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잘 보았습니다. '안협소'는 저도 구독하는 있는 채널이라서, 예전에 한번 봤던 영상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안협소의 해당 영상이 지적하고 있는 것에 동의할 만한 측면이 있는 것은 맞습니다. 책이라는 게 자연광을 지속적으로 비추면 좋을 게 없긴 하죠.
그런데, 안협소에서 예로 든 일본 나가노현 치노시는, 위도가 35도 59분이라서, 우리나라 인제에 있는 도서관의 38도 06분과 비교하면, 훨씬 위도가 낮고, 치노시의 도서관쪽이 태양빛의 입사량이 강한 곳입니다. 태양빛의 입사량은 입사각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위도가 낮은 곳에 비해 위도가 높은 곳은 그만큼 태양빛이 약해질 수 밖에 없고, 1년 365일 전체를 따지면 차이가 있게 되어 일사량 합이 10% 정도 차이나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아래 링크에서 우리나라 각 지역의 태양 남중 고도 및 일사량의 차이를 보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일본 나가노현의 치노시는 우리나라로 치면 포항시와 비슷한 위도이며, 아래 링크에서는 남원시 보다 약간 높은 정도입니다. 인제군은 화천군과 비슷하고요.
건물을 짓는 건축가가, 일조량 같은 것을 생각할 때, 누구의 편의를 위주로 짓느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즉, 도서관 이용자 위주로 생각해서 짓느냐, 아니면 도서관 관리자(결국 책 보관자의 입장) 위주로 짓느냐에 따라, 건물의 채광이나 방향이 달라진다는 얘기입니다.
도서관이 아닌, 야구장의 방향을 예로 들겠습니다.
예전 시대에, 우리나라 야구장은 홈베이스 방향을 북쪽에 둔 구장을 지었습니다. 왜 그렇게 지었느냐? 바로 야구를 하는 선수들 입장에서, 낮경기를 할 때 외야수가 수비할 때 햇빛에 야구공이 들어가서 실책을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렇게 지었던 겁니다. 낮에 태양은 운동장의 남쪽에 있게 마련이니, 외야수는 태양을 등지고 수비할 수 있는 것이죠.
'야구를 아는 사람이 만든 야구장'이었던 겁니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 잠실 야구장이 그렇게 지은 야구장이고, 옛날에 지은 야구장들은 대충 비슷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지은 구장인 대구 라이온스 파크와 광주 챔피언스 필드는 그렇게 짓지 않았습니다. 홈베이스가 서쪽(또는 서남쪽)에 있도록 지어진 구장들이죠. 그렇다면, 왜 북쪽에 짓지 않고 서쪽에 지었을까요? 그건 외야수의 수비를 방해하는게 주된 목적이 아니라, 내야쪽 특히 1루쪽의 홈 관중들이 편하게 야구를 보라고 지은 야구장이기 때문입니다. 홈베이스를 서쪽에 두어야, 낮경기때 남쪽에서 비추는 태양에 관중들이 그늘에서 편하게 경기를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최신 야구장뿐 아니라, 미국의 야구장들도 마찬가지로 홈베이스를 서쪽이나 남쪽에 두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LA 다저스 구장은 홈베이스가 남쪽에 있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장은 서쪽에 있는 구조죠. 일찍부터 관중의 편의를 위주로 만든 구장들이기 때문입니다.
도서관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야구장 방향 얘기가 나와서 황당하실 수도 있지만, 이게 사실은 건물의 설계 철학면에서 동일한 얘기를 하기 때문에 언급을 한 겁니다.
즉, 야구선수들이 편하라고 설계하는 것보다, 야구장 이용자인 관중들이 편하라고 설계하는 쪽으로 바꿨듯이, 도서관 관리자들이 책 보관 업무를 하는 등 관리 편하게 하라고 설계하는 것보다, 도서관 이용자들이 편리한 방향으로 도서관을 설계하는 쪽으로 바꿨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도서관을 많이 이용하여 활성화될 게 아니겠습니까?
도서관은 '책'이 중심인데, 당연히 책 보관에 편리한 구조로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예,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 예전에 책이 드물고 비싼 시대(필사본 위주의 중세 이전시대, 그리고 인쇄술 이후에도 책이 드문 시대, 우리나라로 치면 대충 30 내지 50년전까지의 시대)에는 그런 게 도서관 건물 설계에서 강조되어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 책 인쇄는 어려운 일이 아니며, 우리나라 도서관들은 매년 많은 책을 사들이고, 동시에 많은 양의 오래된 책을 폐기하고 있습니다. 정말 희귀본 책이라면, 그런 책들만 모아서 서고에 보관하고 있고요.
따라서 이런 시대(주기적으로 계속 책을 구매하면서 오래된 책을 폐기하는 시대)에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책 보관을 위주로 도서관 건물을 짓는 것보다는, 도서관의 이용자 편의를 주된 목적으로 도서관 건물을 짓는 게 맞는 겁니다.
정말 색깔있는 책이 너무 바래는 문제점이 있다면, 그 부분의 책장은 가림막으로 가리면 될 일이고, 희귀본은 자연광이 안 비치는 서고로 이동해서 보관하면 해결될 일이고요.
이렇게 도서관 건물의 설계철학이 예전 시대와는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인데, 이런 사정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서, 인제 도서관에 너무 과도한 비난이 가해진 것 같습니다.
머 자연광에 책이 탈색되는건 당연한 사실이고 아무리 빛을 차단한다 하더래도 저정도 창이면 의도적으로 빛을 차단하게 만든 도서관에 비해 효과가 떨어지는건 사실이죠.
헌데... 저 몇만명의 방문객 중 책을 읽을려고 방문한 사람이 몇프로나 될까 생각해보면...
책보다는 도시 소멸자체를 늦추고 방문객을 늘려 도시경제를 활성화 하는 목적으로 보는게 맞을 듯.
도서관은 그 옆에 따라 하나 더 지어도 되지 않을까요 ㅎㅎㅎ