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에 신혼이셨던 우리 부모님도 신혼첫날이라고 저런 사치는 못누리셨는데, 과연 일제시대때 저런 행복을 누리는 신혼이 얼마나 되었을라나 모르겠네요.
호텔인지 어딘지 모르겠지만, 자고 일어나서 전화를 건다는 상황이 도저히 일반적으로 보이지 않아서요.
불과 80년대 초까지만해도 집에 전화없는 세대가 수두룩했고, 부산에서 대전에 있는 가족에게 전화걸기 위해 버스타고 전화국까지 가서 교환원창구에 줄섰던게 제 어릴때 풍경이거든요.
물론 급할땐 주인집이나 잘사는 이웃에게 부탁해서 집전화를 전화국에 걸어서 타지역으로 걸기도 했죠.
그땐 진짜 이웃의 정이 없었으면, 타지 가족의 위급한 안부도 확인할수 없었지요
저는 현진건의 "운수좋은날"같은 가정상황이 일제시대의 일반적인 경제상황이 아닐까 떠오르는데요.
추정기원이 몽골을 통해 한국화된 형태로 들어온 설렁탕은 원래 오래전부터 우리가 먹던거긴 한데 일제때 모종의 정책화 여파로 완전 대중화 됐다는 얘기네요. 이는 당연합니다. 사실 우리가 아는 전세계 간단한 유명 요리(일본은 물론 서양,중국요리)들 조차도 대부분이 설렁탕과 다를바 없이 모종의 정책과 식자재 대량생산 여파로 근세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일반 서민들도 먹을수 있게끔 개량돼 대중화 됩니다. 예를 들면 지금은 흔하디 흔한 쵸코렛,피자, 크로와쌍등의 고급 빵류 같은거 서민들이 먹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