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한국 고대사관련 자료 영상등을 보던중 강상원박사라는 한국 재야사학자분이
산스크리트어와 타밀어가 우리말과 유사성이 많다는 유튜브 영상을 본적이 있는데
그러한 유사성 때문인지 박사 스스로 아리랑의 해석을 산스크리트어와 타밀어의
단어뜻을 바탕으로 유추하는 이야기였고 그로인해 내용은 확대해석이 많이 들어간
개인적인 박사의 유추부분의 비중이 크고 개인적으로 아리랑의 해석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이 있었기에 반신반의했던 기억이 있었음
그럼에도 강상원박사분과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는 여러 재야학자분들에
설령 그 학술적 연구가 어떤 한지점에 국한되어 오류가 나고 어설프더라도
늘 존경하고 마음속으로 무시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이번 문제인 정부의 가야사 및 한국 고대사를 바로 새우자는 취지를
오히려 편하게 정부의 지원하에 연구하는 강단사학자 및 친일매국집단은
좋은 취지의 가야사 복원사업을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을 끌여와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가 일본 야마토국의 식민지였다는 개소리학설을
주장하며 국민의 혈세로 친일매국짓을 지금 현제에도 일삼고 있음
아는분들은 아시겠지만 주요 미디어 뉴스에서 이런 내용은 기사화하지 않으니
매국 강단사학자들이 지금 무슨짓을 하고있느지 모르는분이 많은게 열받음
얼마전 한국인의 시조 단군과 그의 철학 홍익인간을 교과서에서 삭제하려는
시도또한 있었음
이런 학자의 탈을쓴 강단사학매국노보다 차라리 여러 방향으로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는 재야학자나 이런 정말 얕은 좁은 영상이
오히려 진정 선녀같음 물론 재야학자중 깊고 바른 견해를 가진분도
적지않고 전부터 누누히 말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이나라에
동서양 많은 관심이 쏱아지는 이시대에 서구권 학자들의
동아시아 연구는 이미 반세기를 넘기고 깊이와 통찰또한 있음
한세기동안 서구는 중국과 일본의 거짓과 판타지로 물든 역사에서
속아왔고 이제는 동아시아 고대사를 연구하던 서구의 학자들 사이에서
풀리지않고 막혀있던 답답함이 그동안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한국 고대사를
통해 바른 퍼즐이 마춰지며 하나씩 재정립되가는 과정이 지금 현실임
과거 인터넷에서 환빠 국뽕이라는 부적적인 프레임으로 거짓 취급받던
한국 고대사적 흔적들이 지금 21세기에 와서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기사화되는것은
삼국 시대이전 고조선의 제국설 12국설을 학술적 연구도 없이 그저 덥으려고했던
매국강단사학자들의 프레임으로 우리 스스로도 그것들을 그저 허무맹랑하다
치부했기때문 그러한 거짓 프레임 고정관념에 휘둘리지않고 학문그대로
스스로 진위를 가리기위해 주변국들의 언어 풍습유적 사료등을 비교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기에 지금의 여러 단서들이 하나씩 모아지고 진실에 가깝게 다가가는것
각설하고 개인적으로 위의 영상내용의 대부분은 하나의 진실된 단서로
아시아 역사도 재대로 모르는 평범한 인도인의 시점의 상상인 부분이라
더 말할필요는 부분이지만
인류의 문명은 기술 철학등 인류의 많은 유무형의 성취는 좀더 가치있는것
유용한것이 개개인의 비교우위의 판한후에 이웃국가를 거쳐 먼 이국땅까지 퍼저나간다
이러한 좀더 유용한 문화적우위는 단순하게 주변에 농지가 많고 부유해서
좀더 단단한 돌이 채굴되는 지역에 사는 부족이 우위를 점하는것이 아닌
그전까지 수없이 쌓인 인류 조상들의 기술과 그 기술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토대가 있어야 가능해진다. 돌과 철의 가치를 이해하고 가공하고
다룰수있는 축적된 지혜 즉 지금시대에 밥벌이도 안된다며 싸구려 취급받는
철학 종교 문화등이 그 부족 그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것이다
그렇다면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던 리더는 고대에 어떻게 선출되었을까
그것을 유추할 많은 사서의 기록과 그 문화를 최근까지 이어오던 부족까지
전쟁으로 나라를 잃고 망명한 왕족과 신관집단은 먼 가야까지 건너와
가야의 김수로왕과 혈연관계를 맺고 자신들의 종교인 불교를 인정받았다
불교의 성인 석가모니의 뜻이 샤카족의 성자라는것을 아는분들이 많을것이다.
