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 문학과 사회전반의 문화사조가 왜 다 사라져버려서 발전안 됐다 라는 소리하고 똑같네요..
당시 한문을 쓴 것이 아니라..정확히 이두문자를 쓴것입니다.
귀족들은 그러한 부분을 상당한 사회전반에 문화생활을누리고요........
특히 불경에 대한 것 일부분일뿐 다른 문학사조가 아주 자유롭고, 일반적으로 사용했을 것이라는데 이견이 없읍니다.
다만 김부식외 조선시대에서 거의 일반문학을 사그리 불태우고 검열삭제당했을 뿐입니다.
고려시대문학이라고는 고려가요 몇점뿐이라는게 이상하지 않나요..
실제로 고려가요는 그저 노래가사에 지나지 않읍니다.
일반인들이 흥얼거리는 노래가사 자신의 감정 상황을 아주 진솔하게 ..부르는 마당에..
발전이 안됐다..뭐했다.
정말로 당시대와 견주어 전혀 뒤지지 않는 그...에로틱한 모습...이
당신은 상상이나 해봣읍니까...
거기에 불상은 지방호족의 위시용을 무조건 크게를 외쳐서...
비율마저 무시한채로 큰 불상이 각사찰마다 있었읍니다.
당시 사원은 문화,예술,종교 다아우르는 공간이였읍니다.
공용목욕탕...........에 이르는 사찰앞의 마을과 상점이 즐비햇고...
한마디로 그당시 사찰은 도시의 중심이였지....
절대로 산속의 암자의 수준으로 착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고려가 200년이상을 전쟁없이 지내고 각호족과 왕족의....지배는 상당히
조율적으로 이어져왓던 고려를...
남아있는게 없다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화려한 국가였읍니다.
무역, 문화, 당시 최고의 기술은 도자기까지....예술의경지로 올린 ...문화에서..
목판술로 인한 서적문화가 ..없고 일부분의 문화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입니다.
고려탱화를 약간만 연구하더라도 그런소리는 절대로 하지 못합니다.
당시 불경서적은 상당히 민간에도 퍼져 있었고,
또한 승려의 절대적인수로 인해서 약 당시에 20만이 넘게 나오고 잇읍니다.
근데 그목판을....불경에만 썻을까요...
절대로 아닙니다.
지금 인터넷에 일베같은 쓰레기도 올리는 상황에서..
당시에 문학도 상당한 발전이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당시 여성이 혼례를 할때 필수품이 바로 도색도감입니다.
일명..빠구리화라고 하죠..
하지만 남아있지는 않읍니다.
일본에 남아있지만,
그리고 성적인 문란은 극에 달하고 술과 음식이 난무 하던 연회속에서..
노래한자락...춤한품..없었을까요..
조선시대에서 고려의 흔적을 사그리 사라지게 한...조선시대의 정책에서..
역사왜곡이 일어난 것일뿐입니다.
고려시대의 최고의 미스터리중 하나...바로 강동6주라는 사실압니까..
아직도 강동6주의 위치를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팔만 대장경은 가로 69cm 세로 24cm 두께 2.6~3.9cm 무게 3~4kg
다 모으면 8만 1258판 이고 무게 280 톤 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나무 판입니다
석가모니 설법과 불교 인도철학 그리스 철학도 있다고 합니다...
나무판이라 흰개미가 습격 하기도 하고 균열과 뒤틀림이 생기기도 한다고 하네요
돌판은 그것을 일일이 정으로 쪼개려면 정을 만들수준의 철기술이 발달해야하는데 그럴경우 차라리 돌판보다 금속활자를 만드는게 더욱 빠릅니다.
정이나 망치로 쪼개면서 돌판은 음각이나 양각을 해야할정도의 노동력을 쓰는것보다 금속을 정형틀로 해서 간단하게 활자를 만드는것이 더욱더 쉽겠지요. 그리고 돌판보다 목판은 이야기 하지 않아도 아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