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도에 이등병이 8?00원이었어요..
tv로는 구타가혹행위는 사라졌다고 했지만 자대 가자마자 첫날 점호 끝나고 수송부 뒤로 집합해서 업드려뻗쳐 하고 줄줄이 밀걸레 자루로 두들기더군요...
제 생각이긴 하지만 지금도 구타가혹행위는 안사라졌을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92군번. 연대 행정병으로 근무했는데 A4지도 볼펜도 호치키스심도 뭐 하나 보급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복사할 일은 많은데 연대본부에 복사기가 단 한대 있었고, 그나마 그 부서에서 자비로 산 것이었죠. 그래서 장당 얼마씩 돈을 받았습니다. 자기들도 토너를 사야했으니까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꼴랑 몇 천원 나오던 행정병들 월급을 모두 모아 이런 걸 사고, 부족한 나머진 서무자금계였던 죄로 제가 다 대서 아껴써야 했지요. 진짜 이게 뭐하는 짓인가 했습니다.
나 이등병때 IMF터져서 절반깍이고 보너스달 없어짐 그래서 6000원
휴지랑 치약 비누 지급도 절반으로 깍임
난 카투사였는데 캠프가 작아서 한국군 PX도 없었음 그래서 부대밖까지 몇키로 걸어나가거나
저녁 넘어서 군것질이 못참을 정도면 걍 쌩으로 달라로 사야했음
그날따라 너무너무 목이 말라서 월급 6천원 달라로 환전했는데 그때 환율이 개미쳐서 몇달라도 안됐음
그거로 자판기서 콜라 뽑아먹는데 내 월급이 콜라캔 4개정도 밖에 안됐음
난 그떄까지만해도 군대서 돈챙길 이유도없고 당연히 봉사하고 오는거란 생각이었는데
그날 콜라4캔짜리 월급이란 생각이 드는 순간 정말 이건 뭔가 잘못됬다는게 확 느껴졌음
장난하나.. 목화밭 흑인노예도 한달에 이거보다는 많이 받았을거임
착취당하고 이용당하는 느낌이 확 들고 기분 정말 더러워졌었음
(당시 소문에는 미국이 카투사에게 지급하는 급여도 나라에서 다 챙겨간다게 있었는데 진위여부를 떠나서 그러고도 남았을거임
카투사는 뭔 부당한 일을 당해도 '니들은 한국군에 비해서 편하게 생활하니 닥치고 불만가지지 마'라는 분위기)
난 미래에는 정말 병사들이 이런 기분 안겪었으면 좋겠다고 여겼음
그리고 그~~나마 나아지는거 같아서 희망이 보임
적어도 옛날처럼 국방의무로 착취당하는게 '당연하다'는 분위기나 의문을 제기하면 병x취급이나 빨갱이소리 듣던 시대가 아니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함..
아직도 그런 착각에서 못벗어나는 또라이들이 여전히 많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