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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7-28 23:25
[유머] 임진왜란때 조선군 멘붕
 글쓴이 : jmin87
조회 : 6,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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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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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콜레라 18-07-28 23:43
   
일본의 활은 사거리와 위력 뿐만 아니라 시위를 당기고 쏘는 속도 마저 엄청 느려서
활을 쏘던 시대가 계속 되었다면 임진왜란 초기에 우리가 그리 털리진 않았겠죠.
포루투갈에서 총이 일본에 전해지고 일본의 강점인 복제능력을 발휘해서 조악한 총이지만 일본은 단기간에 전세계에서 가장 총기를 많이 보유한 국가가 되고 그 총이 조선 침략에 고스란히 쓰였죠.
     
킁킁 18-07-29 00:02
   
일본이 서강에 털리지 않았다면 임진왜란이 일어날 일도 없었겠죠.
          
원형 18-07-29 05:42
   
한국에서 강철제련 (총제조가 가능해짐)
은 제련 (기술이 없어서 한국에서 해갔었음ㅊ- 전쟁자금)

이 둘만없어도 전쟁은 ㅋ

둘다 탐관오리가 넘김
               
포미 18-07-29 06:04
   
철제련은 몰라도 은제련, 연은분리법은 노비와 서자가 머리를 합해 만든 걸로 압니다.

조선은 노비와 서자가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만든 방법이라 되려 사장시키려 하자 일본으로 넘어갔다고 하더군요.....
레떼느님 18-07-28 23:53
   
저딴것들한테 총에 밀려 털린게 한반도의 한이다.
그 수 많은 역사서들이 불타 없어지고 역사를 날조 당하고 개조당한게 너무 분하다
영어탈피 18-07-29 00:12
   
임진왜란은 총에 밀려서 진게 아니라 그냥 못싸워서 진거임
총은 그시절에 전투에서 큰 영향을 끼치진 못했음
     
몽골메리 18-07-29 01:47
   
그거슨 진리
     
파랑고양이 18-07-29 04:42
   
결국 조선이 이겼으니 왜놈릐 개.새끼들이 도망갔지
          
원형 18-07-29 05:43
   
다 훔쳐가서 그걸로 컸음
     
재미있는 18-07-29 06:01
   
못 싸워서 진 것도 아니고,
쪽수 때문에 진 겁니다.

왜 tv 임진왜란을 그리 다루는데,
진짜 싸움에서 밀린 이유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지...

왜군 쪽수는 맨날 알려주면서,
아군 쪽수는 말 안 해서 그런가...

왜란 초기,
일본에서 1진 상륙군만 1만 6천명이었는데,
그들을 방어할,
경상도 수비병력은 부산성 1200명, 동래성 800명이 고작이었습니다. (두 성이 반대인가?)
부산성 뚫리고부터는, 한양까지 전체 수비병력은 2000명이 안 되었습니다.

참고로 한양의 수비병력도 포도청 포졸까지 동원해도 3천명이었습니다.
한반도 남부 병력 탈타 털어도 왜군이 일개 '선봉대' 병력의 반도 안 된 것이죠.

참고로,
일본의 1만 6천명은 1진입니다.
그 병력이 총병력이어도 조선의 명운이 왔다갔다 할 텐데, 고작 선봉대였지요.

부산을 장악한 후 1진에서 7진까지 연달아 밀려오고,
보급부대까지 오는데,
총 병력이 14만명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조선의 총 병력은 2만명이 안 되었습니다.

무려 7배 차이지요...

신립이 북방의 병력 싹싹 끌고 내려오고, 평양, 한양, 충주 등에서 징집을 했는데도,
그 병력이 고작 8천명 남짓이었습니다.

조선의 명운을 걸고, 한양 방어하겠다고 긁어 모은 병력이 8천명이었단 말이지요...
왜군 선봉대 병력의 절반 밖에 안 됩니다...

물론,
뒤늦게 '근왕병'이라고 전라도 관찰사가 농민들 싹싹 모아서 5만명을 만들긴하는데,
다들 알다시피 곡괭이, 낫 들고 모인, 편제도 없이(중대장급 장교도 없이) 한덩이로 모이기만 한 5만 명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난민떼나 다름 없지요.

관찰사도 그걸 알고 미적미적 거리지요. 싸움 100% 털린다고..
역시나 왜군 1200 기마대한테 기습 받고 와해됩니다.

여튼,
임진왜란의 근본적인 패배 원인은 '병력수' 입니다.
2만대 14만의 싸움이에요.

16세기면 총과 대포가 나왔다지만, 아직은 냉병기가 주류인 시대였습니다.
무슨 무기하고 기술 타령합니까.
쪽수부터 7배가 차이 나는데...
     
kuijin 18-07-29 17:42
   
사실상 임진왜란의 조총병은 10%도 안됐습니다. 그냥 조선의 군사수가 과장되었고, 비리로 해먹은게 하도 많아서 게다가 세조가 군대를 이상하게 조져나서 문제가 발생한거.
다정한검객 18-07-29 00:20
   
복합궁만들 기술이 없어서 그런것입니다.
하늘나비야 18-07-29 00:53
   
조선군들이 보고 저것도 궁이라고 쯧쯧 이라고 했을 듯  하군요  별 실용성이 없는 활이라
샤루루 18-07-29 02:25
   
일본 궁은 쓸때 없이 너무 컸죠
궁은 중국 한국 몽골? 기타 외국 장궁? 등이 좋죠

일본에서 일반병이 궁수 상대하는게 다른나라에서 궁수 상대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죠
상대적으로 일본 궁수가 약해서

반대로? 일본에 제대로된 총이 보급 되면서 기존에 방식이 무너지게 되면서
180도 달라지게 됩니다.
첨인듯 18-07-29 06:24
   
쏘기 힘들거같은데 왜 위 아래 길이를 다르게 만들었을까요..??
신기하네..
     