석가모니가 살았던 그시절엔 오히려 지리적으로 인도와 고조선은 더욱 가까웠다
석가모니는 아시다시피 샤카족의 왕자인데 왜 젊은 시절 홀로 떠돌며
깨닮음을 얻은후 다시 돌아왔을까
인디언들에게 추장은 가장 경험이 많고 현명한 자이고 계절별로 사냥터의
먹이의 이동경로 많은 사냥 경험으로 단련된 강인함과 부족원을 두루챙기며
살피는 인망과 지혜를 갖추어진자 그런 준비된 부족의 현자가 다음 추장으로
추대되는것이다. 우리와 이웃해 지내던 돌궐 말갈등의 유목집단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인디언들의 문화와 비슷했을것이다.
고대 아시아의 철학을 공부하다보면 유독 자주 언급되는것들중 하나는
리더의 자질에 관한부분이다. 그리고 그것들중 선양혹은 선향이라것이 있다.
이것은 리더가 혈현관계가 아닌 그 그룹에 선망받는 사람에게 다음 리더의
자리를 물려주는것이다. 고대에는 그저 혈연이라고 자리를 물려주는것을
부끄럽게 여겼고 이것이 전쟁의 사유가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왕족들은 적어도 대중들이 납득할만한 리더가 되기위한
지혜와 덕을 기르기위해 산속암자나 동굴같은곳으로 선행 고행을 떠나
자신을 수련하고 단련하였다한다. 오늘날에도 굳이
도교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산중 암자나 동굴에서 도를 딱는
기인들이 존재한다.
인도와 한국이 고대사에서 어떤 친숙한 관계인지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샤카족의 왕자 석가모니도 그러한
고대 아시아의 풍습속에 왕자의 신분으로 풍족한 성을떠나
수련한것이 아닐까 추론해본다.
최근 스탄(영토 땅)이란 단어가 들어간 나라들의 문화적 유사성이
연구되고 있고 학술적이든 흥미위주든 인터넷사에 정보가 퍼져가고있다
적어도 인도 전체는 아니더라도 한국어와 많은 언어적 동질성을 보이는것은
그저 쉽게 흥미위주로 웃고 넘어갈 간단한 문제는 아닌것이 분명하다.
아이고 참.. 당연히 같은 아시아끼리는 오랜 세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거죠. 그렇게 따지자면 아시아 전체가 서로 비슷하고 공통된 분모들 다 찾아낼수 있겠죠. 그나저나 인도에서 한국까지 걸어가려면 며칠이 걸렸을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요. 최소한 몇번은 호랑이나 산적과 조우했을 듯.
방갑네요 저도 김해김씨 사군파로 김수로왕의 많은 후손중 1인입니다.
가야는 패망한 고조선(부여계)에서 남하해 김수로왕을 주축으로한
12가문으로 새워진 나라로 아시다시피 김수로왕씨족은 고구려 신라
연합군에 크게 대패해 왕족에서 신라 귀족으로 흡수되었으며 일부는
일본으로 망명하여 야마토국을 새우고 후에 백제계와 연합하였으며
백강전투 패전후 1대 탠무천황이 가야계인것으로 추정되고있습니다.
그밖에도 고씨 천씨 왕씨 정씨등 고구려계로 알려진 성씨와 별개로
가야에도 왕씨집단이 있었고 전씨도 가야계 김해김 김해허씨처럼
같은 식구라고 합니다.
나라가 가찹게 붙어있었다면 의미가 확 다가오죠!
