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당시 중공군의 5차 대공세를 임진강 전투에서 막아내어 서울을 사수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영국군의 영웅들.
(당시 중공군과의 병력비는 1 대 5의 열세였음)
위의 할배는 당시 포병이었고 밑의 샘 머서 씨는 중공군에게 포위되어 전멸당해서 포로가 되었던 글로스터 대대 소속이었음.
샘 머서 할배는 당시 중공군의 공격으로 한 눈과 한쪽 다리를 잃었음. 저 눈은 의안임.
약 십년전에 이 양반이 다른 영국군 참전용사들과 함께 전쟁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자신들이 싸웠던 옛날의 격전지를 찾아갔음.
그런데 다른 할배들은 다 준비되어있던 차로 오르는데, 이 할배 혼자만
그 격전지였던 고지를 저 불편한 몸으로 의족을 끌고서 끝까지 혼자 걸어 올라갔음.
뭐 얼마나 감정이 복받혔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가는....
'단 한순간도 (참전했던 것을)후회하지 않는다.'... 영국인 기자 새먼과의 인터뷰에서 저 할배가 한 코멘트임.
당시 대통령이 국민을 속였다는 건 좀 논란의 여지가 있음. 개전초, 북한의 침공상황 판단 여부부터 갈팡질팡이었음. 이미 철수해버린 미국의 북한의 전력에 대한 판단부터 엄청난 착오가 있었음.
북한 인민군의 침공에 하도 빠른 속도로 국군이 무너지니 참모총창 채병덕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빨리 후퇴를 지시해서 전력을 보존해야 하는 상황에도 무모하게 버텼고 국방장관 신성모도 상황판단 못해서 대국을 완전히 그르쳤음.
엄밀히 말하면 당시 전황에 대한 헛다리 짚어 신속하게 했어야 할 전황의 발표, 그리고 재빠른 서울시민 후퇴를 못한건 이 두 사람 탓이 가장 큼.
그리고 당시 대통령 이승만이 6.25때 자신만 살기 위해 행동했다는 건 그의 행적을 보면 사실과 다름. 나름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노력했음.
6.25나자 그가 국민들보다 먼저 한강 다리 넘어 피신했다고 비난하는 건 그가 버티고 있다가 인민군들 손에 사로잡히면 어찌 되겠나를 전혀 생각못하는 사고방식임.
지휘계통부터 안전한 곳에 있어야 하는건 전쟁의 기본임.
6.25때 미군의 딘 소장이라고 장성 하나가 인민군에게 포로가 되어 미군은 큰 대가를 치르고 협상해서 그를 빼내야 했음.
아군이 볼때는 상당히 한심하고 멍청한 장군인 셈인데 (피치 못할 상황이래도 전쟁에서 이런 고위층이 포로된다는것은...) 글쎄 한국에서는 칭찬을 하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 싶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