ㅣㅏㅏ 18-07-30 12:54
   
위력을 높이기 위해 크게 만들어야 하는데 아래는 지들 키가 있어서 더 늘일수가 없으니 위로 늘리는거.
sunnylee 18-07-29 07:13
   
다큐보니.. 심지어 저걸 말타고 쏘면서..
가마 궁병 흉내 내던걸..보고 웃었던.. 쏘는게 느리고, 아주 근거리용..
ssal 18-07-29 07:52
   
위엣분들이 설명 잘 해주셧네요.. 진짜로 임진왜란을 조총때문에 밀렸다.. 이런식의 잘못된 상식은 없어졌으면 합니다 그당시 조총은 활보다 사거리 위력 연사속도 어느것하나 나은게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기병대에게 조총이 소리때문에 말이 놀라서 대열이 흐트러지는 그런 역할??? 그것말곤 없어요 조선이 밀린건 위엣분 말씀대로 쪽수.. 그리고 백병전입니다 그당시 왜 군은 백년가까이 전쟁을 하고 살아남은 최정예 군사 반면 조선은 백년넘도록 제대로된 전투 한번 못치뤄본 무늬만 군대... 오죽했으면 율곡이이가 왜란 직전 조선 군대상태를 보고  십만 양병설을 주장 했을 정도였을까요??

이러니 당연히 전투 기술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고 쪽수도 불리하니 초반에 그리 허무하게 밀린것입니다
이런거 다 무시해고 식민 사관으로 마치 왜가 그때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미개한 조선에 조총으로 압도했다.. 는식의 잘못된 역사관은 버려야 합니다
     
이랑랑량 18-07-29 09:56
   
비슷하지만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준비만 잘 되어있었다면, 쪽수는 문제가 아니였어요.
처음 동래성이나, 부산성에서 시간을 좀만 더 끌어줬다면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있었어요. 원래 공성보다는 수성이 더 쉬운법인데,  정말 너무 준비가 안되어있었어요.  2-3일사이에 두성이 무너져버리니까, 대비할 사이도 없이 서울로 일사천리로 직진해버린거죠. 만약 동래성 부산성에서 철저히 준비를 했어서 10-20일 끌어줬다면, 조전조정에서도 충분히 준비를 할 시간이 되었다고 보고, 또 조선수군도 후방에서 위협을 가할수 있었다고 봅니다. 쪽수 문제라기보다는 1. 윗님말씀대로 일본은 100년동안 전쟁을 해온 최정예군, 조선은 200년동안 전쟁한번 없었던 농민군 예비군, 즉 경험의 차이였고 2. 조총.. 물론 사거리나 연발에서 활보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일본은 그것을 전술로 극복했었습니다. 조선에서는 그것들을 처음 보니까 처음에 적응을 못했던것이고, 조선군이 거기에 적응을 해갈수록 조총의 위력은 약해졌습니다.  즉. 전체적으로 쪽수보다는 일본군의 경험과 전쟁전술에 조선이 처음에 밀린거고, 거기에 적응을 해가면서 차음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너울 18-07-29 08:39
   
군대가 적은 이유가,
그때 시대에 무관이나 병졸들이 제대로 대접 못받으니 하려는 사람이 없었던것도 있고.
물론 무력을 하찮게 여기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문관들이 군대쪽을 신경썼을리도 없고.
뭔 일 있으면 중국에 기대느라 제대로 된 병책이 남아 있을리도 없고.
한심한거지.
     
이랑랑량 18-07-29 10:00
   
그런데 평화의 시간이 오래되면 될수록, 군대라는 것에 투자가 덜 해지는고 전쟁에 둔감해지는게 사실입니다.
지금 전쟁난지 70년정도만 지났는데도 벌써 군감축한다, 군복무기간 줄인다, 어떻게든 군 안갈려고 하는 사람들 태반인데 당시 200년동안 전쟁한번 없었던 조선에서는 어땠겠습니까. 게다가 전문군인제도 아니고 농민 개병제였던 조선에서 대립제가 횡행한건 당연할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셀틱 18-07-29 22:33
   
백제와 신라가 세웠다고해도 무방할 일본(왜)의 활 역시 북방의 각궁이었음.
다만 일본의 기후적인 풍토상 각궁으로 대표되는 복합궁의 제조가 어렵고,
수입한다한들 그 형태를 유지하기 어려웠음.->아교가 습도에 녹아 조립된 형태가 풀어짐.
각설하고...
일본의 저 후진 활도 나름 지들 땅에서 가장 최적화되어 무기화한 형태임.
문화에는 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음.
그렇다고 일본놈들 활 후진게 바뀌진 않음.ㅋㅋ
서냥 18-07-31 12:16
   
신립이 천혜의 자연요새를 버리고 배수진을 친건 아군 꼬라지를 보니 싸우자마자 모랄빵나서 다 도망갈것 같으니 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듯~ 신립도 나름 북방에서 이름날린 장수인데.. 물론 자기 특기인 기마대 운용을 할 지형을 어차피 잘못 설정한 건 엄청난 실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