc 인수대비 ,영화 관상에 보면
조선 초기 의상들 잘 나오는데?

뭐가 문제임?

세종이후 색동 저고리 같은  것을 금지시켰다?
금지 시킨다고 해서 사람들이 안 하나요?? 

조선 후기사람인 신윤복의 풍속화를 봐도,  조선왕실의 의궤중
왕이 능행가는 것을 백성들이 구경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에서도
다채로운 의상들이 잘만 나옵니다

사람들이  정해진대로만 살진 않죠

가령, 영조가 금주령을 자주 내린 왕이였는데ㅡ 그래서 백성들이 술을 안 먹었나요??
어차피 마실 놈들은 다 숨어서 마시고 했죠

자기 집  안에서 하는걸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세종이 색동옷 사치스럽다 한다고  금지시켜도
그  어명이 얼마나 갔을까요? 안 입을것이다?  택도 없는 소리죠~
               
예지 20-05-29 15:27
   
특히나 저 위에 조선전기라는 한복의 특색을 보면..
소매 부분이 하얗지?
이는 거들지라고 하는 장옷에 붙는 부분인데.
천연섬유에 천연염색이라 물빠짐이나 옷감이 상하기 때문에.
자주 세탁을 못하기 때문에.
거들지라고 흰소매를 덧대 그 부분만 빨래를 하는거야.
주로 비단같은 고급소재에 외출용 겉옷인 장옷이나 쓰개치마에 나타나는 복식이고.
일반 평상복은 굳이 저렇게 안만들어.
일러스트 작가가 한복에 대한 기본 지식 부재로 짬뽕을 시킨거지.
                    
쿤신햄돌 20-05-30 00:34
   
저 작가가 아니라 조선초기 복식 보면
저런 형태로 나온다 예지야
무식하면 닥치자
                    
mymiky 20-05-30 07:49
   
                         
mymiky 20-05-30 08:38
   
일빵빵 20-05-28 20:10
   
잘봤습니다
밀리타 20-05-28 20:13
   
잘보고 갑니다
댄디즘 20-05-28 20:29
   
점점 외국인들도 우리 역사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는게 보이네요. 늘 그렇듯 중국, 대만, 일본은 한국 관련 글에는 꼭 티를 내는 것도 여전하구요.
골드에그 20-05-28 20:36
   
잘봤습니다.
kuijin 20-05-28 20:48
   
마지막 쪽바리 쯧
굿잡스 20-05-28 21:02
   
댓글에 보이는 우리 삼국시대 이전  고조선 관련 복식사는 현재 국내 학계에선 박선희 교수가 가장 활발한 연구 성과를 내고 있군요(우리나라 복식의 특징은 고조선시대부터 근세 조선까지 줄기찬 우리만의 복식 특징을 이어온데 반해  서토 하한족들은 북방과 동방 이민족에 정복을 수시로 당하다보니 복식도 그때마다 강제주입 변화 중구난방)


이집트보다 더 빠르다는 만리장성 밖 
고조선 선대 요하 피라미드.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wr_id=76741
   
서토보다 앞선 동아시아 최초의 고조선 금속갑옷   

http://cafe.daum.net/luck5194/MFUT/283?q=%B5%BF%BA%CF%BE%C6%20%B0%A9%BF%CA%C0%C7%20%BF%F8%C1%B6%20%B0%ED%C1%B6%BC%B1-%20%B0%ED%B1%B8%B7%C1����


고조선 초기 무덤유적에서 후기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장식품의 출토상황으로부터 다음의 내용이 정리된다.

첫째는 고조선의 비파형동검문화인 하가점상층유적에서 출토된 장식단추는 그 양식과 종류에서 고조선의 하가점하층문화와 서로 계승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는 고조선의 하가점하층문화로 이어지는 소하 
연문화의 ‘인형방식’ 웃옷에 나타난 둥근달개장식의 사용이 홍산문화로부터 비롯되어 일관되게 후기에 이르기까지 고조선 영역에 전반적으로 확산된 것은 복식문화의 시대적인 조형적 양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달개장식의 사용이 고조선 이후 여러나라시대에 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어지고 이후 고구려의 불꽃문양을 표현한 금관과 금동관200)등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태양신을 섬기는 천신신앙201)의 문화적인 전통이 계승되어진 것으로 해석되어진다. 



