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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1-18 06:54
[기타] 고구려에서 신부측이 혼수를 받지 않았던 이유
 글쓴이 : 암코양이
조회 : 7,215  

`고구려에서 신부측이 혼수를 받지 않았던 이유
 
고구려에서 신부측이 혼수를 받지 않았던 이유
 
고구려에서 신부측이 혼수를 받지 않았던 이유
 
고구려에서 신부측이 혼수를 받지 않았던 이유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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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이건또 17-01-18 07:06
   
고구려때가 조선때보다 뭔가 사고방식이 민주주의에 더 가까운듯
     
카티아 17-01-18 07:39
   
중앙집권적 왕권국가에서 조선 전기때 만큼 민주주의적인 국가는 없었습니다.
 단적인 예로 부부간에도 서로 존대했고, 유산 상속에서도 딸에게 지분이 있었습니다. 여자가 정치에 참여 못했을 뿐이지 절대 남존여비사상같은 존재하질 못했죠... 남존여비는 왜놈들 사상.
 그리고 노비들도 지금 서민들보다 더 낫다 말할 정도로 권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노비가 아이를 낳으면 노비 남편에게 100일 출산휴가까지 준게 조선 전기입니다.
 그리고 장애인 차별하지 않고 보호해준 유일한 국가가 조선이었고요....
그리고 남녀노소 사농공상 누구나 신문고를 울려서 억울함을 호소할 수도 있었죠...
 조선 전기만 보자면 당시 세계역사중에 가장 진보한 국가였는데... 왜놈들 때문에 많이 바뀌게 된거죠..
 임진왜란 정유재란등으로 나라가 피폐해지니.... 많은 것이 바뀌게 된겁니다...
          
sangun92 17-01-18 08:24
   
출산휴가 100일은 출산한 여자 노비.
노비 남편은 휴가 30일.
          
휴꿈 17-01-18 10:07
   
사람들에대한 복지가 지금보다 나았을수는 있지만....시민이 국가의 왕들과 마찬가지인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를순없죠. 
사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인데,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고, 민주주의 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았으며, 독재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꽤많은거 같아요.

독재 찬양을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며..그런게 너무 자연스럽죠.
심지어 시민이 국가의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독재 옹호발언도....너무 자연스럽게 나오고, 너무 자연스럽게 듣는...
          
훈이야 17-01-18 12:18
   
고려시대가  여성인권이 좋았저
          
코코아 17-01-19 08:45
   
유산상속은 고려에서 가져온거
          
지니지 17-01-19 21:59
   
남존여비사상은 조선말기 졸부 가짜 양반들 사이에서 퍼졌던 중국 따라하기 문화였습니다.
이것이 일제 강점기 시대때 일본의 여성하대 문화와 상승작용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화려한오후 17-01-18 09:11
   
고구려는 왕을 포함 5부족 체제였습니다~ 신분제도 확실하구요~ 형사취수제도 있다고 합니다~ 형이 죽으면 형수를 취한다.....노동력을 지키기 위한 제도죠~
          
애니비 17-01-18 11:35
   
형사취수는 제 고 뭐고 달리 볼게 있나요
만주족속뿐만 아니라 유라시아선 일반적였던거 같은데   
형수를 취한다 도 아니고 계승이나,유가족을 거둔다,책임진다,후원의 의미겠지요
               
DarkNess 17-01-18 11:57
   
'형사취수제'는 한 단어입니다...
형사취수 '죄'로 보신듯?
               
애니비 17-01-18 12:20
   
아아,아우 제군요.착각했습니다
죄는 터무니없고, 당시론 자연스런, 사회적으로 명예로운 일 아닌가 싶어서요
왕후귀족이면 굳이고 아니면 한입,두입을 더 두는게 보통 일은 아녔을겁니다.
          
다른생각 17-01-18 14:16
   
노동력 보존은 부차적인 효과이고.. 취지는 유족의 궁휼이었습니다..
지금같이 국가가 보상을하거나.. 복지제도가 없다시피한 당시엔 부족이 공동으로 부양하거나.. 혈연이 부양하는 형태였는데..
고구려는 혈연에게 책임을 지게했습니다..
부족간 국가간 분쟁과 전쟁이 빈발했던 시대에서 대규모 사망자가 나더라도 국민들이 기초적인 삶을 유지할수있게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정조치였고..
이런 제도가 없었던 부족들은 한,두번의 대량사상자가 발생하면.. 해체되어 주변부족들에 흡수되는 과정을 반복했죠..
당시 속하던 부족해체로 다른부족에 합병된다는것은 귀족이든 평민이든.. 노예로 전락하는것을 의미했습니다..
     
