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합리적인 이유로 저곳까지 간것입니다. 다름 아닌 생선때문. 특히 대구와 청어. 아이슬란드가 육지는 변변치 않아도 바다쪽으로는 변변한 지역입니다. 지금도 아이슬란드는 수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청어와 대구라는 생선은 한나라를 들었다놨다 할정도의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수 있었던 품목이었습니다. 왜냐 크리스트교에서 단식일날 뜨거운 육류섭취를 금지했기 때문에. 그리고 차가운 육류로 불리우는 품목들만 섭취를 허용했습니다. 이 차가운육류중 일반인들의 수요를 충족시킬수 있는 것이 생선이었고 그중에서 청어와 대구가 주요한 품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단실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해서 늘어나는데 거기에 평일섭취까지 확대되면서 생선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납니다. 물론 바이킹은 초기엔 생존을 위해 어류들의 이동경로를 따라 아이슬란드를 넘어 아메리카 대륙의 뉴펀들랜드까지 진출했지만.
중세의 바이킹의 유럽침략도 이 청어와 대구 어획량 및 회유경로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유명한 한자동맹도 처음에 청어,대구의 유통때문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네덜란드라는 별볼일 없는 지역을 유럽의 부유한 지역으로 만든것도 청어와 새로운 청어가공기술 덕분이었습니다. 또한 콜롬버스 이후 아메리카 대륙 초기이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것도 이 대구와 청어입니다.
요즘은 초기 바이킹의 침입은 늘어나는 인구증가나 기후변화로 인한 열악한 환경문제보다는 오히려 경제적인 이유로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 최근의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오히려 스칸디나비아 지역은 초기 바이킹침입때보다 후기나 말기에 인구가 늘어났습니다.
그럴만한게 중세온난기가 대략 10세기~13세기였는데 바이킹의 초기유럽침입이 8-9세기라는걸 생각하면 열악한 기후문제와는 상관이 없고 늘어나는 인구문제와도 연결되지도 않죠.
오히려 좋아지는 기후환경으로 유럽의 부가 늘고 스칸디나비아와 같은 지역들과 교역이 활발해지는데 이때 바이킹들이 항해기술이 늘어나고 유럽의 부를 알게되면서 약탈경제에 눈을 떴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유럽내의 저항과 유럽내에서도 자신들끼리 경쟁이 치열해지는데다 스칸디나비아 지역도 유럽화되고 통치조직이 중앙집중화되는 과정에서 통치자들에 따라 세금문제와 같은 정치적인 갈등이 빚어지는데 이러한 부분들이 맞물리면서 점점더 바이킹들이 유럽 전지역으로 확장해나갔다는 설명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