해모수의 (해)解는 하늘의 해, (모수)慕漱는‘머슴애’를 뜻하는 것으로 해모수는 해의 아들 즉 (일자)日子를 의미한다.208) 즉 고조선의 단군은 해의 아들이라고 불리었으며 태양신을 상징한다. 따라서 고구려는 홍산문화로부터 비롯되고 소하연문화를 이은 고조선문화를 계승하여 태양을 숭배하는 전통과 장식기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원형의 달개장식을 매개체로 하여 태양의 기능인 열과 빛의 모습을 복식 등에 표출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오랜 기간 통시적인 발달양상을 보이는 장식기법은 중국이나 북방지역의 복식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한민족의 고유양식인 것이다.

소하연문화의 ‘인형방식’에 나타나는 복식양식과 장식기법은 한국 고대복식의 원형이 중국이나 북방 호복계통에서 비롯되었다는 종래의 통설화 된 견해들이 모순임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아울러 홍산문화 복식의 특징적 요소들이 소하연문화로 이어지고 다시 고조선의 고유한 복식전통의 밑거름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옥과 청동 등을 재료로 한 원형의 장식기법은 홍산문화의 복식 전통을 이은 고조선의 고유한 장식기법으로 한민족 복식의 문화적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결정적 자료라고 할 수 있다.

ㅡ소하연(小河沿)문화유적 출토 ‘인형방식(人形蚌飾)’에 보이는 고조선 복식(朴仙姬) 중.
새콤한농약 20-05-28 21:15
   
옷조차도 저렇게 멋스럽게 만들었던 우린 조상님들..
삼국시대 이전 고대사 연구가 시급하다..
너굴맨 20-05-28 21:17
   
아니 중국 영향을 받았다는 건 그럴 수 있는데 일본 영향 받았다는 건 뭔 개빡대가리 같은 소리지? 헤이안시대 일본 사극이 너무 고증을 잘 지켜서 다 누더기 입고 나오는 바람에 망했는데
바두기 20-05-28 21:17
   
잘봤습니다.
굿잡스 20-05-28 21:20
   
고조선 고(구)려 동방문명권의

한복 복식의 동북아 파급력ㅡ고려풍(열도의 고송총 고분벽화등)

http://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05&wr_id=484396

[속자치통감 제이백일십사 원기삼십이]   
《续资治通鉴 卷二百一十四 元纪三十二》记载:“后亦多畜高丽美人,大臣有权者,辄以此遗之,京师达官贵人,必得高丽女然后为名家。自至正以来,宫中给事使令,大半高丽女,以故四方衣服、靴帽、器物,皆仿高丽,举世若狂。”   
"황후도 역시 고려미인으로 삼아, 대신유권자는 곧 이를 귀하게 여겨, 수도 고관귀인은 반드시 고려여자를 얻은 후에야 명가가 된다.   
그렇게 된 이래, 궁중급사사령, 대반이 고려여자이며, 이런 이유로 사방의 의복, 신발과 모자, 기물 모든것을 고려를 모방해, 온 세상이 미친 것 같다."   
     
[숙원잡기]의 기록에는,《菽园杂记》::“马尾裙始于朝鲜国,流入京师……于是无贵无贱,服者日盛。至成化末年,朝臣多服之者矣。阁老万公安冬夏不脱……。大臣不服者惟黎吏侍淳一人而已。此服妖也,弘治初始有禁例。”   
마미군은 조선국(고려)에서 시작되어, 수도로 유입됬으며......귀천을 가리지 않고 복식이 날로 성했다. 성화말년에 이르러, 조정 신하들도 입게 되었다. 각로만공안이 겨울에도 여름에도 벗지 않았다.....이 복식은 요사하므로, 홍치 초시에 금지되었다.

