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천재성이 드러난것은 한산도 대첩에서 나오는 메카닉테란 이죠 ㅋ
벌처- 거북선
판옥선- 시즈탱크
안그래도 세계 최초로 바다에서 진형을 펼쳐 집단 함포전을 실행한 것만 해도 세계 해전술의 패러다임을 일거에 바꾼 역사적인 사건인데...
몸빵용 유닛까지 만들어서 시즈모드 할 시간까지 벌음 ㅋ
통과해서 돌파하면 되는데 수자기가 걸린 대장선이니 이순신 잡으려고 포위공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거기에다 멀직히 뒤에서 진?을 치고 있는 나머지 12척이 걸리기도 했을테고..
이순신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나 쫄았을 수도 있죠. 영화 명량같이...
거기에다 선봉장이 또 형이 이순신에게 죽은 구루지마 미치후사 이니...
더욱 놀라운점은 그렇게 포위당하고도 선봉 함대 박살내고, 뒤따라온 안위가 나중에 위기에 쳐하자 구하기도 하고
말 그대로 사단장이 탱크타고 무쌍찍음...
조선 측은 13 척이 아니라 이순신 장군의 좌선 1 척이 상대했다는 것이 진실.
전투 후반에야 나머지 전선이 참전.
그리고 왜군은 333 척이 아니라 130 여척이 진실.
좁은 해협에 333 척이 다 몰려 들어 전투를 할 수 있었던 상황이 아님.
130 여척이 수 척씩 순차적으로 이순신 장군의 좌선에 덤벼들었었고
나머지 200 여척은 해협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었음.
그러니 명량해전은 1척 대 130 여척의 해전으로 봐야 함.
그리고 난중일기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고.
이순신이 훌륭하긴 하지만 너무나 미화 됐음 당시 고도로 발달된 조선의 군사기술, 의병들의 노고를 모두 이순신의 업적으로 치환 하는것은 객관적 사실도 아니고 옳지도 않음, 당시 조선수군이 이길 수 있었던 가장 큰 변수는 함포죠 함포는 조선의 군사기술이지 이순신의 무기가 아닙니다. 이순신이 조선의 선박기술과 함포 기술이 없었다면 과연 저런 일들이 가능했을까요? 불가능하죠, 인간은 신이 아닙니다. 군사적 격차는 과학 기술적 격차만이 오로지 전쟁의 승패를 크게 좌우 합니다. 따라서 저런 승전이 가능한 것은 군사 기술, 과학 기술의 격차로 보는게 옳습니다. 선조는 개놈 이순신은 성웅 같은 수사는 너무 1차원적이고 편향된 시선임
초기 미국인들이 인디언을 싸그리 말살 할 수 있었던 것은 군사기술 과학기술의 격차 때문이지 그들의 전술이 어떻고 하는 문제는 아니죠.전략과 전술은 기술을 최상으로 이끌어 내지만 근본적인 기술격차는 전술로 어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배에서 포를 쏠 수 있고 없고의 차이는 총을 가진자와 맨손인 사람이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초계함 1대면 돗단배 10만척도 혼자서 이길 수 있습니다. 물론, 포탄이 그만큼 있다면 말이죠
조선의 과학이 그만큼 일본보다 우월했다고 자긍심을 가지는게 옳지 이순신 만세, 하지만 조선은 찌질이 무능, 이렇게 생각하는건 오히려 일본에 유리하죠, 식민사관 이라고 봅니다.
원균은 싸워 보지도 못하고 무리하게 추격하다 12척의 판옥선을 표류 시켜 잃어 버렸고 다음에는 정박해 있는 함선들을 기습을 당해 잃어 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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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해전을 말하는 것이지요?
내용을 보아 하니 칠천량 해전을 말하는 것 같은데
칠천량 해전에서, 기습을 당해 정박해 있던 함선들을 잃어버렸다고요?
함선들이 왜 정박하게 됐는지는 알고 계십니까?
원균은 왜 수군과 대치하던 조선 수군 함선에게 명령을 내려
함선을 모두 포기하고 육지에 상륙하여 왜국과 육지에서 싸우라고 했습니다.
님이 말하는 그 막강한 함포를 사용해 보지도 않고
수전에 능한 수군들더러 배를 포기하고 육지로 내려가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함선들이 정박하게된 것입니다.
사실은 정박이 아니라 원균이 유기한(버린) 것이지요.
밑에 댓글로 원균이 옥포 해전과 합포 해전을 손쉽게 이겼다고 적었다가 지웠더군요.
그 댓글에 댓댓글을 쓰다가 지워지는 바람에 여기에 댓글을 남깁니다.
옥포해전과 합포해전이 원균이 손쉽게 이긴 해전이라고요?
원균은 왜 수군이 거제 방향으로 진출한다는 소식만 듣고는
싸워보지도 않고 휘하에 있던 판옥선을 비롯한 80 여척의 전선을 그냥 침몰시켰고
수군 1만 여명을 해산시킨 후, 부하 우치적 등과 함꼐 육지로 도망갈 생각이었는데
부하들이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에게 구원을 요청하라며 간곡한 말함에 따라
부하를 시켜 이순신 장군에게 구원을 요청.
이순신 장군은 음력 5월 4일 휘하의 판옥선 24 척, 협선 15 척, 포작선 46 척을 이끌고 출발,
5월 6일 당포 앞바다에서 판옥선 4 척, 협선 2 척을 거느린 원균과 합류.
총 91 척의 연합 함대 총지휘는 이순신 장군이 맡았음.
음력 5월 6일, 옥포 앞바다에 왜 수군이 50여 척이 있다는 정보에 따라 옥포로 진출, 왜군과 격돌하여 격멸했음.
그런데 이런 해전의 성과가 원균의 것이었다고요?
판옥선 24 척을 포함하여 총 85 척의 수군 전선을 거느린 이순신 장군은 열외시키고
겨우 판옥선 4 척, 협선 2척을 가진 원균이 50 여척의 왜 수군을 상대로 손쉽게 승리했다고요?
그리고 그날 오후, 합포에 왜군 함선 5척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합포로 진격하여 왜군 함선 5척을 분멸시킨 것이 합포해전.
더구나 원균은 데려가지도 않고, 전라좌수영 전선들만 가서 전투를 벌인 것인데
해전에 참여하지도 않은 원균이 합포해전에서도 손쉽게 승리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