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은 시황제 이전도 그렇고 북쪽에서 중원으로 들어가는 주요통로에 만들어진 관문들을 요새화시킨뒤 산맥을 따라 일종의 방벽처럼 연결한 것입니다. 고북수진에 있는 그런 벽돌로된 높은 장성은 전체 만리장성에 보자면 아주 일부에 불과하고 그런건 대부분은 명나라때 축조된 것입니다. 나머지는 높이가 몇미터도 되지 않는 그것도 흙방벽수준이었습니다.
만리장성이 무쓸모하고 실패했다는 주장은 솔직히 맞지 않는 얘기입니다. 어차피 만리장성의 전체길이중 실질적으로 유의미한 방어의 의미를 담당하는 지역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북방유목민족들은 기병이 주이기 때문에 중원을 침공하려면 사막 아니면 높은산맥을 지나가는 길을 택할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막쪽은 물과 식량과 같은 보급문제때문에 루트로 잡기힘들기 때문에. 따라서 주요한 관문을 막고 그 주변지역으로 방벽형태만 만들어도 넘어오기 힘듭니다. 나머지는 그냥 산이나 사막자체가 천연방어물입니다.
후금이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굳이 산해관 한곳에 대해 공격을 고집한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우회하는 통로가 없지 않았고 실제 우회에서 베이징까지 들어서기도 했습니다만 그건 치고빠지는 기병중심의 약탈전이었지 실제 점령할만한 수준이 못되었습니다.
몽골도 마찬가지입니다. 금나라 시절에도 이곳이 뚫리지 않은것은 아닙니다만 한번 뚫리고나선 이곳은 유목병에게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어차피 중원의 주요목표를 점령하지 못하고 퇴각하면 또 다시 이곳을 통과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습니다.
난공불락은 아니지만 북방유목군 입장에선 중원으로 침공이전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골치아픈 관문이었습니다. 이걸 만리라는 전 영역에 거쳐 관리했다는 측면에서 보면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볼수는 있지만 실제 침공루트는 어차피 정해져있었고 축조물도 실질적으로는 거기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실제 장성으로서의 알맹이 부분은 얼마되지 않으며 그 영역에 한정해서는 나름 가성비를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동이족을 막으려고 했지만 중공 역사 60% 해당하는 기간을 우리가 지배했어요.
더욱 근본적인 역사적 문제는 중공을 이루는 핵심 부족이 없다는겁니다.
대충 200 개 소수부족들을 강제로 엮을 이념이 필요한 것이 바로 공산주의 입니다.
그래서 공산당을 먼저 창당하고 나중에 건국하는 머리와 꼬리가 뒤바뀐 근본 없는 나라가 됐습니다.
사마천 이 사기꾼 새끼부터 중공은 글렀어요.
공산당 국부라는 모택동이 중공의 모든 역사는 가짜다 라며 스스로 인정했고 , 문화대혁명으로 사실상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