고구려 VS 수나라ㅡ 동아시아의 세계대전급 문명전쟁사.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commu&wr_id=1553119&sca=&sfl=wr_subject%7C%7Cwr

일본 기모노연구가 "기모노의 원류는 백제"

https://www.google.co.kr/amp/s/www.hankyung.com/life/amp/2004100343698

하니하라 가주로(埴原和郞) ... 나라시대(奈良時代- 제50대 칸무(桓武) 왕이 784년 헤이안(平安)으로 천도하기 이전)까지도 한복을 입고 한국음식을 먹었으며 심지어는 한국말까지 사용했는데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 만엽집(万葉集) 등에 아직 조작되지 않은 부분은 한국어의 한국식 한자용어가 남아있다”고 말해 전체적으로 일본고사기들이 조작되었음을 밝혔다.

"일본 가타카나 기원은 신라 향찰·이두"  

히로시마대 교수  

http://blog.daum.net/damule/8881879
     
계엄하자 20-05-28 23:39
   
잘봤습니다.
     
쉼표 20-05-30 00:22
   
연오랑세오녀 설화에 연관된 내용이 있습니다.

http://culturecontent.kr/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14&cp_code=rp0703&index_id=rp07030449&content_id=rp070304490001&search_left_menu=2

다섯째, 세오녀가 짠 비단에 주목하여 우리나라의 양잠·견직물과 그 기술이 일본으로 전래되어 문화교섭이 이루어지는 것을 반영한 설화라고 보기도 한다.(이연숙, 1986)

이외에도 고대 이래 신라인이 일본에 이주한 일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삼국유사』 기록에 따르면 연오랑 세오녀 부부가 떠남으로서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광채를 잃었는데, 이는 제철기술자 집단이 일본으로 떠나 버린 탓에 불이 꺼진 것이라고 보았다. 이후 연오랑이 아달라왕의 사신에게 세오녀가 짠 비단을 줌으로써 신라는 광명을 다시 찾는다. 여기서 세오녀가 짠 비단인 세초(細梢)는 쇠 만들기를 뜻하는 “쇠지어”를 나타내는 이두로, 제철 만들기의 노하우를 상세히 적은 비단으로 보았다.(이영희, 1999)
mymiky 20-05-28 21:22
   
중국인들이 한복을 자기 중국  것을 빼겼다고 하는데ㅡ

물론 주변 나라끼리는 인적/ 문화적 교류가 많기에  자연스럽게 섞이기도 합니다

신라  하대에 당풍이 유행했고
고려 귀족들  사이에선,  몽골풍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조선  초기엔 명나라에서  황실 예복을 선물로 보내오기도 했구요

중국의 영향은
왕실 대례복과 관복  정도가 그렇고

그 이외에
대부분은 우리 토착 양식이죠ㅡ
     
몽키헌터 20-05-28 21:57
   
명맥이 이어져야 전통복이라고 할 수가 있죠.

지들 기억에도,
생활 속에서도 없었던 짝퉁 전통복..

한푸 어쩌고 하면서 우리 한복 베끼기 하고 있음..
다같은생수 20-05-28 21:23
   
쪽바리가 분탕질하는게 보이네요 ㅋㅋ
ㅉㅉ
     
ckseoul777 20-06-03 03:05
   
무시믾이답이죠~ 불리하면 토끼고보는열도 방숭이
brainfuxk 20-05-28 21:38
   
https://twitter.com/dndudwp99/status/1262432152152444928
원작자인 우용곡 선생의 트위터입니다.
사실 이 포스트에 대한 분탕질은 동북공정에 영향받은 어린 짱깨들의 소행이죠.
원 트윗에도 달린 쭝궈멘션들이 많습니다.
하야덴 20-05-28 21:42
   