알게모냐 17-01-19 21:58
   
조선은 노비조차 3심을 받을수있고 왕의 어인이 없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도 사형시킬수 없었습니다.(같은시기 일본은 무사에게 적정한 각도로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즉결참수형) 글을 읽을수 없는 이들을 위한 20종류이상의 민원제도를 두고있어 중세 세계사를 통틀어 최고의 법치선진국이었습니다.
게놈 17-01-18 08:49
   
한국 사람들이 대단히 착각 하는게 일제치하  50여년 동안 호주제를 중심으로 길들여진 일본식 문화를 조선 유교전통으로 착각들 많이 한다는 것이죠. 이에따라 여성을 주체적인 한 인간으로 보는 시선이 점점 사라졌으며 해방후 일부 문화가 거의 일제와 비슷한 수준의 문화가 형성 됐던것이죠

반백년이면 문화가 변질 될만도 합니다. 여성이 이혼하고 자식을 데려와도 자식들은 법적으로 여성의 자식들이 아닌게 되죠. 법이 이랬다는 것은 여성을 하나의 독립된 주체로 여기지 않았음을 뜻합니다. 호주제는 폐지 되었죠. 이건 일제식문화지 조선문화는 결코 아닙니다.
LikeThis 17-01-18 09:19
   
서로 안주고 안받고,
결혼식은 최대한 검소하고 간결하게 하는게
문명인들의 자세임...
살충 17-01-18 09:33
   
세종의 노비의 출산과 관련하여 좋은 얘기를 많이들 하시는데
세종의 노비제도는 좋은 점만 있었던게 아닙니다.

[노비 여자와 양인 남자의 자녀, 즉 얼자가 종부법에 따라 양인 신분을 받으려면 보충군에서 복무해야 했다. 보충군은 오늘날로 치면 방위병이나 공익근무요원에 해당했다. 보충군의 주된 역할은 관청에서 심부름을 하는 것이었다. 태종은 고려 말에 설치된 적이 있는 보충군을 태종 15년 3월 8일(1415. 4. 17.) 새로 설치하면서 얼자들을 여기에 소속시켰다. 보충군 복무는 얼자들에게는 면천의 통과의례였던 것이다.

초기에는 서민층 얼자든지 특권층 얼자든지 똑같이 보충군을 거쳐 양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평등이 세종 때부터는 사라졌다. 세종 14년 3월 26일(1432. 4. 26.)에는 아버지가 관료·생원·과거합격자 등인 경우에만 원칙상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 어떤 서적들에서는 양반의 아들만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지만, ‘양반’의 아들이 아니라 ‘관료’의 아들이다]

세종의 이러한 제도 퇴보 때문에 세종의 시기부터 노비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게놈 17-01-18 10:32
   
조선시대의 노비란 바로 범죄를 저지른 자를 말합니다. 아무나 막 노비가 되고 그런것이 아닙니다.
다만 핏줄유대를 강하게 인식했던 시대상에 따라 노비 어머니의 자식도 노비가 되었던 것이죠.

그러나 보충대 이외에도 면천제도가 납속이라는 제도등이 있었기 때문에 노비는 언제나 면천할 기회는 있었습니다. 몸으르 때우냐 돈으로 때우냐의 차이인데 세종때는 기강 문제로 논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납속등 면천할 기회를 근본적으로 막지는 않았습니다.
떡하나 17-01-18 11:58
   
신라는 매매혼 풍습을 아직도 유지하는 듯.
경상도는 아직도 집도 남자가 장농도 남자가 준비해야..
에치고의용 17-01-18 12:19
   
의외네요 ㅎ
천년의시 17-01-18 14:58
   
세종대왕때 많은 정책들이랑 복지가 나왔었는데.. 참 훈민정음도 그렇고 대단한 왕이십니다
안녕미소 17-01-19 04:57
   
불의의 상징인 친일 제거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면 다시 저런 민족일텐데...
세발이 17-01-19 11:35
   
고렇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