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의 요동정벌이 실행되었더라면 성공을 했든 실패를 했든 상관없이 조선이 명나라를 사대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이 명나라에 사대하는 나라가 된 가장 큰 이유가 이방원 때문이라고 생각하고요.
그외에
자신이 왕권을 이방석에게 빼앗길 뻔 했기 때문에 적서차별을 강하게 해서 조선이 인재등용 폭이 줄어든 점.
와이프 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남편은 하늘 아내는 땅 같은 남녀차별을 심화시킨 것도 이방원이 출발점.
가장 큰 문제는 이방원의 쿠데타는 수양대군의 쿠데타로 이어지고
결국 조선의 정치가들이 옳은 정치를 하기 위해 노력하지 못하고 쿠데타를 방지하기 위해 정적을 제거하고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즉 소모적인 당파싸움을 하게 된 출발점도 이방원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쿠데타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가 쿠데타가 계속 일어나면, 나라의 정치인들이 국가나 민족을 위해 일하지 않고 정권을 지키거나 정적을 숙청하기 위해 정치를 하게 되기 때문이죠.
같은 이유로 저는 수양대군(세조)도 싫습니다. 당시 수양대군의 쿠데타에 사육신들이 목숨을 걸고 저항했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육신, 생육신들이 조선이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당시에도 알고 있었던 것이죠.
이방원을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성리학을 많이 이용하는데요.
1.성리학의 사대주의를 이용해서 정도전을 제거하고
2.성리학의 적서차별을 이용해 이방석에게서 왕위를 빼앗은 자신을 정당화하고
3.성리학의 남녀차별을 이용해 와이프의 세력을 누르고.
이런 이방원의 성리학을 이용해 자신의 정권을 강화하는 방법은 이후, 조선의 사색당파들이 정권을 차지하는데 성리학을 이용하는 모델이 되었고 조선이 성리학으로 매몰되는 출발점이 이방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유교는 성리학 외에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 중 성리학이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다. 라는 중화주의를 품고 있는데, 굳이 중화주의 성격이 강하지 않은 다른 유교를 받아들이지 않고 조선의 유학자들이 성리학에 매몰 된 것도 이방원에게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길고 짧은건 대 봐야 아는 것이고, 정도전이 준비한 정예 군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얘기했듯 승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방향성에 매우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내부의 분란를 조선침공으로 하나로 통합시켰듯이
조선도 요동과 만주의 고토를 회복해야한다는 대의명분으로 조선 내부를 통합시켰어야 했습니다.
명나라에 고개 숙이고 사대를 하는 조건으로 조선을 평화를 얻었는데,
그 결과 성장동력, 국가의 큰 목표를 잃어서 결국 아무짝에 쓸모없는 소모적인 당파싸움으로 국력을 갉아먹었다고 생각합니다.
요동정벌은 가정이 너무 들어갔습니다
게다가 그 탓을 오로지 이방원에게만 돌리는건 더 심한 처사구요
당시의 명나라와 조선의 차이는 현재의 중국과 한국의 차이보다 심했는데
먼 후손이 현재의 한국을보고 왜 중국을 공격하지 않았냐고 하는것과 같습니다
게다가 세조와의 비교도 행적만 비슷할뿐 평가는 완전히 갈립니다
이방원의 쿠데타가 세조의 쿠데타로 이어졌다는것도 저는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쿠데타는 한국뿐만 아니라 어느나라에서든 흔하게 일어나는 일인데
단지 세조 이전에 태종이 쿠데타를 했다고 해서 그것이 태종의 탓이라고 한다면
태종의 쿠데타 또한 태조의 위화도 회군으로 탓을 돌리게 되면 할말이 없어집니다
붕당의 당파싸움도 조선초 태종이 아니라 조선 중기에서나 두드러 집니다
그리고 조선이 성리학을 섬긴게 오로지 태종의 탓으로 보는것도 위화감이 있습니다
애초에 조선의 개국 이념이 성리학이고 이는 정도전을 포함한 여러 신진사대부들에게
당시 널리 받아들여지는 학문이였습니다
군주된 도리로써 자국의 개국이념을 계승하는건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합니다
다만 현대인의 시각으로 당시를 보면 왜 저렇게 낡은 학문을 추종했는지 비판은 할수있습니다
역사를 흐름으로 봐야지 현대인의 시각으로 그 시대를 이해하려고 하면 수많은 모순이 터져나옵니다
유교에는 좋은 장점이 있고 안 좋은 단점이 있습니다.