촤하하하
나이로비 20-05-28 21:47
   
19세기까지 빤스만 입고 다니던 놈들이 영향을 줬데ㅋ
이건 지들이 그림으로 기록까지 해놔서 반박도 못함ㅋㅋ
구레나룻 20-05-28 22:18
   
잘보고 갑니다
Korisent 20-05-28 22:36
   
한푸 ㅋㅋㅋㅋ 그런건 없었답니다.
아니야 20-05-28 22:43
   
상의 기장과 소매 폭이 점점 줄어드는게 특징이네요.
근데 조선 후기 저고리가 작아서 가슴 보이는거 아니냐는 질문에
뭔 모유수유 타령하는 인간이 있네.
경복궁 갈때 입는 한복도 퓨전이지만 조선 후기 양식인데 가슴 드러낸 사람 있디?
유교 국가에서 젖까고 다닐 간덩이 큰 인간이 얼마나 있었겠냐?
막 벗겨재겨지는 기모노에 훈도시 입고 다닌 왜구가
조선은 미개국가라고 선전하기 위해 컨셉사진 찍고 날조한건데 그대로 복붙하고 있네.
     
mymiky 20-05-28 23:27
   
가슴가리개가 있죠ㅡ

그러나 날조는 아닙니다
실제로  조선에선

서민층,  특히 아기가 수유기에 있는 여성들은 가슴 좀 내놔도
누가 뭐라는 분위기가 아니였습니다 

아기 밥통이라 생각했고ㅡ 조선에선 여자 가슴은 금기가 아니였어요
당시엔,  가슴보다 하반신 ㅡ맨다리를 드러내는걸 더  야하게 생각했습니다

예법 엄격히 따지는건 양반들이나 그런 것이고ㅡ 
양반 여자들은 집에 유모를 두고 살아서 ,  주로 유모가 키우고  하녀들이 돌보고

부모는 정해진 시간에 문안인사 같은거 할때
자식들을 잠시 보는 관계였습니다

서민들은 유모는 커녕, 하루종일 바쁘게

자식도 낳아 길러야 하고
농사일에  밭일에, 빨래며 삼시세끼 요리도 해야하니

때맞쳐 젖 물려주려면 가슴가리개는 답답하고  귀찮아서
걍 풀고 지내는게 편해서ㅡ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시골은 더 했구요

당시 풍속화를 봐도 알수 있습니다
비이콘 20-05-28 22:56
   
잘봤습니다.
스핏파이어 20-05-28 23:08
   
잘봤습니다.
spraingers 20-05-29 00:13
   
잘읽었습니다 재밌네요
이리듐 20-05-29 00:14
   
복식사
JIN92 20-05-29 00:14
   
얼굴이 귀엽네요 ㅎ
한복 참 단아하고 아름답지만 입어본지가 너무 오래됐네...
우기기기기 20-05-29 00:31
   
윗도리가 점점 짧아지는군
구르미그린 20-05-29 00:44
   
한국 일본 전통의상이 중국 전통의상을 베이스로 약간 변형되어 내려왓다는 건 한중일 전통의상 사진, 역사를 조금만 조사해봐도 아는 사실입니다.
한국의 거의 모든 인명, 지명은 중국식이고 순우리말 이름은 거의 없고, 상당수 한국인 족보는 시조가 중국인으로 나와, 노태우 대통령의 종중은 중국에 가서 제사를 지냈고, 진중권은 언론 토론회에서 "나는 중국인 후손"이라면서 "한민족이란 없으니 외국인 대량이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 네티즌들이 인터넷에서만 중국 까지, 실제 한국이 점점 더 중국인 세상이 되어가는 현실은 신경쓰지 않는 탓에 한국국민이 중국, 일본 국민보다 불리합니다.
외국인들은 한국을 중화문명권으로 분류하고 한국 학자들도 인정하는데, 한국이 독자적 문화로 평가받길 원한다면 한국정부의 중국인 대량이주 정책부터 막고 후손에게 온전히 나라 물려줄 생각부터 하는 게 현실적입니다.
     
