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검은 그 형태와 그로 인한 유용성이 충격적이었던 거지
왜검의 품질(강도)이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초반 몇 번만 직접 수입하고 나중에는 조선이나 명이나 직접 만들었으니까요.
접쇠 방식도 일반적인 철에서는 하나 안하나 차이가 없고
잘못하면 오히려 특정부분에만 피로도가 집중되어 전체적인 강도가 하락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왜검이 충격적이었던 건 왜검이라는 무기보다도 '근접전' 때문입니다.
조선은 후방은 원거리 전투가 대부분에 전방은 기마, 궁기마가 주력이었고
명도 주력부대는 포 쏘고 기마가 쓸고가면 보병은 마무리하는 형태였습니다.
(왜구들이 침략하던 곳들은 명 입장에서는 주력부대가 없는 후방이라 피해가 많았을 뿐
가끔 명이 북방의 주력부대 보냈을 때는 쉽게 이겼습니다.)
조선이나 명이나 대규모 근접전이 없어진 판국에 뛰어난 근접전을 자랑하는 일본과
붙으니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죠.
호리모노개념이.
금속공예에서 인그레빙인데.당연 열풀림을 해야함..
열처리가 금속의 탄소 함유량을 높여. 강도를 높이는 방법이라면.
열풀림은 강도를 낮춰,조각이 가능하게 하느데..문제는 전체적인 강도에도 영향을 미침..
그래선 실용목적 에선 주로 안쓰고 ..장식용검에나 주로 쓰임....
아니면 도신부위에는 안쓰는게..정답.
솔직히 칼도 창도 길수록 무거워지는데.. 당장 내전으로 전국시대가 주구장창 이어진 일본이야 창칼이 갈수록 길어졌지만.. 조선이나 명나라는 길어져봐야 평상시 들고다니기 무겁기만한데 길어질 이유가 없죠.
그래도 확실한건 접전이 붙으면 긴쪽이 유리합니다. 그래서 임진왜란때도 집단전술이나 전쟁숙련도 등에서도 밀렸지만 리치에서도 감당이 안됐죠. 멀리서 싸우면 조총을 갈기고 접근하면 창길이가 너무 길고.. 더 가까이 붙어도 칼길이가 더 길어서.. 어찌보면 초반에 붙을때마다 깨진 이유를 알듯함. 그나마 우세할 기병대는 북방에 있는데다 군대천시로 제대로 갖춰져 있지도 않았고..
장비가 구리다는게 어떻게 일본을 저평가하는 것이 될까요?? 그만큼 일본무사와 병사들이 뛰어났다는 걸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요?? 부족한 무기를 무기술과 병법등으로 극복한것이니까..
오히려 일본도가 좋아서 이겼다고 하는게 더 치욕일텐데.. 일뽕들은 그건 모르고 무조건 빨아대니..
어쩌라고요? 영상 말고 댓글 이야기하는 거 아닙니까.
여기 댓글들을 보면 일본도가 강도가 약하다는게 논쟁의 핵심인데
님은 뜬금없이 서양이 동양을 무시한다는 논점일탈을 하고 계시네요.
그런다고 일본도가 더 품질이 좋아지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같은 동양권 칼이랑 붙어도 일본도가 깨집니다.
서양애들한테 무시당할만 하네요.
잘은 모르지만 얼핏 기억하기로
쇠를 두드리고 찬물에 식히는 과정인 담금질이 가장 중요하다고 들은 것 같네요.
이걸 많이 반복할수록 쇠안에 공기(?)가 빠져나가 단단해진다고 했던가?
다마스커스 무늬도 이런 단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데 2가지 이상의 금속을 섞어서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몽골의 칼은 유럽의 칼에 비해서 엄청 형편없었읍니다..몽골이 유럽을 침입시 폴란드에서 한번은 다리위에서 기마술도 소용없는 육탄전을 한번 벌인일이 있었는데 몽골군이 월등히 많았지만 다리위에서는 순서대로 싸워야 하기때문에 실제로는 포위공격이 불가능해서 그야말로 다리위 칼싸움 다이다이가 벌어졌는데 유럽기사들의 장검에 완전 거의 몰살을 당할정도로 져버린적이 있읍니다..