정도전은 유교의 장점을 이용해서 나라를 개혁하려고 한 반면
이방원은 유교의 안 좋은 점을 자신이 권력을 차지하는데 사용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방원이 권력을 차지 하기 위해 사용한 유교의 안좋은 점이 조선 역사 500년 동안 계속 안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조선의 안 좋은 모든 점 특히 유교에서 비롯된 안좋은 모든 점들은 조선이 건국되자 마자 심하게 드러난 것이 아니고 거의 조선 후기에 그 안 좋은 점들이 심하게 드러나죠.
그런데 제가 이방원을 비판하는 건, 조선 후기에 안 좋은 점이 심하게 드러나지만 그 발단이 대부분 이방원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조선 역사 500년 동안 내내 올바른 생각을 하는 훌륭한 정치인들이 계속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훌륭한 인물들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정적에게 제거당했는데, 정적들이 사용한 정치 도구, 대의명분이 대부분 이방원에서 부터 시작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기개있는 선비들 또한 많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개있는 선비들이 성리학의 중화주의에서 생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것 역시 이방원이 조선의 방향을 사대쪽으로 크게 틀어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랄 염병하네 요동정벌할 생각이 있었으면 명은 원이랑 싸우기 바쁘고 고려인이 심양왕 차지하고 있었을 시기인 위화도 회군시절에 했었어야지, 주원장이 다 처먹고 난 시절에 정안군 견제하려고 군사훈련 실시한거 가지고 진짜 요동정벌을 했었을거러고 생각하는 능지 박살난 애가있네. 정도전이 너같은 병1신인줄 아냐? 국력차이가 20배 넘게나는 명나라를 들이박게?
명나라에 사대한건 힘의 논리가 아닙니다.
이성계가 선택한 정치논리예요.
이성계는 고려신하고 다른 사람들도 고려신하입니다.
이성계가 왕이 된다는 자체가 큰 문제를 발생시키는데
너도 신하인데 왕 뺏었잖아. 그럼 우리도 해도 되겠네? 라는 태생적 명분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걸 푸는 해법으로 명나라에 사대한거예요.
명나라가 내가 왕인게 맞다잖아. 라는 장치로 나는 너희들이랑 다르다. 라는 명분으로 근본적인 모순을 막은거예요.
어떤 힘의 논리로 숙이고 들어가자 이런게 아닙니다.
반대로 왕권이 이렇게 명나라 보증을 내세우니까 신권도 마찬가지 명분으로 반격을 하고요.
명나라 말이면 다 맞다 이거지? 식으로 왕과 대립되는 의견을 명나라 예를 들어서 공격하는겁니다.
이러면 왕이 반박하기 어려워지죠. 명나라가 틀릴 수 있다를 인정하게 되면 왕도 틀린게 될 수 있으니까요.
이 정치적 명분싸움이 조선이 사대를 한 이유입니다.
후에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소중화가 나오죠.
그것도 연장선상입니다. 명나라를 근거로 해서 맞다. 라고 앞서 쌓아놓은 논리들이 너무 많으니까
명나라를 버리기 어려워진거예요. 명나라 근거로 하던건 버려도 된다 이거지? 명분을 성립시키니까요.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소중화가 나오는겁니다.
우리가 그걸 이어받았으니까 근거 무너진거 아님. 한거예요.
사대문제는 정치적 문제고 태종이 만든 원죄가 아닙니다.
아뇨 그건 형식적인거고요
실제로는 찬탈한거잖아요. 다른 사람이 같은 과정으로 자기를 몰아내도 할 말 없잖아요
이 명분을 무력화 시킬 필요가 있었단겁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된게 아니라
고려에서 조선으로 계승이 된게 문제예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을 건국한거면
건국왕이니까 고려 신하였던게 아무 상관없죠.
근데 고려를 계승한거니까 그 나라는 신하가 왕이 되어도 된다는 선례를 이미 남겨버린거잖아요.
이게 문제란겁니다. 다른 신하는 이성계처럼 해선 안된다 라는 명분을 만들 필요성이 생긴겁니다. 그게 명나라 인증인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