굿잡스 20-05-29 01:57
   
?? ㅋ

구르>

국적불명인 오늘도 쉰소리 열심히구만.

청나라 300여년동안 서토 하한족들이 문어대가리 변발머리에 치파오 이민 만주족 복장은 왜 하고 단녔을까?

몽골 정복 시기에는? ㅋ


그리고 우리나라 성씨 530여개 중 대표적 한국인 성씨인 김, 이, 박이 인구의 절반 최,정등 10대 성씨가 인구의 7할을 차지하면서 이들은 고조선부터 삼국 중세로 오면서 우리쪽 북방과 한반도 세력의 성씨(중세에 일부 짱국식 성씨도 유행하기도 했지만 글자 그대로 전체에서 일부분일뿐)

그리고 전국적 수많은 지명 중에 일부 짱국이랑 비슷한 지명이 있다고 또 그걸 다 짱국지명이다 헛소리 시전 하남요? 쯧

대한민국 대표적 서울등은 기본 우리 고대 연원에서 유래

https://www.outsourci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87636



19세기 말, 만주족 팔기군 병사가 한족 성주(시장)을 구타한 사건이 있었지만, 팔기군 병사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을 정도로 청나라 내내 만주족들은 정복자이자 지배자라는 신분적 특권을 누리고 살았다.       
       
  서구 열강의 공세에 몰려 위험한 상황에서도 청나라의 지배층들은 "나라를 외국에게 넘겨줄 지언정, 집안의 종(한족)에게는 절대로 줄 수 없다."라고 단언했을만치, 청나라는 엄연한 정복 왕조였다.       
       
  1850년대, 한족들로 구성된 태평천국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남경을 지키던 만주 팔기군 병사들이 태평천국군에게 모조리 살육당하자, 분노한 청나라 조정은 태평천국에 가담한 반란군 병사들이 항복해와도 절대로 항복을 받아주지 말고 전부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 바람에 태평천국의 난은 16년이나 오랫동안 계속되고 말았을 정도로 만주족과 한족 사이의 민족적 갈등은 심각했다.       
       
- 청사 저자 임계순 -       

당시 일개 만주족 병사가 미국으로 치면 주지사(웬만한 나라의 대통령)급에 해당하는 성주를 구타할 정도로 만주족은 소수였음에도 피지배 서토인을 강점 지배하는 정복자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고   

이들은 서토인과 구분되는 그들만의 독자적 만성이라는 주거공간에서 생활하며 서토인에게 세금을 착취해서 생활.       

(후기로 가면 만주 팔기군중에서 초기 청에 복속, 서토 정복에 동원되어 수백만 자국 짱개들  학살하던 앞잡이 한족계열은 세금만 쳐먹는다 팔기군에서 빼버림)       


명말청초의 만주족에 의한 짱국 서토인 대규모 학살       
       
 [양주십일기],[가정을유기사],[강변기략]

청조의 對 한인 정책은 협조하면 유화책을 구사하지만, 반항하면 철저하게 도살하는 유혈강경책이었지요, 예컨대 화남과 화북을 잇는 군사적 경제적 거점이었던 揚州城(양주성)을 함락시켰을 때 청군은 끝까지 저항한 한인 80만명을 학살했습니다.     
『만주족은 중국인구의 0.03%에 불과했습니다. 소수가 다수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본떄를 보였다.>    


소수의 만주족이 서토 명을 무너뜨리고 변발을 하고 치파오를 입지 않으며 반항하던 하한족들은 보이는대로 즉결 사살.
     
굿잡스 20-05-29 01:58
   
원나라(몽골)의 법률은 서토 한족은 예외 없이 노예로 취급했으며 "노예는 물건과 같다"라고 규정     

노예의 주인은 노예를 임의로 매매하거나 증여할 수 있었고 언제든지 한족을 살생할 권리가 있었다.     

 한족 20가구를 1甲 으로 편성하였다.     
 각 甲마다 한 명의 甲主를 두었다.     
 갑주는 몽골인이다.     
20가구가 1명의 몽골인을 먹여살려야 했다.     

