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초기에 상단 찌르기에 많이 당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일본 검술엔 이렇다할 방어 기술이 없어요.
(칼의 성능이 좋지 못해서 영화에서 처럼 챙챙 거리는 찬바라식 격검은 거의 드물죠.
찬바라 몇 번에 칼이 부러지는 게 예사였거든요.)
우리가 소위 방어 기술이라고 배우는 기술들이 근대 100여년 사이에 보완된 기술들.
무엇보다도 우리가 '검'이라고 믿고 있는, 혹은 생각하는 '죽도' 에 맞춰 기술이 바뀝니다.
이와이(거합)가 있지 않냐 라고 물어볼지 모르지만,
소위 거합이란 건 낭만시대 검술로 전장에서의 검술관 온도차가 있습니다.
중갑입고 방패를 든 기사에게 저런기술들은 안통합니다. 그래서 프레일이나 모닝스타, 해머, 클레이모어 같이 날이 아닌 무게로 내리치는 무기가 발달합니다. 중갑이나 저런 무기들은 무게가 많이 나가기 때문에 느리고 둔탁합니다.
그래서 가볍고 민첩한 기동력위주의 치고 빠지기식 몽골 기병에게 개박살 나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어제 윤두수ㆍ김명원이 장사 4백여 인을 얻어 밤에 강을 건너 적의 병영을 돌파하여 들어가 적을 많이 죽였습니다. 다만 새벽녘에 싸움을 돋워 일진일퇴하면서 정신없이 싸우고 있을 적에 날이 이미 밝았고, 적의 대군이 밀려들어와서 우리 군대는 질서없이 배를 타고 건너는데 적이 추격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장사 임욱경(任旭景) ㆍ민여호(閔汝虎) 등이 대동강변에 이르러서 적 한 놈을 거꾸로 잡고 좌우로 마구 휘두르니;;;, 적은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였습니다. 격살한 적이 10여 명이나 되었는데, 끝내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도원수는 연광정 위에서 이것을 목격하고 통탄하면서 대대적으로 밤을 무릅쓰고 강을 건너가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기재사초 하(寄齋史草下) 임진일록 2(壬辰日錄二)
선조 25년 6월 15일
---------------------------------------------------------------
우리 선조님들은 검 대신 왜놈을 잡고 휘둘렀네요 ㅋㅋㅋㅋ
그다지 잘 알려지지않았지만 김해부사 이종인도 있었습니다 제2차진주성전투때 가장 많은 활약을 한 장수데 활로 수십명의왜놈들을 쏘아 죽이고 단병전에서도 왜놈들상대로 절대 안밀렸고 창과칼로 쳐죽인 왜놈들이 산처럼 쌓였고 너무 많아서 명나라사신조차 깜짝 놀랐다고 거의 수백명의왜놈들을 죽인셈 죽을때까지 싸워다고함 또 힘도 장사였다고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