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19세기 전까지 독립적인 왕국으로 왕권이 강한 나라였음
-일본은 근대화 전까지 한국에게 공물을 바치던 국가였음.
-한국은 557년간 만주를 통치했음
-한국은 1910년까지 지도에서 지워진 적이 없음
한국은 86년간 몽골의 속국이었지만 이때를 제외하고는 한일합병이 있기 전까지
2000년간 동아시아에서 독립된 왕국으로서 강력한 왕권을 가진 나라였음.
"이번 전시에서 필자가 가장 오랫동안 관찰한 유물은 '나팔형 청동기'이다. 글자 그대로 나팔 모양을 닮은 청동기인데 암석 거푸집이 아니라 밀납 원체를 사용한 제작이다. 흔히 '실납법'이 라고 한다. 이와 흡사한 청동기는 놀랍게도 만주 심양의 정가와자 유적에서 출토된 바 있다. 정가와자 유적, 특히 3319호는 자타가 공인하는 고조선의 왕묘이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한반도의 청동기문화가 만주의 고조선 청동기에 계보가 있음을 시사한다 ㅡ정인성 교수
거란 요제국(몽골도 거란에 철저히 제압 복속된 상태)에 쳐발려 연운 16주와 삥을 뜯기던 서토 송과는 달리
6차례의 크고 작은 대전을 치루던 고려는 강감찬이 귀주에서 요나라 정예 10만을 회전에서 육박전으로 쓸어버리면서
폭주하던 요나라를 꺾어버리자 동북 삼성 일대의 발해 후신 세력과 여진족들이 고려에 속속 입조, 흑룡강 일대까지 기미주 형식으로 북방 지역을 경영하게 됩니다.
그 경계선의 서북쪽은 당나라 이래로 압록(요하)을 경계로 하였고, 동북쪽은 선춘령을 경계로 하였다.
대개 서북쪽은 고구려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동북쪽은 고구려의 경계를 넘었다.
-《고려사》
(윤 5월) 갑자일에 거란에서 오윤판관 야율골타를 파견하여 동북 여진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 하였으나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고려사 5권, 현종 17년
(원풍 5년) '선조 시기에는 여진이 등주에 와서 항상 말을 팔았는데, 뒤에 마행도가 고려에 속하게 되어 막혀서 끊겨 오래도록 오지 않았다고 들었다.
지금 조정이 고려와 왕래를 하는데, (고려)왕에게 조서를 내려 여진이 만일 중국에 말을 팔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길을 허락하도록 하겠다.'라는 조서를 내렸다. 그러나 끝내 여진의 사신은 오지 않았다.
-속자치통감장편
“요양과 심양 일대는 본시 고려의 땅이요, 백성은 고려 백성이다 .
이제 의로운 군대가 들어와 백성을 어루만져 편안케 하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