새로 결혼하는 한족 여성의 초야권은 몽골 갑주의 몫이었는데,     
짱국 漢族은 혈통의 순수성 유지를 위해 첫번째 태어난 아기를 죽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또한     

몽골은 한족의 반란을 방지하기위해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다     

한족의 사내아이가 태어 나면 엄지손가락을 절단햇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집회를 열지 못하게 했다.     

한족은 무기류를 일체 가질 수 없었다. 10가구에 하나의 부엌칼만을 가질 수 있게 하였다.     

무술을 배우거나 사냥을 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것은 몽골족의 동의를 받은 후에 가능했다.     
노예는 사유물이므로 노예의 재산은 언제든지 뺏을 수 있다.     
노예인 한족은 전통적인 한족 성명을 가질 수 없었다.     
(출생일자를 가지고 이름을 삼은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관직이나 공직등 중요한 자리에는 몽골인들과 고려인,색목인(북방계)이 우선 등용.
     
제쓰로깁스 20-05-29 08:50
   
이 토왜는 꼭 이런식으로 나대더라
     
구름위하늘 20-05-29 15:37
   
인명 지명이 중국식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남아있는 것이 한자로된 기록만이 있기 때문이지 상당부분에서 고유이름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한밭이라는 지명은 꽤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지만,
그걸 기록에 남길 때는 대전이라는 한자를 사용한 것이죠.

양반들의 이름을 한자가 기본이지만, 양민 이하에서는 한자로 표기하기 어려운 한글이름도 많았습니다. 돌쇠라는 이름을 기록에 남기면 석철... 이런 식을 남기는 것이 현재 우리가 가진 기록의 한계임.
     
검푸른푸른 20-05-31 07:32
   
한자썻다고 다 중국인 행으로 보내버리네 ㅋㅋㅋㅋㅋ
알파벳 지명 쓰는 국가들은 어쩌라고 ㅋ

하여튼
이사람 글은 언제나 기승전 정치주제로 빠지는 글만쓰는 한편으로는 참 일관적인 맨~
     
쉼표 20-05-31 09:13
   
정말 조금만 조사해봐도 고구려와 수, 당의 양식이 다르고 중국 기록조차 당시 고려의 양식이 유행했다고 나와 있는 것을 알 텐데 어디서 뭘 조사를 했길래 이런 헛소리를 사실이라고 주장하세요?
 무식한데다 너무 당당하시네요.

또 훈민정음 창제 이전엔 한자만 있었으니 모든 이름을 한자로 기록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한자의 원류가 중국의 갑골문이라는 것은 인정하나 기원전 10세기 전부터 동북아에 널리 퍼져 있었으며 한 시기, 한 지역에서만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3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함께 공유한 문자를 오롯이 중국만의 문자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오류인데다가 현 중국에서조차 지역마다 말이 다르고 음을 정확히 표기 못해 영어의 알파벳으로 발음 통합 작업을 수 십 년째 하고 있는 마당에 한자로 작명했으니 모두 중국식이라 생각하는 것은 중국인들도 웃을 일입니다. 혹시 일본인도 이름을 한자로 쓰는데 그걸 중국식이라고 생각하세요?

심지어 중국 현지 젊은 층에선 우리말 욕이 일상화되고 한국인들의 습관을 따라 하고 있다는데 한국은 점점 더 중국인 세상이 되고 있다니 이게 뭔 개 소리입니까?
     
ckseoul777 20-05-31 14:53
   
도대체 무슨말인지 의미를모르겠네!!!
아리온 20-05-29 00:57
   
잘봤습니다.
진빠 20-05-29 01:59
   
ㅋㅋ 크롭탑의 발명 ㅎㅎ
III복불복III 20-05-29 02:03
   
잘봤습니다
ashuie 20-05-29 02:12
   
고려한복 너무너무 이뿌다ㅠㅠ
명나라초기까지 원피스밖에 입을줄 몰랐던 중국인이
간편하고 따뜻한 기마민족의 투피스 복식을 베껴간게 한푸인데
나라가 분열되서 제대로된 연구와 물증을 대지못하니,
훔쳐간놈이 주인행세 하는 꼴을 다보네.

