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한국의 프라이드 치킨이 현재 어떻게 그 명성을 얻었는지 장문의 칼럼에 관한 글입니다.
참고로 댓글은 많지 않았습니다.
<주제>
“치킨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신발도 튀기면 맛있죠.” 도용수 셰프(32)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얇게 튀김옷을 입힌 치킨을 튀기려,
통 안의 기름이 적정 온도까지 다다르길 기다리고 있었다.
많은 한국인들이 으레 그런 것처럼, 용 씨 또한 가족들과 함께
어린 시절에 치킨을 먹으며 자란 기억이 있다. 그의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쯤
가족과 나눠 먹으려 바삭하고 육즙이 가득한 치킨 봉지를 손에 들고 퇴근했다고 용 씨는 말했다.
“아버지가 치킨을 들고 오실 때면 마치 잔치 기분이었어요. 그 날은 가족들이 단체로 포식하는 날이었죠.”
1970년 한국에서 처음 인기를 끌었을 때만 해도 치킨은 가족들을
한 자리로 모이게 하는 특별한 날의 요리였다.
오늘날 치킨은 가끔 차가운 맥주나 소주의 안줏거리로,
일주일 7일 중 어느 날에도 먹을 수 있는 흔한 음식이 되었다.
빕 앤 합스, 진주, 유행 등 홍콩의 모던 한식 전문점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용씨는 한국식 치킨 레시피를 완성하기 위해 몇 년을 연구하며 보냈다.
한국식 치킨은 또 다른 KFC(Korean Fried Chicken)으로도 불리는데,
하루 동안 염지한 후 밀가루 반죽과 직접 만든 치킨 파우더를 입히는 것이 특징이다.
용 씨는 현재 나이트라이프로 유명한 홍콩 란콰이펑 지구의
이자카야 ‘사일렌시오’에서 총괄 셰프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의 치킨은 식감을 더욱 바삭하게 하는 역할을 하며,
놀랍게도 미국식 치킨보다 덜 기름진 2중 튀김 방식으로
해외에서도 유명하다고 용 씨는 말한다.
기름이 149도에 도달하면 용 씨는 치킨 조각을 3분 동안 튀긴다.
육즙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다 튀겨진 조각들은 잠시 휴지시키고,
기름이 빠지는 사이에 기름통의 온도를 204도까지 올린다.
한 차례 더 튀기면 아름다운 황금빛의 바삭바삭한 껍질이 만들어진다.
“한 번만 튀기면 기름을 그대로 저장하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기름져요.
그러면 튀김옷이 한 번 익은 상태로, 기름을 덜 흡수하기 때문에
그 상태에서 한 번 더 튀깁니다. 그렇게 하면 씹는 순간 기름진 맛이 덜하죠.”
그 결과는 겉으론 바삭바삭한 껍질과 속으론 부드러운 고기의 조화다.
한국의 치킨은 전세계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맛있고 바삭바삭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뼈째 조각내어 반죽을 입히고 튀긴 치킨의 역사는
그닥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 기원에 관한 단서가 몇 개 남아 있을 뿐이다.
아드리안 밀러(50)은 제임스 비어드 재단상(요리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상)을
수여받은 책, 『소울 푸드: 미국 요리의 놀라운 역사』의 저자이자 식문화 역사 연구자다.
그는 튀긴 닭 요리가 가장 먼저 등장한 곳은 한나 글래스의 책, 『쉽게 풀어 쓴 조리의 예술』에서라고 말한다.
영국과 그 식민지, 특히 미국의 남부 지역에서 인기를 끈 그 책의 레시피는
“토막낸 닭고기 조각을 밀가루로 감싸고 돼지기름에 튀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1700년대 후반과 1800년대 초 미국 남부 지역에서 프라이드 치킨이
점점 더 자주 식탁에 오르게 되었지만, 밀러는 몇몇 사람들이 지레짐작하듯이
서아프리카에서 온 노예들이 대서양 노예 무역을 통해
미국에 치킨을 들여온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저도 치킨은 서아프리카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역대 가장 영광스러운 음식 중 하나이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그런 근거는 별로 찾아볼 수 없네요.”
아프리카 전통과 미국 식문화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그는 말했다.
“서아프리카인들은 닭을 이용한 요리에 익숙했지만,
미국에서의 프라이드 치킨과 서아프리카식 닭찜 요리는 그다지 연관성이 크지 않습니다.”
밀러 씨는 프라이드 치킨이 미 남부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 된 이유는
가금류가 흔했기 때문이며, 백인층과 흑인 노예층 모두
닭 요리에 익숙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19세기, 프라이드 치킨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남부 지역과 프라이드 치킨의 연결성이 높아짐에 따라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그를 연결짓는 인종차별적 편견도 생겨난 것이다.
그들은 미디어에서 닭 서리범이나 프라이드 치킨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부류로 그려졌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수준 낮고 미개하다는 인식을 심으려 한
비인간적 대중문화 캠페인이었죠. 대중문화에서는 대개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특정 음식을 먹고 있는 이미지를 통해 그들이 지적 존재보다는
본능적 욕구에 충실하다는 인상을 강화하려고 했어요.”
“음식 면에서 가장 널리 쓰인 두 이미지를 뽑자면 프라이드 치킨과 수박입니다.
