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바로 'operation everready' 한마디로 이승만 제거 작전 미국이 보기에 얼마나 이승만이 븅신 같았으면 갈아치우려고 작전도 준비했을까 낙동강 전선에서 일진일퇴하고 나라가 벼랑 끝에서 간당간당하고 있는데 무려 전방에서 병력 빼는 개막장 짓을 하는 놈이 국부?
이색히들은 세월이 지나도 변한게 없네..
이승만이 대통령될때 제도가 국회의원이 뽑는 대통령제란 별 개 그지같은 희안한 제도였다.
당연히 직선제로 대통령제로 갔어야 하는건데.. 장기집권하기위한 개헌음모란 개소리 여전하다 ㅉㅉㅉ
국민이 직접 대통령뽑는건데 무슨 개헌음모냐.. 대다수의 의원들이 내각제 찬성했다란게 더 또라이지..
전시때 내각제가 맞는 제도같냐 ㅉㅉㅉ
이승만 물러나구 윤보선, 장면ㅄ색히들어와서 벌어진게 9개월간 내각만 뒤엎은게 3번이었다.. 민주당 구파 신파간 지들이 치고박으면서..
프랑스만 하더라도 내각책임제였다가 ㅄ같은 제도라서 드골이헌법 개정하구 대통령됐지..
글구 핵심은.. 국개의원색히들이 죽어라 내각의원제 할려던게.. 민주당 색히들중 태반은 대중에게 인기없던 해방당시 친일파이던 한민당 색히들이라서자나.. 이런건 왜 내용에 안담냐 ㅉㅉㅉ
이승만은 대내적으로 자신의 미국내에서의 활동과 미국과 가장 잘 통한다는 이미지가 정치적으로 가장 큰 자산이었고 그걸 이용해서 끝내 대통령이 될수 있었지만 정작 해방이후 이승만에 대한 미국의 생각 정확히는 미군정의 생각은 이미 대통령이 되기 이전부터 부정적이었습니다. 해방이후 이승만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긍정적일때보다 부정적일때가 더 많았습니다.
우선 미국이 적극적으로 밀었던 신탁통치에 이승만은 머리를 굴려 반대합니다. 이승만은 국내의 인지도는 높았지만 국내정치 기반이 약했던탓에 반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야 국내기반을 늘릴 수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미국이 밀고 소련이 반대한 신탁통치안을 반대로 보도한 오보사건을 이용해서 교묘하게 반탁에 올라탑니다.
근데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할만한 결정을 미군정이 내리죠. 이승만을 제끼고 김규식-여운형을 밉니다. 두 사람을 밀었던 이유는 우선 두사람 모두 찬탁쪽이었다는 것이고 거기에 김규식이 중도파였지만 리더쉽과 기반이 약했고 여운형은 리더쉽과 기반이 있고 미군정과도 어느정도 대화가 가능한 정치인이었지만 좌파진영(중도좌파)이있기 때문. 그래서 두사람의 조합을 당시 미군정 입장에선 이상적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승만은 당시 입장에선 미군정에게 눈에가시같은 존재였습니다. 그점은 김구쪽도 마찬가지였지만 내부적으로 들어가면 뭐 익히 예상가능한 다른 이유들이 숨어있죠.
하지만 여운형 암살이후 미군정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그 다음 후보였던 한민당쪽 장덕수도 암살되는데 김구쪽의 한독당계열에서 암살했다는 혐의(?)와 이미 미소양쪽에서 남북으로 나누는쪽으로 흘러가면서 애초부터 좌쪽과 협력을 거부했던 이승만에게 유리하게 돌아갑니다. 사실 미군정은 초기에는 남북과 좌우를 아우를수 있는 정부를 원했습니다. 이것 또한 이승만이 미군정으로부터 배척받은 이유였습니다.
거기에 미군정에게 좋은 점수를 받으며 김규식-여운형의 대안으로 장덕수를 밀었던것에서 알수 있듯이 한민당과의 연합을 통해 정치적 우군을 얻으면서 어쩔수 없이 미국이 이승만을 선택하게끔 만들었습니다.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후 한민당과 이승만은 사이가 벌어지는데 그 벌어지게된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이 게시글에서의 내용입니다.
본인은 항일 무장투쟁의 한가운데서 싸우면서도
국민에게는 문화의 힘을 역설한 백범과 달리
이승만은 항일기간 내내 본인이 부각받는 일에만 치중하며
입으로만 떠들다가 정작 독립이 되자
자국민에 대한 무장투쟁으로 무쌍찍은 인물.
방계왕족이란 자의식이
신생독립국인 조국을 계승받은 자신의 소유물처럼 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