중국인의 의식의 흐름은 일본이 중국의 짝퉁인걸 객관적으로 증명하고.
그사이에 있는 한국도 당연히 중국짝퉁이라는 단순명쾌한 구조로 설명이 되는데
이게 진짜 씨알도 안먹히는 논리인게,

일본은 팬티만 입고 지푸라기 집에서 살던 쌩 야만인이었기에
당나라의 문화 법 제도 복식 모든것을 쇼토쿠태자가 스폰지처럼 쭉쭉 흡수한거고.
한국은 엄연히 중화랑은 완전히 다른 독자문명을 구축하고(고인돌 분포지도만 봐도 일목요연함.)
수천년을 중국과 잦은 갈등으로 끝없이 전쟁하며 살아온 민족인데
꼴랑 조선이후 잠시 머리좀 숙였다고 남에나라 수천년문화를 짝퉁이니 어쩌니 하는게
참..못배워먹고 같잖을 따름.
자기자신 20-05-29 02:57
   
잘 보고가요
fox4608 20-05-29 06:40
   
잘 봤습니다.
황룡 20-05-29 07:08
   
어딜가나 왜구랑 짜장들 분탕질은 오지네 ㅋㅋㅋㅋ

잘봤습니다~!@@!
뽀치 20-05-29 07:43
   
ㅋㅋ
balloon 20-05-29 08:17
   
한푸는 원나라 시절 고려양 때문에 중국에 도입된거죠. 그리고 마지막에 일본이 고구려 의복과 양식이 비슷하다고 했는데 일본이 고구려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뭐 개소리에 불과하고요. 일본은 그당시 아직기한테 한자 전수받기에도 바빴던 시절이죠 ㅋ 누가 누굴 가르치는건지 ㅋㅋ 오히려 고구려 문화가 일본에 영향을 끼친 것이 정설.
꽃피는봄 20-05-29 08:47
   
고조선 부여 백제 신라 가야등 빠졌네...
궤도 20-05-29 08:58
   
잘 봤습니다.
봐도될란지 20-05-29 09:01
   
뭔 오버사이즈가 19년부터 유행? 15,16년 부터 아닌가요?
황악사 20-05-29 09:09
   
잘 봤습니다.
미로먀ㅡ 20-05-29 09:30
   
아마 저 때는 기후가 춥지 않았을까요 고구려 고려 때쯤 소빙하기?였다고 본 거 같기도 해서
발해멸망전후 백두산도 터졋다 하고 그래서 옷 품이 넉넉했을수도 있다고봅니다
불짬뽕 20-05-29 09:35
   
한복 스타일 교북이 멋질거라는 느낌이드는 이유가 본문이네요~
드르렁 20-05-29 09:53
   
조선은 전기 후기만 나누는게 아니라 중기 복장도 넣어야 하는데 말이죠.
조선중기의 저고리가 가장 적당한 길이죠.
15세기에는 저고리가 너무 길었고 무엇보다 아직 왕조 초기라서 고려시대 복장과 큰 차이가 없었고,
19세기는 저고리가 너무 짧았고.
eradicate 20-05-29 17:05
   
일본이 고려나 고구려에 영향을 줬다니 저 댓글을 조상님들이 봤다면 얼마나 어이 없었으려나
훈도시나 걸치고 다니던 놈들이 무슨 ㅋㅋ
carlitos36 20-05-29 18:43
   
잘 봤습니다
채고 20-05-31 01:20
   
당나라 사신도에 옷이 아닌 천떼기 몸에 두르고 온게 어느 나라더라? 신발도 없어 보였는데 말이지?
푸로롱 20-05-31 18:07
   
쪽바리들은 걍 코스프레나 하셔
병든성기사 20-05-31 22:37
   
막판 쪽발이 색히... ㅋ 발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