놀랍게도 당시 다수의 백인은 흑인들만큼이나 그 음식을 즐겨 먹었는데도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그 생각과 그 두 음식을 아프리카계와 연결짓는
부정적 인식은 그때 정착되어 아직까지도 남아 있죠.”
20세기 전, 튀긴 닭 요리는 특별한 날에나 먹을 수 있는 호화로운 음식이었다.
비록 조리법은 간단했지만, 모든 가정에 치킨 요리에 필요한 조리도구가
구비되어 있거나 마음대로 구매할 수 있을 만큼 닭고기가 저렴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가금류 목축 시스템이 크게 개선되면서, 그 기름진 환상의 음식을
훨씬 쉽게 접할 수 있게 만든 한 사람이 있었다.
1952년, 할랜드 샌더스 대령은 켄터키 주, 노스 코빈에 최초의 KFC 매장을 열었다.
그는 소박한 가정식을 상업화시킴으로써 튀긴 닭 요리에 담긴 사랑을 나라 전체,
이후 전 세계로 전파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이 동북아시아까지 퍼진 것일까?
한국은 한국전쟁(1950-53) 진행 중 처음 미국식 프라이드 치킨을 접하게 되었다.
1940년 후반과 1950년 초반 한국에 배치된 미군들에 의해 닭을 조각내어
반죽을 입히고 튀기는 방식이 전파된 것이다.
그때 당시만 해도 한국의 닭 요리는 삶는 방식이 전부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몇 십 년이 지나자 미국식 프라이드 치킨은
한국에서 급속히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전쟁은 한국에 가난을 남겼다. 1960년대 직장인들은 월급날에
“노란 봉지 치킨”을 집으로 사들고 오곤 했다. 시장에서 판매하는 구운 회전 통닭이었다.
그 값이 매우 비쌌던 나머지 통닭은 천천히 음미해야 할 음식이었으며
굉장한 사치로 여겨졌다. 용 씨는 여전히 이 “노란 봉지 치킨”에 대한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많으며, 이러한 향수가 한국의 프라이드 치킨 산업이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말한다.
1970년 초반에는 중대한 변화가 두 번 일어났다. 값싼 식용유가 보편화되었고
닭고기 또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변화는 가정에서 하여금 닭고기를 양념하고 밀가루 옷을 입혀
기름에 튀기는, 치킨을 요리하는 일련의 과정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프라이드 치킨은 1977년, 서울의 신세계 백화점 지하 1층에서
림스치킨이 개점하면서 보편화되었다.
림스치킨의 창업주 유석호 씨는 1975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KFC의 조각 치킨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그는 실험 끝에 6조각으로 나뉜 ‘인삼치킨’을 개발했다.
림스치킨은 한국 최초의 프라이드 치킨 프랜차이즈가 되었고, KFC가 1984년 한국에 진출하면서 프라이드 치킨의 수요는 더 커져갔다. 한국 전쟁 때 듣거나 먹어 본 치킨을 실제로 접할 창구가 늘어난 것이다. KFC가 책정한 높은 가격에도 불과하고 용 씨는 맛 좋은 미국의 패스트 푸드를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할 사람이 많았다고 말한다.
1970년 후반과 1980년 초의 수요가 커지면서 많은 사업가들이 창업전선에 나섰다.
치열한 경쟁의 결과로 조리법이 하나로 통일되기보다는 다양한 레시피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후 다양한 조리 방법과 특제 소스가 등장했다. 카레 맛,
치즈 가루가 뿌려진 ‘스노윙’, 마늘 간장 소스에 재운 치킨, 오븐 구이 치킨,
칠리 소스로 뒤덮인 치킨, 심지어 한 마리를 전부 튀겼지면
그 절반만 소스를 뿌린 ‘반반 치킨’까지 모습을 보였다.
현재 한국에는 잘 알려진 치킨 브랜드만 15곳이 있다. 잘 알려진 곳으로는
페리카나 치킨, 멕시카나 치킨, 제너시스 BBQ, 교촌 치킨 등이 있다.
용 씨는 또한 2000대 별에서 온 그대 등의 한국 드라마와
2002 월드컵의 여파로 치킨, 특히 치킨과 맥주를 같이 먹는 유행이 가속화됐다고 말한다.
이러한 콤보를 부르는 이름으로 ‘치맥’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한국경제신문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2월(2019)만 해도 한국의 치킨점은
87,000곳에 달했다. 전세계적으로 맥도날드의 지점 수는 38,000곳,
서브웨이는 43,000곳이다.
오늘날 한국의 치킨 열풍은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의 치킨 전문 체인점이 미국에서도 영업하는 실정이다.
용 씨는 말한다. “우리 한국인들이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을 오늘날의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이,
또 전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이 정말 행복하고 기쁩니다.”
<댓글>
Dillard
한국 치킨은 미국 KFC보다 훨씬 낫지…
Just another expat
TV 프로그램 때문에 그래. 그런데 최근 굽네치킨 옆을 지날 때마다
사람이 거의 없는 듯 보여. 반짝 유행이야
Great Sage
너무 좋아…
CenterBalance
한국에 관세 전쟁 선포해야겠네.
어떻게 트럼프가 가장 좋아하는 “지적 재산”을 훔칠 수 있지?
번역기자:거북이조아
해외 네티즌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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