그야말로 한번도 진적없는 몽골이 충격을 받아서 다음부터는 역시 그들이 전통적인 기마술..달리면서 활쏘고 따라오면 약올리면서 도망가면서 유인해서 몰살전법으로 복귀했죠..
당시 유럽의 칼이 얼마나 튼튼하고 강한지 보여주는 일화라고 합니다..
보병과 기사를 학살하던 기병으로 몽골 기병은 이길수가 없었어요.
십자노에 장창에 대검 갑옷.. 순발력보단 힘좋고 가속도 좋은 대형마..중세유럽기마병
접근전을 벌이던 장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몽골궁과 가죽옷, 작은말로 순발력있게 움직이며 싸우던 몽골기마병.. 상성이.. 거의 최악인데;;
몽골의 칼이 유럽의 칼에 비해서 형편없었다고 적으시면서 다리위에서 순서대로...;
다리위에서 순서대로라.. 일본 만화나 게임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네요..;;
몽골군은 원정이라 병력을 현지조달로 충원을 해야했기에 최대한 피해를 줄이는 전술로 나갔고, 그게 바로 몽골궁이 큰 역할을 했지요. 다리위에서 굳이 순서대로 싸울 이유도 없었고, 유럽의 십자궁에 비해 워낙 연사력이 좋은 몽골궁이 있었기에 그런식의 전투라면 유럽이 이길수가 없어요..
다리위에서의 싸움이라면 장창 박아놓고 항전하면서 싸운덕에 진군하기 어려워진 몽골군이 새로 다리놓거나 물살 약한곳으로 도하해서 간신히 이긴건 있긴한데;; 어떤 전투를 말씀하시는건지요.
강철을 선철로 감싸서 강도와 유연성을 동시에 노리는 기술(관강법)은
울나라선 삼국시대 쓰던 기술임...
은 제련도 못해서 조선에 호구 잡힌 나라가 일본인데 기술은 무슨....
일본 문화나 기술은 명치유신 하고 수십년 지나서야 들여다 볼만 해 졌지...
그 전까진 동아시아에선 변두리 저변 문화에 불과했음
수적에서 딸리고 200년간 유례없는 평화기간때문에 큰전쟁이 없었던게 조선이였고 그렇니 당연히 실전경험 즉 전투경험 부족 일본검술이 의외로 뛰어났어 밀린것 칼을 아주 다루었어 검자체가 튼튼했어가 아니라 또 조선은 검술보다 궁술을 더 선호했음 활쏘기 칼은 그냥 보조무기 물론 일본도 마찬가지고 또 조선은 화포를 운용했기때문에 검술을 중요시 안했습니다 그리고 칼길이에서 조선의환도가 일본도보다 훨씬 짦았기때문에 조선군이 초창기에 엄청 밀렸죠
삼국시대만 보면 병사들의 실용적인 무기가 다양했죠.제련기술 경쟁 장인등등 뛰어났을것임. 그런데 조선초 빼고 그이후 답도 없음.모든게 초기화. 조선도라는것도 호의무사 장수 귀족들 특화품.딱 이시에 조선 중기 이땐 일본은 거의 기술적요소가 상당히 높지 않았을까. 이시기가 일본도 유행탄시기. 존네 호구 빙딱같은 도면 유행을 탈이유가없음 중국 조선 귀족장수들이 얼마나 우월감과 눈이 높았을텐데. 즉 시기와 장소 상황에 따라 틀리지않을까추특해봄
헝가리라고요? 폴란드가 아닌가 너무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서 기억이 가물가물..
사요강 다리전투가 맞는것 같네요..그리고 섣부르게 도하하려다가 몽골군이 병력을 좀 잃은것도 맞고요..나중에
다시 탈환한것도 맞고요..헝가리 연합군이 모히전투에서 몰살당한것이고..단,다리의 폭이 좁아서 계속 소규모 전투가 지속된건 맞고요..무적몽골군의 처음패배(?)인것 같고 몽골군에도 대인각개전투의 약점이 있다라고 평가글도 읽은듯 한데 내가 좀 확대해석한듯..쏘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