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종교는 필수적이지도 않고
무교자들에겐 사실상 불필요한 존재지만
당시 유럽은(중동 아시아 및 다른 지역들 또한 )
권력자들에게 인간사회에서의 최소한의 윤리적인 제한을 그어준
말그대로 핵심적인 사회구동장치였습니다.
모든 법의 근본은 종교적 가르침이었고
영주가 영내에서 모든 권한을 갖고 있음에도 이를 막아줄 유일한것은 종교뿐이었죠
당시의 인물이 종교적인 성인이 되었단건
현대의 일부 누군가가 광신도적인 행동을 하는것과는 완전히 별개의 것입니다.
물론 현대의 법처럼 구속력이 강하지 못했으므로
종교를 이용한 악행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내에 종교는 없어선 안될 부분이었습니다.
이차돈같은 사람도 위인전에 오르고 그걸 이상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는데
잔다르크는 국가적으로도 당시 유럽을 지배하던 이념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죠
사회를 지탱해주는 큰 틀 안에서 자신의 국가와 선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사람이니까요
유럽인들은 생각이 없어서 잔다르크 인정하는게 아닙니다.
저게 다 후대에 미화된 거란 이야기도 있죠. 잔 다르크가 조명 받은게 거의 20세기니까요.
애초에 시골 농부 딸(그것도 고딩 나이)이 무슨 전술을 알고 신학을 알아요. 글도 몰랐다는데.
시골 처녀가 훼까닥 돌아가지고 자기가 진짜 계시 받은 줄 알고 다짜고짜 프랑스 왕 만나게 해달라 난동 피우니까,
샤를7세 생각인지 그 아랫놈 생각인지 "저거 잘 이용하면 전쟁이랑 왕위 계승에 도움 되겠는데?" 하고 써먹었다는 설이 타당하죠. 본문에 나왔듯 이용가치 끝나니 버린 거고...
잔을 열렬히 추종했다고 알려진 그 누구지, 걔가 사실 전략 전술은 다 세우고, 얼굴마담으로 잔이 발표하게만 했다고... 저 어린 여자도 싸우는데 + 신이 우리편이다 이걸로 수세에 몰린 프랑스가 역전한 것은 사실이고요
물론 그렇게 잘 써먹었고 토사구팽한 프랑스 애들이 착한 것은 아니지만
지극히 영미권적 시점의 해석입니다
신학 논란은 아예 언급가치가 없구요
(잔다르크 관력 기록중 가장 디테일한 부분들이 종교재판 과정)
실질적으로 작전입안도 잔다르크가 한것이 사실입니다
잔을 열렬히 추종했다고 알려진 기사는 여럿 있습니다.
그들은 능력있는자들 이었지만 잔다르크 등장전엔 발리고만 있었습니다.
걔낼 규합하고 이끌어서 승리한건 잔다르크인건 확실한 사실입니다.
그 후에 무리한것도 잔다르크 짓이 맞고요
잔다르크가 미화되었다의 시작은
나폴레옹의 푸쉬로 영웅화 되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되는건데
이거 자체는 사실이지만
방금 하신 말씀은 그 해석을 추상의 영역까지 끌어올린 상상썰에 가깝습니다.
참고로 샤를7세는 정치적 목적으로 처리한것이고 그냥 토사구팽한건 아니에요
실제로 죽자마자 교황청에 영향력 행사해서 파문을 철회시킨것도 샤를 7세였습니다.
잔 다르크의 대우회기동 전략은 실제로 부하 중에 누가 세웠을 수도 있지만,
재판 과정에서 그녀가 한 말들은 (본문엔 지나치게 각색한 것도 있지만) 사실이라고 합니다.
정확히는 공개로 열린 1차 공판 때 한 말들인데, 2차부터는 비공개로 전환되고 말았죠.
얼마나 개망신을 당했으면...
100년전쟁당시 영국왕은 대표작위일뿐
실질적인 힘은 프랑스 북부와 서부 아키텐왕국 (현재 보르도 중심의 지역) 에서 나온 힘이라
이 글의 비교는 아예 말이 안됩니다.
프랑스 왕의 실질적 권역은 오를레앙 근처에 국한되었고
남부프랑스 세력중 서부는 영국땅이며 남부는 형식상으로만 프랑스 봉신이었고
실질적으로 언어와 문화도 고트족 영향력이 많이 남아 서로 다른 툴루즈 공작령이었습니다.
파리까지 먹혀있는 상황인데 더군다나..
거기다가 부르고뉴 지역(상파뉴 바로 아래의 큰 지역이며 프랑스 영토 내 거대한 꿀땅중 하나)은
형식상에서조차 프랑스 봉신이 아니고 오히려 영국편이였구요.
거기다가 프랑스 내 봉신들도 봉건 계약상
프랑스 왕에게 충성하는거였는데 당시 프랑스왕은 잔다르크 등장 전 대관식도 못올린
예비왕 수준이여서 안그래도 중앙집권화가 안되있는 중세시대에
프랑스내 프랑스 왕의 힘은 한없이 약했습니다
프랑스 왕가에 충성하던 유능한 기사들 덕에 버티던것이었고
그 유능한 기사들(질 드레 등)을 규합시킨건 잔다르크에요.
그리고 영국 400만 인구중 사실상 최대이자 가장 발전했던 지역이었던
에색스(런던 중심) 웨색스(남부 해안 농경지) 공작령은
영국왕의 직할또는 친분관계가 두터운 영주의 영역이었으므로
그 힘이 온전히 영국세력을 이용할 수 있었구요
또 영군은 칸느지역을 갖고있어서(프랑스 최북단 지역)
중부유럽 최고급 부유지방이었던 플랑드르 홀란드와의 무역으로
체급에 비해 큰 경제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프랑스가 힘이 더 셋는데 영국한테 계속 털렸다고 가르치는 사람이
왜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네요
오히려 정 반대일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