현 조선이 조선반도가 아닌 중국대륙에 신라 가야 백제 고구려 그러면 느낌옵니다
베트남 왕자도 나라 망하고 고려로 왔다는데 바로 옆쪽이였으면 쉽게오죠
멀리 빙빙돌아 현 조선반도로 오기가 쉽지가 안은데
허황후도 보주에서 왔다는데 사천성인지 보주가있지요
그곳에서 배타고 양자강을 따라 오다보면 신라 백제 가야 쉽게 오죠
허황옥 혹은 허황후는 인도 아유타국 혹은 그 근처 나라에서 온것이 우리 역사에도 정설인데
뭔 사천성 보주?... 허황옥이 그럼 중국 출신이다 이거요? 근거는?...
그리고 조선반도는 또 뭐야? 한반도지... 한반도를 조선반도 라고 하는 사람은 중국 조선족
혹은 북한, 일본 사람 밖에 없는데...
찾아보니 그런썰이 있기는 한데... 그건 어느대학 교수 혼자만의 주장이지 검증된거는 없네요.
글쎄요...ㅡ.ㅡ;;;;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으로는 한국정부와 좋은건 맞지만요.
하지만 국가 대 국가가 아닌 그냥 일반인 대 일반인으로 따지면 중국보다 더한게 인도인입니다.
제가 중국 광동성 심천 룡강에서 1년 4개월 파견 갔다온 사람인데
인도 배낭 여행가서 중국에서 잘 지냈던 저로서도..게다가 중국처럼 억지로 간게 아닌 나 스스로 선택해서 여행을 간 인도인데도 불구하고 제가 인도인들한테 두손두발 다 들고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싶다는 생각을 만들게 한 사람들이 인도인이였습니다.
허황후가 가지고 온 인도 석탑이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데 지진에 무너져서 정확한 석탑의 형태를 몰라서 대충 쌓아 놨더라고요 전에 허황후 다큐 때 석탑 모양이 확실히 우리나라 것과는 확 다르더라고요 그런게 우리나라에 남아 있으니 전설은 아닌것 같고 실제 어떠한 이유에서건 저당시 인도의 허황후 세력이 한국으로 넘어 온건 맞는 모양입니다
신라는 폐르시아 사산왕조가 멸망할때 왕의 아들이 당나라로 망명후 아랍왕조가 계속 추척하자 신라로 와
파라랑 공주와 결혼후 그 사이에 태어난 아들 [페레이둔]이 페르시아를 되찾는 서사시가 있죠
현재도 연구중인데 이란봉쇄로 힘들게 진행중 이라고 하네요
쿠쉬나메 서사시
처용이 망명한 왕자라는 설이 있더군요
소노부를 생각해 보세요. 고구려에서 밀려난 귀족들이 어디로 갔을까요?
그들은 남으로 내려와 백제를 세웠습니다.
어느 나라고 권력 투쟁에 의해 귀족들이 밀려나는 경우가 잇습니다. 소노부가 그렇고 석탈해나 허황옥도 그럴거에요.
위만은 철기를 썼어요. 그래서 고조선을 접수했죠.
소노부도 강력한 기병을 가졌을거에요. 그래서 마한의 일부를 접수하고 백제를 세웠죠.
허황옥은 아마도 군사력은 없었을 겁니다. 있었다면 김수로왕과 싸웠을거에요.
외부의 거대 세력을 반기는 기득권층은 없습니다. 뒤집힐수도 있거든요.
이들이 선택한건 결혼입니다.
허황옥은 아마도.. 인도 어딘가에서 밀려났을거에요.
그래서 잔당을 규합하여 떠돌다 가야에 도착했을겁니다.
이들은 멀리 떠나온 만큼 군사력은 없었을겁니다.
대신 이들이 배를 타고 온만큼의 경험과 현지 도시국가들과의 인연이 있었을거에요.
아마 이걸로 김수로왕을 설득했을겁니다.
우리와 손잡으면 어마어마한 무역을 통해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김수로왕은 그들의 말만 믿을 순 없어요. 아마도 상당한 재화를 바쳤을거고
이후에도 재화를 창출했을겁니다. 어쩌면 가야의 철.. 제철 기술을 전수해줬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김수로왕은 그들과 결혼하여 세력을 합친겁니다.
김해 허씨가 탄생한 배경은.. 아마도 그들이 엄청난 세력이었다는걸 의미할거에요.
군사력은 없지만 스스로의 씨족을 만들 수 있을만큼의 대단한 세력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