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다음이 교토였었지??
뭐 연합국이 포츠담선언에서 일본에 무조건항복을 하라는 통보를 했고
일본 내각은 묵살(mokusatsu)이라는 말을 답변을 잠시 미루겠다라는 뜻으로 말한걸 무시한다라는 뜻으로 번역되어(일본에선 묵살이란 단어를 답변을 미룬다는 뜻으로도 사용하나 봄..) 트루먼이 살 기회를 줘도 끝까지 싸우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바로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리틀보이를 떨구라고 지시했다고 함..
웃긴건 일본내에서 히로시마에 한방 쳐맞았을때까지 항복할지 계속 싸울지 고민을 하였고 기본입장은 싸운다였었음.. 개길테면 계속 개겨보란 의미로 미국은 8월 9일 나가사키에 팻맨을 떨궈버림 만약 이때 한번 더 저항할경우 교토에 떨구고 일본이란 나라를 지도상에서 지워버릴 계획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함..
정부관리들이 멍청하고 형식등에만 너무 매달리면 국민들이 안죽을것도 죽게만든다는걸 이런 사례로 보고 배워야 함..
솔직히..히로시마원폭 맞고도..
나까사키 떨어지기전 까지..
물밑협상은 전쟁을 일으킨 결정의 전범들 재판에 회부 면책권와 ,
특히 일왕 보존 면제권이었죠.
무조건 항복하기 전까지 그것 협상 하느라...
일왕의 전범재판 제외는.... 나까사키 시민목숨으로 담보로 얻어낸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