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역설적으로 우리나라가 실질적으로 사형제를 폐지해서 이득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 사건이었습니다.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요? 엉뚱한 소리가 아닙니다.
저 카자흐스탄 청년이 출국해 버린 후에, 우리나라에 스스로 돌아온 이유는, 카자흐스탄이 우리나라와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카자흐스탄 본국에서 아무리 돌아다닌다고 해도, 결국은 체포될 것이고, 체포되면 우리나라에 인도될 게 뻔하기 때문에, 그럴바엔 스스로 자수해서 형량을 줄이고자 귀국한 겁니다.
이런 게 바로 범죄인 인도조약의 큰 효과인데... 이렇게 좋은 범죄인 인도조약을 우리나라는 2022년 기준으로 전세계 78개국과 맺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럽 전체와 '범죄인인도에 관한 유럽 협약'을 맺고 있어서, 유럽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그 범죄가 양국에 공통되고 경범죄가 아닌 한, 언제든 이 조약에 따라, 그 사람이 사는 유럽 국가로 도주했어도 결국 인도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나무위키의 '범죄인 인도조약' 문서를 보면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추가합니다. 카자흐스탄과는 2012년 9월 10일에 조약을 맺었다고 나와 있네요.
그런데 이에 비해, 일본은 전세계 국가 중 딱 2개국(미국과 한국)과만 범죄인 인도조약을 체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일본이 우리보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외교력이 낮은 나라도 아닌데, 왜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지 못하고 있을까요?
바로 일본이 사형제를 포기하지 않고 있고, 가끔씩 사형을 실시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실질적 사형제 폐지국가로 분류되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제3국 입장에서, 범죄인이라고 해서 일본에 인도하면, 자국민이 최악의 경우 사형을 당할 수도 있으니, 조약체결이 안 되는 겁니다.
"일본이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고 있는 국가는 미국과 한국의 단 2개이다. 이는 일본이 사형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지라, 사형제를 폐지한 유럽연합 및 유럽 평의회 국가들과 영연방 국가 등과의 체결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본이 외국과 범죄인인도조약을 거의 맺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범죄를 저질러도, 그 범인은 출국금지조치가 공항에 내려지기 전에 공항을 빠르게 통과할 수만 있다면, 국외로 출국해서 처벌받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해, 나무위키에서는 이와 같이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닛산자동차의 카를로스 곤이 레바논으로 탈출하자 끝내 송환에 실패했다. 그래서 일본 컨텐츠에선 해외 도피를 묘사할 경우 중국을 애용한다. 거리가 가깝고, 의식주 문화도 크게 다르지 않은 데다가 범죄인 인도 조약도 없어 개연성에 적격이기 때문."
이처럼, 많은 국가들과 체결한 범죄인 인도 조약은, 우리나라 내부에서 범죄가 발생했을 때, 그 범인을 잡을 수 있는 현실적 능력을 엄청나게 신장시켜 주고, 그로 인해 정의의 구현을 용이하게 만듭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아직도 사형제 국가였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일본과 마찬가지로,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은 나라가 거의 없게 될 것이고, 우리나라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외국으로 튀어버리면, 속수무책이 되어버린다는 문제점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약점을 노려서, 아예 입국할 때부터 일부러 우리나라 은행을 털려고 입국하는 외국 범죄조직도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그런 범죄자를 계속 끈질기게 추적하면, 대부분의 나라의 경우 범죄인 인도조약을 통해 인도받을 수 있기에, 초기 단계부터 단념시킬 수 있는 겁니다.
이게 바로 '사형 집행' 중단의 결단이 긍정적 피드백을 통해, 범죄인 인도조약이 다수 체결될 수 있도록 하고, 상당수 외국인 범죄에 대한 체포 가능성을 높여, 결과적으로 정의의 구현(범죄자의 체포) 가능성을 높인 결과가 되는 겁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프랑스는 96개국, 영국은 115개국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고 있고, 일부 주에서 사형제를 집행하기에 불리한 면이 있는 미국은 69개국(우리나라보다 적습니다.)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고 있습니다. 모든 국가들이 사형제를 폐지한 유럽 국가들의 경우, 확실히 많은 나라와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과실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습니다. 요즘같이 나라 간의 관광객이 폭증하고, 외국인 노동자를 보기 쉬운 시대에 외국인을 전혀 못 들어오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과실범이 되어 버리곤 하죠. 하지만, 그 실수에 따른 처벌은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범죄를 저지르면 그 직후 엄청난 두려움에 빠지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도망갑니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외국으로 도망가 버리면, 우리나라 경찰 당국은 속수무책이 되어 버리죠. 그 때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범죄인 인도조약입니다. 얼마나 범죄인 인도조약이 중요한 것인지 좀 느끼실 수 잇을 겁니다.
외국인이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갔었다는 것 자체, 바로 그 자체에만 흥분하면, 우리나라와 사회가 앞으로 범죄를 어떻게 줄여서 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소홀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외국인 입국을 전면적으로 만들 수도 없는 일이므로, 중요한 것은 범죄 발생 빈도를 줄이고, 만약 범죄가 발생하면 빈틈 없이 체포하여 정의가 구현되게 함으로써, 아예 처음부터 도주하지 않고 자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최선인 겁니다.
그런 점에서, 사형제를 아직도 폐지하지 못하는 바람에 범죄인 인도조약을 다른 나라와 맺지 못하고 있는 일본에 비해, 사형제를 집행하지 않아 실질적 폐지 국가가 된 우리나라는, 수많은 국가들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어서, 지금 현재처럼 외국인이 많이 들어와도 적절히 범죄를 억제할 수 있었던 겁니다. 물론 아예 외국인 입국 단계부터 까다롭게 조사해서 범죄를 저지를만한 사람을 거르는 방법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과실범은 이런 방법으로 거를 수 없고, 그만큼 선의의 피해자(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는 사람인데 의심받아서 입국 못하게 되어 버리는 외국인)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형이 선고된 수형자들을, 사형 집행 시설이 있는 교도소로 이감한 후, 마치 사형을 실제 집행할 수도 있다는 분위기를 풍겼는데...
저는, "(바보가 아닌 한) 설마 실제 집행을 하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사형을 집행하면, (수십년간의 우리나라 외교관들의 노력으로 체결한) 78개국과의 범죄인 인도조약이, 당장은 아니라도, 하나하나 끝어질 겁니다. 일본과 비슷해지는 거죠. 그러면, 범인이 외국으로 도망가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아주 골치아파 지게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