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의 저땐, 지역예선의 압도적인 영웅 최용수의 납득할 수 없는 무기용으로 더욱 더 외면받았지요. 지역예선에서의 역대급 가장 빠른 티켓 확보는, 차범근보다 최용수가 있기에 나온 성과라고 믿는 분위기였으니까요. 어느 누구도 그때의 핑게를 대지 않으니, 지금까지도 궁금하더이다.
이걸 보고 다시 느낀 생각은, 하석주라는 그때 당시 고참 선수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일에, 20년을 죄책감에 죄송해하는 걸 보고, 저때 차범근은 선수들에게 대단한 존경을 받았다는 걸 알 수 있었고, 이제 최용수를 기용하지 않은 것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구나로 생각이 고쳐짐.
어느 누구도 그때 최용수를 기용하지 않은 거에 대해, 아무말도 안하는 것조차, 끈끈한 동료애가 아닐런지..
지금 쯤 과거의 추억에 대한, 농담조로 얘기할 수도 있는 시간인데 말이죠..
98프랑스 월드컵 지역예선 한국팀 성적..
6조:한국(최종예선진출), 태국, 홍콩
1997년 2월 22일(홍콩)
[홍콩0-2한국](0-0) (후16 서정원, 후29 최문식)
1997년 3월 2일(방콕)
[태국1-3한국](0-1) (전18 노상래, 후28 하석주FK, 후41 최문식)
1997년 5월 28일(대전)
[한국4-0홍콩](2-0) (전25 유상철PK, 전39 후25 최용수, 후40 박건하)
1997년 6월 1일(잠실)
[한국0-0태국](0-0)
B조:한국(본선), 일본(플레이오프 진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아랍에미리트 한국 6승 1무 1패 승점19점? 조 1위로 직행..
1997년 9월 6일(잠실)
[한국3-0카자흐스탄](1-0) (전24 후22 후29 최용수)
1997년 9월 12일(잠실)
[한국2-1우즈베키스탄](1-0) (전15 최용수, 후42 이상윤)
1997년 9월 28일(도쿄)
[일본1-2한국](0-0) (후38 서정원 후41 이민성)
1997년 10월 4일(잠실)
[한국3-0아랍에미리트](1-0) (전7 하석주, 후22 유상철PK, 후35 이상윤)
197년 10월 11일(알마티)
[카자흐스탄1-1한국](0-1) (전4 최용수)
1997년 10월 18일(타쉬켄트)
[우즈베키스탄1-5한국](0-3) (전18 41 최용수, 전38 유상철, 후12 고정운,
후24 김도훈)----------전반 이미 큰 점수차로 본선진출 확정 확실시,최용수->김도훈 교체
1997년 11월 1일(잠실)
[한국0-2일본](0-2)--------일본을 위해 져줬다는 설..
1997년 11월 9일(아부다비)
[아랍에미리트1-3한국](0-2) (전9 이상윤, 전42 후21 김도훈)------1.5~2군
득점왕: 최용수,세보니 9골(열광할 만한,선제골4,결승골3), 김도훈은 본선행 확정 후 3골(본선행 확정될때까지 0골,본선행 티켓따는데 아무 도움이 안됨,인맥이라 불러도 할말이 없을 정도), 황선홍 0..
()안은 전반전 스코어..
황선홍이 뭐 어쩌구 저째?? 최용수보다 김도훈을 선호했다고???
제가 황선홍이 1순위였던말땜에 욱하신것 같은데.. 당시 축구팬이면 황선홍이 1순위공격수였던건 다아는 사실입니다. 98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 부상으로 못 뛰었고, 부상복귀후..월드컵
직전 중국과 평가전에서 또 부상당해서 월드컵도 참가못하게 되죠.. 제가 최용수가 못한다고
했나요? 아시아 예선에서 최고의 활약을 했다고 말했는데..ㅎㅎ 당시 국대커리어 하이 찍었고.. 월드컵 본선에서 황선홍과 최용수의 투톱을 기대하는 팬들도 많았습니다.
암튼 차범근 빼고 역대 국대팀에서 황선홍 만큼 골넣은 공격수는 없습니다.
기록좋아하시니깐 적어보면 a매치 득점순위 1위 차범근 138경기 59골, 2위 황선홍 103경기 50골, 4위 이동국 105경기 33골, 6위 김도훈 72경기 30골, 10위 최용수 69경기 27골, 박주영 68경기 24골, 손흥민 70경기 23골 이정도 입니다.
U-23 올대팀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긴 공격수는 이동국과 최용수가 독보적이지만, 누가뭐래도 90년대 최고 스트라이커는 황선홍입니다.
86멕시코월드컵부터 축구 봤습니다. 올대 국대 볼수있는 경기는 거의 다봐왔습니다.
자신의 짧은 기억만으로 속단하지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